남자는 내 친구가 설명해준 대로였다. 옷차림은 지나치게 단정하고, 얼굴은 지나치게 반듯하고, 손가락 또한 길고 가늘었다. 날카로운 모양으로 쑥 들어간 눈꺼풀과 유리 세공품처럼 차가운 느낌의 눈동자가 없었다면, 필시 완벽한 동성애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그 눈 때문에 동성애자로 보이지 않았다. 도무지 무엇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도 닮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연상시키지 않았다.
눈동자는 자세히 보니 이상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갈색을 띤 검정에 아주 조금 파란색이 섞여 있고, 오른쪽과 왼쪽이 그 정도가 달랐다. 마치 오른쪽과 왼쪽이 각각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눈동자였다. 무릎 위에서 손가락이 희미하게 계속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당장에라도 열 손가락이 그의 손을 떠나서 이쪽으로 다가올 것만 같은 환각에 사로잡혔다. 기묘한 손가락이었다. 그 기묘한 손가락이 천천히 테이블 위로 올라와 3분의 1 가량이 줄어든 담배를 비벼 껐다. 잔 속에서 얼음이 녹아, 포도 주스에 투명한 물이 섞여가는 것이 보였다. 섞이는 것이 균일하지는 않았다.
“나는 당신과 가능한 한 정직하게 이야기하려 합니다”라고 남자는 말했다. 어딘지 모르게 공문서를 직역한 것 같은 말투였다. 어구의 선택과 문법은 정확했지만, 말에 감정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것과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요. 정직과 진실의 관계는 선두와 선미의 관계와 비슷하지. 먼저 정직함이 나타나고, 마지막에 진실이 나타나는 거야. 그 시간적인 차이는 배의 규모에 정비례하지. 거대한 사물의 진실은 드러나기 어려운 법이오. 우리가 생애를 마친 다음에야 겨우 나타나는 것도 있지. 그러니까 만약에 내가 당신에게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 책임도 당신의 책임도 아니오.”
( 무라카미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중에서 )
로댕은 눈부신 대리석으로 두 개의 손을 조각하여 서로 마주 보게 하고는 그 작품에다 '비밀'이라는 제목을 붙였지요. 이상적인 인간의 몸을 밀로의 <비너스>가 현현하고 있다면 손은 단연 로댕의 몫입니다. 그 손은 살아 있는 사람의 손보다 더 살아 있으면서도 비현실적입니다. 너무 사실적이어서 현실에서는 차마 만나 볼 수 없는 그런 손입니다. 그것에다가 로댕은 '비밀'이라는 제목을 부여했습니다. 실로 대담하지 않나요? 로댕 이전에 그 누구도 손만을 독립적인 오브제로 작업한 사람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토록 관념적인 제목을 붙인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로댕은 조금 거친 질감의 석재를 사용하여 이번에는 두 손을 마치 두 명의 무희가 마주 보고 춤을 추려는 듯한 자세로 약간 엇갈리게 배치하여 조각했습니다. 그러고는 그 작품에다가 '성당'이라는 제목을 붙였지요. 역시 멋지지요? 로댕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역시 미켈란젤로입니다. 그의 대표작 <다비드>는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습니다. 오 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다비드>, 완벽한 균형과 비례는 보는 사람을 한순간 경건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진실로 저를 얼어붙게 했던 것은 <다비드>의 손이었습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는 그 손만을 찍어 만든 엽서가 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 손에 감탄하고 돌아갔던 탓이겠지요. 로댕의 작품에는 없는 진실이 미켈란젤에게는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핏줄이 있습니다. 늘 혈관을 못 찾아 헤매는 간호사가 본다면 주삿바늘을 찔러 넣고 싶은 그런 핏줄을 대리석으로 조각해 냈습니다. 로댕의 손이 현실을 추상한 이상이라면 미켈란젤로의 손은 이상을 제거한 현실입니다.
( 김영하, 「 손 」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