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 이효림님의 교우 단상: 곰곰이가 주일 예배에 참석할 그 날을 그리며! ◈
요즘 룸메이트 하나가 더 생겼습니다. 4년을 교회 뒤편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친구인데, 최근 과학화 경계 장비(a.k.a CCTV)의 수혜로 내근직으로 발령이 났답니다. 또 다른 룸메이트인 형은 밤 11시에 들어와 아침 8시면 나가기 때문에 제게 있어 S급 룸메이트인데, 이 네발 달린 친구는 4년간 바깥에서 얼마나 냄새가 배었는지 샤워를 아무리 시켜도 빠지지 않는 꼬롬한 냄새를 풀풀 풍기며 하루종일 발밑에 붙어있습니다.
요즘 핸드드립을 연습한다고 매일 살짝살짝 레시피를 바꿔가며 커피를 내려서 집으로 올라와 마시며 향과 맛을 노트에 기록하는데, 이 친구 때문에 커피 향에 개 냄새가 더해져 어떤 커피든 ‘콜롬비아 버번 시드라 곰곰, 에티오피아 시다마 벤사 곰곰, 브라질 풀 블룸 곰곰’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깊게 들이마시면 커피 향과 같이 들어오는 그윽한 그 냄새에 어이가 없어서 발밑을 내려다 보면, 발아래 둥글게 몸을 말아 자는 척하며 시간을 때우던 곰곰이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슬로우 모션으로 흰자위를 들어내며 맹~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데, 그 표정이 얼마나 나사 빠져 보이는지 웃음이 날 정도입니다.
여러분 곰곰이를 제대로 본적 있으신가요? 사람 그림자만 보여도 소스라치게 놀라 하며 개집으로 쏙 들어가서 아마 교회 강아지 하면 톡톡이랑 걸침이만 떠올리는 분들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곰곰이는 제가 우크라이나에 유학을 가 있는 때에 태어난 아이라 곰곰이의 어린 시절은 잘 모릅니다. 그냥 수화기 너머로 “곰곰이를 잃어버렸다.” “다시 찾았는데, 죽다 살아난 몰골을 하고는 나타났다.”라는 말만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죽다 살아난 곰곰이는 자신 외 그 누구도 내막을 알지 못할 그 사건이 큰 트라우마가 되어 사람을 무서워하게 되었고, 아주 작은 소리에도 굉장히 예민하게 되었습니다.
수요예배, 주일 예배 때 교인분들의 차가 주차장에 들어서면 이제는 알 법도 한데 꼬리를 가랑이 사이로 감추고 누가 잡으러 오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난리가 아닙니다.
어쩌다 손님이 집에 들어오면 오줌을 지리며 벌벌 떨며 도망을 다니고, 밤이면 악몽을 꾸는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를 자주 내어 깜짝 놀라 깨는 일도 허다하답니다.
근데 최근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산책을 시킬 때 360도 반경 20m 이내에 접근하는 사람이 있으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반대 방향으로 냅다 뛰던 곰곰이가, 이제는 무서워는 해도 살짝 피해서 제 갈 길을 가고, 주일 예배 후 재무를 보려고 솔님이 목양실에 올라와도 세탁기 있는 곳까지 도망가지 않게 되었고,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면 불안해하기는 해도 벌벌 떨지는 않습니다. 그동안엔 “곰곰이 네가 너무 짖고 사람을 무서워해서 어쩔 수 없이 뒤에 묶어놓을 수밖에 없는거야”라고 하며 억지로 곰곰이의 엉덩이를 밀어 넣었는데, 작금의 사소하나 곰곰이의 커다란 변화를 보면서 어쩌면 곰곰이는 마음의 상처를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와 닫힌 마음을 열 수 있는 사소하지만, 지속적인 애정이 필요했을 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곰곰이를 통해 내가 사람을 대할 때 어떤 식으로 대하고 바라보는지, 또 타인을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노력과 사소한 관심들이 얼마나 큰 변화를 주는지, 새로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덤으로 향까지 더해주는 곰곰이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뒤에서 외로웠던 만큼 껌딱지가 되어 지금 글을 쓰는 와중에도 새초롬하게 앉아 맨발을 할짝할짝 핥아대는 곰곰이의 애교를 언젠가 여러분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P.S 맨살만 보이면 침 범벅을 만드니 꼭 긴 팔 긴바지를 챙겨입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