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나는 경주 사서였다 / 용각산
신라만 생각하고 신라왕실 도서관 '천문고' 지킴이 될 각오를 돌맹이차럼 안고 왔었지!
덤으로 옛 신라 걸어보면서 진성 여왕도 마음 속으로 그려보기도 하고, 첨성대 위로 떠 있던 별들이 신 새벽 책을 품고 비천으로 내려와 동틀 무렵을 찬란히 날갤 펼치며 떠오르는 꿈의 화가가 되어서 상상의 붓을 잡고 신라라는 화폭에다 물감칠을 해보기도 하면서 자동차 면허증 없음이 다행한 행복으로
발이 아프게도 걸어도 보면서 왔었지, 사서 두 글자가 내 목숨보다 귀한 것이라며.
날이 새던 비가 오던, 눈이 펄펄 나리는 달밤에도 도취되고 도취하여, 아린 슬픔과 달빛에 비추인 눈송이 같은 행운의 범벅에 술병을 나팔로 불며 거닐던 벌걸음이 때론 젖은 가슴이 후련하고 다시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하였지.
혈연 지연 개의치 않않다
조호일 학과장, 정점식 총장 추천장 들고 말씀 보듬고 길 따라 왔다.
할 일은 사서일 이었다
추천의 값을 반쯤 하였더니
서지학자 배현숙 지도 가르침의 말씀이 생각 킨다
여언적시야라. 경상도 말로는 니말 꼬쟁이다 라고 풀이가 된다.
세상은 참고서가 많아야 봉사가 된다는 참고봉사 박준식 교수가 자리를 옮긴 이후 일본에서 학위를 받고 권은경 선생이 오셨다
권은경 선생 첫 출근 날 아침 보따리를 함께 들었다.
세상 목록은 점하나 틀리면 목록이란 없다
이 것이 김남석 학자의 목록학의 길이라고 하셨다.
무아 김정소 선생은 도서관은 장소가 아니라 유기체로 꿈의 실현 현상이라고
그 당시 상상 못할 논문을 기록으로 남기셨다.
84년 겨울에 사서 1호 정우용 선생, 사서 2호 김경숙 선생. 사서 3호 손동화 선생, 그다음 호로 복 사서가 왔다.
그해 겨울 독서교실에서 하얀 머리에 석굴암 부처보다 아름다운 미소로 들려주던 동화구연은 청청 푸른, 오래된 푸른 단청이란 듯 또한 잡티 없는 새하얀가슴으로 새기신 고청이란 호를 가진 윤경렬 선생이었다.
공예촌에서 내려오신 김종준 촌장님은 우리들 보고서, 경주에서 유일하게 '사서'라고 불러주시면서 "고생한다 고생한다"
"책이 보물 지도"다 고 하시면서 동협공방에서 주물로 뜬 까치 호랑이처럼 웃으시며 밥과 소주까지 사주셨다.
이 시절 관공서 납품 대금에서 10 프론 기본이었다.
그시절 여름과 겨울 방학때면, 도서관 좌석은 150석이 한정이라 새벽 다섯 시부터 온 학생 자리는 한정이었다.
대릉안 사적공원에 있던 80석의 열람실은 없어져 있을 때였다.
머심아놈들은 힘이 좋아 여자 아이들 밀치고 새치기한다.
미리 준비한 긴 대나무 장대로 줄을 세우면 울타리 따라 용틀임하는 한 마리 용처럼 생긴 모습이었다.
새치기 한, 나무 같은 놈들과 꽃 같은 여학생들 솎아낸다
그 시절 오후면 동국대 한의대 김오곤(유명 한의사) 이도 드나들어 매표소 일을 도왔다.
그 무렵 독서회원 안창규 모친이 뉴대번 앞에서 포장마차를 하시면서 절마 괞찮다고 복 짝지 소개해 주셨지만 인연이 되지는 못했다.
옛 경주여중 앞 문방구 거리에 살던 김시백의 여동생이었다. 훤출한 키에 미인이었다.
복 사서 상사 한수길이라는 분께서 열 다섯번 중맬 해주셨지만 잡초인 내 욕심이 봉황대 청춘 시절
석굴암 보다 높았지 싶다. 한수길 상사님 고맙고 고맙고 고마웠습니다.
그 디음엔 청춘 때부터 아시던 농협 부녀부장님에게 너거 딸 임마한테 주어라고 까지 하셨다.
어느 닐 그분 부녀부장님 께선 안동시청에서 촉망 받아있는 행정 7급 김*숙 씨를 소개를 해주셨다.
똘똘하고 당차셨다. 어제 당직하고 내려온 분을 불국사에 앉아 한낮을 보내고 난 뒤, 또 내려왔길레 전 꽃 옆에 선 나무가 되기엔 부족합니다 고 했을 때
남산 위로 구름을 흘려보내는 바람 같은 마음이었다.
신라 역사는 흘러도 마애불 남산은 그대로 있고, 구름은 떠 흘러가도 하늘은 그대로 남아 도리천 지켜다 본다.
김만술 선생은 가쎴어도 사정동 1 다시26번지 어린이 헌장비 자모상은 바라보고 있다.
경주 사서 4호 복 사서는 남긴 것 없어 유산으로 줄 것 아무 것도 없다.
허나 거지처럼 되내여 본다.
"책은 미래의 등불이며 도서관은 세상을 가꾸는 텃밭이다"
지난 분수대가, 지난 김만술 예술가가 사라졌어도 사람은 가도 자취는 남는다는 것을.
2박 3일을 술을 퍼마시고 다녔지만 어느 사서보다 스스로 기획해서 문화행사를 남보란 듯 해내기도 했었다.
안강 도서관에서 " 책은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며 도서관은 세상을 가꾸는 텃밭이다" 라는 문장을 지어서 가슴에 새겼기 때문이다.
은퇴를 했지만 나는 아직도 사서다. 하지만 바보 사서다.
세상 길을 책으로 안내하는 자, 가문 정보의 개울을 건너게 하는 징검다리가 사서다.
사람을 키우고 세상을 가꾸는 자 이름하여 사서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