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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일 났다 눈꽃 오셨는디
강병철(소설가)
소설가 김홍정이 시 뭉치를 내민다.
벚꽃 사태가 눈보라처럼 뿌옇게 흐드러지던 남도의 봄바람 탓이었을까, 뒤로 갈수록 아리고 시린 사연들이 심장을 꾹꾹 찌른다. 먼저 어린 소년 하나가 부친의 소매 끝동 붙잡고 졸졸 따라다니던 저자거리 배경이 펼쳐진다. 잠시 숨을 고르니, 이번에는 노모의 병동 창문이다. 외딴섬으로 차단된 마지막 길목에 서서 모친의 먼 길 배웅하는 초로의 아들내미 목소리가 아른아른 드러난다. 그리고 다시 역마살 붙은 여행 도정의 서정성이다. 한반도 어느 저무는 강가 후미진 모퉁이 어디쯤 주저앉으면 고르지 않은 날줄씨줄로 엮였던 활자들이 비바람 골짜기를 거치면서 마침내 실체를 드러낸다.
병동 6105호에서 보호자로 임하면서 정리했단다.
요양병원의 간병인 자리는 1분도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기실 하는 일이 정신없이 바쁜 것만은 아니다. 지금은 그리운 사연들을 호명할 때마다 답하고 묻다가 침대 곁에 바싹 붙어 마른 입술을 축축이 적셔주면서 상황을 고르는 중이다. 지금도 노모는 ‘색동옷 팔러 가신 엄니의 엄니’만 연신 부르다가 다시 눈에 잡히는 피붙이를 하나씩 당기는 것이다. 한 번 떠나간 불빛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 연미산 넘어 들어오는 방언이나 받아내어 목소리 그대로 되돌려주며 시간이 흐를 뿐이다.
바야흐로 코로나 정국이었다. 문을 열기만 하면 다정한 이웃으로 안고 부대끼던 풍경이었는데 언제부터였나, 마스크 씌우고 플라스틱 칸막이로 첩첩 차단시키니 손을 잡기는커녕 작은 손짓 하나 읽어내는 것도 만만치 않다. 하여, 창가에 서성이며 은빛으로 펼쳐진 새털구름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병동의 계엄령 시국이다.
동시에 지난(至難)한 환경들이 때로는 또 다른 출구를 만든다. 그 철저한 고립이 흩어졌던 작가의 사연을 한꺼번에 접맥시키는 끈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장날 해가 중천이 지나면 아버지 가게로 장꾼들이 모입니다 이제 난전은 파장을 준비합니다 나는 공부를 접고 가게로 달립니다 장꾼들은 어물전 앞 군산댁 노점에서 미역을 데칩니다 아버지는 해삼 한 마리를 사서 반을 잘라 나를 주시고 남은 반을 사람 수대로 나눠 미역을 두릅니다 군산댁이 따르는 잔술만으로도 성찬입니다
-「달빛 강정」 부분
그래서 모처럼 그의 유년을 한가롭게 되살리니 날아갔던 스크린이 고구마 뿌리처럼 끝도 없이 끌려 나오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노모의 변기가 고장 나면서 유년의 뒤뜰 먹감나무 아래 사립문 측간이 또렷이 등장한다. 송판 두 개로 균형을 잡아 자연스레 ‘뒷간’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게 되던, 그 ‘퉁,퉁’ 떨어지던 낙하 소리도 아스라한 추억의 설렘이다.
구천으로 떠나신 그의 부친도 초로의 아들 정수리를 쓰담쓰담 매만진다. 점방의 만두 하나 아들에게 건네준 다음 맑은 술로 입맛을 다시던 그 부친이다. 해삼 한 마리 절반을 뚝 잘라 아들에게 주고 나머지는 술청 이웃들 숫자대로 나누어 미역을 두르던 순정의 풍경이다. 그도 합체된 딱새로 정착하여 열무밥 비비며 내일 내놓을 물건 걱정에 동참한다. 그러다가 쉰셋 동갑나기 탈상까지 마친 부친께서 서둘러 먼 길을 뒤따라 나서면서 소도시 장년의 가장(家長)이 먼저 빈자리가 되었다. 그 피붙이끼리 빈자리 채워주던 온정이 합체되면서 달빛 강정으로 변신 되거나 밥숟가락 받아넘기던 부엉이 울음으로 되살아난다.
간이역 가로등 어둠을 밝히자
세상은 온통 황금빛 그리움으로 남고
기차는 돌아오지 않고 심장을 멈춘답니다
-「낯선 약속」 부분
김 작가도 코로나 정국을 비켜서지 못했다. 그러나 모친의 침대에 바싹 붙어 지난 90년 세월 마지막 동행에 집중해야 하므로 스스로의 몸을 보살필 여유는 아예 없었다. 병동은 어두운 침묵으로 기침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이다. 꽃향기도 함부로 스며들지 못하니 그저 창말에서 유년을 보낸 노모 곁에 하염없이 이맛살 맞대고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안개 낀 연미산 꼬리에서 나룻배 기다리며 부엉이 울음소리 듣는 중이다. 붉은빛이 일렁이며 강물을 폭삭 덮는데,
문득 벗들의 스크린이 등장하니.
어쩌지요 사흘이나 비가 내렸답니다 그래도 구름이 남았을까요 제 속을 몽땅 들어내 남은 바위마다 새겨둘 참입니다 눈꼽 만큼이라도 비가 내리면 제 속은 이끼가 되어 바위에 남고 빈 몸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이 얘길 소문내 주실래요
- 「비를 기다리는 이유」 부분
골짜기에 깔린 구름이 양탄자처럼 둥실둥실 떠올라 주휼산 등성이 넘는 걸 내려다보고 싶다던 시인이 있었다. 산마루에 새도록 진을 쳐도 ‘그리움이 슬픔’이라는 명제만 확인될 뿐이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그랬다. 나 역시 그 망자 시인과 30여 년 넘게 원 카드(one card)로 지냈으며 지금도 꿈속에서 발가벗고 나타나기도 하니 술청에서 합체하던 음험한 시국에의 회한과 그리움이다. 그가 먼저 하늘로 떠나갔고 또 몇 년이 흘렀으니 세월이 필시 빛의 속도이다. 아, 아프다. 나는 두근두근을 다스리지 못한다. 살갑게 살던 벗들의 대면이 힘들어 입술을 열지 않던 기억도 서서히 자막에 덮인다. 현재 시인들에 대해 칭찬이 인색한 노교수,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난 망자 시인 등의 상자를 열어볼 자신이 차마 없는 것이다.
내가 89년 4월에 정착했으니 이제 고마나루 이력 35년이 지나간다. 『민중교육』 필화사건으로 해직되었다가 4년 만에 돌아간 부여행 길목의 소재지 중학교 투시담의 팬지꽃을 바라보던 알싸한 기억이다. 그리고 그 학교로 복직하기 전에 이미 그가 근무한다는 소문을 이차구차 들었던 터이다. 그가 전교조 공주지회장의 직책으로 당대 정권과의 대결 한판을 벌인다는 소식통 때문이다. 시국은 마주 오는 열차의 치킨 게임 중이었고.
전교조와 노태우 정권의 정면 대결로 뒤숭숭한 그즈음 하필 그 학교 현장으로 복직을 한 것이다. 부임 첫날 그는 교무실에 없었다. 교통사고로 타박상을 입어서 임시 휴직 상태였다는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그래서 첫 대면 자리가 어느 예식장을 빌린 불법단체 전교조 공주지회 창립대회장였던 것 같다. 그가 목발을 짚은 채 단상에 서서 지회장 수락 인사와 대회사를 읽은 직후 처음 안면을 텄다.
그즈음 회자 되던 그의 별명은 ‘미스터 산적’,
첫인상의 저울추 무게를 재빨리 스캔한다. 우선 눈이 크고 부리부리하다. 얼굴 면적도 넓고 체격이 우람하다. 나는 취사반 병장 출신인데 그는 육군 대위로 전역한 근육질 사내이다. 그의 곁으로 젊은 교사들이 우르르 몰려들 듯한 쏠림이 느껴지는 동학군 접장 스타일이다.
그리고 며칠 후 한 교무실에서 나머지 11개월을 동거하게 되었다. 그는 판단이 정확해서 산적한 문제를 빠르게 처리하는 스타일이었다. 우리는 박종건, 이복순, 백남용 등과 함께 책을 읽고 수상한 시국을 토로하다가 가끔 바둑알도 고르면서 기대고 의지했다. 그해 여름, 89년 전교조 대량 해직 사태는 단두대에 목을 넣는 결정이었는데 내가 가장 먼저 견디기 힘듦을 고백했던 것도 같다.
남아있는 교실 현장도 만만치 않았다. 전교조 해직교사보다 한 기수 먼저 학교를 쫓겨났던 나는, 만약 칠판 앞에 서기만 하면 진짜 ‘아름답게 사랑해야지’ 주문을 외우며 손바닥 발바닥 비비는 세월을 보냈다. 또 실제로 그 심장박동 그대로 교단에 임했던 것 같다. 그런데 달랐다. 중년의 복직 교사가 16세 질풍노도들을 만나는 방법이 서툴렀던 탓이 가장 크다. ‘나는 너희들을 사랑해.’ 그렇게 수업 집중을 위해 악을 바락바락 썼지만 꿈나무들은 내 가시거리에 들어오지 않은 채 멋대로 떠들고 볼펜으로 찌르며 킬킬대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단지 전달 사항을 위해 동료 국어교사인 김홍정 선생이 우연히 문을 여는 찰나 럭비공 청소년들이 재빨리 질서정연한 고요에 빠지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 질러도 말을 듣지 않던 질풍노도들이 단 한 대의 매도 대지 않는 그 스승 앞에서는 조신하고 얌전한 체질로 변신하다니, 그건 그렇고.
그즈음 나는 두 권의 책을 출산하면서 작가라는 호칭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때까지 그에 대해서는 독해 능력이 빠르고 감각이 예민한 교사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작가가 될 것이란 생각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같다. 단지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울타리에 들어서기 위해 술에 취할 때마다 전화 다이얼을 돌리며 미주알고주알 불러내려고 졸랐던 것 같다.
언제였던가, 그가 나에게 원고지 봉투 하나를 슬쩍 들이민 적이 있었으니, 그 또한 수십 년 지난 아득한 스크린이다. 시집 한 권 분량과 중편소설 원고지였는데, 내가 특히 소설에 대해 좋은 평을 했던 것 같다. 구성 능력과 통 큰 배경 설정이 보였고 이따금 번뜩이는 어휘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의 첫 시집 출간 10년 후쯤이었던가, 그가 또 소설집 『그 겨울의 외출』 출판기념회를 열어서 조금은 뜨악한 느낌으로 나도 무대에서 후원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뒤풀이 건배사에서 내가 ‘사랑한다, 한판 붙자’를 외치기도 했다.
중년들은 긴 줄을 견디지 못하고 주변을 살피다가 둘씩 편갈이를 합니다 물항식당 고등어는 둘씩 웃으며 들어서는 중년들을 맞이합니다 붉은 눈을 번득이던 고등어 머리통이 잘리어 개수대 옆 고무통으로 들어가고 중년들은 서로 모르는 척 탁자를 차지합니다 고등어가 꼬리를 떼고 탑동 칸데라 불빛으로 사라집니다 간격 없이 붙어 앉은 중년들은 검은 바다로 가는 항해를 꿈꾸는 중입니다
- 「물항식당 고등어회」 부분
다시 10년 세월이 흐르던 어느 날 그가 문학판에 훅 들어온 것이다. 그가 돌연 대하소설 『금강』을 생산하면서 처음으로 고마나루의 지각변동을 예감할 즈음이다. 나뭇가지에 먼저 피었던 꽃잎이 늦봄 이파리에 감춰지듯 시나브로 내 얼굴이 가려지는 느낌이 있었지만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글의 필력이 예전과 달랐다. 남해안 섬에서 조각배 하나로 대마도를 건널 때에도 한두 문장으로 거친 해엽의 풍랑을 훌쩍 넘는 것이다. 칼잡이 무사의 날랜 혈투도 두 합 정도 피하다가 세 번째에서 찔려죽는데 긴장감을 건너뛰는 단문 처리로 오슬오슬하다. 주막에서 만나는 묘령의 여인 등장으로 독자의 입술이 마르는 찰나 ‘밤이 왔다’는 투로 슬쩍 마감하는 것이다. 디테일을 중시하던 나의 문장과 비교하면 『장길산』과 『임꺽정』의 차이랄까. 그 후 몇 차례 그의 기획 행사를 가졌고 나는 두어 번 정도 참석했던 것 같다. 소설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어찌 잠을 청할 수 있을까요
골목길 정류장에는 버스가 끊겼습니다
어두운 안개 속 강가
쌍신들 갈대숲을 지나온 바람이 속삭입니다
그리운 사람은 지친답니다
전할 말 있으셔요
- 「단문 편지」 부분
이제 안개 짙은 강가로 바람만 속삭이니 기다림도 지치지 않고 망부석처럼 처연할 뿐이다. ‘그래도 전할 말 있으셔요’처럼 엄살이 없다. ‘그립다’는 말은 몇 차례 쏟아내지만 대부분 단문이므로 독자들이 앞뒤 행간을 찾아야 한다. 괜찮다. 답신이 없으면 당연히 정처 없는 나그네의 행보를 살펴야 한다. 막차가 끊어지면서 연미산 회오리바람도 숨을 멈추는 수상한 분위기이다. 소금밭 목마름을 견디던 그 해당화 소식은 열 번쯤 망설이던 답신이란다. 싸-하고 은밀하다.
오래전 되돌아온 편지에 쓰인 깊어지고 있다는 말
불통으로 되돌아온 별이어서 선연합니다
긴 울타리 노란 수국들은 목을 늘이고
바람에 실린 소리에 취하여 꽃잎이 쌓여도
춤곡에 맞춰 떠난 이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노을 지는 바다」 부분
유영하는 물고기 지느러미로 출렁이니 이제야 숨이 트인다. 고하도 숲길 거닐다가 시화(詩畫) 앞에서 만난 예술가도 슬쩍 되새김질하니 아주 잠깐 한적해진다. 그는 가는 곳마다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무심이 걷다가 한참 후에 되돌아보는 체질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되새김의 그림자가 진해지면서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것이다.
이따금 손을 내미는 무녀의 표정도 어디선가 그의 보살핌이 필요할 것 같다. 오방색 깃발을 펄럭여도 손님이 없어 당주조차 잃은 무녀가 되려는 찰나 웬걸, 해장탕 파는 성황당으로 변신하니 신선한 착상이다. 기왕지사 산뽕차까지 팔았는데 여전히 섶다리 누이는 답신을 보내지 않는다. 그러다가 ‘곰나루 사는 저 애는 당신의 씨가 아녀’ 머리카락 눈발 털 듯 슬쩍 토로하면서 비밀 커튼에 가려졌던 삼십 년 체증을 가뿐히 풀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문을 열면 새로운 몸으로 고개 숙인 풀꽃들이 얼얼하게 아름답다.
그런데 토굴 농도 진한 소금 속에서 푸른 진국 우려내던 새우등처럼 비장한 묘사가 끈적하게 가로막기도 한다. ‘춤곡에 맞춰 떠난 이 돌아오지 않으니’ 이제 기다림을 마감해야 한다. 마침내 해당화 사라진 제방으로 나룻배 정박시킨 채 고단한 여정을 접는다. 새도록 친 통키타 소리에 취해 몰려오는 오징어처럼 그림자로 남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돌아올 것 같다. 섬뜩하다.
모두 제 할 일을 하죠 포장된 밥을 먹고 용변을 보고 유리창 너머 먼 산도 보고요 가끔 그대 얼굴이 스치면 참 행복해요 사진 한 장 가져올 걸 그랬어요 이 방에 있는 것들은 방역 후 소각 처리한답니다 사진을 안 가져오길 잘했죠
- 「맑은 하늘에 꽃향기가」 부분
그래서 노모와 동행하는 그의 마지막 행보는 연시(戀詩)처럼 아름답다. 중남미 밤 말리의 노래에 취해 간이역을 서성이며 자작나무 둥치에 맞댄 모자의 등허리가 떨어지지 않는다. 모친을 업고 능소화 핀 돌담을 넘던 사무침으로 붉은 노을도 사뿐히 받아들인다. 부엉이 울음조차 사라진 성탄절 전야, 기차가 멈추더라도 내릴 곳은 정하지 않는다. 붉은 고기 썰던 흰 덧니의 여인이 눈물을 훔치던 사무치는 어둠 탓이다. 으스스하다. 방파제 물살 소리 소환할 때마다 시린 이별이 지워지지 않는 이유이다.
이제 시문의 연륜이 더 깊어지면 어떤 감성들을 소환할 것인가. 늦깎이처럼 날아온 씨앗 하나가 오뉴월 땅 냄새 맡아 뿌리 성성이 세우듯 시의 리듬을 맡았으니 어쩔 것인가, 숨어있던 단풍나무 비장한 단상도 사뿐히 뽑아 손바닥 위로 폴폴 날릴 참이지만 당분간 그 비밀의 화원은 열리지 않을 참이다. 이제 움직여야 한다. 그림자 하나 바다로 흡입되었으니 큰 고개 넘으면 또 다른 고개를 넘기 위해 어서 신발끈 졸라매야 한다.
밤새 기다린 눈은 내리지 않았지요 자주 깨어 창밖을 보다가 어둠 속에서 창을 들
여다보는 깊숙이 패인 눈을 보았지요
죽을 수 없으니까 대숲에 숨어들었지 울타리 뒤에서 무성산으로 길게 이어지거든
호랑이가 살았거든 성주신이 지붕이 내려앉기 전 그 대숲으로 들어가는 걸 봤으니까
그 대숲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없었지 아 아이는 살려주슈 순간 호랑이가 눈을 감았
지 무섭지 않더라구 글쎄 성주신께서 호랑이 목을 칭칭 감았다니까 숨 막힌 호랑이
앞발이 눈을 스친 건지는 모르고 온 세상이 피로 물들었지
제 가슴에 못을 치는 분탕질이 지나고 눈썹달 뜬 날 대숲을 나왔고요
식구들은 그 자리에 남은 황토 위에 대나무로 기둥을 더하고 댓잎을 덮었습니다
사람들도 대나무 집이라 부르지만 그 이야길 믿는 이는 없습니다
눈썹달이 뜨면 성주님을 모셔 팥시루떡을 찝니다 대숲과 장독대와 부엌에도 둡니다
식구들은 떡을 먹으며 눈썹 밑에 깊게 파인 흔적을 외가집 이야기로 듣습니다 그 깊
은 눈으로 코로나 병실을 들여다보는 그 눈 말입니다
노모는 깊은 가래를 삭이지 못합니다 아직 눈썹달이 멀었습니다
-「시루떡 먹는 사연」 전문
기실 시문은 산문 문장과는 톤의 바탕이 다르다. 짧고 강하며 때로는 가없는 여운을 남긴다. 소설처럼 인과관계나 디테일, 구체성 등을 촘촘히 따지기를 요구하지는 않으며 대부분 직관과 감성으로 승부를 본다. 여백이 많을수록 독자의 상상력이 확장되니 자칫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우를 피하기만 하면 된다. 김소월이 그렇고 기형도를 비롯한 운문쟁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태연하다. 때로는 문장이 고독해 보이지만 벗이 없으면 혼자 마시고 저무는 산하를 배경으로 멘탈에 젖으며 스스로의 수렁에 푹신 빠질 판이다. 혼술과 어둠의 합체에 혼신의 감각을 쏟아내니 스펙트럼이 그지없다.그러니까 이가 없어도 잇몸으로 씹으니 그게 대범한 필력의 기관이 된다. 서사적 스토리의 출렁임이나 무당의 춤사위 같은 연시풍, 그건 그의 대하소설 『금강』에서도 암초처럼 불쑥불쑥 드러나던 문장의 연동이다.
눈 오는 날 그대 떠나고 나는 둥구나무 뒤에 숨었다가 구절산 용봉입동골 자귀나무 숲 우거진 골짜기에서 웁니다
으헝으헝 산울림이 회오리가 되어 피어오르는데 구절사 암벽 오똑한 미륵불마저 거둬 검은 산매 사나운 발톱에 묶어 날아가니 산발하는 눈송이 헤아리다가 사무칩니다
눈 오는 날 그대 떠나고 나는 당산나무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 「눈 오는 날」 전문
늦깎이 행보 운운은 나의 기우가 맞을 것 같다. 힘센 가물치나 몸살하는 동자개로 변신했다가 수초 무성한 파도 속에서 ‘시문의 바다를 보았다’ 속으로 다독이며 지그시 시문을 열고 나올 모드이다. 구름 그물에 갇혔던 시어들이 드디어 소낙비처럼 쏟아질 판이니 그는 과연 운문 드라마의 서사성을 어떻게 기획하려는가. 메타포와 의인회, 사물에서 화자를 보는 관점 전환 따위는 차후에 찾을 일이다.
남녘의 봄날, 진도 팽목항 가는 길목 카페에서 열흘 내내 원고지를 껴안으며 읽고 쓰고 마셨음을 따로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