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전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가는 도중 목포시인 이두백선생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포에서 세명이 모여 고창문화원으로 시화를 보러 출발했다는 전갈인데 어쩌나, 나는 서울로 행차를 하고 있으니-
헐 수 없이 고창 문화원 윤간사에게 손님들 접대를 떠맡듯 부탁하고 서울 일을 보고 이튿날 내려왔는디,<목나 여러분들에게 미안>
다시 전화가 와설람에 시화 두점을 소장하고 싶다고 해서 5월 28일 시화 두점을 꾸려가지고 목포행을 서둘렀습니다. 물론 가기 전날 e메일로 목포 최은하 회원에게 시간이 되면 전화하라고 당부를 하는걸 잊지 않았고,
고창에서 1시간 거리인 목포 터미날에 도착하니 이두백 시인은 영암갔다가 오는길인데 아직 도착을 못했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자홍빛 입술연지를 바른 사십대 초반의 송선옥 시인이 차에서 내리는 나를 깍듯이 맞이합니다. 물론 첫대면인데 시화꾸러미를 들고 내리는 내가 나인줄 익히 짐작을 했겠지만-
시화전에 와서 작품을 보다가 /퉁소/ 앞에서 숨이 멎는줄 알았다는 송선옥시인과 함께 대합실에서 이두백선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인간사 그렇듯이 이런얘기 저런 사연을 엮어봅니다.
/저- 송선생 나를 본 적이 있소?/
/아니요 처음 뵙는데요./
/그러셨구려. 나 베트콩 같아서 얼른 눈에 띕디까?/
/아니요 월남사람 같았는데요. 까르르르르/
/내가 잘못 물었소. 허기사 요즘은 베트콩도 없겠지만 헐헐헐헐헐/
/선생님 허영만 교수를 아세요?/
/아! 몇번 만났을걸요 아마/
/저 그분의 청강생입니다./
/뭘 듣는데요?/
/詩 공부를 듣습니다만/
/흐흐흐흐. 시가 공부한다고 되는겝니까? 어디/
/그럼 하지 말까요?/
/아니요 허시요. 괜히 나땜시 시공부 망쳤다고 원망하지 말고. 헐헐헐헐헐/
송선옥씨는 손이 참 예쁜 여성인데 그 손 참 탐이 나더구만요. 이러구러 이두백 시인이 나타나고, 작당을 한 우리 세사람은 하구언과 남악시가지 건설현장을 건너다 보다가 바닷빛이 하도 맑아 오염될까져어 빠져 죽지도 못한 채 세발낙지 집으로 쏘-옥 들어가서- 그 다음이야 보나마나지요?
두시 조금 넘어 최은하회원으로부터 손전화가 걸려왔는데 4시 넘어야 시간이 난다고-
이런 재변이 있나요.
산낙지 전복죽 연포 낙지비빔밥에 백세주가 3병인지 4병이었던지? 이두백 시인은 광주에 입원하신 모친에게 가야하니 운전을 해야하고 운전을 하려니 술을 마실 수 없고 송선옥씨는 여성이고 보니 주량이 병아리 눈물 정도인데 그걸 마시고도 얼굴이 홍당무 사촌이 되어 가지고 헐떡 헐떡- ㅋㅋㅋㅋㅋㅋㅋㅋ
헐 일 없이 혼자서 다 마시고 있는데 어느덧 시간이 4시가 넘었던지 최은하회원이 날렵하게 찾아듭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럴 때만 쓰는 영탄調가 정해져 있으면 좋겠드구먼서도- 그건 없고
어찌되었던지 옆에 앉은 최은하 회원과 건너편에 앉은 송선옥씨와 이두백과 나 월남사람까지 재미있는 얘기인지 재미없는 얘기인지 시간 가는줄 모르다가 6시10분 막차로 고창으로 돌아오긴 왔는디- 그 여운이 어찌나 은은하던지 삶이라는 꾀나 斤數가 나가는 하루를 허나리로 넘었다 하겠거니와 내가 이두백 시인에게 던진 말 가운데
/이 선생, 내가 열세살에 고향을 떠나 지금 예순 세살이니 딱 50년 타향살이구려. 헌데 십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하는 남해의 물빛은 여전하구려. 가끔 혼자 오기도 했는디 그때마다 저 물빛을 보면 눈물이 나더라니까요./
/이미 타계한 김시라 아우와 여기 왔던날 밤 선창(평화광장이라던가?)을 헤집고 다니며 밤을 도파서 가음을 즐기던 일/들을 얘기하는 끝에 현대조선소에 근무하는 이두백시인의 말을 들으니 전남 도청이 들어앉는 남악리와 무안군, 목포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 목포의 새 면모를 갖추고 경제발전을 도모할 것이라 하는데요. 기대를 해야겠지요?
어쨌던 그런저런 얘기들로 추억에 젖어본 하루의 紀行을 마치고 돌아와 고창의 호-프집에서 아들과 마주 앉아 통닭 한마리에 맥주 500CC 두 잔을 더 마시고 자고 일어난 오늘 아침 내가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가락은 -목포는 항구다- 입니다. 그려.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똑닥선 운다.
유달산 잔디 위에 놀던 옛날도
동백꽃 쓸어 안고 울던 옛날도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눈물의 고향.
눈에 넣고 깜박거리기 마자 아까운 목포. 이래서 목포는 우리 출향시인들에게 영원한 항구이고 마음의 고향인가!
첫댓글 아들과 호프에 통닭 한 마리......종점이 참으로 아름답구려.
눈에 넣고 깜박거리기 마자 아까운 목포. 그런데 왜 이리 목이 멘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