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고 삶 쓰기 (3) 22
사랑법(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에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22. 사랑법(강은교)
핵심 정리
주제
① 침묵 속의 응시와 성찰로 일구어가는 삶의 새로운 지평
② 인내와 침묵 속에서 발견하는 큰 사랑
표현상 특징 : 유사한 의미의 반복을 통해 시적 의미를 강조함.
구성
1~3연 : 집착을 버리고 침묵함
4~6연 : 내면의 응시와 관조의 자세
7연 :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발견함
이해와 감상
제목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화자는 자기 나름대로의 ‘사랑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화자가 제시하는 사랑의 방식은 우선 ‘떠나고 싶은 자 /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 잠들게 하는’ 것이다. 얼핏 자유분방한 만남의 방식으로도 읽힐 수 있지만, 이것은 아집과 집착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이라고 한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별의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신을 응시하는 것, 침묵 속에서 관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침묵과 응시가 무르익어 내면의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과 응시의 시간을 잘 견디지 못하고 쉽게 다시 세계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것은 시적 화자에게 있어서는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 하면,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 그대 등 뒤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늘이란 결국 삶을 새로운 시각과 차원에서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성급히 앞으로 나섬으로써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응시, 긴 침묵이 우리에게 ‘큰 하늘’을 열어 줄 뿐이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남은 시간은 침묵하며 서둘지 말 것을 얘기하는 시인의 이상축은 침묵과 어둠에 있다. 굳이 이별을 두려워하거나 잠 깊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을 극복하여, 오히려 남는 시간에 침묵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고 느끼는, 적극적인 말과 만남의 기법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좋은 시의 탄생은 많이 말하려고 하지 않는 것에 있고, 의식을 놓아버리고 욕망을 버리는 것이다. 침묵으로 극복하는 사랑법은 언제나 등 뒤에 큰 하늘이 있음을 암시한다. 서둘러서, 그리움이나 사랑을 망치지 않음으로써 허무와 어둠, 그리고 침묵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허무, 그리고 어둠 인식은 그와 같은 허무와 어둠을 극복하는 하나의 극복 에너지로서 해석 가능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