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 슬 】
『제주 4.3사건을 계기로 한 민중의 삶』
정문화의
영화로 세상읽기 2016년 3월 16일
‘한반도 문제’ 손잡은 미·중·… 한국은 없었다. (경향신문 1면 탑 기사 타이틀 2016.2.26.일)
♠ 해방직후 대한민국의 상황
ⅰ, 일제에서 해방된 조국이 민중들에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였던 민생의 문제를
하나도 해결해 주는 이가 없었던 것에 대한 기대감 상실로 불만 고조.
(일제가 물러가면 국민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36년간 오직 국민 모두의 희망은 광복이었는데, 일본이 그렇게 쉽게 물러가리라고 아무도 생각을 하지 못했고, 우리는 국가 운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는 우리의 힘으로 해방된 것이 아니고 남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그나마 국가 존립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대한 임시정부도 독립을 위해서 투쟁만 하였지 강대국인 미국이나 소련이라는 나라와는 관계를 가진 적도 없었고, 인정도 받지 못한 우리만의 임시정부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한국은 없었다는 말이 나온다. 김구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독립 세력은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 두 틈 사이에 독립 세력은 철저하게 거세당하고 나라는 분열되고 민초들은 기대할 곳이 없는 상태가 해방 후 대한민국이었다.』
ⅱ, 미군정의 통치 무능에 대한 불만
ⅲ, 귀환인구의 실직 난
ⅳ, 생필품 부족 , 미곡정책의 실패
ⅴ, 콜레라 만연 및 대흉년으로 인한 민심의 이반
ⅵ, 특히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 경찰출신들의 미군정경찰로의 변신에 따른 민심의 이반
ⅶ,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남조선 노동당 계열의 좌익세력들의 활동과 군정경찰,
서북청년단 등 우익 반공단체의 처결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 등
♠제주 4,3사건의 발단 배경
ⅰ, 1947년 3.1절 행사에 참석한 기마경관의 말발굽에 어린아이의 희생
ⅱ, 민중이 군경에게 돌을 던지며 야유하고 경찰서를 쫓아 감
ⅲ,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 발포→ 6명 사망, 6명 중상
ⅳ, 미군정은 경찰의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참여 간부와 학생들을 연행 함
ⅴ, 남로당은 이런 민중의 이반을 이용하여 조직적인 반 경찰 활동을 전개
♠제주 4,3 사건의 시작
제주 4·3 사건의 발단은 8·15광복 이후 남한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 총선에 반대하기 위해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남로당 제주도당 골수당원 김달삼 등 350여 명이 무장하고 제주도 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급습하면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우익단체의 처결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유언비어와 반감, 공포가 합해져 유혈사태는 급속도로 제주도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이로 말미암아 제주 전역에 행정기능이 마비되는 등 심각한 치안불안상태가 지속되었다. 이 제주 4·3사건은 한국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인적피해를 보면, <제주4.3특별법>에 의한 조사결과 사망자만 14.032명(진압군에 의한 희생자 10,955명, 무장대에 의한 희생 1,764명 )에 달한다.
→ 이승만 정부는 10월 11일, 제주도에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본토의 군 병력을 제주에 증파시켰다. 1948년 10월 17일, 제9연대장 송요찬(宋堯讚) 소령은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포고령은 소개령으로 이어졌고, 중산간 마을 주민들은 해변마을로 강제 이주됐다. 그리고 대대적인 강경 토벌작전이 제주 전역을 휩쓸게 된다.
♠ 영화 【지슬】 배경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중산간 지대는 말 그대로 초토화의 참상을 겪었다. 11월 중순께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진압군은 중산간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상한다. 중산간지대에서 뿐만 아니라 해안마을에 소개한 주민들까지도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그 결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입산하는 피난민이 더욱 늘었고, 추운 겨울을 한라산 속에서 숨어 다니다 잡히면 사살되거나 형무소 등지로 보내졌다.4개월 동안 진행된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중산간 마을 95% 이상이 방화되었고, 마을 자체가 없어져 버린, 이른바 ‘잃어버린 마을’이 수십 개에 이르게 된다. 이 강경 진압작전은 결국 생활의 터전을 잃은 중산간 마을 주민 2만여 명을 산으로 내모는 결과를 빚었다.
♠ 영화 【지슬】전개
누구하나 나(我)라는 존재를 위해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민초들이 36년간 일본을 앞세운 보수세력의 수탈에 견디어 내었고, 이젠 광복이 되어 수탈의 정점인 일본이 물러가고 거기에 빌붙어 살아가는 악덕 지주와 경관(순사)들도 물러가리라 생각하였는데 해방 후 미군정은 국민들의 내부에 흐르는 기존 보수 세력에 대한 불만은 생각하지도 않고 통치의 편리함과 , 쉬운 국민 통치를 위해 기존 세력(경찰, 기존 보수세력) 조직을 빌려 다시 나라를 통치하려하니 민초의 민심이반이 생겨나고 이 이반현상을 남한은 이승만정권이, 북한은 김일성정권이 교묘하게 이용하여 남녘에는 반공의 깃발을 내달고 좌익이라 죽이고 북녘은 모두가 다 공평하게 살아가자는 깃발을 내달고 민초를 극악의 악랄함으로 지배하는 공산 나라를 만들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항상 핏박 받았던 민초들은 죽임이 앞에 닥치니 무조건 도망부터 가자는 민중을 소위 국가를 책임지는 지도자들은 자기성찰에 의한 민중의 위한 지도자가 아니고 자기의 뜻에 반하였다하여 폭도로 몰아 죽이는 사건으로 비하되는데 죽음의 초입에서 민중의 살려는, 그리고 인간 본능인 대를 이으려는 사랑을 찾는 청춘의 애절함이 이 영화에서 그려진다.
이 영화는 국민이란 거대 조직은 극소수 낱개의 개인을 아무 죄의식 없이 죽이는 테러를 감행한다.
정권 즉 약간 많은 다수가 지지하는 정부수반은 다수에 비하면 아주 작은 소수를, 아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국민을 미국은 너무 쉽게 점령하기 위하여 아주 무책임하게 기존조직을 이용하여 쉬운 통치만을 하기 위하여 죽음을 감수하며 살아왔던 민초의 실상을 생각하지도 않으려 하는데, 준비되지 못한 약소국가의 비애가 있다. 그래서 김구선생님 같은 민족지도자는 암살을 당하고, 그 때 정세를 잘 읽은 기회주의자는 초대 대통령이네, 또 몇 대 대통령이네 하고 민초를 괴롭힌다.
이런 상황으로 국민에 대한 국가권력의 테러가 극에 달한 것이 제주도 4,3사건이다. 이것은 결국 정권자의 욕심에서 빚어진 사건의 영화이고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집단의 살인사건이 제주 4,3사건이고 이것을 영화한 것이 <지슬>이다.
첫댓글 '태백산맥'을 읽으며 조금 정치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아하~그랬구나..확실해지는 거지요.조정래 작가의 위대함을 갖게 되고 또..나는 읽는데 쓰고 있는 영주님은 얼마나 뼈속깊이 받아들여질까..감탄.예나 지금이나 어지러운 나라.우리나라 정치 경제가 혼란해진다 하여 안두희 총탄에 서거하는 김구.배후인물 이승만..4.3사건에 대해선 섬세하게 표현되있진 않지만 영화'지슬'을 보면 더욱 알겠습니다.제주출신 작가 현기영의'지상에 숫가락 하나'에도 4.3사건이 성장배경으로 나오는데 너무 오래전 읽었지요.기대됩니다.
제주 4.3사건이 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뿐 자세히는 잘 모릅니다. 또한 발단이 무엇이었는지도 몰랐지만 설명글 읽으면서 조금은 알게되었습니다. 영화 지슬에서는 어떤식으로 표현 했을지 기대 되기도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