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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방 이후 이른바 ‘해방공간’에서 활동했던 국문학자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당시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의 국문과 교수로 임용되었던 이들 가운데 경성제대 출신이 가장 두드러진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후 경성제대와 관련된 자료들을 조사하고, 기존에 출판되었던 문헌들을 수집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료들이 경성제대 출신들의 회고담에 의존하고 있어,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의 현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아마도 해방 이후 재빨리 일본으로 돌아가던 일본인 교직원들이 관련 자료를 폐기하고, 이후 서울대학교로 전신하면서 경성제대와 일정하게 선을 그엇던 대학의 역사도 한 몫을 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다 근래 경성제대의 창립 과정으로부터 총장과 교수들의 현황, 그리고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현황을 심층적으로 정리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현존하는 자료들을 확보하여, 그것을 분류하고 정리한 이 책은 5백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물론 책의 상당 부분이 자료들과 그것을 분석한 도표와 그래프들로 채워져 있다. 아마도 서울대의 전사로서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의 실상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엄연히 실재했던 대학의 전사를 그저 외면한다고 없던 것처럼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객관적인 자료들을 통해서 그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최근 일제강점기 일본의 역할과 의미를 논하면서, 한국의 현대사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른바 뉴라이트로 불리는 일군의 인사들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옹호하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등 그들의 ‘비정상적인 인식’이 점차 심화되어 가고 있다. 그 근저에는 해방 이후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들이 우리 사회의 곳곳에 포진하면서, 그들의 후손이 주류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당대 최고의 엘리트들이라 자부하던 경성제대 출신들 역시 해방 이후 재빠르게 변신하여, 일제 강점기 당시 자신들의 행위를 옹호하면서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는 더욱 요원하게 된 탓도 분명히 있다 하겠다. 비록 해방 이후 경성제대 출신자들의 활동까지는 다루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일제 강점기 당시의 현황을 제시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저자들은 경성제대의 역사와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서, 모든 자료를 그대로 물려받은 서울대 도서관의 자료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분명히 존재하되 어느 누구도 찾지 않았던 ‘잊힌 대학의 문서고를 찾아서’ 망각의 시간들을 되돌려야만 했음을 저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모두 3부로 구성된 책의 내용은 먼저 ‘식민 권력 속의 경성제대’라는 제목의 1부에서, 경성제대의 총장들의 면면과 그들의 역할을 조명하고 있다. 나아가 확인 가능한 그들의 글과 연구 업적들을 번역하여, 1부의 말미에 제시하였다.
‘교수와 강좌제’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당시 경성제대에서 행해진 독특한 제도에 대해서 설명하고, 당시 교수들의 면면과 연구 업적 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경성제대는 교수 1인이 하나의 강좌(전공)을 책임지는 이른바 ‘강좌제’를 운영했다고 한다. 지금은 한 학기 동안 이뤄지는 하나의 과목을 강좌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경성제대의 강좌는 한 교수가 전담하여 하나의 전공을 온전히 책임지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교수들은 필요하면 자신의 강좌에 필요한 조교수나 조수들을 채용하고, 하나의 독립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그렇기 때문에 조선어문학과에는 문학과 어학 전공의 교수 두 명이 책임지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경성제대 출신의 회고담에서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던 수업에 관한 내용이, 이 책의 설명을 통해 비로소 이해될 수 있었다.
마지막 3부는 ‘학생들의 입학과 졸업’이라는 제목으로, 예과와 본과의 입학생과 졸업생들의 현황을 정리하고 있다. 당시 일본의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필수였는데, 한국에서는 고등학교가 없기 때문에 그 대신 경성제대에 예과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예과를 졸업해야만 경성제대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예과에 입학하지 않고 전문학교나 기타 필요한 시험에 합격하여 진학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경성제대의 경우에는 예과 졸업생들이 대부분 본과에 진학하는 구조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당시 경성제대의 입학한 예과생들은 당시에 수재로 평가받았고, 졸업한 이후에도 대부분 일본의 식민기구를 통해서 활동했던 것이다.
전체적으로 책의 부피에 비해서 자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저자들의 연구 내용이 그리 많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그러나 그동안 잊혀졌던 자료들을 도서관의 문서고에서 찾아내서, 세상에 소개한 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는 충분하리라고 생각된다. 다만 후속 연구들을 통해서 자료의 실증을 뛰어넘는 보다 적극적인 해석의 연구 성과들이 제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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