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한결같이 우울하고 씁쓸하게, 입 닫고 눈감고 숨죽이고 살수밖에 없었던 내 인생의 끝자락에서 그나마 평안을 맞았다면 주의 은혜이지 내가 뭘 해서가 아니다. 뭔가를 간절히 원하고 불평하고 투덜대 보았어도 되어지는 일은 없었다. 다들 어렵고 힘들게 어린시절을 보내는 가운데 그나마 특혜를 누렸던 내가 많이 부려웠던 누군가가 있었다고 한들 미안해 일도 아니다. 나는 나대로 아버지 없는 결핍속에 내가 특혜를 누린다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어쩌면 서로 마찬가지 일게다. 자랑거리라고는 없는, 우쭐대고푼 나의 허영심은 늘 바닥이었고, 생색은 커녕 은둔자처럼 수그러저 살아야 했는데 뭘 더 말할수가 있겠는가. 지금은 또 어떤가. 평안을 누리고 있다지만 여전히 남루하고 초라한 일상을 살고있다. 인색하고 아끼고 궁끼가 철철 넘처나고,,, 나만 그런것은 아닐게다. 어쩌면 내 나잇대의 대부분이 그리 살아가며 마즈막 숨고르기를 하고있는 듯 하다. 되돌아보면 참 먼길이었다. 어찌 견디며 살았을까 싶기도하고, 기특하다는 생각에 토닥토닥 위로도 해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나님은 왜 이런 하급인간들을 창조하셨을까. 좀더 우아하고 고상을 떨며 살수있게 안하셨을까. 어떤 판타지 속에서도 하급 인간들은 존재한다. 상급자를 섬기기위해 반듯이 필요한 존재들인가. 그럴수도 있겠지만 하급인간 입장에서는 억울할수밖에 없다. 인간은 2-3명만 있어도 상하 서렬이 생기는게 현실이다. 어쩌면 이마저도 창조질서에 속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위로가 되는 부분도 있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들을 골고루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은 창조주시다. 전능자이시고, 우리를 살피시는 분이시고, 잊지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한가.
인간 관계도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미흡했다. 한번 알게된 사람들을 잊지않고 지속적인 관계가 되려면 당연히 얼마끔의 노력이 따라야 한다. 나는 그 노력을 생략하고 살았는데,,, 여기도 분명 변명거리는 있다. 도무지 여유가 없었다고. 함께 셀모임을 오래했던 한권사가 아들 결혼을 한다는 소식에, 처음에는 그냥 넘어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 그 먼 연화리 장지까지 와 주었던 것에 생각이 미쳤다. 아들 결혼식에도 와 주었고,,, 남편 장례식때는 기억이 없다,,,. 이정도되면 계산불가다. 그런대도 어물쩡 넘어가려 했다면 그건 내 본성에도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남의 애경사에 소흘했던게 사실이긴 하다.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있는 사람이 좀더 후하면 좋겠다던가, 후한게 맞다던가 하는 괘변으로 포장하는 것은 옳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 사정에 따르지 말고 받은 만끔은 돌려줘야 한다는 최소한의 셈법이라도 지키는게 우선아닐지 모르겠다. 나는 내 아이들이 받은 만끔이 아니라 후히줄수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나처럼 빈대 낫짝을 하고 살지는 않았으면 싶은게 진심이다. 친정 양 할머니는 누구도 빈손으로 돌아가게 안하셨다. 차비 들여서 오거나 뭔가 사들고 찾아온 친인척들에게 최소한 손해는 아니게 들려서 보내시는 것을 보며 자랐다. 그랬으면서도 나는 공짜를 즐기며 밝혀왔다. 내가 살아온 모습을 그분들이 보시면 어떠실까. 안타까워 하실까. 탄식하실까. 이렇게 밖에 될수없었던 나를? 한평생이 짧지도 길지도 않는 것 같다. 무명배에 검은색 물을 들린 통치마를 입고, 안마당을 빗질하던 여자아이가 눈에 선하다. 복을 지고다니는 할아버지가 깨끗한 마당에 복을 내려놓는 다는 민담을 믿고싶어서 였다. 마루밑까지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나를 웃으며 보시던 할머니도 생각난다. 깨끗이 쓸어내고 물을 뿌려놓고나면 나 역시 참 좋았다. 마당 한쪽에 꽃밭에서 꽃들도 즐거워했고,,, 행복한 기억이다. 되돌아갈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