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래된 기억 속에 있던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 아니라 세종로와 종로가 교차하는 큰 사거리였다. 종로와 마포, 용산과 효자동을 연결하는 전차가 다녔고, 국제극장(현 광화문 관광안내소)과 동아일보(현 일민미술관) 건물이 마주 보고 있었다. 국군의 날이면 탱크와 함께 군부대의 시가행진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1966년 국군의 날 직전 광화문 지하도가 개통하면서 지하도 위로 탱크가 지나가도 되는지가 주목받는 큰 뉴스였다.
1960년대까지 부근에는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 경제기획원(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미국대사관 쌍둥이빌딩 등이 있었고, 1970년 정부종합청사(현 정부서울청사)와 1978년 세종문화회관이 세워졌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이었던 광화문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경복궁 앞뜰에 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해체 이전되었다가 6.25 전쟁 중 폭격으로 파괴되는 비극을 겪었다. 1968년 남아 있던 석축을 옮겨 복원했지만 원래 위치가 아닌데다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5년 중앙청으로 사용하던 일제의 총독부 건물이 철거되면서 광화문 복원작업도 진행되어 2010년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또한 일제 강점기부터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던 중앙분리대를 없애고 광장을 만드는 작업이 2008년부터 시작되었다. 1968년에 세워진 충무공 동상과 함께 2009년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져 조선시대 문무를 대표하는 두 인물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광화문 광장은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월대까지 갖춘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공간이 되었다. 광장에서는 월드컵 길거리 응원이나 문화행사가 펼쳐지기도 했지만 각종 정치적인 집회와 시위가 훨씬 더 많이 반복적으로 벌어졌다.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에 6.25 전쟁 참전국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은 ‘감사의 정원’을 조성하면서 22개 참전국에서 보내온 석재로 참전국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가수 이문세가 불러 크게 사랑받은 ‘광화문 연가’는 광화문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정동이 주된 배경이고 노래비도 덕수궁 뒤쪽 정동길에 세워져 있다.
첫댓글 오래동안 방치했네요. 요즈음은 페이스북만 합니다. 사진 공부할때 열심히 활용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