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얀(백혜영)님의 교우 단상: 내 남편은 말이에요! ◈
지난 수요일 말씀 때, 이슬님이 두 번째 시집의 제목으로 ‘기억과 추억’을 테마로 잡으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상념(想念&傷念) 하나가 있었다.
기억(記憶): 과거의 사물에 대한 것이나 지식 따위를 머릿속에 새겨 두어 보존하거나 되살려 생각해 냄.
추억(追憶):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함.
기억하고 싶은 일보다, 기억조차 하기 싫은 일들이 더 많았던 시간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옳을까?
내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이슬님은 아마 기억을 추억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앞섰다.
이슬님은 언제부터인가 “사람은 기억보다 추억에 움직여야 한다.”고 말해왔다.
기억은 각각의 삶에서 다른 모습으로 간직될 때도 있지만, 추억은 보존하고 싶은 것들에 의해 기억되는 것이기에,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성장을 넘겨 성숙해짐을 요청하는 나이가 되면, 기억보다 추억을 간직하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내가 아는 한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하는 요상한 장치를 지니고 산다. 그 기억 장치에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추억을 삽입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설령 수많은 추억을 공유하며 사는 관계였을지라도 섭섭하고 불편한 기억 하나로 말끔하게 삭제시키고 만다.
마치 딜리트 키(delete key)만 누르면 삭제되는 문서처럼 말이다. 이슬님의 두 번째 시집이 매우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슬님은 내 남편이자 두 아들의 아버지이지만, 남편이나 아버지보다 어느 교회의 목사로 기억되는 부분이 훨씬 많다. 물론 가정에 소홀한 사람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여느 남편이나 아버지보다 건강한 사람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당신 입으로도 농담처럼 말한다. “돈 벌어다 주는 것만 빼고 100점 아냐?”
당연히 100점은 아니다. 그래도 A+ 는 충분하다.
수백 킬로미터 걷기 피정을 하고 돌아와도 교우들의 이름을 부르며 걷다 돌아왔다는 말이나, 어느 지역을 지나다가 멋진 식당을 만나고 풍광을 보고는 나중에 교인들과 꼭 가봐야겠다는 말을 할 정도라면, 가족은 2순위가 분명하지 않겠는가.
그런 남편이 지금 기억이 아니라 추억을 시집에 담아내려고 한다. 그래서 맘이 편하질 않다.
남편은 새벽 다섯 시 이전에 일어나 서재로 가서 뭔가를 하다가 날이 빗겨지면 톡이와 걸침이에게 문을 열어주고, 예배당으로 향한다. 놈들이 돌아와 중문 사이에서 서성이면, 카페 카운터 쪽에 넣어두곤 곰곰이를 데리고 구이 천변을 걷는다. 사실 이때부터가 남편의 기도는 정상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걸 난 잘 안다. 거기서 헛기침 몇 번으로 실망과 분노를 날리고, 기억이 아닌 추억으로 하루를 열고자 애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곰곰이를 집 안에 데려다 놓고는 음악을 튼 후 청소기를 돌려 카페를 청소한다.
가끔 대걸레 자루를 마이크 삼아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이슬님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내 남편은 지금 봄을 살고 있다. 1월 1일부터 봄인 그에게 봄은 저만큼 앞서가는 중이다.
봄처럼 내 남편의 추억도 봄 안에 머물러 있기를 응원하는 바이다. 돈이라도 잘 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