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가치관을 갖고 살아간다. 어떤게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 보다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문제일수도 있다. 하여간 우린 서로 다른 가치관 때문에 분쟁하고 있고, 이미 분쟁의 범위를 넘어 전쟁을 치닫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참 허접한 인간들이다. 자신의 욕망을 숨기며 포장하지만 결국엔 탐욕 그이상은 아닌것 같다. 고대로 부터 현제까지, 사실 명목은 그럴사 했어도 결국엔 탈을 벗고나면 탐욕 이상은 없었다. 강대국들은 땅따먹기 야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포장을 그럴싸하게 해도 결국엔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싶다.개인간에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취한 면면을 봐도 끝까지 숨겨지는 것은 없었다. 국가 권력을 손에쥐고 얼마나 많이 휘들러 댔는지,,, 기실 국가는 없는게 아닐까. 절대권력을 쥐고 흔드는 개인이 있을뿐이 아니었던가. 재판도 없이 국가 권력이란 이름으로 사람에게 총알을 디민적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닐게다. 우리가 선진국이라 이름하고 있는 국가들이라고 순수 인권이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한때는 민주주의가 가능하리라는 환상을 갖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내가 알고있는 것은 적어도 셋만 모여도 서렬이 생기고 계급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게 인간들의 모습이고 속성이다. 가족간에도 서열이 있다.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그자녀. 어머니는 당대의 실권자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지혜의 보고겠지만 당연히 실권자는 아니다. 자녀는 미래이자 희망이다. 보호되고 키워저야할 대상이다. 이게 건강한 가정의 모습이다. 우리는 지금 초림과 제림 사이를 살고있다고 한다. 온갖 혼돈과 유혹과 무질서 속에 노출되어 고난을 격고 있는 중이란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망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즐거운 여행을 보내신거란다. 잘 놀다가 돌아오라고. 당연히 모든 경비를 충분하게 주셨고, 우리를 끊임없이 돌보고 보살피고 계신다고 했다.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별로 공감하고 있지는 않아도 말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 일체론도 이해가 안간다. 위는 같으면서 하시는 일이 다를 뿐이라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어떻게 같다는 것인지,,, 억지고 같다붙이지는 말라니까 그냥 넘어가자. 어느땐가는 알게되는 날이 있을태니까. 죽엄은 끝일까 아니면 또 다른 시작일까. 나는 죽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나는 죽엄이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천국이란 나라의 새로운 시작점이 죽엄이라고 하지만 확실히 알고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죽엄이 또 다른 시작이라면 별로 반갑지가 않다. 왜냐하면 거긴 또 어떤 서렬과 질서가 있을지 두렵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갖지못했다. 아버지마저 3살때 잃었다. 국가 권력으로 부터 살해를 당했으매도 아무련 항의조차 해본적이 없다. 쉬쉬하며 입다물로 살았다. 어머니 인생이, 내 인생이 똥칠을 하게된게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항의한번 못해봤다. 원흉은 국가권력인데, 이렇게나 확실한대, 반역자란 오명은 어떻게도 항변이 불가한 것인가. 아니, 그럴 능력을 내가 갖지못한 탓이다. 국가권력에 항소를 할만끔 내가 능력을 갖고있다면 또다른 인생을 살았을까. 지금처럼 지지궁상으로 숨도 재데로 못쉬며 살지는 않았겠지? 죽을 날을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지는 않았겠지? 무능의 극치를 살았다. 덕분에 무탈의 일상에 이르른게 아닐까 싶다. 사실 내 시대가 그리 평탄한 것도 아니엇다. 해방 이후의 극심한 혼란속에 태어났고, 전쟁과 4,19를 거처서 5,16을 그리고 5,18를 지나왔다. 동년배의 다를 사람들은 서독 광부와 간호사를, 혹은 전쟁터나, 사막의 나라에서 딸라를 벌어오느라고 온힘을 다 했다.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기위해 온몸으로 생사를 걸고 일하는 동안 나는 뭘했을까. 기적이나 바라면서 어둑한 방안에서 불평으로 하루해를 보내는게 전부가 아니었던가. 불평속에서 작은 몸짓으로 항거했어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오히려 무시당했고, 그벽은 오히려 두꺼워저서 나를 가두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아무것도 없다. 그 어떤 것에서도 나는 더이상 속박당하지도 않고 견재하는 것도 없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두려워진 것은 아닐까. 정말 죽엄이 끝일까. 결혼이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 나다. 새로운 출발은 맞다. 그런데 희망적인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아, 그러고 보니 여행 맞다. 준비된 관광여행이 아니라 무전의 생존여행이란 점이 다를뿐이다. 죽엄 또한 다른 이름의 여행일까. 두렵다. 왜 아니겠는가. 통정개설도 안했으니 카드한장 있을리 없는 극한의 무전여행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렇지만 주님, 저 천국에 쌓아둘 보화가 없었습니다. 마냥 가난했는 걸요. 마음 둘곳이 없어서 매마르고 삭막한 가운대 구걸조차 못하고 살았는걸요. 불쌍히 여겨주십시요. 보십시요. 정말이지 찌질합니다. 이런 인생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오직했어야 갑질해보고 싶고, 우쭐대보고 싶고, 자랑질에, 생색한번 내보고 싶은게 로망이겠습니까. 왜 이런 인생을 살게하셨는지요. 여기에도 무슨 깊은뜻이 있으신가요. 주님, 정말 저를 살피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