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劣等感)과 자괴감(自愧感) (이규임)
‘나다움’을 지켜나가면 된다 /이규임 기자
아마도 요즘 많은 사람들이 열등감(劣等感)과 자괴감(自愧感)으로 허탈해하지 않나 해서 많이 걱정된다. 열등감이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그럴 때 받는 불쾌한 감정을 말하는 것이다. 반대말은 우월감(優越感)이다. 자기가 남보다 뛰어나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자괴감이란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남이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못난 짓을 해서 스스로 부끄럽다는 것이다. 모멸감(侮蔑感)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다. 업신여기고 깔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 숨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경우를 이른다.
열등감은 비교(比較)에서 생기는 것이다. 남과의 비교에서 생기는 것이다. 서로 견주어 볼 때 생기는 것이다. 경쟁(競爭)할 때 생기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社會的) 동물이다. 어울려 산다는 말이다. 무리지어 산다는 말이다. 어울림 속에 경쟁하며 살아간다는 말이다.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경쟁심(競爭心) 또한 필요한 것이다. 생산성(生産性)을 높여주고 사회를 발전시켜주는 촉매제(觸媒劑)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태(懶怠)를 몰아내고 근로(勤勞) 의욕을 북돋아주기 때문이다. 게으름을 피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열등감을 느끼게 해서도 안 된다. 수치심(羞恥心)을 느끼게 해서도 안 된다.
비교하되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유의(留意)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지나쳐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패배자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각(自覺)하는 선에서 멈추어야 한다. 수치심을 느끼고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오히려 반발하게 된다. 부작용(副作用)이 일 수 있다. 스스로 느끼도록 해야 한다. 자각하도록 해야 한다. 스스로 느낄 때 반성하고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효과 또한 극대화(極大化)되는 것이다. 자존심(自尊心)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모멸감을 줘서는 안 된다. 자존심을 살려주고 이끌어줘야 한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국가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다. 정치도 그렇고 정쟁(政爭)도 그렇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척(隻)을 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원한(怨恨)을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퇴로(退路)를 열어주면서 목표를 달성하는 지혜(知慧)를 발휘해야 한다. 스스로 느끼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 먼저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 나라의 국격(國格)을 생각해야 한다.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기애애하게 손님을 맞는 것이 우리의 예스러운 모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부부의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의 미덕(美德)이다.
누워서 침 뱉는다는 말이 있다. 누워서 침 뱉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의혹(疑惑)은 밝혀져야 하고 잘못된 것은 고쳐져야 한다. 때로는 질타(叱咤)하고 성토(聲討)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소리가 담장을 넘어서면 안 되는 것이다. 담장을 넘어서는 순간 국격은 떨어지고 평판(評判)은 나빠지는 것이다. 신용도는 떨어지고 부담은 늘어나는 것이다. 포퓰리즘(populism)에 매몰(埋沒)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대중에 영합(迎合)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밝힐 것은 밝히되 노출(露出)은 절제(節制)해야 한다. 사실이라고 해서 시시콜콜 모든 것을 까발려서는 안 된다. 알 권리가 있다 해서 국가기밀까지 떠들어대서는 안 된다.
열등감에서 탈피해야한다. 자괴감에서 탈피해야 한다. 빠져나와야 한다. 남의 것만 바라보고 남의 눈치만 볼 필요가 없다. 내 그릇을 채우고 내 할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자신감을 가지고 ‘나다움’을 지켜나가면 된다. ‘참 나’를 지켜나가면 된다. 우리의 정체성(identity)을 지켜나가면 된다. 지나친 열등감이나 자괴감은 떨쳐버려야 한다. 가위눌림에서 벗어나 일심으로 꿋꿋하게 부국강병(富國强兵)의 길로 매진(邁進)해야 한다.
이규임 / 한국영상제작학회 명예회장
첫댓글 나의 '나다움 찾기,회복하기'..
내 그릇을 채우고 내 할 일에 충실하기. 나를 사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