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여행기④
아름다운 오아시스 – 와카치나 (Huacachina) (9/20(목) )
나의 뇌세포가 낮과 밤이 정반대로 바뀐 시차에 빠르게 적응해 가고 있었다.
오늘 행선지는 사막 지대인 이카 지방의 작은 오아시스가 있는 와카치나 마을이다. 와카치나는 ‘아름다운 여인 또는 우는 여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여행 중 큰 즐거움의 하나인 호텔 조식을 든든히 먹고 오전 9시에 출발하는 와카치나행 버스 크루즈 델 수르를 타기 위해 택시는 분주히 달렸다.
페루에서 가장 좋은 서비스를 자랑한다는 크루즈 델 수르 버스는 2층으로 되어 있고, 화장실을 갖추고 있으며 점심까지 제공해 주는 아주 편안한 시외버스이다. 가끔씩 출발 시간을 지키지 않는 페루의 버스는 크루즈 델 수르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별한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운데 9시 45분이 되어서야 출발하여 와카치나를 향해 달렸다.
리마를 벗어난 페루 변두리의 정경은 난민촌을 방불케 했다. 지상부터 산중턱, 산마루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무채색의 집들은 한국 서울의 옛날 판자촌과 흡사했다.
이카를 향해 달리는 내내 허허벌판이 끝없이 이어졌다. 녹색의 기운이 전혀 없는 몹시 건조하고 황폐한 불모지였다. 간혹 군데군데 개발하거나 건축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생명이 자랄 수 없는 곳 같은데 먼지 속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들의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었고 그 존재 자체가 무미건조하고 연민스러웠다.
4시간 30분을 달려 오후 2시가 훌쩍 넘어 햇볕 쨍쨍한 이카에 도착했다. 오늘 일정인 버기카(buggy car, 산악용 오토바이)와 샌드 보딩(sandboarding)을 예약하고, 내일 나스카 왕래 일정(이카 와카치나에서 나스카, 나스카에서 이카까지)까지 예약하고 숙소로 향했다.
사막의 오아시스 와카치나(Huacachina)!
말로만 듣던 사막과 말로만 듣고 상상으로만 그리던 오아시스다.
사방을 빙 두른 사막을 배경으로 둥그런 작은 호수를 따라 팬션, 레스토랑, 카페들이 둥지를 틀고 마을을 이루고 있었는데 동화 속의 나라, 가상의 세계 같았다. 사막 가운데 예쁜 오아시스를 둘러싼 마을이라니 신기하기만 했다.
1년 내내 온화한 날씨로 인해 계절을 불문한 예쁜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쪽빛 하늘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풀장과 그 주위엔 피곤한 여행객을 기다리는 선텐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아담한 숙소가 우리를 따뜻하게 반겼다. 최고의 여유와 한가함과 자유로움을 한아름 안겨주었다.

*와카치나 숙소(오스팔 쿠라시) 앞
끼니를 놓친 우리는 크루즈 델 수르 버스에서 제공한 샌드위치와 잉카콜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버기카를 타기 위해 중무장을 했다. 미숫가루 같은 모래가 새들어 오지 못하도록 전면마스크, 모자, 장갑, 선글라스, 샌들을 착용했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는 버기카에 8명씩 한 조가 되어 탑승하였다. 오로지 모래로만 형성된 절벽 같은 모래산을 버기카는 굉음을 내며 오르락내리락, 오른쪽으로 때로는 왼쪽으로 곡예를 하며 달렸다. 스릴을 넘어 혼절할 것 같은 짜릿함, 쾌감으로 버기카의 굉음보다 더 큰 비명을 지르며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의 신비함, 아름다움을 만끽하였다.
또 깎아지른 듯한 모래언덕에서 씽~ 내리달리는 샌드보딩은 가슴이 뻥 뚫리는 통쾌함에 밤새워 타고 싶도록 신나는 놀이였다. (이 상황에서도 우리 하하님들이 무척 생각났다. 특히 정문화 선생님, 이영희 언니 등 스릴을 좋아하시고 즐기시는 분들)
이제 시간이 흘러 뉘엿뉘엿 주홍빛 석양이 흰 모래 위에 내려앉을 즈음, 버기카는 제일 높고 커다란 모래평원 위에 멈추고 우릴 내려놓았다.
붉게 물든 사막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일몰의 장관에 넋을 잃은 우리는 아둑시니([어둠의 귀신]을 뜻하는 방언. 원래 '아둑시니'는 어둠의 귀신을 뜻하는 말이지만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에서 '아둑시니'는 '눈이 어두워서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 이라는 의미로 쓰임)처럼 그냥 서 있었다. 다시 보기 힘든 와카치나 사막의 아름다운 노을과 일몰은 내 뇌리 속 명화의 한 장면으로 새겨져 있다.
‘별 반 하늘 반’의 표현과 함께 와카치나에서의 감동을 아들의 글에서 읽은 나로서는 내심 와카치나 밤하늘의 장관에 대해 기대감을 크게 가지고 있었다.
음력 8월 11일 밤.
우린 맨발로 촉감이 좋은, 푹푹 빠지는 모래밭을 맨발로 나섰다. 두 발 전진, 한 발 후퇴하며 모래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별 반 하늘 반’의 기대는 너무나 환한 달로 인해 상상에만 그치고 말았다. 푸르스름한 달빛이 온 사막을 비추며 부드러운 능선의 명암은 흑백 수묵화의 질감을 잘 느끼게 하였다. 신비하고 특별하고 참 아름다운 와카치나의 야경은 우리의 발길과 마음길을 한없이 붙든 채 놓아주질 않았다.

* 오아시스 와카치나의 야경
오늘 와카치나의 하루는 말 그대로 신남, 감탄, 놀람, 경이, 감동 그리고 담백한 황홀함으로 새겨져 오래오래 추억으로 살아있게 될 것이다.
첫댓글 보름 지난 달을 어제 저녁 보면서 태양의 위치를 어림잡아 보았습니다. 점점 달과 태양이 가까워지다가 그믐에는 태양앞에 달이있어 보이지 않다가 초승부터는 점점멀어져 다시 반달이 되고 또 가까워져 그믐이 되고, 달보면서 천체를 생각합니다.
모래의 바다를 보면서 신남 감탄 놀람 경이. 그러면 물의 바다를 보면서는 두려움 고독 망망 거칠음 느낄지
이제 세상이 점점 눈에 들어 옵니다. 나이가 들으니 세상이 이제야 눈에 점점 들어오네요. 잘 여행기 읽엇습니다.
와카치나의 야경과 함께 더욱 감동이 전해져옵니다.생각과 느낌+감동+생생한 사진으로 보여지는 현장감=의미 있고 강한 여행의 아름다움에 빠져보았지요.같이 꿈속 같은 모래뱥을 걸었어요.와아!
글을 읽으며 맘껏 상상해봅니다.
티비에서 본적있는 버기카.샌드보딩. 유년시절 비료푸대로 미끄럼 타던 느낌아닐까 생각하며 얼마나 신나고 짜릿했을까 가늠해봅니다. 긴 비행시간이 힘들어 가지않겠다는 짝꿍을 틈날때마다 볶으며 마음은 그곳, 사막으로 갑니다.언젠가는 모래언덕을 오를 날을 기대하며 꿈을 키워보며 잼나게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