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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의 아파트를 빼주기 전 열흘 동안 함께 지내면서 두 사람은 스스럼없이 목욕을 같이 했고, 서로의 몸을 닳도록 애무했다.
그가 같이 있고 싶다며 흠뻑 취한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줄곧 그렇게 지냈다. 정후는 어딘가 분주히 오가며 바삐 움직였지만 저녁때만큼은 귀가하듯 일산의 아파트로 왔다.
“여전히 아름다운 몸매야.”
정후가 다시 으스러져라 안으며 몸을 밀착시킨다. 그의 탄탄한 근육에 핏줄이 선다. 그렇게 쾌락에 젖고 유희에 중독된 열흘의 시간이 점점 지나가고 있었다.
“어디 갔다가 온 거예요?”
“…….”
그가 이틀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물었으나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옷을 훌훌 벗더니 욕실로 들어갔다. 그에게서 어딘지 모르게 심한 파괴욕구가 배여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아, 현주야!”
샤워를 마치고 나온 정후는 침대로 잡아끌더니 거칠게 옷을 벗겼다. 왼쪽의족에 뺨을 비비다가 무릎에 그의 혀가 닿을 때 온몸이 감전되는 것처럼 짜릿한 전류가 흘렀다. 그는 다른 날보다 더욱 섬세하게, 그리고 정성껏 애무했다. 정신을 잃을 만큼 절정을 거듭하며 긴 겨울밤을 하얗게 보냈다.
잠시 잠이 든 것 같더니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직 이른 새벽이었다. 그가 다시 몸을 끌어당겼다. 솜사탕처럼 부드럽던 그의 애무가 야수의 그것처럼 거칠게 변했다. 또 한 차례 질풍처럼 격한 정사 후에야 그는 뒤늦은 대답을 했다.
“문상 다녀온 길이었어.”
“문상? 누가 돌아가셨어요?”
“응, 이정후가 죽었어. 그래서 화장도 시키고 곡도 하고… 그리고 막 오는 길이었어.”
그의 썰렁한 농담이 섬뜩하기까지 해서 그의 팔을 꼬집으려다 손을 거둬들이고 말았다. 그의 얼굴이 너무 차고 무표정했기 때문이었다. 이틀을 비웠다가 다시 돌아온 정후는 차갑고도 어찌 보면 편안한 얼굴로 문상을 다녀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것도 자신의 문상을.
“그럼 여기 있는 사람은 누구예요?”
“복제된 이정후. 그전의 허름하고 형편없던 이정후를 수장시켜버렸어. 그리고…."
여전히 표정의 변화 없이 그는 억양 없는 소리를 낮게 뇌까렸다.
“뱀파이어 같은 이정후가 복제되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났어.”
-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윤아 목소리가 무척 다급한 것 같았는데….
서울이 가까워오자 정후에 대한 상념이 윤아와 정태한테로 이어졌다.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한 후, 윤아를 만나 속을 털어놓고 싶었다. 딱히 무어라고 끄집어내서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분명히 그녀에게 사과할 게 있을 것만 같았다. 윤아가 얼마나 정후를 사랑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무너져 내리는 영혼까지 윤아에게 내맡긴 채 그저 기대고 싶었던 것 같다. 현주야! 너 걸음이 왜 그래? 목발을 보이기 싫었는데 서툰 걸음이 되레 윤아를 놀라게 하고 말았다. 윤아는 양손을 부들부들 떨며 내 왼쪽다리를 부여잡았다. 왜? 왜 이렇게 된 거야? 윤아는 아빠인 조현욱 회장님이 돌아가셨을 때만큼이나 철철 눈물을 흘렸다.
축축하게 젖은 윤아의 눈을 슬그머니 피하며 오정태 사장에게 받은 거액의 통장을 언급했다. 현주야! 애절하게 이름을 부른 그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우리 고모가 아니더라도 김현주가 그런 자와 끈을 이어간다는 게 같은 여자로서 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치가 떨려. 넌, 아직도 오정태란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윤아는 친구가 지은 죄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현주야! 난 네 순수한 천성을 잘 알아. 네가 그 순수함을 되찾았으면 좋겠어.”
죄책감에 어떤 욕이라도 달게 받아들이마고 만났던 윤아가 너무 고마웠다. 윤아를 만난 다음 날 정태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정태는 반색을 했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 두 번의 큰 수술을 받고 한 달이나 병원에 있었지만 그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쳤어? 걸음이 왜…”
“넘어져서 약간 삐었을 뿐이에요.”
걸음이 어색한 걸 그렇게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부모님 잘 설득시키고 온 거지?”
살림을 차리겠다고 부모님께 고하러 고향에 다녀온 걸로 생각하는 그가 기막히고 황당했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답이 없자 정태는 자신의 뜻대로 일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는지 의기양양했다.
정태는 상대의 의향도 묻지 않고 고속도로로 차를 몰더니 인천에 가서 회를 먹자며 콧노래까지 불렀다. 받았던 돈만 건네주고 헤어지려 했는데 호텔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식당이 아닌 룸을 잡기에 질색을 했으나 정태는 막무가내로 엘리베이터로 잡아끌었다.
“방부터 잡고 식사하러 가자.”
다리에 무리가 오는 걸 의식했지만 통증보다는 아무렇지도 않게 예전 모습을 재생시키는 그의 행동에 끓어오르는 속을 가눌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통장을 꺼내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걸 돌려주려고 만나자고 했던 거였어요.”
정태의 표정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그런 그의 얼굴이 꽤나 낯설게 여겨졌다.
“전, 가겠어요.”
6층에 엘리베이터가 서자 다시 1층 버튼을 눌렀다.
“이대로는 안 돼.”
정태는 핸드백을 낚아채더니 힘주어 팔을 붙들었다.
“더 이상 추한 모습 보이지 않았으면 해요. 전, 예전의 김현주가 아니에요."
“넌 그대로야. 괜한 억지 부리지마. 그리고 이 통장은 다시 집어넣어. 이건 널 위한 내 마음이야.”
“그땐 얼떨결에 받았지만 잠시 돈 때문에 흔들렸던 걸 후회하고 있어요. 절대….”
정태가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잡아끄는 바람에 말이 끊어졌다. 그의 팔을 뿌리치며 쏘아붙였다.
“절대 사장님한테 한 톨의 정도 남아있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끌고 오다니. 지금 간신히 화를 참고 있어요.”
“넌 나하고 살려고 했어. 그래서 이걸 받았던 거야.”
“천만에요. 솔직하게 말할까요. 잠깐 돈에 눈이 멀기는 했었어요. 그런데 돈에 대한 욕심보다 사장님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컸어요. 후회 많이 했어요. 제가 그때까지도 철들지 않았었다는 게. 이제라도 사모님한테 용서를…”
이죽거림이 채 끝나기 전에 정태의 팔이 휘익 바람을 일으켰다. 크게 뺨을 얻어맞고 휘청거렸다. 날카롭게 정태를 쏘아보다가 표정을 풀고는 조소를 머금었다. 화를 낸다면 그야말로 자존심마저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후후! 역시 그런 행동이 오 사장님한테는 어울려요. 온갖 위선으로 포장된 겉모습보다.”
정태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욕심이 끝도 없으시네요. 오 사장님한테 피해 입은 사람들을 쭉 둘러보세요. 모두 가까운 가족들이고 오 사장님을 믿었던 사람들 아니었나요?”
“너… 너, 정말….”
“그렇게 취한 돈으로 아파트를 얻어 나한테 밥을 지으라고요?”
역겨웠다. 그런 말까지 들추어내 그에게 일말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음을 확인시켜야 한다는 게 도무지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정태의 얼굴이 여전히 붉으락푸르락 거렸다. 그런 정태를 밀치고 비상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쾅, 부서져라 비상구 문을 닫고 호텔계단을 서둘러 걸어 내려갔다.
호텔을 나오자 다리에 쥐가 나고 숨이 찼다. 아주 역한 냄새가 나는 늪지대를 코를 틀어막고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 저런 사람과 그렇게나 오랫동안 살을 섞고 지냈다니.
택시를 잡아타고 인천역으로 가자고 했다. 송도를 빠져나오는데 그의 BMW가 쫓아오는 것만 같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불현듯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생각났다. 한 사람을 모델삼아 예수와 유다, 두 인물을 그렸다고 했다던가. 온화한 모델의 모습에서 예수를 그렸고, 그의 화난 모습에서 사악한 유다를 또 그려냈다고 했던 것 같다.
- 아아, 유다에게서 유다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니.
그렇게 모난 인격을 참으로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좁은 안목이 원망스러웠다.
- 그와의 지난 세월이 떠오를 때마다 고약한 악취가 풍기겠지.
“나쁜 새끼!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사람을 시켜서 목걸이를 보내다니. 이게 어떤 목걸인데.”
윤아가 화를 가누지 못하고 욕까지 하자 제규는 당황스러웠다. 어제 정후는 누군가를 시켜 윤아와의 약혼징표인 커플목걸이를 보내왔다. 제규는 정후가 지녔던 약혼목걸이를 윤아에게 보냈다는 말을 듣고는 더욱 초조해졌다. 운전하는 윤아를 슬쩍 쳐다보았다. 윤아의 마음이 얼마나 쓰렸을까.
“택배회사 직원은 아니었다고?”
“네, 파마머리에 분홍립스틱을 바른 30대 초반의 여자였어요. 택배회사화물표도 붙어있지 않았다니까요.”
그 자리에서 내용물을 풀어 확인한 윤아가 고개를 들었을 때 파마머리여자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윤아는 신었던 슬리퍼가 벗겨졌지만 그대로 골목길을 뛰어 쫓아갔는데 여자를 태운 검정색승용차 한 대가 막 큰길로 빠져나가는 걸 보았다고 한다.
“그 차에 정후씨가 타고 있었겠군.”
“그런 것 같아요.”
단순히 물건을 보낼 목적이었다면 택배나 소포우편으로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후씨는 윤아가 보고 싶었을 거야. 그래서 숨어 지켜봤을 테고.”
제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불안감이 고조됐다. 그렇다면 곧 큰일이 벌어진다는 뜻일 수도 있다.
- 사랑하는 사람을 마지막 보는 것으로 모든 상황이 막바지로 치닫는 건 아닐까.
제규는 윤아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점점 회의적인 상상에 빠지는 걸 의식했다. 진입로에서 정체가 심해지자 마음까지 조급해진 윤아는 손바닥으로 핸들을 두들겼다. 현주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현주와 가까웠던 세희를 통해 현주의 바뀐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세희는 현주가 살던 일산의 아파트를 정리해서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현주가 고향으로 내려간 시기와 정후가 증발한 시기, 그리고 정태가 출국했다는 시기가 거의 비슷했다. 갑작스러운 현주의 낙향, 휴대폰번호의 변경. 그런 것들로 인해 윤아는 왠지 오정태 사장과 정후, 두 사람의 행방에 현주가 개입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현주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안동까지 내려가겠다고 하자 현주는 직접 서울로 올라오겠다고 한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려고 터미널로 직접 마중 가는 길이다.
“저기, 내리네요. 현주야!”
윤아는 막 도착한 고속버스로 달려가 현주를 끌어안았다. 제규를 현주에게 인사시키고 가까운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실내로 들어오니 현주의 안색이 더욱 안 좋아 보였다. 그러나 윤아는 본론부터 꺼냈다.
“네가 아는 사실을 다 말해줄 수 없겠니. 현주야!”
자리에 앉자마자 윤아는 사정조로 얘기했다. 현주는 윤아가 얼마나 다급해하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현주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이어야할지 잠시 막막했다. 현주의 뇌리에 정후와의 마지막 날이 스쳐지나갔다.
눈 쌓인 일산 호수공원을 처량 맞게 거닐다가 그의 차를 타고 경북 영덕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하루를 묵고 안동까지 왔을 때 그는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다가 끝내 삼켜버리고 말았었다. 고향까지 태워다 주고 그는 훌쩍 떠났다. 그야말로 짧은 이별, 긴 슬픔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가 떠난 후에도 한동안 그를 떠나보낼 수가 없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야지.”
그렇게 그를 그리워하다가 다시 그가 만난다는 새로운 세상이 무엇인지에 골몰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어스름 그늘에서 그가 쏟았던 에너지의 정체가 점점 불안하게 와 닿는 것이었다. 그가 하려는 일이 어쩌면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불안감은 불길함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달리 방안이 있지 않았다.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현실이 한심하고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렇게 애만 태우다가 윤아를 만나 모든 사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내 입장과는 또 다른 그녀였다. 정후는 윤아에게, 또 정후에게 있어서 윤아는 서로의 인생임을 깨닫게 되었다.
혼자만의 사랑에 몰입했던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그들이었다. 수도 없이 망설이며 애만 태우고 있었는데 마침 윤아에게 먼저 전화가 온 것이다. 잠시 침묵하다가 현주는 “윤아야…”하고 나지막하게 불렀다. 그러고도 또 입을 열지 못했다. 현주 또한 극도의 불안감속에서 지내오던 터였다. 한시도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혹시 여기에…”
현주가 머뭇거리며 주소가 적힌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경기도 광주시 C읍 Y리 산 38번지. 일산의 아파트에서 정후와 함께 지낼 때 현주는 그의 옷을 빨려다가 주머니에서 나온 계약서에 적힌 주소를 적어두었었다. 임차인이 정후의 이름으로 된 창고건물의 임대차계약서였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때를 막연히 기대하며 무심코 적어둔 것이었는데 어제 윤아 전화를 받고 걷잡을 수 없는 불길함에 시달리다가 그 메모쪽지를 찾았다.
“가자, 일단 가보자.”
제규가 서둘렀다. 윤아도 얼떨결에 따라 일어섰다.
“윤아야, 나도 갈래.”
“그래, 같이 가자. 가면서 얘기하자.”
현주는 윤아가 지금 가는 곳의 주소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지 않는 것이 고마웠다. 뛰어난 머리를 지닌 그녀임을 현주는 잘 알고 있다. 일단 그런 건 나중에 알아도 된다고 윤아는 판단한 것 같았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윤아는 가만히 현주의 손을 잡았다.
“왜 이렇게 얼굴이 안 됐어?”
“너도 많이 야위었어.”
두 사람은 서로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중부고속도로 하행선의 첫 번째인 경안톨게이트로 빠져나와 크게 좌회전을 받아 좁은 지방도로로 들어섰다.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대로라면 목적지까지 20분이 남았다.
- 대략 20분…, 20분 후면 그를 보게 되는 걸까. 그는 거기에 있을까.
현주는 가슴이 저렸다. 주체할 수가 없었다. 윤아와 그는 과연 어떻게 해후할까. 그는 나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오정태 사장이 거기 같이 있다면 그는 또…. 이 생각 저 생각을 두서없이 하다가 현주는 슬그머니 자신의 배를 쓸어내렸다.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전의 이정후는 죽었어. 이정후는 수장되고 뱀파이어 같은 이정후가 복제되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났어.”
현주는 그때 정후가 내레이션처럼 읊조렸던 말이 또렷이 떠올랐다. 지금 그 말이 너무나 불길하게 와 닿아 현주는 얼굴을 돌려 고인 눈물을 찍어냈다.
- 아아, 그에게 나쁜 일이 생겨서는 안 돼.
사태가 어떻든 아기를 낳기로 결심했다. 정후의 아기를 가졌다. 열흘 동안의 마지막 객지생활 중 그와 함께 있을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관계를 가졌다. 하루 종일 아파트에 있는 날에는 둘 다 거의 벗고 지내기 일쑤였다. 그는 예전의 수줍음 많던 사내가 아니었다.
그는 한껏 본능에 빠져들었다. 죽을 때까지 섹스만 할 것처럼, 그러다가 죽을 것처럼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포옹하고 애무했었다. 그의 개념으로는 전도된 유희였을지도 몰랐지만, 단순히 육체만의 쾌락을 위한 결합이었는지 몰랐지만, 그래도 그렇게 황홀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 후, 때가 지났는데도 생리가 없었다. 임신, 그때 생긴 그의 2세다. 아아, 내가 아기를 갖다니. 그의 애가 내 뱃속에 생겼다니. 형언키 어려운 놀라움이었다. 불안이나 체념과는 사뭇 다른 묘한 감정이 들어찼다. 세상에 태어나 죽어도 좋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의 씨앗이다. 그의 성姓을 따서 그의 대代를 잇게 하리라는 결심을 할 때까지 그다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옆자리의 윤아가 호흡이 가쁜지 자주 숨을 몰아쉰다.
- 윤아에게 또 죄를 짓는 일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