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토박이인 나는 나이 70대 중반에 들어서 인천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찾은 곳이 미주이민 100주년 기념으로 2008년도 건립된 인천 이민사박물관을 2026.9.11일 충주에서 방문한 흥사단 단우 13명과 함께 찾았다.
월미산 전망대에서 테크길 따라 하산하다 순환도로 우측으로 조금 이동하여 서쪽 해안가(월미로 329)위치한 이민사박물관은 쉽게 찾을수 있었다.
제물포항에서 일본 나고야항까지 미 이주민이 이용하였다는 S.S GAELIC호(The first emigration : 승선인원102명)의 외관 모형으로 설치한 전시실 내부를 들어선다.
독일인 마이어( H. E. Meyer)가 설립한 세창양행의 해열제였던 말라리어 치료약인 금계랍과 담배. 실 바늘의 사진이 눈에 뜨인다.
당시 이민 업무를 주관하였던 유민원(근대의 외무부)의 총재 민영환의 사진과 당시 민영환의 직인이 날인된 여권이 놓여있고, 64회에 걸친 7,415명의 이민자 명단이 나열되어 있다.
이때 하와이는 이미 일본과 중국인들의 이민자들이 들어와 있었으며, 뒤 늦게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났던 한인들은 의식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안창호 선생의 주도로 타국보다 가장 먼전 한인학교를 세워 교육수준 향상에 기여하였다.
박물관에 전시된 "사진결혼"
이민자중 일부는 가정을 이루어 떠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 남자들이 생을 위하여 혼자 떠났기 때문에 가정이 필요하였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모국에 있는 여성 사진을 송부하여 배필을 찾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방법으로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는 해설사의 설명이 따른다.
문제는 여성이 하와이 도착하여 상호간 인물 확인 절차에서 사진보다 월등히 나이가 많았던 여성도 있었고, 더러 타인 사진도 있었다 하는 에피소드와 곁들여 사진 배우자를 이민 총각들간 합의에 의하여 서로 바꾸어 결혼한 예도 있었다 한다.
안창호 선생께서 이민자들이 지니고 있는 고질적인 습관을 개선하기 위하여 생활의 청결과 지식 향상 및 이민자들의 인권옹호와 조국을 잃은 망국의 여권 업무를 대리하는 영사 업무는 물론 노무자들의 노동환경 개선까지 관여하였다 한다 .
하와이 이민자들이 나라를 잃은 고국을 떠났던 설움을 두 번 다시 겪어서는 않되겠다 하여 고국민의 지식 과 기술력을 향상 시키기 위하여 모금한 자본으로 세워진 학교가 인천과 하와이의 앞자를 대표하여 인하공대를 설립하고, 그 학교가 인하대학교가 되었다.
♧. 다음편은 조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