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영 수필집 보릿고개 154 * 226 * 18 mm 246쪽 세수(洗手)의 변
아침마다 세수를 하면 턱수염을 깎아야 한다. 칠순 중반 나이이지만 수염이 안 보이니 노인 같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밖에 나가면 할아버지 말을 들으니 턱수염 없다고 늙게 안 보인 것은 아닌 모양이다. 저희 할아버님은 평생 상투를 트셨고, 턱수염을 길게 기르고 사셨다. 아버님도 50대에 한때 턱수염을 기르셨다. 왜 머리를 자르지 않으시고, 또 턱수염을 기르셨을까? 사실 옛날 어르신들은 거의 다 그렇게 사셨던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근처에 이발소도 없고, 자를 만한 연장, 즉 가위나 면도 등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가위 정도야 집마다 있었지만, 그 이것저것 함부로 쓴 무딘 가위로는 머리털을 자를 수 없었다. 내 어린 시절 이발소 없는 마을에 사는 나를 어머니께서 삭둑삭둑 잘라주었을 때 얼마나 아프고 눈물을 질금거리지 않을 수 없었던지, 어린 시절 기억이 가끔 떠오른다. 우리가 사는 시골 오지 마을에는, 아니 이웃 마을에도 이발소는 없었다. 정 이발소를 찾으려면 십 리나 되는 먼 읍내 장터로 가야 했다. 아니, 이웃집에 이발 기계를 가진 분이 계셨는데, 자기 아들들만 해줄 뿐이었다. 내가 가끔 찾아가서 “이발 좀 하러 왔어요” 하고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 두말 안 하고, 앉으라 하며 해주시곤 했던 고마운 어르신이었다. 몇 푼 주고 올 때가 많았지만, 간혹 그냥 일어서도 언짢은 기색은 거의 안 하셨다. 하지만 난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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