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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6일 수능이 목전이라 대학입시와 관련하여 강의를 하는 나도 마음이 바쁘다.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 모의고사 문제를 풀다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요약해보니 등장인물은 별로 없어도 은근한 감동이다. 자연과 싸우는 노인의 집념과 용기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기에 충분하고 상어떼에게 고기를 잃고 뼈만 들고 돌아온 실패작이라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세상은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 여기며 희망을 놓지 않는 산티아고 노인의 삶은 조수 마눌린으로 하여금 다시 바다로 나가게 만드는 의욕을 만든다.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시련과 그로인한 절망이 허다하지만 어느 상황이든 다시 일어서는 정신이 필요한데 그것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오전에 운동을 하고 점심에는 방배동으로 나가서 점심을 먹었지만 오늘처럼 여유롭게 평일을 보내는 내가 스스로 놀라웠다. 오후에 날도 춥고 컨디션이 좋지가 않아 근처에 있는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시간만 낭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의미가 없는 어수선한 하루로 살면서 오늘처럼 계획도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삶이 또 있어서는 안 될 것같다. 오전에 만난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와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정신과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날이 아닐 수 없다.
17일 마라톤 출전이 3일 남았지만 비록 21킬로의 하프라도 짧은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최선으로 준비를 할 것이다. 아침도 거르고 오늘도 홍제천부터 양화대교와 서강대교를 돌아오는 18킬로 2시간 가까이를 달리고 돌아왔다. 내일 수능을 보는 조카 용구를 격려한다고 일찍 퇴계원에 간 아내를 대신하여 힐튼호텔 건너편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사 먹었다. 그 동안 5천 원이었던 가격이 5백 원 올랐고 식사 후에는 체육관으로 이동하여 운동을 더 하면서 오전을 보냈다. 정환이 동생한테는 어머니께서 위독하여 중환자실로 이동했다는 전화가 왔는데 나조차 걱정이 많이 되었다. 점심 후에 학원으로 갔더니 상담을 한다는 학부모가 방문을 했고 자식을 생각하는 관심과 마음이 구구절절 나와 다르지 않았다. 내일은 수능일 휴일이라 일요일 수업을 미리 하려고 교재와 프린트 등을 준비하며 하루 일정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수능 전일의 시내의 거리는 평소보다 조용했는데 수험생 누구라도 편안한 밤을 보내고 내일을 맞았으면 좋겠다.
18일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새벽을 맞이하다보니 보충수업이 많은 오늘이라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공무원들도 늦게 출근하는 날이지만 무악재 고개는 빠르게 정체가 시작되었고 긴급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차량 몇 대가 수능의 긴장감을 더하게 한다. 식사를 하는 중에 축구를 하러 간다는 아들이 유니폼까지 입고 식탁에 앉았는데 오랜만에 함께 아침을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선배들이 수능을 보는 날 2년 후 자신의 일인 것은 잊고 축구에만 몰두하는 아들이 달갑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내는 8시부터 집에서 수업을 시작하고 나도 딸을 태우고 정독도서관을 갔다가 9시에 논술교실로 들어갔다. 1시까지 수업을 하고 집으로 내려가 점심을 한 뒤에 다시 학원에 올랐는데 오후 시간에는 눈이 감길 만큼 피곤했다. 일정을 마친 저녁에 아내가 부탁한 많은 분량의 복사를 했고 집으로 오는 중에는 방배동에서 술을 마신다는 영식이가 전화를 했다. 아들 혁준이가 수능을 보았으니 일찍 들어가 격려하는 역할이 필요할 것 같은데 오늘은 뜻밖이었다. 밤에 집으로 돌아오니 딸이 과외를 마쳤고 10시부터는 아들의 수업이라고 분주했지만 무엇보다 실질적인 성적향상이 필요한 때이다.
19일 오늘은 어찌된 일인지 아들이 일찍 일어나 식사까지 하고 등교를 하여 대견했고 내 마음도 한결 편했다. 어제 축구에서 4팀이 게임을 했다가 20만원을 차지하여 고기를 사 먹었다니 아들도 기분이나 컨디션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본말이 완전히 전도된 현실로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고 축구하는 것만큼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아내는 7명으로 구성된 신사임당 모임에서 충청도 태안 바닷가로 1박2일 여행을 10시에 출발한다고 서두른다. 점심쯤 도착하여 오후에 바다를 구경하며 하루를 보내다가 내일 온다는 것인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11시에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하면서 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고모님은 계속 의식이 없는 상태로 계신다는 이야기를 한다. 구름이 잔뜩 낀 11월의 중순 기온까지 뚝 떨어져 을씨년스러운 오후에 학원으로 가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었다. 수업을 하며 보내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아내를 대신하여 아들과 딸에게 김치찌개를 만들어 주었다. 내일 마라톤이 있어 잠을 자려고 일찍 누웠는데 아들이 지난 춘천마라톤 때처럼 밤에 외출을 하여 또 새벽에 들어올까 염려가 되었다.
20일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계란찜을 만들어 아들과 딸 식사를 만들어 주고 등교를 시켰다. 마라톤이 있는 날이라 집을 나서 서대문까지 갔다가 5호선을 타고 구세군 마라톤 행사장 여의나루에 도착했다. 구세군 마라톤은 일종의 불우이웃돕기를 하는 형식으로 개최되는 것이고 쌀쌀한 날씨로 참가한 인원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여기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들이 배번도 없이 반대로 출발하여 나까지 따라서 엉뚱하게 달리다 제자리로 돌아온 황당했던 곳이다. 10시에 여의도에서 동쪽으로 동작대교를 통과하여 한남대교를 지나 성수대교가지 갔다가 동호대교를 앞에 두고 반환점을 돌았다. 평소에 20킬로 이상을 여러 번 달려 부담은 없었지만 춘천의 부진을 씻는 각오로 달리는 내내 정신을 늦추지 않았다. 초겨울의 한강 주변은 갈대가 우거져 한적한 아름다움이 있었고 63빌딩 아래 굽어진 야트막한 언덕을 돌아 1시간50분으로 완주를 마쳤다. 먼저 들어온 우현이가 나를 맞이했고 최선을 다한 오늘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 수 있다고 서로에게 격려를 보냈다. 여의도로 들어가 점심을 친구와 함께 먹었고 집으로 돌아와 오후에는 논술교실 수강생들과 엊그제 실시한 수능문제를 풀었다. 10시경 내려오니 서해안 여행을 다녀온 아내가 싱싱한 젓갈을 구입해 왔는데 아들과 딸까지 저녁으로 맛있게 먹었다.
21일 벌써 11월의 하순이 되었다. 일찍 일어나 참치찌개와 어제 사온 젓갈 그리고 계란찜까지 아들이 잘 먹는 음식으로 식사를 함께 했다. 이른 시간에 딸을 태우고 정독도서관에 갔다가 양화대교를 건너 교회에 도착하니 오늘은 추수감사절로 백설기 떡을 나누어 준다. 평소에 부목사가 설교를 하는 7시30분 1부만 참석하다가 오늘은 2부 9시에 왔더니 친구도 있고 나이가 같은 담임목사도 보였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이 컴퓨터와 씨름을 하듯이 앉아 있고 아내는 수업을 한다고 이내 논술교실로 나선다. 성북동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딸을 정독도서관에서 태우고 함께 점심을 먹은 뒤에 학원으로 들어갔다. 환경이 바뀌면 집중이 안 되는 법인데 딸은 열심히 공부를 했고 며칠 전 이사한 아래층 건물에는 퇴직한 공무원들 연수원이 들어왔다. 저녁에 딸과 서울역 롯데마트로 이동하여 쇼핑을 하면서 고기와 음료 등을 사 가지고 왔더니 수업을 마친 아내가 들어왔다.
22일 어제 학원에서 딸과 보내서 그런지 월요일 같지 않은 오늘이다. 아침에 체육관으로 나가는 중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청주에서 올라오시는 장모님을 뵈었는데 우선 건강하신 모습이라 좋았다. 오늘이나 내일 집에서 김장을 하신다고 오셨고 이번에는 어떤 맛일지 나로서는 기대와 염려가 동시에 생겼다. 오랜 경험으로 충청도식 김치를 만드는 장모님과 젓갈이 들어간 약간 짠맛을 원하는 나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운동을 마치고 학원으로 가려다가 마라톤 후기 상품으로 온 티켓을 가지고 유진상가 건너편 아식스 매장에 들어갔다. 딸이 입을 잠바를 사려고 했던 것이고 마땅한 사이즈가 없어 그냥 나오긴 했지만 추워지기 전에 예쁜 외투를 사 줄 생각이다. 점심으로 동태탕을 먹고 곧바로 학원으로 들어갔는데 벌써 1년을 넘게 지켜온 이 자리가 오늘은 유독 편안하기만 했다. 저녁에 논술교실로 이동하여 모의고사 대비 수업을 하고 9시에 집으로 돌아와 김치찌개로 식사를 하는 중에 아들이 들어왔다.
23일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는 중에 아들이 다가와 모의고사 문제를 질문했고 다른 날과 달리 만족스런 표정으로 등교를 한다. 오늘 김장을 한다고 아내와 장모님은 새벽부터 바쁘고 그나마 충북 괴산에서 절임배추를 주문하여 일이 수월해졌다. 김치는 소금도 좋아야 하고 절임도 중요한데 그간에는 절이는 타임을 놓쳐 살아있는 배추를 푸성귀 맛으로 먹었던 때가 있었다. 이번에는 양념을 충분히 넣고 넉넉하게 젓갈만 준비한다면 내년 이맘때까지 식탁이 행복하게 유지될 것이다. 오전에 운동을 하고 12시가 되어 집으로 왔더니 아내는 수업으로 논술교실에 올랐고 장모님만 혼자서 김장으로 수고를 하고 계신다. 김장철 단골메뉴인 돼지고기 사태까지 삶아서 점심으로 배가 부를 정도로 먹었고 오후에는 학원으로 나섰다. 오늘 인터넷에는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하여 포탄이 떨어지는 장면까지 사진으로 올라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전국이 공포에 휩싸이고 남과 북이 급격하게 냉전으로 치달았는데 실제 눈으로 보는 이런 전쟁과 같은 모습은 처음이다. 오늘 수업은 11월 모의고사를 해설했고 저녁에는 영식이와 남영동에서 식사를 했지만 진전이 없는 사업으로 흥이 없는 시간이었다.
24일 새벽에 일어나니 장모님께서 일찍 청주로 내려가셨다. 어제 저녁에 약속한 대로 오늘 퇴계원으로 모시고 가면서 처제에게 줄 김치까지 싣고 가려고 했는데 계획이 사라졌다. 아들과 딸이 학교에 가고 식사를 하는 중에는 어제 북한의 공격으로 해병대원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우현이가 심란하다며 문자를 보냈고 오전에 홍제천으로 나가서는 월드컵 경기장까지 1시간 이상을 달렸다. 돌아오면서 체육관에 들어가 운동을 더 하고 12시에 집에 들어와 어제 남은 삶은 고기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학원으로 가서 간판을 설치하고 누수부분 페인트하기 복사기토너 교체와 아내가 부탁한 복사까지 하면서 보냈다. 5시30분이 지나니 벌써 날이 어두워졌고 고향에 사는 이장은 마을의 어르신 두 분이 사경을 헤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알려왔다. 저녁에 집으로 왔다가 전자제품 판매 하이마트에 나가서 삼성 LCD TV 32인치를 세일가격이라고 70만원 할인하여 구입했다. 처음부터 가격을 부풀리는 기업의 수법인 것을 소비자들은 저렴하게 산 것처럼 만족해 하니 우리도 조삼모사의 원숭이 꼴이다. 밤에 기사까지 집으로 동행하여 바로 설치를 했고 더 늦은 시간에는 퇴계원에서 용구네 가족이 왔다가 김치를 싣고 돌아갔다.
25일 오래 사용한 TV를 철거하고 두께가 얇은 신형을 설치했더니 거실이 환해졌다. 아침에 아들과 딸이 학교에 간 뒤에 어제 왔던 기사가 다시 방문하여 화면을 잡아 주고 구형 TV를 가지고 나갔다.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하는 중에는 영식이가 현재 위치로 이전한 이후 처음으로 학원에 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점심쯤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학원으로 나가서 수업을 마쳤더니 아침에 온다고 통보한 친구가 들어왔다. 퇴근 무렵이라 정식이나 형규 등에게 연락을 했더니 모두 단숨에 달려왔고 근처 해장국집에서 오랜만에 즐거운 만남을 가졌다. 식사와 술을 하다가 영식이 사업에 관해서는 대립도 생겼는데 서로간 사업을 보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좋았던 분위기가 나로 인하여 어색하게 되어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나역시 답답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26일 어제 친구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너무하지 않았나 생각이 되었다. 지나온 시간이나 생활을 돌아보면 나도 급하고 이기적인데 이 기회에 반성을 많이 하고 새로운 모슴으로 나아갈 일이다.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홍제천으로 나가 가까운 거리를 조금 달렸고 바람이 차가워 바로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어제 일로 마음이 불편하여 운동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와 누워서 몇 시간을 보냈다. 국어교실에서 돌아온 아내가 대낮에 집에 있는 나를 보고 놀라는데 평소에 오늘처럼 빈둥거린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초저녁에 국어교실로 올라가 수업을 하고 8시에 정독도서관에 가서 딸을 태우고 오는 중에 유진상가 아식스 매장에 들어갔다. 딸에게 맞는 색깔이나 사이즈 때문에 다시 간 것인데 마땅한 것이 없어 며칠 전처럼 구경만 하고 나왔다. 밤에 영식이한테 어제 일로 전화를 했더니 자신이 먼저 취했었다며 너털웃음을 짓고 조만간 다시 만나자 한다.
27일 일정이 바쁜 날이라서 일찍 식사를 마쳤고 먼저 신설동 정화조 청소를 확인하러 집을 나섰다. 아파트 앞은 밤새 눈이 왔는지 마당이 하얗고 정독도서관에 간다는 딸과 차를 몰고 독립문을 지나 광화문 광장을 건넜다. 토요일 오전이지만 종로와 동대문 방향이 정체가 심했고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도착해서는 건물 안팎을 둘러보았다. 건물을 소유한 지가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40대 초반에 어떻게 매입할 생각을 했는지 순간의 판단과 용기가 작용했을 것이다. 여기 신설동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강의를 하며 보낸 곳이라 장소를 선택한 것이고 자금은 아파트와 건물에서 융자를 받아 구입했다. 매입한 금액은 4억5천만 원으로 당시 서울의 서대문 30평대 아파트가 2억 정도였으니 그것도 적지 않은 자금이었다. 학원으로 들어가 주말 수업을 하는 중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렸고 거기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 날이 차가워졌다. 점심을 먹은 오후에는 내일 수업을 준비했는데 오전부터 불어온 바람으로 거리의 가로수는 마지막 잎까지 떨어뜨렸다. 저녁에 일찍 집으로 들어와 서대문 도서관에 간다는 아들을 태워주고 광화문으로 가서는 딸을 정독도서관에서 데리고 돌아왔다. 저녁식사를 하고 안방에서 TV를 보는 늦은 시간에 동생 정환이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울면서 전화를 했다. 예상은 했지만 고모님이 결국 오늘 27일 밤 세상을 떠났고 황망한 심정으로 바로 일어나 아내와 부천으로 출발했다.
28일 순천향병원에서 운명을 하셨지만 영안실 부족과 문상객의 교통편을 감안하여 부천역에 인접한 세일장례식장을 잡았다. 밤 12시가 지나서 만난 동생에게 어깨를 감싸며 위로를 보냈고 20일 전쯤에 본 고모님의 모습이 선명하여 나도 슬픔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지하에 영안실을 예약하고 29일 화장하는 시간과 장례절차까지 합의하며 보내다가 집에 돌아오니 새벽 3시가 되었다. 아침에 내일 월요일부터 기말고사 시험을 보는 딸을 태우고 정독도서관에 갔다가 오늘 일요일 수업으로 논술교실에 올라갔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힘들었지만 오전을 마치고 오후에는 부천역 장례식장으로 갔다가 영안실에서 동생과 몇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저녁에 정독도서관에 나가 딸을 태우고 집으로 와서 식사를 마쳤더니 어제 못 잔 잠이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29일 피곤하여 정신없이 잤다가 몇 시간 후면 재로 변할 고모님 생각이 나서 아침에 서둘러 일어났다. 벽제에서 승화하는 시간이 오후 1시라 오전에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11시경 불광동을 거쳐 벽제화장장으로 차를 몰았다. 잊을만하면 오게 되는 이곳은 오늘도 장의 행렬이 줄을 이었고 곳곳에서는 이별의 통곡소리가 끊임이 없었다. 부천에서 장의차를 직접 타고 막내고모와 인천에 사는 일삼이형 그리고 재령이 동생도 왔는데 제대로 말을 잇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화로에 관이 들어갔고 연기로 화하는 순간에는 가족들이 식당으로 향하여 삶과 죽음의 비정한 차이를 보여 주기도 했다. 2시30분에 유골함을 받아 든 유족과 장의차는 묘원으로 출발하고 나도 포천을 거쳐 신철원 모란공원까지 뒤를 따랐다. 찬바람이 부는 초겨울의 늦은 오후 어제 내린 눈이 쌓여 있는 납골함에 고인이 된 고모님을 두고 묵념을 했고 고개를 드니 날이 어두워졌다. 철원을 출발하여 서울에는 8시경 돌아왔지만 하나 둘 떠나는 사람들이 믿기지 않았고 허망함에 오늘은 피곤할 겨를도 없다.
30일 하늘이 잔뜩 흐리고 이틀 째 시험을 보는 딸은 식사를 마친 이른 시간부터 학교에 갈 준비로 바쁘다. 늦잠을 자는 아들을 깨운다고 몇 번씩 문을 두드리며 전쟁과 같은 시간을 보낸 아내도 아침에 다시 잠이 들었다. 9시경 혼자 식사를 하고 체육관에 나가 운동을 하다가 화곡동 아식스 매장으로 딸의 초겨울 잠바를 사려고 출발했다. 본사를 통하여 확인한 딸의 90사이즈를 찾아서 간 것이고 구입한 뒤에는 내부순환도로를 달려 바로 학원으로 들어갔다. 어제 서울을 벗어나 철원까지 이동하며 하루를 보냈더니 일이 많아 점심을 먹은 오후까지 일정 정리와 수업준비 등을 하며 보냈다. 저녁에 집으로 오는 중에는 삶과 죽음을 생각했는데 이별이 숙명이라고 해도 남는 가족들의 비통함은 언제나 형언할 수가 없다. 밤에 시험을 준비하는 딸에게 낮에 구입한 옷을 주었더니 흡족해 하고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깊어 가는 밤을 보냈다. 11월로 들어선 어느 날 아들의 실망스런 성적으로 나는 충격과 암담함 속에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었다. 설상가상 고모님까지 보낸 긴 터널이 오늘까지였는데 내일은 새로운 태양을 맞이할 수 있을지 문 앞에는 지금 12월이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