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얀(백혜영)님의 교우 단상: 힘내서 완주해볼까? ◈
교직 생활의 마지막 근무지를 고민 끝에 시골에 있는 학교로 선택한 나의 결정은 옳았다. 학생들도 예쁘고(말과 행동이) 도시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으니 이런 생각은 아직까진 진행형이다.
굳이 흠을 찾자면, 한 학교에서만 근무하지 않고 작은 학교 몇 군데를 순회하며 가르쳐야 하니 몸이 피곤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적은 인원으로 감당해야 할 학교 업무가 과중하다는 정도, 그리고 여름 장마철이나 눈 쌓인 겨울의 위험천만한 고갯길이 불편하다는 것.
하지만 구불구불한 산길이면 어떠랴! 봄이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벚꽃 눈이 휘날리고, 가을이면 구절초가 하늘거리는 꽃길로 출퇴근하니 남들은 일부러 시간 내어 꽃구경 갈만한 곳으로 나는 매일 여행 다니는 중이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게다가 올해는 젊은 시절 아침님과도 인연이 있었다는 지역의 학교도 순회 수업을 하러 다니게 되었는데, 인간극장에서나 나올 법한 교실 풍경이 정겹고 첫인상도 순한 학생들과도 잘 지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참 다행이다 싶었다.
1학년 전체 학생이라야 단출한 4명뿐인데,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아는 것도 호기심도 많아 매번 수업 시간을 넘겨 쉬는 시간까지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14살인 중1 학생들이 60살인 내게 선생님이자 인생의 선배라고 부르며 쉬는 시간까지 대화하는 게 너무나 즐겁다고 말해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가.
지금 급변하고 있는 교육 현장은 기술을 활용한 교육, 즉 에듀테크를 활용한 미래형 교수학습 구현이 목적이라 하여 CHAT-GPT 기반 프로그램을 이용한 수업 설계를 강조하고 있고, 교사들은 생성형 AI 관련 각종 연수를 받으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전쟁 중인데, 학생들과의 관계는 더 참혹한 전쟁 상황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이 명예 퇴직을 하고 싶어 하는 시점에 오히려 명퇴보다 정년까지 가야 할지를 살짝 고민하는 중이니 혼란스럽다.
1인 다역을 감당해야 하고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명퇴하면 무조건 무보수 카페 알바생 붙박이 당첨 0순위는 물론 교회 십일조도 줄어들 것이니 잘 생각해보라는 카페 매니저의 농담 아닌 농담도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고, 이 작은 천사들과의 평화로운 일상을 연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드니 왜 아니 그렇겠는가.
에휴~ 그동안 평생의 소원이 일 그만하고 쉬는 것이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도 저도 아닌 상황과 맞닥뜨리니 출퇴근 오가는 길의 여운이 오히려 행복이라면 오기를 부리는 것이라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그래도 누울 자리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말처럼 퇴근 후 가방도 집에 놓지 못하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 처지이나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걸침이와 톡톡이와 꾸부정하게 나를 바라보는 이슬님 보다는 낫지 않겠어...?
아무튼 좀 더 힘내서 완주해볼까? ㅎㅎ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