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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본성 값은 얼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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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48편) 20230828
제목 : 여릉(廬陵)
청원이 어느 날 어떤 중이 묻기를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한 것을 인하여 대답호대 "여능의 쌀값이 어떤고..." 하였다.
(한문 원본)
淸源一日因僧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廬陵米作麽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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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료 및 원본)
(1)
【指月问道 | 宁可永劫受沉沦,不从诸圣求解脱】https://www.360doc.cn/article/1842961_979573809.html
(2)
【青原行思禅师,六祖门下最器重的弟子,被称为继承六祖的法髓】https://mo.mbd.baidu.com/r/14384dlE3iE?f=cp&u=a5d4d85046cda0ce&urlext=%7B%22cuid%22%3A%22gPSCagOz28_fu28Aj82J8_8i2a_IO2uVj8Se80PoviKa0qqSB%22%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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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번역본)
청원이, 어느 날 중이 묻되 무엇이 이 불법 대의(佛法大意)입니까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여릉(廬陵)의 쌀이 어떤 값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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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풀이)
★ 대의(佛法大意)의 뜻은 지난 (145편)에서 불법대의(佛法大意)편에서도 했었던 것인데요.
여기서도 "어떤 것이 불법이 지키고 행하여야 할 큰 도리(道理)입니까?"로 해석하시면 되겠습니다.
★ 여릉(廬陵)은 지역 이름인데요.
장시성에 위치한 지역으로 송나라 이전에는 본래 예장군에 속했다가 후한말에 여릉군으로 분리되면서 여릉군으로 속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 미작마가(米作麽價)란 쌀가격을 말하는 것인데요.
아시다시피 당나라 때나 지금이나 쌀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잖아요.
그래서 상형문자에서 쌀을 뜻하는 것은 배부름, 풍요로움, 풍성함, 안정된, 여유로움, 즐거움, 행복감 등을 뜻한답니다.
그런데 여기서 쌀 가격에 따라서 이러한 성향들이 달라지겠지요?
쌀가격에 따라서 사람들의 마음도 풍성하기도 하고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겠어요?
그래서 오늘 내용은 쌀 가격으로 본성 자리를 표현한 내용이랍니다.
본성의 값어치(道力)에 따라 마음이 여유롭고 풍요롭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다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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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제가 왜 곁가지냐고요?
단 한 번도 절 근처에도 안 가본 상태에서 가지가 하나 툭~!" 하고 튀어나왔다고 해서 곁가지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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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불교 공부도 안 했는데 그렇게 잘 알아요?"
그럼 이 사람은 이렇게 답변을 해드린답니다.
"머리에 든 것이 없기 때문에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거랍니다."
라고요..😄🙏
※ 이 글은 주로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쉽게 풀어서 설명하느라 글이 좀 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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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해설)
오늘 내용부터 청원 선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
오늘 내용을 단 한마디로 말하면
"너의 본성(불성/성령/마음)은 어떠냐?"
랍니다.
왜냐하면 나의 본성(마음)에 따라 모든 대의(大意)도 달라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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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답니다.
어떤 중이 청원 선사에게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불법이 지키고 행하여야 할 큰 도리(道理)입니까?"
하고 물으니까 내용상으로는?
"여능의 쌀값이 어떤고...?" 하고 되물었는데요.
이 말의 뜻은 [쌀값]을 비유로 본성 자리를 비유한 내용이랍니다.
왜냐하면 당시나 지금이나 물가가 안정되어 있어야 백성들의 마음도 안정될 것이고 마음도 여유롭기(여여하다)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내 마음이 편하고 여유가 있어야 대의(大意)고 뭐고 있지?
내 마음이 불편하고 시끄러운데 무슨 대의고 뭐고 있겠느냐? 이런 말이랍니다.
풀어서 말하면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라는 말은
"어떤 것이 불법이 지키고 행하여야 할 큰 도리(道理)입니까?"
라는 뜻이고 이에 대한 청원 선사의 대답은
"여능의 쌀값이 어떤고...?"
라는 대답은 쌀값을 비유로
본성의 값어치에 따라 불법의 대의도 달라지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로 대답한 것이랍니다.
쉽게 말해 본성을 증득했느냐? 못 했느냐?에 따라 불법을 지키고 행하는 도리(道理) 또한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이 내용을 오늘 날로 그대로 비유하면 이런 내용이랍니다.
"과연 오늘날의 한국 불교가...?"
"과연 오늘날의 선지식인들의 마음이...?"
"불법을 지키고 행하는 도리(道理)는 올바른가...?"
또는
"과연 이 땅에는 불법을 지키고 행하는 도리(道理) 자체는 있는가...?"
라는 내용과 같은 내용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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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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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얼마 전에 재미난 자료가 있어서 같이 공유해 보려고 하는데요. ^^
내용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선문염송]도 그렇고 대부분의 경전들이 당나라 때 신라나 백제 고구려 등으로 들어온 책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여러분들 혹시 신라시대 때 사람들이나 고려 시대 때 사람들과 지금 사람들이 만나면 대화가 가능할까요?
아님 편지와 같은 서신(書信)으로 대화가 가능할까요? ^^
아니 거기까지 안 가더라도 조선시대 때 사람들과 지금 사람들이 만나면 대화가 가능할까요?
저는 이번 동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대화가 가능할 거라고 봤는데요.
솔직히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답니다. ^^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처음 보는 자료라 재미나게 보았는데요.
한번같이 보시지요. ^^
참고로 우리가 옛 글들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내용인데요.
예전에 잠깐 말씀드렸지만 제가 중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중국에 최고 한문학자들도 옛날 글들을 45% 정도 박에 이해를 못 한다고 해서 저도 깜짝 놀란 적이 있었는데요.
한자에 있어서는 박사급인 한족 아나운서들도 25% 정도 박에는 옛 글들은 이해를 못 한다고 해서 더 놀란 적이 있었는데요.
지금도 중국은 구청 같은 관공서에 가보면 글을 못써서 돈을 주고 대필을 해 주는 곳도 있을 정도인데요.
그래서 저도 설마 하는 생각에 한인교회 도서관에 가서 우리 국어사전을 앞에 놓고 내가 이해하는 단어들이 얼마나 있는지 시험해 본 적이 있었는데요.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답니다.^^
여러분들도 시간 나실 때 네이버 사전이 아닌 학생들이 보는 국어사전을 앞에 놓고 내가 우리글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한 장씩 넘기면서 각각의 단어들을 확인해 보십시오. ^^
그러면 옛 글들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지 금방 깨닫게 되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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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실 동영상 내용은 이보다 더 충격일 것인데요?
우리 언어도 이런데 상형문자를 쓰는 중국은 우리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1) 신라때 언어
https://youtu.be/TG18N0BRoK4
(2)
https://youtu.be/uGDDyMWHJtg
(3)
https://youtube.com/shorts/LCZYa6AZyxY?feature=share
(4)
https://youtu.be/xi_uQ5WJq1Q
(부록)
https://youtu.be/EB-38ST4T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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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시니까 어떠셨나요? ^^
그래서 매번 말씀드립니다만 경전뿐만이 아니라 모든 옛 글들을 보실 때에는 항상 그 당시의 언어문화와 풍습 등의 고어사전(古語辭典) 등을 참고로 해석하셔야 그나마 비슷하게라도 해석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인데요.
아무리 한국에서 한문학 박사라 하더라도 옛 글들에 있어서 만큼은 쉽게 보고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답니다.
특히 당나라 당시의 중국 글들은 중국 최고의 학자들도 어려워서 쩔쩔매는 글들이 대부분인데요.
어떻게 한국의 한문 학자들이 쉽게 보고 접근을 할 수가 있을까요?
예전에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중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한국 손님들을 많이 접대하게 되는데요.
많은 분들이 자신은 한문을 좀 알기 때문에 글씨로 소통을 하면은 된다는 분들이 많으셨는데요.
한국식 한문으로는 기차역에서 기차표 하나도 사기가 어렵답니다.
왜냐하면 어순과 문법도 다르고 무엇보다 한문 글자는 같더라도 표현하는 글자를 다르게 쓰는 경우가 많고 완료형에 해당하는 끝맺음 표현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서양(西洋)이라는 글자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는 뒷글자를 따서
양복, 양장, 양화, 양인, 양산, 하는 식으로 표현을 하는 반면..
중국은 앞 글자를 따서
서복, 서장, 서화, 서인,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단어들이 바글바글하다는 것인데요.
지금도 그런데 당나라 글들은 오죽하겠어요?
마찬가지로 아무리 깨달았다 하더라도 모르는 글들은 모를 수 박에 없다는 뜻도 된답니다.
왜냐하면 글이라는 것은 지식에 해당하는 것이지 지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부처님에게 한국어나 영어로 질문을 드리면 알아듣고 답변을 해줄 수 있을까요?
부처님도 한국어나 영어를 배운 적이 없는데요?
이런 것과 마찬가지랍니다.
그래서 옛 분들은 글로만 불법을 배우면 죽도 밥도 안된다 하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글은 글일 뿐이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저도 뒤늦게 불법을 알고 옛 글들을 여러분들과 같이 하나씩 보고 있는데요.
솔직히 처음에는 중국 놈들이 뭐 별것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접근했었는데요.
지금은 그렇지가 않답니다.
지금 보고 있는 [선문염송]도 그렇고 그동안 옛 분들이 이러한 가르침들을 남기시느라 참 고생들이 많으셨겠다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답니다.
문제는 이러한 가르침들을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고 따라 하지 않아서 그렇지요..
정말로 한국 불교에는 옛 분들이 힘들게 남겨두신 좋은 자료들이 너무 많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가르침들을 따라 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적다는 것이 문제이지요.(진실)
제 경우는 책을 받으면 습관적으로 끈으로 된 책갈피를 확인해 보는 경우인데요.
누가 한 번이라도 책을 열어본 것이라면 끈으로 된 책갈피가 그대로 있진 않겠지요?
지금 보고 있는 [선문염송]도 한 깨달은 스님이 선물해 주신 건데요.
이 책도 1994년 8월에 발행된 책인데요.
이런 소중한 책이 그동안 20년 가까이 책꽂이에만 꽂혀 있다가 저의 손에 쥐어졌을 때 책갈피 끈이 그대로인 것으로 보아 그동안 한 번도 책을 열어본 사람이 없었다는 것에 저는 솔직히 놀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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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행자 내용
이 글은 연꽃이 활짝 피신 네 분을 위해 신설된 유마경(維摩經) 내용이랍니다. ♡
[유마경]은 [법화경]과 아울러 보살들을 가르치는 경전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유마경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 보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 나가 보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vtL4VwXhp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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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광엄의 보리좌)
1:25:58~
선남자여, 무릇 보살이 이와 같이 바라밀다를 갖추고 사람들의 근기를 길러주며 바른 법을 획득하고 선근을 지니고 있는 한 그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보리좌에 기인하고 일체의 불법으로부터 기인하며 불법 가운데 온전히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그의 이 같은 말에 5백 명의 천신과 중생들이 보리에 대해 그 자리에서 발심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런 대꾸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기에 저는 저 고매하신 분의 병문안을 엄두조차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1: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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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도 짧지만 아주 깊고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요.^^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이쪽 란에 계시는 분들은 이러한 내용들을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하면서 보셔야 하답니다.
나도 이러한 마음인가?
나는 마음은 부족한 것이 없는가?
나는 유마거사의 말씀처럼 잘 해나가고 있는가..? 등등..
진짜로 이쪽에 해당하는 분들이 깨달으셨다면 삼법인(三法印)에 대해서 만큼은 나 자신이 해당되고 있는지 늘 점검을 하셔야 하고요..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인(印)이란 확실히 내 마음에 각인(刻印) 되어 있다 또는 도장을 찍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실제로 내 마음에 각인(刻印) 되어 있느냐....?
이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글은 초보자분들도 많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단어 하나라도 꼼꼼히 해석해 드리고 있답니다. 오래 공부하신 분들은 좀 답답할 수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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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해석)
★ 바라밀다(波羅蜜多) 뜻
바라밀(波羅蜜)은 어렵게 말하면 도피안(到彼岸)에 이르는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수행을 뜻하는 것이고 수행의 최종 목적지를 이르는 내용이기도 하답니다.
(사전적 의미는 : 바라밀다( 波 羅 蜜 多 )의 준말. 열반(涅 槃 )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菩薩)의 수행.)
(추가 설명 : 보살이면 최소한 깨달은 사람 이상을 말한답니다. 그래야 바라밀 등이 소화가 가능하다는 뜻이고요, 그래서 도성제 안에 팔정도와 함께 육바라밀이 들어 있는 거랍니다.)
뒤에 다(多) 자가 붙으면 [많다]라는 뜻인데요.
여섯 가지의 바라밀(육바라밀)을 뜻한답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표적인 것을 예로 든 것이지 세상의 전부 다(多)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바라밀들이 모두 수행의 대상이기도 하답니다.
그래야 열반(도피안/일불승)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고요.
그리고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여섯 가지의 바라밀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답니다.
왜냐하면 육바라밀 자체가 부처님이 정해주신 깨닫고 증득한 사람의 기준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 또한 이 육바라밀을 기준으로 수행을 이어나고 있고요.
그리고 이 기준으로 상대의 도력(道力)을 평가하기도 한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력(道力)이란 본성(마음/道)의 힘(力)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마음에 힘이 없기 때문에 천도재나 제사나 명패 봉안 등을 하는 거라 보시면 되고요.
마치 깃대 위에 매달린 깃발처럼 돈이나 재물 앞에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흔히 [바라밀다를 행할 때..] 그러면 [여러 가지 수행을 행할 때..]라고 해석하시면 된답니다.
위에 내용으로 예로 들면 천도재나 제사나 명패 봉안 등이 들어왔을 때 거절을 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수행 도구로 삼으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는 중생의 마음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줄 때에는 무료로 보시를 해야 하는 것이고요.
이것이 진정한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이랍니다.
그래서 지금 유마거사가 말씀하셨듯
[선남자여, 무릇 보살이 이와 같이 바라밀다를 갖추고 사람들의 근기를 길러주며 바른 법을 획득하고 선근을 지니고 있는 한 그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보리좌에 기인하고 일체의 불법으로부터 기인하며 불법 가운데 온전히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이러한 것이 정확한 불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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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거사가 아닌 부처님 말씀으로 다시 설명드리면..
많은 사람들이 깨닫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이라고 사리불처럼 착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견성만 말할 뿐 성불은 말하지 않는다]라는 가르침은 매우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이 사람은 말하고 있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말씀하실 때에도 분명히 이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삼승(三乘)은 일불승(一佛乘)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요.
제가 봐도 분명히 그러하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실제로 아라한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부처님 말씀대로 아직은 완전한 열반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유마거사의 말씀도..
보살들이 바라밀다를 열심히 행하면 반드시 도피안(到彼岸)에 이를 수 있다는 뜻도 일불승으로 가는 길을 이르는 말이랍니다.
이 말은 바라밀은 보살급들이 하는 거라는 뜻이기도 하답니다.
일반 사람들은 마음에 힘이 없기 때문에 알아차림부터 수행을 하셔야 하는 것이고요.
[도피안]이나 [일불승]은 표현 방법만 다를 뿐이지 같은 뜻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도피안]이 다른 말로 [일불승]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방법만 확실히 알고 열심히 하시면 누구나 도피안(일불승)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고요.
도피안(到彼岸)이란 한문 뜻 그대로 풀이하면 (피안에 도달한다)는 뜻인데요.
우리말로 하면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뜻이랍니다.
즉
[중생의 마음에서 본성의 마음으로 건너간다]는 비유랍니다.
더 쉽게 말하면 [본성의 마음으로 바뀌는 것] 을 뜻한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열반(涅槃)에 드는 것이고요.
다 같은 뜻이랍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본성의 마음으로 바뀌는 것은 아주 순식간인데요.
아무 때나 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다 보면 때가 되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되는 거랍니다.
이것을 체험이라 한답니다.
그래서 불교는 체험의 종교라 하는 거랍니다.
많은 가르치는 사람들이 체험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모두가 이러한 엄청난 체험을 못 해본 사람들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오죽하면 옛 분들이 흔히 말하는 [확철대오]나 [항아리 밑창이 빠지는] [밑이 빠지는]등의 비유를 했을까요?
누가 이런 비유를 했는지는 몰라도 딱 맞는 표현이랍니다. (진실)
그 순간 체험의 느낌이 딱 이러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순간은 느껴보지 못한 분들은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답니다.
비유를 하면 마치 잘 익은 감나무 위에 매달린 감이 바람만 불어도 때가 되면 툭~" 하고 떨어지듯이..
중생의 마음도 비우기만 하면 툭~" 하고 본성(불성/성령)의 마음으로 떨어질 수 박에 없답니다.
이런 상태를 기독교에서는 [성령을 영접한다] 하는 것이고요.
[불성을 증득한다] 와 [성령을 영접한다]는 다 같은 뜻이랍니다.
그리고 이것은 본인이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절대로 짐작을 할 수 없는 그런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여태껏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런 체험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무언가 비교해 볼 만한 것도 없답니다.
그래서 옛 분들은 이를 두고 [극락이다.] [천국이다.] 하면서 가상의 세계로 표현한 것이랍니다.
그리고 본성의 마음으로 바뀌는 그 순간의 느낌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환희와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마음이 엄청 고요하고 포근하고 안락한 마음으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은 금방 알 수가 있답니다.
그래서 옛 분들은 이를 두고 여여하다(與與 하다)라고 표현을 한 것이고요.
마음이 엄청 고요하고 여유롭고 평화롭다는 뜻이지요.
실제로 그렇답니다. (진실)
이때부터는 지혜고 뭐고 세상의 이치가 모두 이 한자리에서 돌아가고 있음을 바로 알 수가 있답니다.
그래서 원효스님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신 것이고요.
이 내용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랍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본성의 마음으로 바뀌려면 마음을 완전히 비우셔야 하는 것인데요.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지요.
그래서 몇십 억겁을 알아차림 수행을 하셔야 그제야 감나무 위의 감이 익는 것처럼 익어서 어느 순간 바람만 불어도 툭~" 하고 마음을 비우고 버릴 수가 있는 거랍니다.
이 상태를 [일불승]이라고도 하고 [열반 상태]라 표현하기도 한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이르시기를
"일불승을 증득하게 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삼승(三乘)을 설했던 것인데 너는 삼승을 이루고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착각하다니.."
하시면서..
"내 너를 위해 다시 과거 생에 옛 기억을 되살려 일불승을 다시 설해볼 것이니 잘 듣고 기억을 되살려 보라"
고 하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랍니다.
그리고 이 삼승을
1. 양이 끄는 수뢰(성문승)
2. 사슴이 끄는 수뢰(연각승/벽지불)
3. 소가 끄는 수뢰(보살승)
등으로 비유를 드셨고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 인도자가 많은 수행자들을 이끌고 힘들고 험한 밀림의 길을(수행 과정을 뜻함) 헤치면서 일불승의 자리로 길을 가는 도중(수행 과정을 뜻함)에..
수행자들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방편으로 임시로 안락한 성을 하나 만들어 수행자들을 잠시 쉬게 했는데..
여기서 모든 수행자들이 가짜로 만든 그 안락한 성에만 만족하고 도취되어서 다음 길을 떠나려 하지를 않지요.
바로 이 상태가 삼승의 자리에만 만족하고 머물러서 더 이상의 길로 나아가지 않는 모양을 그린 내용이랍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모든 경전들을 통달했고, 법문에도 능통하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만 대접받고 만족하면서 더 이상의 길을 떠나려 하지를 않는다는 뜻이랍니다. (양이 끄는 수뢰인 성문승을 뜻함)
그리고 어떤 이는 나는 깨달은 사람으로서 모든 만법에 능통하였고 선문답에도 천하무적이라 나는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하면서 일불승을 외면하고 있다는 뜻이랍니다. (사슴이 끄는 수뢰인 연각승 또는 벽지불을 뜻함/서유기로 비유하면 손오공이 바로 이 상태임)
그리고 어떤 이는 나는 깨닫는 것은 물론 열반에 들었다 하면서 그 가짜 열반(가짜로 만든 성 비유)에 도취되어서 일불승의 길을 외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답니다. (보살승을 말함)
제가 보아도 그러하고요.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은 지금 부처님의 이러한 말씀에 귀를 기울이셔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난 후 단 한 사람도 이 삼승의 그늘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진실)
지금부터라도 실제로 깨닫고 증득을 한 분들이라면 천도재나 제사나 명패 봉안 등에 의식을 두시면 안 되고 지금부터라도 유마거사의 말씀처럼 바라밀다(波羅蜜多)를 제대로 행하셔야 한답니다.
그래야 오늘 유마거사의 말씀처럼 자신의 근기를 길러주는 것은 물론이고 바른 법을 획득하고 선근을 지니게 되어서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보리좌에 기인하고 일체의 불법으로부터 기인하여 불법 가운데 온전히 자리를 잡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유마거사의 핵심 가르침이랍니다.
★ 근기(根氣)의 뜻
(사전적 의미 : 근본이 되는 힘)
불교에서 말하는 근기란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답니다.
근기는 일반적으로 알고 계시는 참을성이나 인내심 등만 이야기하는 내용이 아니랍니다.
과거생 부터 수행으로 다져진 그런 근기를 말하는 거랍니다.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에 있어서의 근기는 과거생의 한두 생(生)을 이르는 말이 아니랍니다.
적어도 수십 억겁을 이르는 근기(뿌리)를 말하는 거랍니다.
부처님은 이에 대해서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그것도 모든 모래알을 가루를 내어서 그것을 일렬로 세웠을 때 그 숫자를 세아릴 수 있겠느냐?라고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답니다.
그만큼 긴 세월이라는 뜻입니다.
근기뿐만이 아니라 일체 만물의 모든 것들이 인연 따라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것은 지금 현재 이러한 수행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거나 귀를 기울인다는 자체가 벌써 여러분들도 수십 억겁을 수행에 연관이 되어 오신 분들이란 사실입니다. (진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러한 글에 관심을 가지거나 더군다나 따라 해 본다는 것은 과거생 부터 이어온 근기가 없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랍니다.
이 말은 제 말이 아니라 세존의 말씀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 유마거사는 바른 법을 획득하고 선근을 지니고 있는 한 그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보리좌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거랍니다.
지면이 좁아서 더 하고 싶어도 다음으로 미뤄야 하겠네요. ^^
아무튼 이것은 무조건 따라서 해봐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이것이 근기로 다져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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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선문답(禪問答)
중국 글은 뜻글자랍니다.
선문답에서는 마음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키포인트랍니다.
모든 선문답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깨닫고 증득한 것과는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왜냐하면 우주보다 크고 넓은 불성(마음)의 세계를 몇 글자의 글과 말로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기준점은 글이나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의 마음에서 오는 언행(言行)이 그 기준점이랍니다.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경전에 막힘이 없다 하더라도 불성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선문답 같은 곳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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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선문(禪問)입니다.
[문수가 말호대 "중생의 번뇌를 분명히 알면 그것이 부처님의 경계니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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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답)
오늘 내용은 수행자들에게는 아주 의미심장한 내용이지요.^^
번뇌와 망상은 일반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영원한 숙제입니다.
그러나 문수보살이 만약 저에게
"그대는 번뇌 망상을 어찌 없애는가?"
하고 묻는다면.. 저는 바로
"저는 번뇌 망상 등을 바로 그 경계에서 없앱니다."
하고 답변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번뇌 망상의 경계를 뚜렸히 알아차리고 손오공처럼 박살을 내서 밖으로 내 쫓아버리면 되니까요.. 📿🙏
~♡~
다음 주 선문(禪問)입니다.
[견의 보살이 선의 천자에게 묻되 "어찌하여야 수능엄삼매를 얻는가?" 하니 "천자가 대답호대 "범부의 법을 항상 수행할지니 범부의 법이 합하지도 흩어지지도 않는 것으로 보면 이것이 삼 매를 닦는 것이니라. 하였다. ]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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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에 합당한 답변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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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음 주 선문염송
[선문염송] 중에서.. (149편) 20230918
제목 : 졸부(拙斧)
청원이 석두로 하여금 남악회양선사에게 서신을 전하게 하면서 "돌아오는 날엔 그대에게 졸부자 하나를 주어서 이 산에 살게 하리라" 하였다. 석두가 회양선사의 처소에 이르러 서신을 전하지 않고 얼른 묻되 " 성인들도 흠모하지 않고 자기의 영식도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가 어떠합니까?" 하였다. 이에 회양이 "그대의 물음은 너무도 도도하다. 어찌 좀 낮춰서 묻지 않는가?" 하니 석두가 " 차라리 영원토록 지옥에 빠져 있을지언정 성인들의 해탈을 구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였다. 회양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니, 석두는 돌아갔다. 청원이 묻되 "그대가 떠난지 오래지 않았는데 서신은 전달했는가?" 석두가 "소식도 통하지 않고 글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하고는 앞의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고 다시 청하되 "지난날 화상께서 졸부를 주셔서 이 산에 살게 하리라 하셨는데 지금 주옵소서" 하였다. 이에 선사가 발 하나를 드리우니 석두가 절을 하고 남악산에 들어가서 살았다. [운거가 남악이 대꾸하지 않은 자리에 대신 대답호대 "담판한아! 할 것이라." 했다.]
(주)
졸부 - 무딘 도끼.
(한문 원본)
淸源 石頭 馳書上南岳懷讓禪師 乃曰廻日 與汝箇拙斧子住山 石頭讓師處 未達書 便問不諸聖 不重己靈時如何 讓云 子問 大高生 何不向下問 石頭云 寧可永劫沉淪 下求諸聖解脫 讓 不對 石頭乃廻 子去未久 書得達不 頭曰 信亦不達 乃擧前話 復云 去日 蒙和尙許箇拙斧子住山 卽今便請 師垂下一足 頭禮拜 人南嶽住山 (雲居代讓師不對處 云 擔板漢)
(중국 자료)
古則(一四九)淸源令石頭馳書 上南岳 懷讓禪師 乃曰迴日與汝箇鈯斧子 住山 石頭到讓師處 未達書便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1)
【단락/경판 - 불교학술원 아카이브】https://kabc.dongguk.edu/content/view?dataId=ABC_BJ_H0076_T_009
(2)
【淸源令石頭馳書 上南岳 懷讓禪師 乃曰迴日與汝箇鈯斧 子 住山 石頭到讓師處 - 百度】https://mr.baidu.com/r/15agtLbOdX2?f=cp&u=349746a16184a902
(또 다른 번역본)
청원이 석두(石頭)를 시켜 치서(馳書)하여 남악회양선사에게 올리게 하면서 이에 가로되 돌아오는 날 너에게 돌부자(鈯斧子)를 주어서 주산(住山)하게 하겠다. 석두가 양사(讓師)의 처소에 이르러 서신을 전달하지 않고 바로 묻되 제성(諸聖)을 흠모하지 않고 기령도 존중하지 않을(不重己靈) 땐 어떻습니까. 회양이 이르되 자네의 물음이 너무 높구나 왜 향하(向下)하여 묻지 않는가. 석두가 이르되 차라리 가히 영겁토록 침륜(沉淪)할지언정 제성의 해탈을 구하지 않겠습니다. 회양이 대답하지 않았다. 석두가 이에 돌아오자 스님이 묻되 자네가 떠난 지 오래되지 않거늘 서신을 전달함을 얻었는가. 석두가 가로되 신(信; 消息)도 또한 통보하지 않았고 서(書)도 또한 전달치 않았습니다. 이에 전화(前話)를 들고는 다시 이르되 떠나던 날 화상이 저(箇) 돌부자로 주산(住山)함을 허락함을 받았으니(蒙) 즉금 곧 청합니다. 스님이 한 발을 수하(垂下; 내림)했다. 석두가 예배했다. 남악으로 들어가 주산(住山)했다.
[운거(雲居)가 양사(讓師)의 부대처(不對處; 대답하지 않은 곳)를 대신해 이르되 담판한(擔板漢)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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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용은 석두(石頭)라는 분이 두 선사에게 아주 멋지게 감명을 주는 내용인데요. ^^
혹시 개인별로 답을 주시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메일로 주셔도 됩니다.
그리고 지난 글들이 필요하신 분들은 e-메일 주소를 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
e-mail 주소 : 119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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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법문 동영상
오늘 내용은 서암 스님의 내용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분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동안 통틀어 음성으로 남아있는 법문들을 들어본 분들 중에서는 최고라고 보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본성 자리에 대한 본인의 이야기들이 한없이 울어 나오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깨닫고 증득을 했다면 경허선사 말씀대로 부처님 명호(名號)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유마거사처럼 자신의 이야기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암 스님의 사생활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 분의 설법 안에는 출가자로서의 바른 생활을 많이 설하시는 것으로 보아 부끄럽지 않은 출가자 생활을 했을 거라고 보는 것인데요. ^^
아무리 어쩌고저쩌고 해도 언행(言行)이 바르지 않고 일치하지 않으면 그것은 죽도 밥도 아니거든요..😄🙏
1914년 생이시니까 저의 아버님보다 네 살이 위이신데요. ^^
어렸을 때 보면 당시까지만 해도 어른들이 서로 만나면 맞절을 하던 시절이랍니다.^^
짧은 내용이니 한 번 같이 천천히 읽어보면서 들어보시지요. ♡
제목: 서암 큰스님 법어집(정토출판)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1)
https://youtu.be/iz0gC3Z4or4?si=iSUXNiQaGryabf2f
(2)
서암 스님을 옆에서 본 스님의 이야기인데요 서암 스님의 삶을 간접적이나마 함게 감상해 보시지요. ^^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스님도 깨달았니 아니니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오늘은 다른 분별은 하지 말고 딱 서암 스님에 대한 내용만 들어보시지요. ^^
힌트를 드리자면 이런 내용들은 사실 이분처럼 머리로 이해를 하려고 하거나 생각으로 하면 할수록 더 중생심으로 빠질 수 박에 없다는 것인데요. ^^
아무튼 재미로 한번 들어보지요.
https://youtu.be/XMzOiMIDD8s?si=Czp9mHltvZDQJEom
~♡~
《음악과 함게 수행을.. 》
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위해서 그동안 우리들끼리만 공유하고 있었던 [추억의 음악 캠프]인데요.
건달바(乾達婆)처럼 얼마든지 음악을 통해서도 수행을 할 수가 있답니다.
방법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중에서 귀에 의식을 집중하면서..
"지금 듣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안으로 의식을 돌려보는 것인데요.
★ 음악을 들으면서 수행하기
음악에만 끌려들어 가면 내가 지는 것이고요.
듣고 있는 [나]에게 집중해야 한답니다.^^
이것이 조견오온(照見五蘊) 법이랍니다.
같이 귀로 들어보시면서 듣고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참구해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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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The Carpenters - Jambalaya (On The Bayou) (Live in 1974) • TopPop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t5ImncN-rQc?si=Z94P00XrrcGzi3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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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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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댓글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꼭 성불하십시오.
관세음보살📿🙏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고맙습니다 덕분에 행복합니다 ()
감사합니다.🙏🏻
저도 법우님 덕분에 늘 행복합니다.
우리 모두 이번에는 꼭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공무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