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담초(이옥희 선교사: 울밖교우)님의 교우 단상 생각: 백만 원으로 그 아이의 영혼을 샀는가?◈
에이즈 고아인 쥬나에게 은행에서 100만 원 빚을 냈고 갚지 못해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우리 샨띠홈 출신의 10여 명의 청년 중에서 남다르게 성실하였다. 기능공으로 공장에 들어갔고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파트에서 열심히 일하여 주변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가서 바이블 공부를 하며 인생에 대하여 눈을 떴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였다. 복음에 눈을 뜬 그는 나에게 자신을 고아로 남기고 떠난 부모님을 이해한다고 하였고, 자기처럼 버려진 눈먼 누이를 찾아서 함께 살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며 무한 감사를 드렸다. 그는 에이즈에 걸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다짐하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좁은 길에 감사한다고 하였다. 그는 마치 건강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기 위하여 특별히 사용하는 하나님의 도구처럼 보였다. 나는 그를 위로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할 에이즈 환자의 인생살이 자체가 고난이므로 나는 그를 위해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빚을 냈는데 공부는 못하고 빚만 쳐져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뜻밖의 말을 들으니 그간 내게 보여준 모든 것이 속임수, 가식처럼 느껴졌다. 나는 혼란과 의심에 빠졌다.
나는 그의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에 돌직구를 날렸다.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의 설명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 그가 나를 속이고 있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가 마약이나 도박, 음주에 빠졌을 가능성과 끝으로 너무 외로운 나머지 이단 종교에 빠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은행 빚을 낼 일이 없다. 매월 인건비가 많지는 않지만 야근 수당을 합치면 4, 50만 원이 족히 된다고 하였다. 숙식은 공장 기숙사에서 무료로 제공받고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월급으로도 모자라 은행에서 돈을 빌린단 말인가? 나는 불신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대출금을 갚아줄 것 인가에 대하여 기도한 뒤에 연락을 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나는 그가 마치 용의자인 것처럼 의심하면서 마약과 도박의 가능성과 알콜 중독 여부를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리저리 견주며 대조하여 볼 때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 불똥이 될 수 있는 그에 대한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였다.
무엇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분별하고자 기도할 때 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꾸짖었다. 무조건 신뢰하라고! 빚을 갚아주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를 신뢰하고 조용히 빚을 갚아줄 수가 없었다. 그의 실수가 단 한 번으로 끝난다면 그를 신뢰하고 백만 원을 갚아주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으므로 가볍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여러 친구들이 그의 이야기를 소문으로 듣고 그처럼 빚을 쓰고 나에게 갚아 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 또한 없으므로 나는 우리의 평화와 원만한 관계를 위해 무겁고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부대끼면서 시간이 흘러갔다. 그도 소식을 끊고 나도 소식을 끊었으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마음속의 소리는 신뢰하라고, 백만 원으로 아이의 고통을 빨리 감해주라고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계산이 앞의 이유를 들어서 반대하였다.
어느 날 그가 고통에 눌려서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나에게 보낸 것은 내가 온 세상의 돈보다 그를 더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었는데 내가 그가 저지른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고 정죄하고 있으므로 나의 영을 흔든 것이었다. 비로소 쥬나의 고통이 예민하게 느껴졌다. 나 자신이 그를 고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신을 차리면서 조용히 속아주기로 하였다. 용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백만 원을 갚아줄 작전을 짜고 쥬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랑하는 쥬나! 평화를 빈다. 요즈음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너는 옛날 직장에 그대로 다니고 있니?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고 있니? 나는 너의 미래와 건강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한다. 은행 빚 때문에 긴장하고 갈등하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구나.
쥬나야! 그래서 우선 25만 원을 너의 생일 선물로 미리 주고 싶구나. 이 돈을 벵까의 계좌로 보내주마. 나의 계획에 대한 너의 생각을 말해주렴. 너의 의견대로 해주마.
사랑하고 축복한다. 하나님께서 너를 축복하시고 또 축복하시길 빈다!
나의 내면의 싸움을 모르는 쥬나의 답변은 순수하였다.
맘!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무도 저를 염려해주지 않습니다. 누구도 저와 함께 제 문제를 걱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맘이 저를 염려해주셔서 하루 종일 기뻤습니다. 그리고 생일 선물로 돈을 미리 보내주신다니 너무 고맙습니다. 저 또한 부담감을 가지고 기도하겠습니다.
맘 사랑합니다. 맘이 보내주시는 생일 선물이 도착하면 바로 빚을 갚겠습니다. 앞으로는 더 이상 빚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뒤의 편지 몇 구절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맘! 제가 낙심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 분의 뜻대로 복음이 세상에 힘차게 전파되길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맘의 소원을 이루어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 ...생략...맘,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해주셔서 평안을 맛보았습니다. 맘,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니 참으로 기쁩니다. 행복합니다. 맘, 정말 사랑합니다.
돌이켜 보니 나는 자신의 의와 선을 과시하며 성전에서 경건한 모양으로 기도하는 바리새인이요, 잘못을 저지른 학생을 침묵과 벌로 바로 잡으려는 서기관이며 율법 교사이었다. 그러나 쥬나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성전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죄를 고백하는 세리요 죄인이었다. 하나님은 애통하며 우는 쥬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영적인 무지와 교만을, 허영과 위선을 일깨워 주셨다.
쥬나의 편지는 수정처럼 투명하고 아름다웠다. 겸허하고 진지하였다. 에이즈 고아로서 세상의 멸시와 천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혼이 병들지 않았다. 세상 모두가 돌아앉았지만, 단 한 사람인 내가 자기를 염려해주셔서 하루종일 기뻤다는 말에 너무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다. 나의 의심과 고투의 과정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자신의 문제로 괴로워하면서도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길 기도한 그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기도해주어서 행복하다는 그의 말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의 침묵과 심판에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순수와 신뢰를 잃지 않은 그가 참으로 고마웠다. 눈물 젖은 파리한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편지를 거듭 읽으며 쥬나와 함께 하시는 자비로운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렸다.
(*2024년 4월 25일 목요일 축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