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사람이 하늘이므로
사람엔 귀천이 없고
나라엔 빈부가 없는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어
백성이
주인인 나라
만백성이 국본이 나라
날마다 꿈 슬고 죽는 하루살이의 생,
불멸이다
불멸
고부군수 조병갑 늑탈 동진강에 썩어, 범람이다
동학군 쓰러진 넋들 우금치에 살아, 폭발이다
날마다 꿈 슬고 죽는 하루살이의 생, 불멸이다
물과 구름 위에 핀 꽃
-수운 최제우
동학은 하늘이다 하늘은 곧 땅이고
땅이든 하늘이든 사람에서 발원하므로
동학은 허구가 아닌 곱새김도 어림없는
동학은 종교가 아닌 참인간이 사는 사회
물처럼 낮은 세상 저울처럼 기울지 않고
오늘도 내일과 함께 함께 한 세상 그침이 없게
동학은 눈물이다 휘몰아치는 눈보라다
동학은 반골이다 자유와 평등을 향한
용담물 사해로 흘러 썰물로 갔다 밀물로 오는
하찮은 미물이거나 보잘것없는 사람이거나
노비를 며느리 삼고 또 하나 수양딸 삼아
삶이란 살아가는 것 증명하지 않는다
녹두꽃은 지고 피어
천치같이 백치같이 머저리 등신같이
녹두라는 이름 뒤엔 한 사내가 숨어산다
태평한 세상이라면 악다구니를 왜 하랴만
양반 상민 따로 있고 노비 백정 또 있으니
억새밭을 갈고 싶어 쑥대밭을 뒤엎고 싶어
저 너머 다른 세계가 보일 듯 가물거리는데
이웃사람 가슴속에 새길 이름은 못되어도
사람마다 찾아 부를 이름은 아니라도
사내로 태어났으니 난세쯤은 달래고 싶어
작다고 비웃지 마라 맵고 짜고 독한 것이
콩보다 작은 것이 팥보다 더 작은 것이
콩밭에 섞여 살아도 콩깍지는 따로 있다
피죽새
피죽새가 왜 우나
피죽새는 어떻게 우나
직죽직죽 울음 울고
피죽피죽 죽 달라 울지
피죽도
주린 창자에
눈물 먹고 한숨 마시며
뻐꾸기
그만 혀,
저문 해에 청승이 너무 길어야
나는 뭐 울 줄 몰라 목젖 닫고 있겄냐
해종일 오지랖에 싼 거시기 걱정 어쩔거인디
뭘 먹으까이,
양손으로 쪼그랑박 달달 긁어도
빈 뒤주 바닥에사 쌀 한 됫박 있을까 몰러
사는 게 업이라는디 지랄헌다고 울겄냐
사발통문
기둥뿌리가 다 썩어서 용마루가 내려앉아도
결의는 죽기 위해 통문은 알리기 위히니
사발은 깨뜨리기 전엔 금이 가지 않는다
"하나,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할 사
하나,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사
하나, 양민을 갈취한 탐관오리를 격징할 사
하나, 전라감영을 점령하고 서울로 진격할 사
전봉준 송두호 정종혁 송대화 김도삼
송주성 황흥모 송주옥 최흥열 이봉근
황찬호 김응칠 황채오 이문형 송국섭
이성하 손여옥 최경선 임노흥 송인호"
살기를 바란다면 지금 이 자리를 떠나라
목숨은 하나뿐이나 어찌 나만의 목숨이리
결사는 역모이므로 삼족 멸문을 면할 수 없다
사내가 쓴 이름은 피로써 새긴 뜻으로
순서없이 먼저 죽으려 원형에 반추한 이름
기어코 목이 잘려서 천추에 밝히리라
우리는 이름을 걸고 영원히 하나된다
우리는 앞서고 뒤서지 않고 향심으로 하나된다
우리는 혈맹을 맺아 죽기살기로 하나된다
보국안민
우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우리가 왜 관군을 위해 일어서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를 지켜 살고자 일어섰습니다
대의를 떨치는 일이 우리의 소명입니까
백서을 돌보는 일이 우리의 몫입니까
늑탈과 폭압에 항거 우리가 일어났습니다
수령을 처단한 건 우리 일이 아닙니다만
관아를 부수는 건 우리 일이 아닙니다만
아전도 목숨이 있고 처자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땅을 지키는 다만 농투산이 입니다
우리는 하루 세끼로 자식 지키는 애비입니다
눈 멀은 후레자식이고 귀 먹은 욕감태기 되어도
물거품이 되다
갑오년 동짓달 아흐렛날 아침 무렵
이 만여 농민군이 우금치 아래 집결해서
일본군 신무기에 맞서 마지막 결전 벌였다
얼어붙은 주먹밥을 씹기조차 힘들어하며
삼례에너 머뭇거린 달포 가량 발걸음이
역사를 되돌리고 만 통한의 패착이었나
나흘만에 다 죽고 남은 농민군 삼백여 명
기운 달 다시 떠서 비칠 날 있을까만
헛되다 말하지 말고
뜬구름이라 손가락질 마라
최영효 선생님,
우금치가 빛으로 살아납니다.
출간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