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여름부터 두번째 읽기 시작한 '태백산맥'의 마지막 10권째 산맥을
엊그제 다 넘었다.
때로는 다음권을 미처 사놓지 못해서,
때로는 다른 책들을 읽느라고,
때로는 단숨에 읽어버리는 게 아까워서,
때로는 피곤하고 힘들어서
그렇게 10권을 읽는데 1년 반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햇수로는 무려 3년.. (ㅋ 너무했다..)
정하섭이 주인공인가 하면 염상진이 주인공 같기도 하고
김범우가 주인공인가 하면 손승호 같기도 하고 하대치 같기도 하고
등장 인물 모두가 주인공 같기도 한 그 10권의 마지막 책장을 덮는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세상 그 어느 민족보다도 처절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가 서글퍼 울고 싶었다.
안타깝고 애틋했던 정하섭과 소화의 삶이,
염상진과 염상구 두 형제의 대비되는 삶이,
인간적인 고뇌로 괴로와했던 계엄군 장교 심재모와 덕순의 행적이,
독립투사였다가 인민군 소장이 되어 돌아온 김범준과 민족주의자 김범우 형제의 무게감이,
하대치와 외서댁의 뚝심좋은 투쟁이,
이해룡과 이태식, 이현상, 조원제 등 거물급 빨치산들의 장렬한 죽음이,
맨몸, 맨살로 세 번의 혹독한 겨울을 보내면서도 산을 내려가지 않고
지도자들을 따르다 이름없이 죽어간 무수한 빨치산들,
산 아래 따뜻한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지 않고
추위와 배고픔과 죽음의 고통뿐인 산에서 그들을 견디게 했던 것은
주지들의 포악에 시달리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던 그들에게
처음으로 인간 대접을 해주고 평등한 세상으로 눈뜨도록 인도한
지도자들의 힘이었다는 것..
"굶으면서 싸우다가 죽어가는 것
그것이 혁명전사의 순결이고 인민들에게 신뢰를 심는 길이고,
다음의 역사에서 혁명이 성취되게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겁니다.
혁명은 적에게만 폭력인 것이지 인민에겐 끝없는 신뢰와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혁명전사는 외롭고 또 위대한 것입니다."
김범준 소장의 말을 통해 그당시 불합리한 제도와 모순투성이 사회 속에서 고통받고 있던 인민들의 해방이
얼마나 그들의 간절한 소망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북한의 실상을 떠올려보노라니
그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간 뒤에도 인민들의 실상은 참혹하니
아, 이론과 실제의 괴리감이여...
끝내는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고 죽은 염상진의 상여를 보는 한장수 노인의 넋두리에
우리 민족사의 애환과 풍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하다.
한장수 노인은 그 빈 방죽으로 들어섰다. 도무지 사람이 싫다는 생각이 들어
큰길을 따라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한 노인은 역마당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산사람 목이 내걸렸다기에 혹시 강동기나 마삼수가 아닌가해서 도래등을 허겁지겁 넘었던 것이다.
한장수 노인은 뜻밖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그 사람의 흉한 모습을 보고나서
한세상이 또 막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 유명한 대장이 저리 죽었이니 동기나 삼수가 살았을 리가 웂는 일이제.
말자리나 하고, 생각 똑바라지게 묵은 젊은 사람덜언 다 죽어뿔고
인자 나 겉은 쭉찡이에, 지 욕심 채리는 것덜만 남었구만.
해방이 되고 이적지 8년 쌈에 죽기도 많이덜 죽었제.
쓸 만헌 사람덜 요리 한바탕씩 쓸어불고 나먼,
그만헌 사람덜이 새로 채외지자먼 또 을매나 긴 세월이 흘러야 허는겨?
인자부텀 새로 낳는 자석덜이 장성혀야 헌께 한시상이 흘러가는 세월이제.
그렇제. 갑오년 그 쌈에서 3.1만세까지가 시물다섯 해고,
3.1만세에서 해방꺼지가 또 시물여섯 해 아니라고.
인자부텀 또 그만헌 세월이 흘르먼 워찌 될랑고?
잉, 또 고런 심덜이 모타지겄제.
세월이란 것이 그냥 무심허덜 않는 법잉께.
나가 질게 살아옴서 보고 젺은 세월이 그렸어.
나도 참말로 징허게 오래넌 살었구만.
인자 나겉은 쭉찡이부텀 얼렁얼렁 가야제.
그려야 새로 타고난 목심덜이 묵고 커날 것잉게.
복동이도, 동기도, 삼수도 웂는 사랑방얼 혼자서 지키기도 인자 심파허는 일인께.
살아올 기약이 웂어진 사람덜잉께.
한장수 노인은 눈물이 젖어드는 눈으로 길게 뻗어나간 방죽을
힘겨운 걸음으로 휘청휘청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