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짐
옥상 창고는 나만의 공간이다. 두어 평이 될까 말까 한 비좁은 곳이지만 나름의 규율이 존재한다. 잡다한 공구와 자재가 대열을 이룬다. 그랬던 공간이 언제부터인지 질서가 무너져 오합지졸의 전선을 방불케 한다.
어머니가 다녀가실 적마다 낯선 말 통에 알 수 없는 액체가 채워지고 주섬주섬 비닐봉지에 담긴 분말 가루가 자리를 차고앉았다. 걸레로 보이는 것들은 신줏단지라도 되는 양 차곡차곡 개키어 영역을 넓혀간다. 내가 정리해놓았던 것들이 밀쳐지고, 새로운 것들이 몸집을 부풀리며 박힌 돌 행세를 할 참이다.
야반도주하듯 고향을 등졌다. 도회지는 촌 모에게 인심이라도 베풀 듯 산자락 판잣집에 방 한 칸을 적선했다.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뵈는 달동네의 가파른 새벽길은 타다만 연탄재가 길을 냈다. 이슬 머금은 가시넝쿨은 비탈에 버려진 세간을 뒤덮었고, 휘감아 도는 명지바람마저 퀴퀴했다.
일터는 준비되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막연하게 사 남매를 이끌고 도시로 상경한다는 것이 될 법이나 한 소리던가. 도회지는 농사일밖에 모르는 어머니에게 매섭고 야박했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어머니는 청소부로 나섰다.
덩그러니 차려놓은 아침 밥상에는 어머니는 없었다. 저녁상을 치우기가 무섭게 몸을 뉘었고, 새벽 첫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부터 어머니에게는 봇짐이 생겼다. 쓰고 남은 휴지며, 버려진 이면지를 챙겼다. 방울방울 기울여 모은 세제를 박카스 병에 담아 날랐다. 그렇게 청소부로 사십여 년을 이어갔다.
명절을 앞두고 어머니가 아들 집을 찾았다. 등에 멘 봇짐을 풀어 놓으며 내 눈치를 살핀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림짐작으로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어머니의 봇짐을 풀어보거나 알려고 들면 둘 사이가 냉랭해지기 때문이다. 분명코 내 눈을 피해 챙겨온 것들은 옥상 창고에 살짝 가져다 놓고는 안도해 계실 것이다.
서너 해 전이었다. 어머니 마중을 나갔던 나는 어머니의 봇짐을 받아 들고 소스라치게 놀랬다. 여든의 나이에 장정이나 질법한 짐을 지고 오신 것이다.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봇짐을 끌어안으며 풀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뺏어 풀어 젖혔다. 천릿길을 오가며 세제와 청소도구를 나르고 있던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나는 모두 거두어 쏟아버리고 쓰레기더미에 내던졌다. 내동댕이쳐진 빈 통이 자신의 육신이라도 되는 양,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챙겨 들었다.
몸부림에도 떨쳐내지 못한 짐을 어머니로서도 어찌하지 못하셨던 게다. 어느 한날 내려놓거나 마다하려 않았다. 그것이 무슨 숙명이라도 되는지 한평생을 달고 산 것이다. 그러고야 봇짐은 어머니에게 뼈와 살이 된 것이다.
육신의 짐은 그나마 나았다. 누나는 부자병이라는 신부전증을 앓았다. 끼니조차 근근하던 집에서 투석 받는 딸을 부여잡고 있는 것은 깨진 독에 물 붓기였다. 힘겹게 길어 온 물은 당신 목도 축이지 못하고 촛불처럼 연명하는 딸에게 쏟아 부었다. 지겨웠을 그 일은 모질게도 이어졌다. 마침내 돈줄이 마르자 나머지 새끼들을 위해 저세상 문턱에 누나를 내려놓고야 말았다. 어머니에게는 그 어느 짐보다 더한 짐이 된 것이다. 그날부터 어머니에게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고 어머니의 표정은 굳어졌다.
자식을 앞세우고 경황없을 때였다. 천 리 객지로 제금나는 우리 부부에게 수저 하나 챙겨주지 못한 게 죄인 양 삼십 년을 곱씹고 있다. 짐 하나를 덜고자 아들의 집에 와서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팔 걷어붙이고 몇 해 전 지은 건물의 청소를 시작한다. 한 계단 한 계단 쓸어내리고, 먼지 쌓인 난간을 한 봉 한 봉 닦아 오른다. 엘리베이터 스테인리스판은 희고 고운 돌가루로 결 따라 밀어야 한다며 들어보지도 못한 공식을 주입한다.
어머니는 봇짐으로 한을 옮겨놓고 계셨다. 가져다 놓은 것들을 버리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한다. 비닐봉지를 풀어 보이며 흰 돌가루와 유리를 닦는 걸레, 바닥을 닦는 걸레, 창틀을 닦는 걸레가 다르다며 걸레의 용도를 말한다. 먼 길을 홀가분하게 떠나려는 사람처럼 부쩍 조급하고 분주하다. 나는 어머니의 눈을 피해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다.
자식 살림날 때 빈손으로 내보낸 게 한이라는 어머니,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고만 있어야 했다. 무슨 말로도 어머니의 짐을 덜어 드릴 수도 나눠질 수도 없었다. 그것은 오롯이 어머니가, 어머니만이 풀 수 있는 짐이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의 짐을 풀고 홀가분하게 덜어낼 수 있도록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지 않은가.
편히 쉬시라는 말에도 어머니는 청소일을 시작하려는지, 펼쳐놓은 보자기 모서리에 휴대전화를 돌돌 말아 허리춤을 붙들어 맨다. 피골皮骨이 맞닿은 어머니의 허리를 보자기가 부목처럼 감싼다. 대리석 바닥을 윤기 나도록 밀고 엘리베이터에 갇혀 스테인리스판의 결 따라 훑어 내린다.
당신의 상처하나 치유하지 못하는 어머니, 얼룩진 표면과 흠이 새것처럼 감쪽같이 탈바꿈되었다. 빛나고 윤이 나도록 닦아놓은 것처럼 어머니의 마지막도 그랬으면 좋으련만, 고비늙은 어머니가 풀어내지 못한 봇짐은 나도 평생 지고 살아야 할 듯하다.
창고에 잡다한 것들을 켜켜이 쌓아 놓는다. 어머니가 되어버린 봇짐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서다. 낯선 또 하나의 말 통이 상석을 차고앉는다.
첫댓글 두 작품이 사이좋게 아버지 어머니의 초상을 그려냈습니다.
아버지의 지게, 어머니의 봇짐으로 상징된 그분들의 치열하고 아픈 삶의 여정도 비슷합니다.
모처럼 등단작품을 올려주셔서 반가웠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 주간님께 부탁해서 파일 받았어요.^^
수고하셨네요. 본인들이 올리려면 카페가입을 해야 하지요.
"참 잘했어요"
도장 쾅! ㅎㅎㅎ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네요.
봇짐으로 어머니를 잘 풀어낸 작품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