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린이와 현서가 준비한 스스로 학교 일정을 함께했다. 오전에는 하린이가 준비한 다꾸 수업을 했고, 오후에는 하린이가 준비한 장명루(실팔찌) 만들기와 현서가 준비한 미술 인체도형화 수업을 했으며, 저녁에는 현서가 준비한 미술 관련의 다양한 게임들을 즐겼다. 나는 하린이와 현서가 준비한 다양한 수업에 열심히 임해보았다.
오전에 한 다꾸 수업은 예상 외로 굉장히 재미있었다. 가지각색의 꾸미기 용품들을 가지고 흰 페이퍼를 내 나름대로의 취향과 색감에 알맞게 꾸며보았다. 그 과정에서 의외로 창의성을 발휘할 부분이 많았고, 개인의 선호가 아기자기한 디자인으로 표현되어가는 창조의 과정이 즐거웠다.
점심 식사 후 진행한 장명루 수업은 자수 실을 가지고 소원 팔찌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장명루 수업은 하린이가 준비해 온 수업이었지만, 본래 하린이에게 장명루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 나였기에, 나는 내 실팔찌를 빨리 만들고 나서 주변 친구들을 도와주었다. 특히 실을 뜨는데 무뇌한이던 주환이을 두고 한참을 가르쳐 주었다. 주환이가 장명루 뜨는 걸 배우는데 난항을 겪어서, 나 역시 주환이 앞에 앉아 하나하나 여러번 설명해 주어야 했다. 그러나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 실수를 지적해 주며 바로잡아 가니, 어느새 주환이가 훌륭히 장명루를 뜨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부터는 기틀이 잡히니 스스로 노하우를 쌓아서 보다 효율적으로 빠르게 뜨는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게 보였다. 새삼 나까지 뿌듯해져서 보기에 썩 좋았다. 결과적으로 주환이는 본인의 실팔찌를 훌륭하게 만들었다.
장명루는 소원을 이뤄주는 팔찌다. 손목에 차면서 소원을 빌고, 그렇게 살아가던 도중 어느 날 자연적으로 장명루가 끊어지게 되면 소원은 이루어진다는 팔찌이다. 하지만 내 손목에는 많은 장명루 팔찌가 매여져 있음에도 정작 소원이 담긴 팔찌는 없다. 어떤 건 잊었고, 어떤 건 원래부터 없었다. 그러나 내게서 장명루 만드는 법을 배워서 지금도 즐겁게 하고 있는 하린이의 모습이나, 내가 만들어준 장명루를 찬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장명루를 만들어내는 주환이의 모습에서 의미가 담겨져 있지 않은 내 손목의 팔찌들에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게 된다. 본래 내가 장명루 만드는 법을 처음 배웠던 건 하반하 학교에서 였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삶에 소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장명루를 만들어 매주었었다. 그러나 내게 장명루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은 소원을 잊거나 담지 않은 나의 팔찌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학 주셨다. 소원을 잊었다는 건 잘 살고 있는 거라고. 그렇다면 그 빈 공간에는 뭐가 있을까? 이번 수업 시간에는 그 일부분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오후 시간 두 번째 수업, 현서의 인체도형화 수업은 인체의 구조를 미술을 통해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예전에 미술 학원에서 대강 배운 내용이었기에 그리 낯선 수업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감회가 남달랐던 부분 역시 존재했다. 예전에는 억지로 배웠더라면, 지금은 당시의 경험을 곱씹어보며 새로운 감상을 갖고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자 전과는 달리 제법 유쾌한 시간이었다. 애초에 수업에 임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보니 썩 나쁠 것도 없었다. 오히려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내가 처음 인체도형화를 배웠을 때 싫었던 부분은 너무 번거롭다는 점에 있었다. 조금만 각도나 길이, 구도가 틀리면, 대상의 몸을 정확하게 재지 못하면 그림이 쉽게 어색해진다. 작은 계산 실수가 그림에 크게 나타나니까, 나는 이런 부분이 싫었었다. 하지만 그림을 즐거움을 위해 그리고 있는 현재, 달라진 입장에서 다시 인체도형화를 접하고 보니 정말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좋은 방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더 좋은 그림을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이 그리는 것을 보다 깊이있게 탐구하고 이해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어서 좋은 듯 하였다.
그렇게 인체를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도형으로 그리는 것부터 시작해 복잡한 구조에 이르기까지, 이를 살짝 맛보고 난 후에는 이를 응용하여 크로키를 그리기 까지. 과거를 반추하고 이에 더하여 흥미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저녁 식사 후 진행한 현서의 미술 게임 수업에서는 주어진 제시어를 앞사람 등에 그려서 전달하고, 또 그 앞사람은 자신의 앞사람 등에 그려서 전달하는 식으로 해서 마지막 사람이 제시어를 맞추는 식의 퀴즈를 했다. 또 제시어의 부위를 여럿이서 각각 맡아서 그린 뒤, 이를 제시어를 모르는 팀원에게 보여줘서 맞추는 식의 퀴즈도 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여러모로 미숙했거나 전체적으로 진행에 아쉬움이 남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반대로 생각해서 오히려 이를 하나하나 맞닥트려 나아가며 다 같이 좋은 시간 보내기 위해 함께함으로서 의미가 있었던 순간이라고 믿는다. 아닌 말로 이때 정말 학생 전부가 모였던 첫 수업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추석이 끝나고 모두가 모인 처음이기도 했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 일어나지 않아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었던 애들까지 전부 함께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뒤에 무엇이 남았냐 하면, 글쎄. 기운차게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이, 화창한 내일을 맞이할 힘이 남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오늘의 스스로 학교는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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