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대(신양균)님의 창립 주일을 맞아 전하는 제언: 내가 바라는 공동체! ◈
올해로 들꽃교회가 창립 22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창립 후 가장 끝자락인 불과 두 달 전에 들꽃의 문턱을 들어선 사람으로서, 교회에 대한 많은 이해와 또 다른 기대가 있을 고참(?) 교우님들을 제쳐두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다른 곳에서 오래 신앙생활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몇 자 적는다고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본래 교회란 말이 ‘주님에게 속한 것’(퀴리아콘)이라는 의미와 함께 ‘모임’(에클레시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굳이 ‘교회’와 ‘공동체’라는 말을 함께 쓰는 것은 마치 돼지 족(足)=발과 같은 표현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세상에 있는 다양한 공동체 가운데 교회도 공동체 가운데 하나여야 한다는 의미로 그런 표현을 사용한다면 먼저 공동체의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덱거)이라는 말처럼, 교회 공동체라는 언어에 담긴 의미를 잘 새기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영어로 community, 독일어로 Gemeinschaft)란 학문적으로는 ‘단순히 함께 모여 만든 집단’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공통의 가치와 정체성(identity)을 가지고 특정한 사회문화적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공동체란 ‘특정한 공간을 중심으로 상호작용과 연대(유대)가 이루어지는 곳’이고, 이러한 상호작용에 따른 연대의식과 유대감은 개인이 주는 것보다 훨씬 풍성한 열매를 우리에게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공동체를 ‘공통의 생활공간에서 서로 선물을 나누는 곳’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육학자인 파커 파머(Parker J. Pamer)는 “공동체란 내가 가장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 곳”이며, “그 사람이 떠나면 똑같은 사람이 또 오는 곳이 공동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공동체 내의 갈등은 필연적이기에, 평화로운 공동체란 갈등이 없는 곳이 아니라 갈등을 함께 풀어나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선물을 나누기 위해서는 많은 지혜와 희생이 따르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갈등을 풀어나가면서 공동체성을 희생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가족과 같은 혈연공동체처럼, 교회당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교우들의 상호작용과 연대가 이루어지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사회 안의 다른 공동체와 달리 ‘주께 속한 곳’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이익과 경쟁이 넘실대는 교회 밖의 현실 세상과 마주 보는 다른 세상(하나님 나라)을 보여주고, 이 세상 안에 그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교회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교회란 그저 각기 다른 개인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예배당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예배라는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이 아니라, 예배를 중심으로 주의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들처럼 각자의 개성과 특징이 하나로 연합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공동체 자체보다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그 개인적인 의도가 아무리 정직하고 진지하고 희생적이더라도 기독교 공동체를 파괴하는 자가 된다는 엄중한 경고를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는 파종하거나 재배하지도 않고 야생에서 자라난 들꽃처럼 각자의 인생을 살아온 존재들이지만, 이제 들꽃교회의 꽃밭에서 각자의 꽃말을 가지고 주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의 꽃밭에는 예배당과 로스터리 카페가 자리 잡고 있어 교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에 참 오묘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당은 말씀의 경청이 있는 곳이고, 카페는 환대의 장소로 쓰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다음, 그날 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했을 때, 그는 ‘듣는 마음’을 종에게 달라고 하였습니다(왕 3:9) 그는 왕으로서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기 위해 듣는 마음을 요구했고, 재판을 하고 선악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귀로 듣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마음으로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듣는 마음은 사람들의 말을 마음 깊은 곳에서 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들꽃 교우들도 서로의 말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들어주고 그것을 통해 주님과 대화하는 폭을 넓혀 갔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내 가족, 내 직장, 내 친구를 넘어 나의 생각과 행동의 지경을 넓혀나가기 위해 듣는 마음, 곧 경청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교회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경청하는 것도 나를 영적으로 살찌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가 교우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함께 손잡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로 사용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마므레 상수리 나무들 사이로 나그네 셋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달려가, 영접하며 땅에 엎드려서 그들을 맞이하였습니다(창 18:1-10). 물을 가져와 나그네들의 발을 씻기고 나무 아래 편히 쉬게 한 다음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나그네에 대한 아브라함의 환대는 예수님께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이기심과 경쟁에 빠져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를 거들떠보지 않는 현실에서, 이러한 환대의 마음은 치유와 공의로 채워질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 들꽃 교우들도 들꽃 가득한 정원보다 넓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환대의 실천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교우들끼리만 만나는 장소가 아니가 손님과 나그네가 모두 환대받을 수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2년간 들꽃 교회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고생한 손길과 마음들이 위로받아야 할 시간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자유, 회복, 상생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또 다른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공동체에 관한 히브리서 10장 24-25절을 적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 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