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루 여행기⑧ 슬픈 마추픽추
이른 아침 스크램블애그와 복숭아로 빈속을 달래고, 어제 예약했던 택시가 정확하게 5시30분에 도착. 마추픽추를 향해 서늘한 고산의 아침을 달린다. 길섶마다 낮고 허름한 가옥들, 층계 따라 상자를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 고산의 빽빽한 해진 집들 속에서 영위되고 있는 쿠스코인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회색빛 도시 군데군데 꽂혀있듯 성긴 초목들이 다소 안도감을 준다.
6시가 채 못 되어 열차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기사가 돌아오는 길 예약을 종용했다. 마추픽추에서 돌아와 도착할 쯤이면 택시편이 원할치 않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예약을 했다. (거짓말이었음. 21:00에 도착하니 택시기사들이 벌떼같이 몰려오고 가격도 더 쌌다.)
* 마추픽주로 가는 역
흐릿한 날씨에 간간히 비까지 뿌리는 다소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역 대합실 안 후끈한 페치카 둘레에 많은 여행객들이 웅성웅성 집합을 이루고 있었다. 창 밖에 보이는 철로, 열차, 대합실 안 페치카의 불꽃, 입김 내며 손 부비는 여행객들……. 신비한 마추픽추 여로의 낭만 짙은 한 페이지이다.
6시40분.
하늘이 훤히 보이는 페루 레일에 몸을 실었다. 마주보는 의자에 우리 세 사람만 앉게 된 흐뭇함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 마츄픽추로 가는 열차
*마추픽추 가는 도중에 있는 바위 절벽에 매달린 호텔
초록 새싹, 노랑 • 하얀 꽃, 널따란 초원에서 자유롭게 뒹굴고 거닐며 풀을 뜯는 검은 소, 염소, 개, 닭들과 산 아래 이루고 있는 아담한 마을들.
한국의 농촌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름져 보이는 넓은 자연에서 방목되고 있는 가축들을 보며 좁은 케이지 안에서 속성으로 키움을 당하고 있는 우리의 가축 현실이 안타까웠다.
마추픽추가 점점 가까워오며 시속 40km 속력의 열차를 에워싸고 있는 깊고 높은 우르밤바 협곡, 절벽들.
*마추픽추로 가는 열차와 협곡들
완만하고 아담한 한국의 산과는 전혀 다른 웅장함과 위엄에 위압감, 위축, 두려움, 경탄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열차가 플랫폼을 떠나기 직전부터 지금껏 수다를 떨던 옆자리 외국인 여성 3사람도 우르밤바 협곡의 경이로움에 잠깐 입을 쉬기도 했다. 산허리, 나무 가지에 솜사탕처럼 걸려있는 하얀 구름이 바람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양은 고산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귀한 선물이리라.
깎아지른 듯한 산, 계곡 속의 마추픽추 플랫폼에 기차가 도착했다,
마추픽추 행 버스를 기다리는 긴 행렬 때문에 우린 샌드위치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김밥 생각이 간절했음)
원체 많은 여행객들로 버스 운행 횟수가 많고 버스 타는 시간이 20분밖에 되지 않아 오랜 기다림 없이 버스에 올랐다. 꼬불꼬불 깎아지른 협곡, 아스라한 낭떠러지, 아찔한 비포장도로를 돌고 돌며 드디어 페루 여행의 정점 마추픽추 마지막 관문에 도착했다.
여기서도 긴 줄을 서서 여권, 티켓을 확인 받아야 했다. 마추픽추 관광을 위한 모든 절차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스페인어, 영어 guider들이 우루루 달려 든다. 우린 나름대로 마추픽추에 대해 공부를 상당히 했고 안내 책자, 안내서까지 철저히 준비해 왔기에 거들떠보지도 않고 길을 재촉했다.(가이드 비용이 10만원. 마추픽츄 관람 도중 안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낌)
구름 낀 하늘이 덥지 않아 좋았고, 마추픽추를 틀림없이 볼 수 있는 날씨려니 싶자 앞서 가는 마추픽추 오름길 행렬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차례를 지켜가며 해발 2400m 산상. 공중의 도시 마추픽추만 생각하며 한 발 한 발 옮겨갔다.
“오! 아! 마추픽추!”
사방에서 외침의 소리가 들리며 언덕배기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춘다.
*마추픽추
내 눈 앞에 펼쳐진 잉카 최후의 도시 마추픽추!
협곡을 오르는 동안 그림자조차도 꼭꼭 숨겨 보이지 않던 마추픽추!
사진 속에서, 매스컴을 통해서, 지리책에서 봤던 마추픽추 그대로다.
그냥 그렇게 서 있는 마츄픽추처럼 두근거리던 가슴도 그냥 그렇게 무덤덤해졌다.
순식간 많은 생각들이 순서 없이 나의 뇌리를 스치며 정교하고 반듯한 산꼭대기 평원, 마추픽추를 한참동안 망연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산꼭대기 절벽 위(해발 2430m) 도시라니. 인간의 상식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깎아지른 산꼭대기에 돌을 깨고 다듬기를 수년간 목숨 바쳐 도시를 건설한 그들은 왜 이 도시를 버리고 소리 없이 어디로 떠나갔을까. 적막한 나의 심정이 이 도시를 밟고 지나간 아들의 깊은 감동을 찾아 나섰다.
새벽 4시의 어둠을 핸드폰 라이트에 의존해가며 등산로를 헤치고 트레일코스를 걸으며, 가파른 2000개 계단을 셀 힘조차 없도록 지친 몸으로 물에 젖은 솜처럼 마추픽추에 당도한 아들. 자욱한 안개에 덮힌 장엄한 산봉우리들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며, 마침내 뜨거운 태양 아래 선명하게 나타난 마추픽추를 대하며 극한 감동으로 가부좌 틀어 긴 시간 명상을 했던 아들. 그 순간 오로지 마추픽추와 자신만이 존재함으로 하염없이 마추픽추만을 응시했던 아들. 난 그 시간 또 한 사람 아들과 함께였다.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황금의 추적자들에게 쫓기고 쫓기던 잉카인들의 마지막 은거지, 최후의 도시,
마추픽추를 180여 미라만 남겨놓고 떠나버린 잉카인들의 비애를 애달파 했던 신영복 선생은 바예흐의 시구에 있는 ‘당신의 향기’로 절절한 애정표현을 했다. 또 노래 <EL condor pasa 철새는 날아가고>의 “달팽이 보다는 차라리 참새가 되고 싶다(I’d rather be a sparrow than a snail)”구절로 이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잉카인들의 슬픔을 역설적 반어로 간직했다.
그리고 길(street)보다는 숲(forest)이 되고 싶다는 구절로 어디로 떠나는 길 보다는 그 자리를 지키는 숲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 마추픽추의 마음이라고 느꼈고, 수많은 길을 스스로 꿈 속에 안고 있는 숲. 그리고 발밑에 무한한 땅을 갖고 있는 숲에 대한 그리움을 그들은 남겨놓고 있다고 했다.
이렇듯 비극이 사무치게 배어있는 땅, 마추픽추의 언덕길을 따라 망지기의 집, 도시 입구, 신전, 채석장, 메인광장, 우물, 양수로, 해시계 등을 돌아보며 나 또한 그 때 그 사람들의 처절함에 점점 처연해져갔다.
낭떠러지 위, 널부러져 있는 바윗돌에 이르러서는 멍울져 있던 가슴이 정 맞은 돌 마냥 찡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1911년 미 역사학자 하이럼빙엄에 의해 400년 동안이나 무성한 자연 속에 묻혀 있다가 발견된 마추픽추.
*마추픽추의 계단식 밭
4만 평에 이르는 총 면적에 계단식 밭이 3000단, 건물이 약 200호. 철이나 바퀴 없이 20톤이 넘는 돌들을 고산지대까지 옮겨 얇은 종이 한 장 틈 없이 축조된 미스터리 마추픽추.
3시간 동안 내내 신비의 마추픽추에 대한 의문은 마침 시커먼 구름이 몰고 온 천둥과 번개 속에 감춰져 있는 듯해서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우르릉 뇌성의 포효에도 마추픽추 잉카인들을 지키려고 눈을 부릅뜨고 떡 버티고 있는 듯한 거대한 와이나픽추는 언제 다시 또 볼 수 있을까?
한편 풀밭에서 한가롭게 노닐던 라마도 보았다. 라마는 남편이 건네준 바나나껍질을 맛나게 먹었다. 아들이 ‘라마가 바나나껍질을 잘 먹는다’고 귀띔해 준 것을 기억하여 준비해 갔던 것이다. 어미 라마와 새끼 라마의 평화로운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 바나나를 주고 있는 장면과 평화로운 라마들
마추픽추 관람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험난한 마추픽추 협곡을 다리품을 팔아 한걸음씩 걷고 있는 트래킹족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내 아들도 저랬으려니…… 생각하니 없던 정이 불쑥 생겨났다.
쿠스코행 열차시간이 꽤 남은지라 우린 내부 인테리어가 아주 깨끗한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피스코사워, 볶음밥, 야채샐러드로 마추픽추 방문 기념 건배를 했다.
*피스코사워와 야채샐러드
* 볶음밥
몇 백 년 전 전설 같은 현장을 보고 가슴 아파하며 마추픽추의 여운을 간직한 채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프랑스 노부부와 예쁜 테이블에 마주앉아 열차가 제공하는 화려한 알파카패션쇼, 페루 전통 춤을 구경하기도 했다. 비싼 푯값을 하나보다 싶었지만 밤열차의 낭만이라 여기며 즐길 수 있었다.
협곡에 숨어버린 도시, 검은 밤에 가리워진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를 우리는 그렇게 떠나왔다.
첫댓글 어떤 사물과 환경 주변을 보며 끈이지 않고 일어나는 움직이는 상념들을 항상 정리하였군요.
나는 언제 가볼 기회가 있을지요. 그 때 사모님이 써 놓은 것 다시 읽으렵니다.
열차와 협곡들..아름다운 사진들에 푸욱 빠집니다..마츄픽추.팝송도 생각나네요.정말 신비로워요.마츄픽추..
우와~~진짜 우리나라 산과는 다르네요?
우린 부드러운 엄마산이라면 거긴 웅장하고 거대한 아빠산 같아요^^~
사모님의 여성스런 이목구비에 교수님의 인자한 얼굴형과 미소를 잘 닮은 자랑이 딸^^ 새움양 실어줘서 반가웠어요^^
아주 이뻐요^^
그리구 제 겨울 코트가 라마소재인데 가볍고 따뜻한 털을 내어주는 라마가 소개 해 져 또 반가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