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여행기 ⑨ 성스러운 계곡 – 친체로(Chinchero)와 모라이(Moray)
마추픽추를 다녀온 후 숙면을 했다.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온 듯 정신이 개운했다.
한국을 떠나온 지 일주일째다.
시차, 기후, 고산증, 거리, 냄새, 현지인 등 주변 환경에 점점 낯이 익어간다. 여로에 익숙해져 가고 있나 보다.
그러나 어제 마추픽추 식당에서 남겨온 볶음밥에 상추쌈을 하고 스크램블애그, 복숭아로 아•점을 떼우는 입맛은 여전히 고집불통이다.
09시 30분에 오기로 예약된 택시가 10시에서야 도착했다. 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 늦게 왔단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뭐라고 야단을 칠 수도 없었지만 아르만도라는 이름을 가진 23살 페루 청년의 인상이 너무 선량하여 그냥 승차하였다. 더구나 오늘 하루 우리들의 여행을 책임지고 안내할 택시기사이다.
안타깝게도 아르만도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동행하면서 페루, 쿠스코, 잉카문명에 대해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잃어버린 듯 하여 아쉽기 짝이 없었다. (여행사를 통해 택시관광 투어를 신청했는데 가이더와의 언어 불통문제는 여행사 편에서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준비해 간 안내 자료와 안내책자가 우리의 가이더가 되어 쿠스코에서 28Km 떨어진 작은 인디언 마을 친체로(Chinchero)(해발 3754m)에 도착했다.
전통마을답게 마을 건축물들은 대부분 진흙으로 빚었고, 담장과 골목길은 돌로 이루어졌다.
*친체로(Chinchero) 마을 전경
머리를 양 갈래로 길게 땋아 내리고 전통치마(폴데라스)을 입고 전통모자(몬테라스)를 쓰고서 맑고 평화로운 친체로(Chinchero)의 생활을 여유로이 하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은, 잉카인들의 옛 문명과 한국의 옛 전통을 보는 듯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아주 작은 규모의 가게 안에서, 좁은 골목에서 잉카의 전통 직물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친체로(Chinchero) 주민들은 아담하고 조용한 친체로(Chinchero)의 분위기를 닮아 빙긋이 미소 지을 뿐 요란 없이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친체로(Chinchero) 마을 광장의 전통 직물을 파는 현장
* 친체로(Chinchero) 마을 골목 풍경
* 친체로(Chinchero) 마을의 골목 풍경
마을 어귀 한쪽 귀퉁이 우리 시선을 끄는 깔끔하고 싱그러운 카페에서 발을 멈추고 아주 정성스레 만들어진 엠빠나다를 주문해 먹었다. 진실과 성실이 몸에 밴 젊은 부부의 향기가 고스란히 스며 있는 맛. 쿠스코에서의 맛과는 상당히 다른 맛이었다. 특히 내용물이 골고루 잘 배합된 부드러운 맛이 느껴졌다.
친체로(Chinchero)의 순박함, 고요, 자연스러움은 골목골목 꽤 많은 여행객들의 심신을 정화시킨 듯 발걸음도 사뿐사뿐 신성한 원시마을에 동화되어 보였다. 이 아름다운 땅, 평화로운 곳 친체로(Chinchero)에 머잖아 국제 공항이 들어선다고 한다.
* 친체로(Chinchero)에서 바라본 평야와 산들
우르밤바 계곡 따라 펼쳐진 드넓은 황토빛 평야에 양떼를 몰고 가는 목동, 목초지의 당나귀, 무리지어 풀을 뜯는 양떼들. 눈에 비치는 모든 것들이 영화 속의 장면들이다.
*우르밤바 가는 길에서 바라본 안데스의 만년설
*우르밤바 가는 길에서 만난 라마들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신 안데스산의 만년설은 웅장, 경이, 신비로 우리를 경탄에 빠뜨렸다. 저 만년설이 녹아 깊고 깊은 우르밤바 계곡에 흘러내려 잉카땅을, 잉카족을, 잉카를 살렸고 살리고 있다니 경외감이 일었다. 파란 하늘 흰 뭉게구름과 어울려 장관을 연출해 내는 안데스 봉우리의 만년설은 내 생애 가장 멋진 광경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딱히 종잡을 수 없는 페루의 계절 기후는 하루에도 수시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다.
강한 햇볕이 따갑고 더운데 바람은 찬 기운이 있어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탄 택시는 에어컨이 없었다. 꾸불꾸불한 비포장도로를 흙먼지 날리며 가는데 창문을 닫을 수도 열 수도 없는 아주 불편한 상태로 모라이(Moray) 유적에 닿았다.
* 모라이(Moray) 유적 앞에서
* 모라이(Moray) 유적과 안데스의 만년설을 배경으로
1932년 미 탐험가가 항공 촬영 중에 발견한 모라이는 해발 3500m 높이에 움푹 패여 있는 계단식 밭이다. 각 계단마다 온도 습도가 다르고, 바람과 햇빛 닿은 양이 다르고, 위쪽 계단에서 마지막 계단까지 기온차가 15도 이상 난다고 한다. 바람과 일조량을 조절하기 위해 각 계단의 높이도 다르다. 각 층의 계단을 물이 잘 빠지도록 큰 돌, 중간 돌, 자갈, 모래 순으로 쌓았다. 또 토질의 조건과 해발고도에 따라 어떤 작물이 잘 자라는지 연구하는 아주 과학적인 농업 기술연구소 역할을 하는 야외 실험실이다. 감자, 밀, 보리, 귀리, 조, 콩, 옥수수, 코카잎 등 20가지 이상의 농작물을 생산했다. 모라이(Moray)에서 생산된 농작물 만으로도 잉카인들을 배부르게 했다니 위에서 내려본 모라이(Moray)는 물론 사진 속의 모라이에서 느끼지 못한 어마어마한 넓이와 규모의 웅장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시대 세밀한 과학적인 지혜에 경탄을 금할 길 없었다.
* 모라이(Moray) 유적 - 원형의 부드러움
그리고 모라이(Moray) 원형의 부드러움은 그 시대 잉카인들의 자연을 사랑하는 유연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별 기대 없이 발길 했던 모라이(Moray) 유적에서 단순한 원형 모라이(Moray)가 아닌 자연의 지혜를 생활로 살았던 그 때 그 잉카인들의 슬기로움을 보았다.
해발 3500m 모라이(Moray) 언덕의 바람이 너무 상쾌해서, 새파란 하늘 흰 구름이 너무 예뻐서 우린 한동안 모라이(Moray) 언덕에 걸터앉아 아름다운 모라이(Moray)를 필름에 넣고 또 넣고 ……
했다.
* 모라이(Moray) 유적에서 안데스의 만년설과 흰 구름을 배경으로
* 모라이(Moray) 유적과 안데스의 만년설 그리고 맑게 흰 구름이 인상적이다
첫댓글 안데스 만년설,유적들,마을 전경,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경이로움과 태고의 신비까지 접합니다.맑고 선명한 사진들을 보고있자니 눈물까지 날 정도입니다. 내가 여행에 직접 발걸음했다면 아마도 몇날 며칠 꽁꽁 앓을 것 같습니다.머리 속 추억의 장면들 때문이지요.햇살은 왜이리 투명한지..흰구름,하늘은 왜그리 파랗고 깊은건지..귀여운 따님,멋진 사모님,순례자처럼 덥수룩한 교수님 모습..다 멋집니다.와! 페루..
정말 자세하게 꼭 보고 알아야 할것들로 실감나게 묘사 해 주시니 사모님 덕분에 큰 공부 합니다^^
모든 사진들이 책과 영화속에서 볼 듯한 장면들인데 내가 아는 분들이 잠깐 잠깐 나와 주시니 더 더 반갑고 신기 합니다~
아주 잘 읽고 있습니다^^
사진을 통해 본 모라이의 모습이 참 경이롭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적합한듯합니다.
잉카인의 지혜를 다룬 글은 여기저기에서 봐왔는데 과연 그렇군요.
안데스의 만년설을 보자니 서둘러 오르고싶은 마음에 괜시리 설레기까지하는데 페루여행을 버킷리스트에 올릴까하는 생각해봐얄듯해요.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