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숲(울밖교우 김영철)님의 교우 단상: 급발진 ◈
요즘 ‘급발진’ 사고 뉴스가 가끔 나옵니다. 내용을 보면 정상적으로 주행하던 승용차가 느닷없이 고속으로 내달려 운전자가 제어하기 힘든 상황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사고입니다.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이 모는 차는 전진하거나 후진하거나 멈춰서기 등이 운전자의 뜻대로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순간적으로 차 엔진의 출력이 높아져 미친 듯 굉음을 내며 폭주하는 바람에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아서 멈출 수가 없으니 큰 사고가 나게 되겠지요.
급발진이 차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 사이에서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다가 느닷없이 어느 한쪽이 화를 내며 폭언을 하고 삿대질까지 하는 바람에 상황이 엉망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 급발진’이지요.
이 두 가지 상황 모두 차량의 통행이나 사람 사이의 원활한 소통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불쾌하게 하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서 문제입니다.
인간 급발진의 예가 약국에서도 일어납니다.
아이 부모: (알약을 갈아서 가루로 포장해 달라는 처방전을 내밀며) “얼른 조제 해주세욧.”
접수 담당 직원: “예. 최대한 빨리 나올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조제실 약사에게) 바쁘시다고 하니까 얼른 부탁합니다.”
조제실 약사: “30분 정도 걸리겠습니다.”
접수 담당 직원: “30분쯤 걸린다고 하니까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이 부모: “아니, 이것 좀 하는데 30분이나 걸려요? 더 빨리는 안 돼요?”
접수 담당 직원: “보시다시피 다른 손님들이 본인 순서를 기다리고 계시고... 그분들 약
준비하던 걸 전부 멈추고 아이 약부터 할 수는 없으니까 양해해 주세요.”
아이 부모: “알았어요. 기다릴게요”
(10분쯤 뒤)
아이 부모: (대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접수대 앞으로 다가서며 큰 목소리로) “아니, 나보다
더 늦게 온 손님들 약은 먼저 주면서... 이러느라고 30분 기다리라고 했어요? 어이가 없네요!”
접수 담당 직원 : “그럴 리가요. 그분들은 한두 시간 전에 미리 예약을 해 놓고 오신 분들이라 저희가 준비해둔 약을 확인하고 바로 내드리는 거거든요. 손님은 예약을 안 하고 오셔서
접수한 뒤에야 아기 약 준비에 들어가니까 순서가 바뀌는 것처럼 보이는 거여요.”
아이 부모: (궁시렁 궁시렁...)
어린아이와 함께 온 보호자들은 지난밤 제대로 잠을 못 자며 아이를 돌보다가 아침에 부랴부랴 직장에 반 차 휴가를 내고 온 터라 신경이 곤두서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모든 것이 낯선 초보 엄마, 아빠이다 보니 상황 대처에 능숙하지 못해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로 짜증이나 불만을 느끼게 되겠지요. 그런데 병원과 약국에서는 “아이 건강을 위해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라는 얘기만 하니 현실과 이상의 간격이 더 벌어져 불안과 우울감이 더 커지는 순간에 확 ‘인간 급발진’을 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위 어린이 보호자의 행동에 잘한다고 칭찬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아이를 키우는 과정의 하나이고, 아이가 아픈 것이 부모의 잘못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 부모님과 저도 겪었으며, 우리 다음 세대들도 겪는 차량, 아니 인간 급발진이 없는 평온한 사회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곳 날씨는 벌써 여름입니다. 지진으로 교우님들 얼마나 놀라셨는지요. 건승하옵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