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태평추’(안도현)
어릴 적 예천 외갓집에서 겨울에만 먹던 태평추라는 음식이 있었다.
객지를 떠돌면서 나는 태평추를 잊지 않았으나
때로 식당에서 메밀묵무침 같은 게 나오면 머리로 떠올려보기는 했으나
삼십 년이 넘도록 입에 대보지 못하였다
태평추는 채로 썬 묵에다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와 김 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인데 눈 많이 오는 추운 날 점심때쯤 먹으면 더할 수 없이 맛이 좋았다.
입가에 묻은 김 가루를 혀끝으로 떼어 먹으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바다며 갯내를 혼자 상상해 본 것도
그 수더분하고 매끄러운 음식을 먹을 때였다
저 쌀쌀맞던 80년대에, 눈이 내리면, 저 눈발은 누구를 묶으려고 땅에 저리 오랏줄을 내리는가?
하고 붉은 적의의 눈으로 겨울을 보내던 때에,
나는 태평추가 혹시 귀한 궁중음식이라는 탕평채가 변해서 생겨난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허나 세상은 줄곧 탕탕평평(蕩蕩平平)하지 않았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탕평해야 태평한 것인데,
세상은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 기울기 일쑤였고 그리하여 탕평채도 태평추도 먹어보지 못하고
나는 젊은 날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러다가 술집을 찾아 예천 어느 골목을 삼경(三更)에 쏘다니다가
태평추라는 세 글자가 적힌 식당의 유리문을 보고 와락 눈시울이 뜨거워진 적 있었던 것인데,
그 앞에서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다가 대신에 때마침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말았던 것인데,
그날 밤 하느님이 고맙게도 채 썰어서 내려 보내주시는 굵은 눈발을 툭툭 잘라 태평추나 한 그릇 먹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간절하게 참 철없이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2014.3.4 한겨레신문 안도현 칼럼에 씌인 글.
‘태평추’라는 음식을 아시는지? 어릴 적에 예천 외갓집에 가서 처음 먹었다.
무슨 잔치가 끝난 겨울 점심때였는데, 도토리묵을 채로 굵게 썰어 뜨끈한 멸칫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와 김 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이었다.
태평추는 국어사전에도 아직은 오르지 않은 말이다.
차가워진 묵을 육수에 데워 먹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이 음식은 그 이름 때문에 더 끌리고 신비롭게 여겨진다. 고향 예천에 갔다가 밤늦게 술집을 찾아 어슬렁거리며 다닌 적이 있다.
예천군청 부근이었을 것이다. 그때 어느 음식점 유리문에 ‘태평추’라는 말이 적혀 있는 걸 보고 와락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순전히 이름 때문이었다.
지금은 일반 가정에서도 자주 해 먹지 않는 그 음식의 이름을 삼십년이 넘어 식당에서 만났으니!
나는 태평추가 귀한 궁중음식이라는 탕평채가 변해서 생겨난 말이라고 생각한다.
탕평채는 녹두로 만든 청포묵에다가 야채와 고기를 얹어 먹는 음식이다.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먹었다고 하니 균형 잡힌 민주주의가 뭔지를 아는 음식인 셈이다.
문자에 어둡던 옛사람들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탕평의 의미를 잘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탕평채를 태평추로 잘못 알아듣고 묵을 데워 먹을 때 이 이름을 줄곧 써온 것으로 보인다.
세상은 태평하지 않았으니 묵을 먹을 때만이라도 태평성대를 꿈꾸었던 것.
어떤 곳에서는 ‘묵밥’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나는 태평추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