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으로 가는 길 - 강석경·강운구 [이광표의 내 인생의 책 ②]
이광표 | 서원대 교수2020. 6. 15. 21:02
경주가 생각날 때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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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도심 한복판에 떡 하니 자리 잡은 수십 기의 대형 고분들. 참 특이한 풍경이다. 경주 사람들은 무덤과 함께 생활한다. 무덤을 보면서 출근하고 퇴근한다. 직장인들은 무덤 옆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연인들은 무덤 사이를 오가며 데이트를 하고 차를 마신다. 젊은 부부들은 유모차를 끌면서 고분 옆에서 아기를 다독인다. 무덤 옆에서 죽은 자와 함께해온 경주 사람들. 놀라운 공존이 아닐 수 없다. 경주는 그래서 철학적이고 성찰적이다.
언제부턴가 경주에 가면, 한두 시간 동안 고분 주변을 거닌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거닌다. 경주의 고분에 빠지게 될 무렵, 이 책이 출간되었다. 2000년 책이 나왔을 때 세간의 관심은 신라 고분보다도 저자 강석경에 쏠렸다. “뭐라고? 강석경이 경주에 내려가 산다고?” 그도 그럴 것이, 잘나가던 소설가가 서울을 떠나 경주에 내려갔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랜만에 내놓은 신간이 소설이 아니라 신라 고분 에세이였으니, 세상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강석경이 만난 경주 고분은 좀 남달랐다. 작가 특유의 세밀한 관점과 깊이 있는 사유로 경주의 무덤을 들여다보았다. 집착, 유목민의 꿈, 슬픔, 고독, 위로, 민초들의 꿈, 남성적인 것, 아름다움, 영혼, 여성적인 것…. “거대한 알 같은 고분들” 앞에서 “전생 같은 유목민의 흔적”을 만나면서 “수행하듯” 경주의 무덤을 그려냈다. 여기에 사진작가 강운구의 사진이 더해져 시종 사유의 분위기로 이끈다.
책이 나온 지 20년이 흘렀다. 이 책은 늘 나의 책꽂이에 꽂혀 있다. 하지만 아직도 끝까지 완독하지는 않았다. 경주가 생각날 때, 조금씩 찾아 읽는다. 1500년 전 신라인을 만나러 가는 길, 그건 조금 더뎌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광표 |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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