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루(김주명)님의 교우 단상: 나를 내려놓고자 합니다! ◈
어렸을 때 정말 재미있게 봤던 만화영화 중에 ‘늑대의 아이 유키와 아메’(한국어판 제목: 늑대 아이)가 있었습니다. 소위 늑대인간이라고 불리는 반은 인간, 반은 늑대인 아이 둘과 그 아이들 엄마의 육아 및 성장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 아이들 이름은 원제를 보면 알 수 있듯 ‘유키’와 ‘아메’입니다. ‘유키’는 어렸을 때는 매우 밝고 활발한 아이였습니다. 변화, 새로운 것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부끄러움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만났던 수많은 또래 아이들이 자기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자신의 개성을 줄이고 매우 조숙해집니다. ‘아메’는 ‘유키’와 정반대로 겁도, 부끄러움도 많았습니다. 낯선 환경을 두려워했고 자신에게 익숙한 것에 애정과 집착을 보였습니다. 몇 년간 학교에 다녔지만 결국 학교에서 나와 자신이 살던 곳에서 살기로 합니다.
저는 특히 새벽에 과거 회상에 잠기곤 합니다. 사실 하고 싶어서 하기보다는, 잠들지 못한 채 누워 있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경우가 많긴 합니다. 그게 좋았든 일이든 슬프고 힘들었든 일이든 말이죠. 그래서 이번엔 그렇게 길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제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부모님께 알려지고 싶지 않은 내용 일부도 있어 고민이 됐지만 한번 적어봅니다.
처음에 갑자기 뜬금없이 만화영화 이야기를 했었죠. 거기에 나왔던 아이 둘이 저랑 매우 비슷해서 잠깐 꺼냈습니다(전 글을 쓸 때 서두에는 주제에 어느 정도 관련은 있지만, 전체적인 글과 약간 분위기가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라 그냥 가볍게 넘기시면 됩니다)
꼭 회상하면 이 영화에 그 아이들이 생각나더군요. 저를 이 교회에서 처음 보셨던 분들은 못 믿으시겠지만, 저는 어렸을 때 정말 밝고 활발한 아이였습니다. 사교성이 높아 또래 아이들과도 잘 어울려 놀고 그랬었죠. 어린이집 다닐 때까지와 초등학교 1학년까지는 그래도 주위 애들과 잘 어울리는 밝은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학교 시스템 적응에는 매우 느렸습니다. 수업 시간에 여러 가지 시키는 것이 정말 하기 싫었고, 일기 등 숙제가 싫어서 안 하고 가니 선생님께 야단도 많이 맞았습니다. 아침잠도 많은 편이라 지각하기 일쑤였으며, 거기에 주변 눈치를 의식하고 부끄러움이 커져 점차 저는 소극적이고 조용한 아이가 되었고, 그 때문인지 주변에서 잘 어울려 주지도 않고 저도 또래와 어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는 4학년 때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사춘기 영향도 약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선생님이 저와 완전히 맞지 않았었던 게 가장 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시키는 게 많았습니다. 매일 일기에 독후감 등 여러 가지 숙제도 많았고, 학교에서도 시키는 게 많았습니다. 그 선생님은 자기를 잘 따르는 아이들에게는 정말 잘해주고 상도 많이 주었지만, 고집도 심하셔서 말 안 듣는 애들은 어떻게든 자기 말을 잘 듣게 하려고 벌도 많이주었습니다. 그때 당시 전 당연히 후자였었죠. 매일 매일 혼나고, 엄마도 선생님과 전화나 면담을 자주 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진짜 학교가 싫었습니다. 부모님은 모르시겠지만, 한 번은 무단결석을 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용감(?)했었더라면 정말 ‘아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사실 저는 ‘아메’ 같은 삶도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제가 두 번째로 크게 바뀌게 됩니다. 이번에도 선생님 영향이 매우 컸습니다. 이번에는 좋은 방향으로, 정말 진심으로 그 선생님이 좋았습니다. 사실 학부모 입장에선 4학년 때 선생님이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5학년 때 선생님은 학생들을 좀 더 자율적으로 풀어주셨습니다. 일기, 숙제 모두 자율적으로 맡기셨습니다. 물론 이렇게 이렇게 하라는 가이드는 주셨죠. 공부도 잘할 필요 없다면서도 소위 영재교육을 따로 받는 아이들에게 공부 쪽에서는 좀 더 대우하는 것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성적으로 학생들을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인성은 정말 중시하셨습니다. 물론 정말 비행 청소년 수준으로 인성이 나쁘지 않은 이상 어느 정도는 용인하시고 엄하게 대하시지는 않았지만, 인성이 좋고 착한 아이들에게는 정말 잘 대해주셨습니다. 당시 학교는 싫었지만, 인성과 선은 가정교육을 통해 잘 길러져 있었고, 당시 장애우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던 저를 선생님께서는 좋게 봐주시고 잘 대해주셨습니다. 이분 덕분에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강제로 시켰던 기존 선생님들과 달리 공부든 숙제든 대부분을 자율적으로 맡겼던 그 선생님과 지내며 전 지금의 ‘성실’한 아이가 되고, 성적도 많이 올랐습니다. 반에 중위권 정도였던 아이가 6학년에 전교 2등까지 찍어봤으니까요.(아쉽게도 그 선생님은 동생 졸업식 때를 마지막으로 그 뒤론 뵐 수 없었습니다. 당시 휴대폰도 없었지만, 동생 졸업 이후 선생님은 명예퇴직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전 학교에선 ‘모범생’으로 살았습니다. 선생님들 눈에 좋게 띄려고 진짜 말 그대로 ‘모범’적인 아이처럼 행동했습니다. 선생님 말도 잘 듣고 이상적인 학생처럼 행동했죠. 심지어 성적도 중학교 때는 교내 상위 3% 이내에 들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초기 사교육 차이로 중~중상위권이었지만, 점차 올라 상위권까지 올라갔습니다. 성적도 좋은데 빠르게 오르고, (선생님 기준) 잘 따르고 성실하고 착하기에 대부분 선생님께선 좋은 이미지로 바라보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매년 (솔직히 지금 보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지만) 모범 학생상을 받았고, 심지어 중학교 때 교내 장학재단에서 매년 학년당 2명씩 주는 장학 제도가 있었는데, 통상적으로 전교 1, 2등에게 수여되었지만, 한 번 제가 예외적으로 받은 적이 있습니다(물론 그때 당시 전교 3등이었기에 받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긴 합니다.).
하지만 저한텐 징크스가 하나 있습니다. 중요한 일, 특히 시험 때 마지막 결과가 그리 좋지 않은 편입니다. 학교 성적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마지막 기말고사, 중학교,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성적이 갑자기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이것이 입시까지 이어져서 중학교 때 과학고도 떨어지고 고등학교, 재수 때 수능 점수도 좋지 않아 원하는 대학도 가지 못했습니다. 주변에선 대학이 인생 결정하진 않는다고 하지만, 수능 끝난 이후 주변인들 눈치, 당시 담임선생님의 말과 시선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겠고, 나보다 훨씬 대충 공부, 활동, 수업과 자습 시간에 잠만 자던 애들보다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게 심지어 그런 애들이 같은 학교 안에서도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불합리하다 느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결국 내 잘못이라는 게 너무 괴로웠습니다. 결국 학교는 다니게 되었지만, 코로나가 더해지며 그마저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세상이 싫어지더군요. 그 상태에서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아지니 저를 돌아보는 시간도 그만큼 많아졌습니다. 그동안 삶을 되돌아보니 제게 남은 것이 없없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구 만드는 법, 친하게 지내는 법을 잊어버리고, 그 이후로 줄곧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에만 급급하여 친한 친구들 없이 학교 성적 올리기에만 급급했으니...
그렇다고 집에 와선 컴퓨터, 핸드폰 앞에만 있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나름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너는 뭘 했는데?’ 하면 말할 수 있는 게 없더군요.
진짜 허무하여 그동안 살아온 방식이 후회되었습니다. 스스로 미워 싫어지고, 자기혐오가 심해지니 세상 모든 게 싫고 무관심해지더군요. 근데 이걸 누군가에게 밝히고 싶지는 더더욱 않았습니다. 그냥 내가 저지른 일이니 저만 혼자 짊어지고 가려고 했고, 다른 사람에게는 최대한 티 안 내려고 했습니다.
2020~2022년까지, 정확히는 2023년 초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사람인지라 어느 정도 비정상적인 모습이 보였나 봅니다. 군대에 들어가고 입영 첫 주차, 자대 배치를 받은 후 두 번, 저보고 정신적 위험군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군 내 심리치료 받기를 권유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몇 번 받긴 했으나 솔직히 뭐가 나아졌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사실 치료사님께서는 몇 번 더 만나보자고 했었지만, 군 보직 특성상 계속 당직을 서야 했기에 실질적으로 계속 진행하기 어려워 몇 번만 하고는 중단했습니다.
마지막 당직 끝나기 2달 전 같이 당직을 서던 후임이 이야기 도중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수병님은 자기에 대한 기준이 높은 것 같습니다. 좀 낮춰 보는 게 어떻습니까?”
당시에는 그냥 흘렸습니다. 제가 저에 대해서 빡빡한 잣대를 댄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낮춰야 할 이유를 몰랐습니다. 전역을 하고 다시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그 후임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눈 좀 낮추고 다 내려 놓아볼까? 과거의 일을 다 놓아줄까를 고민하다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진짜 눈앞에 주어진 일에만 신경 써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전보다 마음은 편해졌지만, 금방 된 것은 아니고 몇 개월 걸렸습니다.
방학 때 일본에 갔다 오고 맘껏 2달간 하고 싶은 것만 하다 보니 꽤 많이 안정을 찾고 진전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놓아버린 것보다는 체념한 것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만, 2020~2022년 때의 심리적 상태보다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1학기 동안, 즉 2학년 끝날 때까지는 스펙을 쌓기 위한 것보다는 어렸을 때 제가 하지 못했던 것들에 관심을 두면서 공부 외 취미를 병행하며 지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3학년이 끝나가고 자기소개서 및 대학원 준비를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더 많이 들게 되어 이런 기회를 통해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려고 애쓰시는 교우들에게 나를 보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학원에 가고 싶지만, 역시 학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고, 그걸 커버해낼 무언가가 제게 있는 것도 아니니, 아직 완전히 나를 내려놓거나 눈높이가 낮아지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지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뿐임을 알기에 당분간 은 지금처럼 일상의 문제와 씨름하며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학교 일과 연구실 일, 곧 있을 시험 준비까지 겹쳐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적은 거라 두서없이 주제가 왔다 갔다 하고 글도 생각보다 길어져서 이 글이 주보와 어울릴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의 마음을 담은 것이니 나름 시원섭섭합니다.
아무쪼록 들꽃 식구들 모두 행복하고 좋은 나날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모두 저보다는 훨씬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기를 기원하며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