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금고를 찾았다. 예적금 만기가 되어서다. 돈을 빌리려고 기웃거린게 아닌, 예금 고객인게 얼마나 다행인가. 소액 대출에도 줄을 서고 목을 빼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거기에 비하면 누구 덕분이던간에 감사가 아닐수없다. 지난여름 금고가 위태롭다는 얘기에 많은 사람들이 돈을 인출했고, 나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그때 인출한 돈은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아들이나 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까. 딸은 히히거리며 잘 보관해두겠다고 했고, 아들은 손주들 몫까지 대출금을 줄이는데 썼다고 했지만, 썩 반기는 표정도, 감사해하는 표정도 없었다. 어차피 지들이 준 돈을 모아둔거니까 생색낼 거리도 안되지만 왠지 나만 손해를 봤다는 생각이 슬금거린다. 그때,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않았다는 핑개로, 아니면 다 털기에는 아까운 생각에서 남겨두었던게 만기가 된것이다. 액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자 몇푼을 받는다는게 흐뭇하다. 그런데, 기쁘게 소비한다는 생각보다는 꼭 움켜쥐게 된다. 나에게 돈은 그냥 숫자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냥 확좀 쓸수는 없는 것일까. 사고싶은게 있으면 사기도하고, 먹고싶은게 있으면 거하게 먹기도 하고, 왜 나는 그걸 못할까. 이미 끝자락에 와 있다며 살아있는 동안에 최후의 만용이라도 부려봄이 어떨까 싶은데, 나는 그것도 못한다. 돈도 써본사람이 쓴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돈 쓸줄도 모르고 놀줄도 모른다. 내가 할줄아는 것은 아끼는 것과 빈둥대는 정돈가 보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조금 감사가 조금씩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은근 갖은게 많다는 것도 보인다. 그동안 나는 '내가' '내가' '내가'만 반복했다.내가 가장 불행하고, 내가 가장 힘들고, 내가 가장 가난하고, 내가 가장 비겁하고, 내가 가장 무능하다는,,, 기타등등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 불평하고, 불만으로 가득하고, 끝없이 징징거리고,,,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를 참아주셨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하신다. 너 있는곳에 나 있고, 나 있는곳에 너 있다고 말씀하신다. 뭐가 더 필요한가. 더 필요한게 있는 것일까. 그만 움킨손을 펴도 되지않을까. 더는 외로워서 웅크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분은 전능하시고 무한 넓은 품을 갖고 계신다. 안다. 그정도는 알고있다. 그분이 어떤분이신지도 알고있다. 그럼에도 온전히 믿지 않음은 불신이 아니라 바로 알지못해선가. 안개가 낀날이다. 영상의 날씨다. 이만하면 충분히 견딜만하다. 그래, 오늘 하루도 파이팅 하자! 내게 있는것, 내가 할수있는것으로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