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이 시조집은
한밤의 도가니에 부린
내 의식의 침전물이다
봄밤의 연금술은
상실의 기록이자
사랑을 증류하는 의식이다
이 시들이
슬픔을 정제한 언어의 결정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그럼
내내
어여쁘시기를
2025년 가을
정진희
봄밤의 연금술
늙은 새의 부리와 어부의 신발 한 짝
죽기로 작정한 어린 어미 어금니를
암매미 날개와 함께 도가니에 끓이는 밤
기울어진 마당으로 흘러내린 그늘과
댓돌에 걸터앉은 슬픔이 가증스러울 때
풍랑에 물 위를 걸은 그가 카시오페아를 건너왔다
산산이 조각난 나비의 잔상 깊이
벚꽃 잎 살점을 몇 개 더 짚어넣자
물처럼 녹아드는 애간장 봄은 더 서러워졌다
다듬잇돌
저무는 쪽빛을 보듬고 산 적 있다
가슴 안의 솔기를 두들겨 앉힌 그 죄
자궁 속 거푸집 자리에 마름하던 나이 즈음
고생대 골짜기를 우렁우렁 홀치다
몇 십 년 간직해온 뒤꿈치를 바친 여자
주름진 기억의 강에 노둣돌이 되려는가
두들겨야 살아나는 매조키즘 배꼽 아래
삼베 한 필 다 건너도 닿지 않는 살 소리여
창백한 처용의 댓돌 위 가로누운 신발 한 짝
꽃뱀 문장
몇 벌의 여자를 껴입어도 추웠어.
목덜미 들어서면 겹겹이 잠긴 문이
꽃들의 경첩을 뜯고
비늘을 드러냈어
껍질 속 붉은 것을 신음으로 틀어막고
늪처럼 몸이 울었어, 깊이깊이 짓물렀어
울음을 베어낸 자리
배꼽이 떠다녔어
설익은 눈 속을 사다리로 내려갔어.
손톱을 물어뜯는 똬리 튼 내 길이
물 푸른 무늬를 찍었어
유혈목이 화인이었어
모란
내 오랜 울음 깊이 내시경을 밀어 넣자
한 널벅지 자리 잡은 꽃 자줏빛 굳은살
사느라 밀쳐두었던 그 사람도 있었네
바늘 같은 시선들이 온몸을 헤집을 때
구멍 난 내 귀 자꾸 쇳물처럼 울어대고
그런 날 손톱을 세워 절벽을 뜯어냈던가
살이라 부르지 않고 몸이라 부르는
낭떠러지 중간쯤 아슬아슬 걸린 그 집
한 새이 통째로 붉어 잠 하나 이룰 수 없네
억새ㆍ1
희끗한 마음 하나둘
네게 가 닿는 저녁
바람의 등뼈를
붙들고 일어서는
다 저문 사랑 하나가
귀 바짝 세우는 중
고도리 석불입상
결정 장애 탓일 거야
루비콘강을 두고
건너가지 못하는 건 날이 좋지 않아서야
어젯밤 내 귀에 꽂은 달콤한 거짓말
올 거야 말 거야
돌바람이 채근 대다
목 짧은 남자의 갓 위로 올라설 때
내 안을 꿰뚫는 떨림에 닿았어, 분명했어
가까이 오지 마
다시는 사랑하지 마
돌옷이 찢겼을까 젖어있는 손톱자국
창백한 조선낫 하나 그 여자의 눈썹 같은
정진희 선생님!
봄밤의 연금술 출간을
축하, 또 축하합니다
카페 게시글
회원신간
정진희 시조집《봄밤의 연금술》2025.10.25.목언예원
김계정
추천 0
조회 83
25.11.05 15:2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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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계정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실수가 많아 죄송스럽습니다.
많은 사람이 읽는 시집이길 소망합니다.
@김계정 아닙니다^^
봉사와 배려로 함께해주셔서 저희에게 큰힘이 되어주시는 김계정선생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