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1/246일차> 2012년 6월 13일(수) 코파카바나-->푸노-->쿠스코, 볼리비아에서 페루로
볼볼리비아 코파카바나(국경은 Kasani)에서 페루 푸노(국경은 Yunguyo)로 넘어가는 국경.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서 넘어가면서 각각 출국 및 입국도장을 받습니다.
경비도 허술하고, 마치 이웃 마을 같은 정감이 넘치는 국경이죠.
새벽에 한참 잠에 빠져 있는데, 아이폰으로 아내 메시지가 도착했다. 가족들의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지구 반대편 한국은 오후일 것이다. 입대한 큰 아들 창희의 면회를 가면서 가족들이 해외에서 떠돌고 있는 나에게 ‘탱고(Tango)’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영상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잠결에 문자 메시지만 확인하고, 영상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다시 눈을 감고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이불을 완전히 뒤집어쓰고 있는데도 고원의 밤은 엄청 춥다. 벌벌 떨면서 이불 속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잠을 자야 했다.
7시10분 일어나 바로 가족들의 영상 메시지를 확인했다. 창희 면회에 간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소식을 전하고, 여행 잘 마치고 돌아오라는 메시지였다. 영상으로 보니 부모님도 건강하시고, 아내나 창희도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영상이나마 가족들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그리움이 몰려온다. 너무 보고 싶다. 함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에서 영상 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면서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코파카바나의 SONIA 호스텔.
가족이 경영하는 호스텔로, 깔끔하고, 친절하고, 가격도 저렴한 곳이죠.
아이폰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아래층으로 내려와 식사를 한 다음, 8시 체크아웃을 했다. 오늘은 코파카바나를 떠나 페루로 넘어가는 날이다. 이제 볼리비아는 안녕이다. 쿠스코 행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왔다. 터미널이랄 것은 없고, 그저 시내 중심거리일 뿐이다. 칠레의 아타까마에서 고원 황무지를 넘어 우유니 소금사막~포토시~라파스를 거쳐 코파카바나~티티카카 호수까지 볼리비아를 횡단했다.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지만,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순수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 식민지 약탈 이후 정체성과 새로운 발전을 위해 처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곳이었다. 볼리비아를 떠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가격이 너무 저렴하다. ‘내가 이들과 ‘공정거래’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혹시 내가 가난한 볼리비아 사람들을 약탈하는 것은 아닐까. 코파카바나의 하루 숙박비가 50볼리비아노(약 8500원)다. 싱글룸 객실료가 40볼이며 와이파이 사용료가 10볼이다. 아침에 코파카바나 터미널 앞에서 커피와 빵을 하나 먹었는데, 2.5볼(약 425원)이었다. 그들이 들인 정성과 노동력의 대가로는 너무 싸다. 그렇다고 내가 더 많이 지급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거래인가? 한국의 가격에 맞추어, 동정심(?)을 갖고 지불하는 게 맞는 일인가?
둘째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아주 인상적이다. 우유니에서 포토시~라파스로 오는 길에선 황량한 고원과 척박한 환경 속에 보석과 같이 박혀 있는 아름다운 오아시스들이 인상적이었고, 특히 라파스에서 코파카바나~티티카카로 이어지는 행로는 청정한 자연의 원형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파란 하늘,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하얀 구름, 그 위에 무참하게 쏟아지는 햇살, 쪽빛 호수, 모두 투명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태초의 색깔을 간직하고 있었다. 공해도 없고, 수증기나 먼지가 거의 없어 투명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한국에서 보았던 것은 진짜 색깔이 아니었다고 할 정도로 눈이 확 뜨이는 느낌이었다. 안데스 고원에서 본 것이 진짜 색깔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데스 사람들이 원색의 옷과 망토를 걸치는 것도 진짜 색깔을 아는 사람들만이 생각하고 사용할 수 있는 색깔이 아닐까 싶었다. 진짜 색깔은 안데스에 있었다.
세째는 대도시 라파스나 포토시에서는 절망적이고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많이 보았지만, 시골로 오니 사람들이 아주 순박했다. 고원에 내리쬐는 강한 햇살로 얼굴은 검게 그을렸지만, 마음은 순백색이었다. 코파카바나를 떠나기 전에 터미널 앞에서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막 등교하는 아이들의 얼굴도 해맑기 그지없었다. 내가 ‘하이~’ 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니 까르르 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금세 얼굴을 붉힌다. 태양의 섬에서 만난 주민들도 그저 순박한 오지의 사람들이다. 세파에 시달리면서 닳아빠진 도시인들과 달랐다.
볼리비아 코파카바나의 국제(?) 버스 터미널.
타운의 중앙에 버스들이 정차해 손님들을 태우고 떠나는 곳입니다.
여기서 페루로 넘어 가는 버스를 탑니다.
이른 아침이라 등교하는 학생들도 보입니다.
넷째는, 역사에 대한 이들의 인식이 인상적이었다. 스페인의 점령 이후 유럽으로부터 이식돼온 문화를 자기 정체성의 뿌리로 생각하는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와는 확실히 다르다. 칠레는 그 중간 쯤 되는 것 같다. 볼리비아는 잉카를 비롯한 원주민 문화를 자신의 뿌리로 여기고, 유럽에서 이식돼온 문화와 결합해 독특한 문화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볼리비아를 여행하면서, 세련되지는 않지만, 진정한 남미를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티카카 호수 주변의 농촌 마을.
고원에 내리쬐는 햇볕이 모든 사물을 투명하게 빛나게 합니다.
코파카바나를 떠나 15분만인 9시30분 볼리비아~페루 국경에 도착했다. 20여분만에 출국과 입국 수속을 마치고 국경을 넘었다. 걸어서 페루 쪽 국경마을인 융구요(Yunguyo)로 넘어왔다. 국경을 넘으니 바로 환전소가 눈에 띄어 들어갔다. 다른 외국 여행자들도 들어왔다. 라파스에서 현금을 너무 많이 찾아 500볼이 남아 있었다. 내 계산으로는 1볼=0.42누에보솔(Nuevo Sol)인데, 환전소에선 1볼=0.36누에보솔을 적용했다. 내가 환율이 좋지 않다고 얘기하니, 중년의 환전소 사장은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마라”는 식의 배짱을 부렸다. 어쩔 수 없이 환전을 했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환율 고민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고, 손실도 불가피하다.
볼리비아 쪽 출입국 심사소에서 도장을 받은 여행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볼리비아에서 걸어서 국경을 넘어 페루로 넘어왔습니다.
페루는 볼리비아에 비해 시간이 1시간 느리다. 시계를 1시간 뒤로 돌려야 했다. 오늘은 다시 1시간을 더 사는 셈이다. 버스는 융구요에서 페루 시간으로 8시50분, 볼리비아 시간으로 9시50분 푸노(Puno)를 향해 출발했다. 경치가 너무 선명하다. 어쩌면 산야의 색깔이 이토록 선명할 수 있을까. 놀라움 그 자체다. 우리가 한국에서 본 색깔은 원래 색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또 든다. 원래의 색깔을 보이는 풍경 속을 2시간 동안 달렸다. 티티카카 호수의 페루 쪽 풍경도 볼리비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1970년대 농촌과 아주 유사하다.
이곳이 페루 출입국 심사소입니다. 여기서 출입국 도장을 받습니다.
페루 쪽에서 본 볼리비아와의 국경입니다.
앞쪽에 보이는 언덕의 게이트를 지나면 볼리비아입니다.
페루 푸노로 향하는 도로변의 마을 모습.
한국의 옛날 농촌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들판 건너에 티티카카 호수가 있어 마치 넓은 평원처럼 보입니다.
페루 시간으로 11시에 푸노에 도착했다. 건물들이 이곳저곳에서 한창 지어지고 있는 것을 보니 푸노가 개발 바람을 맞고 있는 듯하다. 푸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갈대로 만들어진 환상적인 섬인 ‘우로스(Uros)’ 섬을 여행할 수 있는 곳으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나도 이곳을 여행할까 생각하다가 이곳 대신 볼리비아 코파카바나의 ‘태양의 섬’을 여행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냥 스쳐지나가는 곳이 됐다. 푸노의 모습은 볼리비아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버스 터미널은 아주 잘 정비돼 있다. 페루가 볼리비아보다 한 수 위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여성이 차에서 얼마나 시끄럽게 떠들어대던지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푸노 버스터미널. 현대적으로 새롭게 단장돼 있습니다.
버스가 푸노에 도착하자 쿠스코까지 가는 승객들에게 버스 티켓을 나누어 주었다. 말하자면 코파카바나에서 쿠스코까지 가는 버스표를 구입했지만, 내가 타고 온 버스는 푸노까지만 운행하고, 푸노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 것이다. 그 환승을 버스회사에서 처리해 주는 방식이었다. 약간 시간이 남아 샌드위치와 빵, 비스켓 등 간식꺼리를 8.5솔(약 4250원)을 주고 샀다. 1솔의 세금도 내야했다. 다른 외국 여행자들도 당연히 내야 한다면서 1솔을 내 나도 지불했다. 11시30분 예정대로 푸노를 출발해 쿠스코로 향했다. 그런데 푸노에서 함께 탑승한 페루인 차장이 쿠스코까지는 8시간이 걸려 오후 7시30분~8시 사이에 도착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생각보다 늦게 도착하는 셈으로, 저녁때가 다 돼서야 도착할 듯하다.
페루 쪽으로 넘어오자 티티카카 호수 주변으로 비교적 넓은 논과 밭이 펼쳐져 있고, 한창 밀을 수확하는 모습이 보였다. 농민들이 밀을 수확해 탈곡하고 있었다. 딱 6개월 전 네팔을 여행할 때엔 벼를 수확해 말과 소가 이를 밟도록 하는 방식으로 탈곡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도 똑같은 방식의 수확이 진행되고 있었다. 네팔도 고도가 높은 지역이었는데, 여기도 고도가 3000~4000m의 고원이다. 그 사이에 나는 지구를 반 바퀴 돌았다. 풍경은 비슷하다.
푸노 전경 너머로 티티카카 호수가 보입니다.
가을걷이가 거의 끝난 페루 농촌 모습.
버스는 들판을 한없이 달리고 또 달려 저녁 해가 떨어지고 난 후 8시 가까이 돼서야 쿠스코에 도착했다. 쿠스코에 도착해서는 방위도 잘 모르겠고, 버스노선도 깜깜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인 서던 컴포트(Southern Comfort) 호스텔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한 다음 할 일이 많았다. 쿠스코는 과거 잉카제국의 수도였다. 이 지역에는 돌아볼 곳도 많고, 특히 인류 역사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마추픽추(Machu Picchu)가 있는 곳이다. 대략적으로 어느 곳을 여행할지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코스를 잡아 여행을 할 것인지는 계획이 없었다. 이런 나에게 호스텔은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호스텔에선 여러 가지 투어를 제안했다. 호스텔 직원과 거의 밤 12시 가까이 되도록 이야기를 하고, 회선 상태가 좋지 않은 인터넷을 통해 예약을 마쳤다. 일단 내일 쿠스코 일대의 중요한 유적인 신성한 계곡(Sacred Valley)과 피삭(Pisac), 우르밤바(Urbamba), 올랸타이탐보(Ollantaytambo)를 거쳐 친체로(Chincero)를 돌아보기로 했다. 하루 종일 걸리는 투어로 가격은 25솔이다. 1달러가 2.5솔이 되므로 1솔은 450~500원 정도 되는 것이다. 대략 1솔=500원으로 치면 하루 종일 투어 비용이 1만2500원으로 아주 저렴하다.
그러나 마추픽추는 버스와 페루 레일을 타고 돌아보는 하루짜리 여행 코스가 180달러로 거의 20만원이 됐다. 물론 마추픽추를 잉카 트레일로 걸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4일이 걸리는 데다 최소한 사흘 전에는 예약을 하고 가이드와 함께 트레킹을 해야 하는 등 복잡했다. 180달러짜리 하루 코스로 예약을 했다. 페루 레일은 인터넷으로 예약을 한 후 시내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여권을 보여주고 티켓을 받아야 하는 등 매우 복잡했다. 인터넷으로 기차 예약을 하는데 자꾸 티켓이 매진된 것으로 나타나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예약을 마칠 수 있었다.
호스텔 직원은 이러한 복잡한 일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깨끗하게 처리해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호스텔을 예약하면서 그 호스텔의 여행 후기에 직원의 꼼꼼한 안내가 감동적이었다고 누군가 적어 놓았는데, 정말이었다. 파트리시아(Patricia)라는 아주 작은 체구의 메스티조였던 그 여성 직원은 감동적이었다. 서던 컴포트 호스텔에서는 화장실이 붙은 4인 믹스트 도미토리에서 묵었는데, 1박에 8달러로 1만원이 채 안됐지만 서비스는 만점이었다. 볼리비아 코파카바나에서 페루 쿠스코로 넘어와 잉카유적 순례일정을 확정한 뜻깊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