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어쩌면 좋아.
이윤재
돌아가신 내 할머니는 참 정갈하신 분이셨다. 백세를 채우시지는 못하셨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오래도록 건강하게 해로하시다가 하늘나라에 가셨다. 생전에 할머니는 손자.손녀들이 많으셨지만 그 중에서 유난히 나를 챙기시고 귀여워해주셨다. 내 기억속의 할머니는 언제나 일찍 일어나셔서 방 정리를 하신 후 더울 때나 추울 때나 찬 물로 깨끗하게 세수를 하셨다.
생전에 아끼시던 경대를 벽에 세우시고 가지런하게 머리를 풀어 빗으시다가 반듯하게 가르마를 타신 후 쪽을 쪄 비녀를 꽂으셨다. 참으로 그 자태가 얼마나 고우셨던지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처럼 고운 할머니는 세상에 없으려니 생각하였다.
그런 할머니에게도 흉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때때로 이유 없이 머리를 양편 좌우로 흔드시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또 무슨 생각이나 일을 골똘이 하시는 중에 갑자기 머리를 흔드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할머니 “왜 그러세요? 머리가 아프신 거예요?” 놀라고 걱정이 되어 물어보고는 하였다. 그런데 다행히 큰 병은 아니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였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한 분 고모님이 또 머리를 흔드셨다. 우리는 그런 고모님을 보면서 이제는 깔깔거리고 웃기도하며 때로는 흉내도 내면서 재미있어했다. 이제 고모님도 하늘나라에 가신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 날 우리 아이들과 남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하는 말 “당신 왜 머리를 흔들어? 엄마 왜 그래 머리 아픈 거야?” 나는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전에 내가 할머니께와 고모님께 질문했던 말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그 뒤로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았다. 이제 우리 식구들은 대화중에 머리를 흔드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웃고 재미있어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작 당사자인 나는 내가 머리를 흔들고 있던지.,.머리를 흔들었던지..,전혀 감지가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언제 머리를 흔들었다고 그래?”괜스레 화를 내기도 하고 그런 내 반응에 스스로 민망스러운 적도 있다. 아아! 유전이구나! 내 몸속에 흐르는 피가 고모와 할머니의 피를 그대로 이어받았구나. 궁금증에 사촌여형제들에게 물어보니 아무도 그런 일이 없다며 오히려 나를 놀린다. 참 어이가 없다. 오래도록 할머니를 모시고 함께 지낸 유일한 손녀인 나만이 할머니의 유전인자를 고스라니 물려받은 것이다. 다행히 식구들 외에는 아직 아무에게도 지적받지 않은 것을 보면 그리 심한 증세는 아닌 듯하지만.(행여 보시더라도 모른 척 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나 어쩌면 좋아!
내 주치의(?) 선생님인 진 장로님이 조심스럽게 내 표정을 살피면서 이야기 해 준다. “운동 좀 열심히 하셔야겠어요. LDL(우리 몸속에서 나쁜 영향을 끼치는 콜레스테롤)의 수치가 정상의 세 배가 넘네요. HDL(우리 몸속에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콜레스테롤)은 상대적으로 너무 적어요.”
그 날 이후 월명 산 오르기를 계속 했다. 사건이 있었던 그날은 텔레비전에서 박 태환 선수의 수영 세계선수권대회 예심을 이탈리아 로마로부터 생중계하고 있었다. 기대하던 200M 예심에서 탈락하여 아쉬웠는데 400M 예심까지도 탈락하고 말았다. 월명 산에 올라가서 답답한 마음을 풀려고 창밖을 보니 어느 사이 어둑해져있다. “고지혈증은 위험합니다. 조심하셔야겠어요.” 걱정스럽게 바라보면서 주의를 주던 진 장로님의 이야기가 귓전을 맴돈다.
그래. 집 주변 초등학교 운동장 몇 바퀴 돌아보자. 솔직히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벌떡 일어나 운동화 끈을 조여 맨다. 그 순간 외출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별(요크셔테리어종류의 강아지)과 눈이 마주친다. “같이 가자. 별아.” 운동장을 두어 바퀴 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뒤를 열심히 쫓아 달리던 별이 보이지 않는다. 날이 어둑해지자 무서웠던지, 본능적으로 집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양이 희끄무레 보인다. 아직 운동량을 채우기에는 몇 바퀴 더 돌아야 될 듯싶은데.
나는 녀석을 불끈 들어 팔에 안고 뛸 요량으로 한 두 걸음 크게 내어디뎠을까? 그 순간, 아뿔싸! 운동장 한 편에 쳐 놓은 축구 그물망에 발이 걸려 앞쪽으로 고꾸라지고 만 것이다.
운동장에는 나처럼 트랙을 돌면서 뛰는 몇몇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는 몇 사람도 있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팔목과 무릎이 아프기도 하여서 벌떡 일어나서 옷에 묻은 모래를 털다가 그 순간 축 늘어진 채 운동장 바닥에 팽개쳐져 있는 별이를 발견했다. 이미 눈동자는 고정된 채 혓바닥을 축 빼어 물고 있으니 어찌 황당하고 놀랍지 않겠는가? 내가 앞으로 넘어지는 순간 품안에 안겨있던 녀석의 목 줄기를 팔꿈치로 눌러버린 것이다. 이 일을 어쩐다?. 가축병원으로 데려가기에는 시간이 이미 지난 것 같고, 나는 정신없이 녀석의 머리를 뒤흔들어보고. 가슴을 힘 있게 꾹꾹 눌러도 보고 애절하게 “별아 정신 차려라. 숨 좀 쉬어봐” 소리소리 질러보았지만 오히려 몸의 힘이 더 빠지는 듯 머리를 축 늘어뜨린다.
그 순간 복지학과 수업 중에 배웠던 인공호흡법이 생각났다. 사람과 강아지 차이일 뿐이지 뭐 다를 게 있겠나. 나는 강아지 얼굴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앙다문 이빨을 억지로 벌인 후에 강아지 입에 내입을 대고 깊이 숨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숨을 몰아쉬고 또 몰아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 희한한 구경거리를 놓칠 리가 없는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예요?” 귓전으로 듣는 둥 마는 둥 또 숨을 불어넣기를 꽤 오랜 시간이 (이건 내 생각이다) 지났다.
그 때다. 녀석의 축 늘어진 몸이 약간 부르르 떠는 듯하면서, 숨을 쉬려는지 빼어 물었던 혀가 제 자리를 찾고, 어두운 중에도 눈동자가 약간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강아지가 살아난 것이다. 인공호흡법을 배워놓은 것이 이렇게 훌륭하게 사용하게 될 줄이야! 야호! 아직도 정상은 아닌 듯 가만히 땅에 내려놓으니 그냥 픽하고 옆으로 쓰러져버린다. 어서 가축병원으로 데려가야 될 듯싶다. 숨이 턱에 닿을 만큼 뛰어 들어와 단골 가축병원으로 전화하니 벌써 퇴근해버렸다. 하긴 시간이 몇 시인가. 이곳저곳으로 전화하다가 한 군데 수의사선생님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괜찮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물을 먹여보고 난 후에 기다려 보라고 하신다. 아직도 내 품에서 약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강아지를 바라본다. 살아있는 생명체인 강아지로부터 전해오는 따뜻하고 뭉클한 감촉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이다. 힘이 하나도 없이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는 동그란 눈을 보자 심장 한 켠이 아릿하게 저려온다.
만약에 그대로 죽었다면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죄책감과 미안함에 고통 받았을 것 인가? 생각 할수록 너무나 다행스럽고 감격스러운 일이다. 생명은 참 소중하고 소중한 것이다. 강아지가 예전과 다름없이 건강하게 지낸 며칠 후에야 나는 이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했다. “어! 강아지와 그렇게도 진한 뽀뽀를?” 그 때의 절박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이 야속했지만...
사실인 즉. 나 강아지와 그렇고 그런 사이야. 그러니, 나 어쩌면 좋아.!
주일이다. 또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기도 하다. 때때로 공동식사도 하지만 요즈음처럼 바쁜 농사철에는 모든 교인들이 각자의 집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우리 부부도 굶을 수는 없는 일. 주일 점심은 가볍게 라면을 끓여먹는 것으로 해결 한다. 오늘도 냄비에 물을 부어 가스레인지위에 올려놓는다. 물이 끓는다. 딱 두 개 남아있는 라면의 봉지를 뜯어 막 냄비에 넣는 순간. 왠 일인가? 가스불이 꺼졌다. 다시 켜 봐도 켜지지 않는다. 가스통에 가스가 떨어진 것이다. 사택 바로 옆집에 사시는 윤 집사님은 오전 예배 후에 아들 내외랑 시내에 나가셨고. 한 권사네도. 김 집사네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남편 생일날이지 않은가?. 굶을 수는 없는 일. 체면이고 뭐고 없다. 뜨거운 냄비를 행주로 감싸들고 사택에서 약간 떨어진 조 집사님 댁으로 냅다 뛰었다.
라면아 기다려라. 불어터지지만 말아라. 오늘은 내 사랑하는 남편의 생일이지 않는가! 거창하게 한상 차려 대접하진 못하더라도 계란 두어 개 풀어 넣어 맛있게 끓여진 라면을 후후 불어가며 기분 좋게 먹으려 했는데.
마음이 급하다. 골목을 돌아 조 집사님 댁 대문이다. 항상 열려있는 대문이 오늘 따라 닫혀있다. 한 손으로 대문을 밀려고 냄비로부터 손을 떼는 순간 ,.. 앗! 뜨거라! 행주를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냄비는 대문 바로 앞에서 ‘땡그르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떼굴떼굴 구르고, 이미 불어터진 라면은 가닥가닥 여기저기로 흩어져 떨어지고, 놀란 내 소리와, 냄비소리에 집사님 내외가 뛰쳐나오고. 에이구! 이게 무슨 창피스러운 일인고! .. 남편 생일날, 우리는 점심을 먹지 않았다. 아니, 못 먹었다.
덜렁거리는 나, 어쩌면 좋아!
추석 전, 40여일을 미국에서 지냈다. 도저히 갈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 모두들 이해해주시고 도와주셔서 딸아이가 살고 있는 미국 뉴욕에서 지내다 올 수 있었다. 명절인 추석도 앞에 있고, 교회도 너무 오래 비워서 우리 내외는 집에 돌아와야만 되었다. 하필 귀국하는 날이 정확히 9월 말이었다. 인천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군산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조금 지났다. 가방도 채 풀지 못하고 앞집에서 우편물을 찾자마자, 공과금 고지서와 통장을 들고 은행으로 뛰었다. 그런데 현금인출기에 통장을 넣으니 도로 나와 버린다. 아뿔사. 카드로만 현금을 인출했다는 것을 깜박 잊은 것이다. 다시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 했는데, 이번에는 카드를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 출국하면서 물건들을 잘 보관하려고 지갑까지 함께 깊숙이 숨겨놓은 모양이다.
이 일을 어쩐다? 그 순간, 도장만 있으면, 통장으로도 현금을 찾을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 통장과 도장을 들고 다시 은행으로 향했다. 이미 시간은 4시 가까이 되었다.숨이 턱에 닿아 도착한 나는 창구의 여직원에게 통장을 내어밀었다..“비밀번호 눌러주세요.” 그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통장 비밀번호가 몇 번이더라’? 생각나는 대로 눌렀더니 “아닌 데요. 다시 한 번 눌러주세요.” ‘이번만은 맞겠지. 아무렴 내가 기억상실증은 아닌데’.
또 다시 창구의 여직원의 말소리 “아니에요..이번에도 틀리면 안 되는데.”
9월 말일에 나는 통장과 고지서를 가져갔던 그대로 다시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택시비로 만 이천 원을 써버렸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풀려고, 열쇠를 돌리는 데 순간 생각이 떠올랐다. '맞아. 그 번호잖아...우리 딸아이 그날그날', 그런데 카드가 든 지갑은 어느 곳에 숨겨 두었을까?
이즈음, 내 살아가는 모양이 이렇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건 흰 머리, 그리고 건망증.
나 어쩌면 좋아!
원고를 달랜다. 사실은 미국에 가기 전에 제출해 달라고 했던가? 내 오랜 친구이며, 청사초롱 회장님이신 경아가 이제는, 거의 협박조다. “인쇄소에 원고 넘기러 가는 길이니 알아서 해.” 그런데 나는 계속 무엇을 써야 되나? 생각만 한다. 오래전 쓰다가 남겨 둔 원고지를 찾아서 서재 책상위에 가져다 놓은 지 몇 달 째인가?
이제는 친구의 전화목소리가 두렵다(?). 그런데 “인쇄소에 가는 길이야” 이 한마디에는 꼼짝할 수가 없다. “나 쓸게. 우선인쇄소에 원고 가져다줘. 바로 써 볼게. 이번 주 안으로.” 오늘은 그렇게 대답하고 난 후 5일째이다.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거의 십 수 년 만에 처음으로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올려질 글을 쓴다.
새롭다. 그 동안 월간지에서, 또는 일간지나 동인지에서 몇 차례 청탁을 받았지만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무슨 새삼스러운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처음 문단 활동을 접은 후에는 일상이 너무 바쁘고 힘이 들었고....그 후에는, ‘내가 잘 쓸 수 있을 까?’ 괜히 까마득해지는 기분 때문이었다.
그런데 참 새롭다. 기분도 묘하다. 친구 경아는 “넌 우리 군산여류 문인들 중에서 맨 처음으로 문단에 등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돼. 책임감을 가져”. 라고 나를 부추긴다. 아마 친구의 말에도 자극을 받은 듯하다. 군산의 여인네들이 처음으로 뭉쳐서 문학동인회를 만들고, 뜨거운 열정을 품고, 서로 다독이며 열심히 글을 써서 책을 만들고, 발표회를 가지고....
그 일이 벌써 이십 년 전이라니 참 세월이 빠르다. 즐겁고 기뻤던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런데 생각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마음속으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 데 막상 원고지에 옮기려하니 어렵다. 그러나 이번에는 꼭 써야 된다고 으름장을 놓는 친구의 얼굴을 떠 올리면서 쫓기듯이 이 글을 쓴다. 한 편으로는 “이렇게 써서 책에 실어도 괜찮은 거야?” 두렵기도 하다.
친구,! 괜찮은 거지? 나 어쩌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