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익살'을 삶의 방식으로 선택했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오면서 어찌 상처하나 없겠냐만은
나는 더럽게도 상처가 많은 (평범하지 못한)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보냈다.
익명으로 올린다면 구구절절 내 불우했던 가정사를 요조처럼 나열하고 한탄하고 싶지만
아직 한번 더 얼굴을 봐야하니 꾹 참는다.
나를 불쌍하게 보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시선이 싫어서 나는 늘 익살꾼 연기를 했다.
하다못해 동네 아줌마 할머니들 한테도 가서
밝고 명랑한 명랑소녀인 척,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st 컨셉으로
일부러 다가가서 크게 인사하고 말도 걸고 그랬다.(가끔 오백원씩 천원씩 주는게 좋아서기도 했다)
불쌍한 애 보다는 차라리 속 없는 애, 생각없는 애로 보이는게 편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방학식하는 날마다
집안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에게'서울 멸균 우유 24팩'을 2박스씩을 줬는데
그 망할 멸균우유 24팩 두박스를 키 120도 안되는 초등학교 1학년 짜리 쪼꼬만 여자애 보고 어떻게가져가라고 하는지
그때 처음으로 고학년 언니 오빠들이 하면 보면서 쫌 멋있다고 느꼈던 '시발'이라는 말을 처음 속으로 생각해봤다.
'시발... 저는 이 우유를 들어주고 학교까지 마중나와줄 사람이 없다고요..'
우리 집은 학교에서도 50분이나 버스를 타고 가야했고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는데
버스정류장까지는 어떻게 이고 지고 끌고 갔는데 정류장서 만난 친구들이
"방학 잘보내!"가 아니라 "왜 너는 학교에서 우유받어?" 라고 인사하는게 너무 싫었다.
진짜 와락 울음이 터질것 같았는데 그때도 나는 웃으면서
"집에 돈 없으면 주나봐 부럽지? 맨날 맨날 제티 타먹을거다~~"하고 익살을 부렸다.
그리고 그날 버스에서 내려서 집에 걸어가는 길에 동네 폐가에 숨어서 우유 한박스를 다 발로 터트렸다.
시발 시발 하면서. 6년동안 그랬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는 아직도 학교에서 우유 1박스만 준 줄 안다.
그렇게 8살 부터 익살이 몸에 밴 그 쪼꼬만 초딩은
28살이 된 지금도 그렇게 사람 좋은척 허허 실실 나는 상처 없는 척 밝은 사람인 척 살고 있다.
(근데 28년을 그렇게 살다보니 진짜 약간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은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요조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좋은 학교도 갔지만
내면의 상처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그로인해 늘 불안정해했고,
결국 평생 타인을 의식하면서 익살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았다.
어쩔수 없었던 거다. 그렇게라도 해야 살 수 있었던 거다.
요조는 몇번의 자살시도를 했는데, 결국 4번째 자살시도를 성공해 죽었다.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한 사람은 없다고
나도 중2병이 심하게 왔을 때부터 살면서 몇번의 '극단적 선택'을 감행했는데
죽고 싶긴 하지만 아프긴 싫었던 쫄보라 늘 실패로 돌아갔다.그때마다 나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다 괜찮아진척 익살을 떨며 그저 '헤프닝'으로 지나가도록, 상대의 기억에 남지 않도록 더 애썼다.
요조는 결국 그토록 원하던 죽음을 가졌지만 죽는 순간까지 자신은 '인간실격'이라며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
나도 사실 요조처럼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며 살고 있지만 이제라도 나를 좀 더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는 덤인생'이라는 말이 책 뒷편에 작품해설에 나오는데 나는 이 말이 참 좋았다.
다자이는 몇 번의 덤인생을 살면서 몇 번의 행복을 느꼈을까? 책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딱 1번 등장하긴 하지만
아마 다자이, 그리고 요조의 덤인생에서 아마 행복이 딱 한번은 아니였을 것이다.
나도 나의 '덤인생' 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찾아가면서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첫댓글 아기 현진이는 커서 아주 그럴듯한 (이 표현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의미로요)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아주아주 그럴 듯해서 그 덤인생이라는 것도 정말 다른 이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는 그런 멋진 어른이요.
그런 어른들끼리 만나서 또 서로 위안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자이가, 그리고 또 요조가 우리 모두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준 것 같아요. 참 천재적이고 복합적인 돌아이들이에요.
제가 누구나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라면 저도 정말 행복하겠네요. 오늘도 불면에 뒤척이는데 해솔씨 댓글로 마음에 위안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저도 저 우유 받았었어요. 저야 자존심보다는 배가 더 고파서 터트리지는 못했지만요. 우리 집만 돈이 없어서 정부에서 쌀도 받고, 수능특강도 받고 하는 게 얼마나 굴욕적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굴욕감을 감추기위해서 철없이 굴기도 했어요. 니들이 돈주고 사는 걸 나는 공짜로 받는다는 식으로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비참한 방식이지만 그땐 별다른 선택지도 없었던 것 같고. 호호...
멋진 글 좋은 결말이지만.. 저는 그 말마따나 나를 사랑하는 게 영원히 가능하기나 할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못해요.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날 사랑해주어야만 그 비슷한 거라도 할 수 있어서요.
저도 사실 자신은 없어요. 다짐일 뿐이죠. 저도 제가 좋아하고 동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저를 그만큼 사랑해주길 항상 바랬는데 제가 준만큼 마음을 돌려받는 다는것은 언제나 욕심이더라구요. 그래도 오년이 지나도 십년이 지나도 멀리서라도 나를 생각해주고 안타까워해줄 사람이 세상에 한명쯤은 있겠지 라고 믿어보려구요.
사실 작품해설부분을 안읽긴 했는데, 덤인생이라는 부분이 퍽 맘에 드네요. 다 큰 현진님은 어렸을때의 현진님보다 조금 더 인생에서 행복을 잘 찾을 수 있으실 거에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D
요새 묵클럽하면서 아 쫌 행복한것 같기도 한데...하는중입니다 (헷) 고마워요 예지씨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꾸준히 찾아나가야겠습니다 행복이란 것..
언젠간 찾을 수 있겠죠 모두
우리 모두가 익살꾼의 모습을 갖고 있는거 같아요. 시발 익살꾼이라고 상처 안받는거 아닌데 헤헤. . 잘 읽었습니다!!
그래야 살기 편하기도 하죠...읽어주셔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