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성과 반전, 슬픔과 긍정의 시학
『책장 사이에 귀뚜라미가 산다』 - 김황흠
서승현
1. 들어가며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시들이 범람하고 있지만 진정한 서정성을 맑고 깊은 우물처럼 퍼올리고 있는 두 시인의 시집을 살펴보았다. 코로나19로 시작된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이 끝날 줄을 모르고 지속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혼자만의 공간 속에서 컴퓨터 앞이나 모바일 등 화상으로 이루어지는 동안 인간과 인간 사이, 감성적 공감 증진이라는 차원에서 문학이 지닌 원천적 기능과 역할이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는 시절이다. 이러한 시기에 구태여 사람을 피해야 할 필요도 없이 자연 속에서 일상을 지속하는 가운데 시를 쓰며 사는 것은 어쩌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주 남평 들녘 드들강 가에서 농사지으며 서정시를 쓰는 김황흠 시인이 그렇다. 모든 사회적 만남을 피하고 주저하는 이때에 시인은 드들강변으로 독자를 마음 놓고 초대한다. 천하선 시인 또한 자연 속에서 마주치는 서정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있다.
2. 동일성의 서정
시인은 이번에 상재한 『책장 사이에 귀뚜라미가 산다』의 서문인 ‘시인의 말’에서 ‘첫 시집 『숫눈』이 드들강을 첫사랑처럼 바라보며 쓴 시집’이라면 두 번째 시집 『건너가는 시간』은 ‘쇠백로와 함께 침묵의 강을 건너는 시집’으로 소개한다. 세 번째 시집인 『책장 사이에 귀뚜라미가 산다』에서는 ‘강과 나무와 풀과 쇠백로와 개구리와 귀뚜라미와 한통속으로 어울려’ 노닐면서 독자를 슬그머니 시 속으로 초대한다. 김황흠 시인의 시적 삶에서 드들강이라는 자연은 삶의 일부이자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의 교감과 소통이 주된 정서로 작용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시인의 이웃은 자연이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다. 그의 생활공간인 나주 남평들녘은 드들강을 끼고 펼쳐져 있다. 드들강 유역은 농사를 짓는 그에게 삶의 터전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시의 경전이기도 하다. 사계절이 그의 눈에 고스란히 들어오는 풍경 속에서 자연의 이웃들을 소재로 한 시편들을 직조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드들강변의 자연물은 발길 닿는 곳마다 친숙하게 다가오는 한 식구들이다. 그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법은 사물에게 말을 건네거나 대답하는 대화형식, 자연물이 되거나 사물이 되는 활유법에 의한 것들이 많다. 시인은 개별적 사물 모두가 살아있는 두두물물의 세계에서 물활론적 상상력으로 사물들을 만나고, 이 과정에서 시인은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그들이 되어 대화가 서로 오가기도 한다. 바흐친은 한 인간의 진정한 삶은 대화적으로 침투할 때에 접근이 가능하다고 했다. 내 속의 다른 목소리는 곧 자신의 목소리로 그 대화에 응하면서 어느 순간 자신과 합일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김황흠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이같이 타자의 목소리가 나의 목소리를 빌려 다성적으로 화합하는 양상을 자주 볼 수 있다. 타자는 자연물이거나 이웃사촌이지만 종국에는 시인 자신의 혼잣말로 귀결된다. 이같이 타자의 시선과 목소리로 시인 자신과 대화하고 화합하는 일면에는 생태학적이며 물활론적 상상력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참새, 직박구리, 박새, 물까치, 검은등뻐꾸기, 꾀꼬리, 오목눈이, 멧비둘기’ 등과 서로 인사하고 지내는가 하면(「소식을 물고 왔다」) 쇠백로와 왜가리, 바람과 구름, 쐐기, 호랑지빠귀, 비에 젖은 푸성귀, 까치집, 고양이, 토란, 민들레, 강물, 연리목, 마른 억새, 버드나무 등과 ‘봄 방죽에 개구리 울음소리’ 속에서 ‘달빛에 물든 사랑가’ 끓는 소리를 들으면서, 빈집, 경운기, 외등, 호미, 깨진 장독, 도리깨, 낫 등 허름하게 낡아가는 사물에 생명력을 투사하기도 한다.물활론적 상상력은 생명이 없는 물체조차도 사람처럼 영혼이 있고,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드들강변의 자연생태 속에서 시적 대상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소통하는 시인은 그야말로 자연스럽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적 정서는 시인이 드들강변의 일부로 자연 속에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연을 대하는 인식 또한 인간과 자연을 차별없이 대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진솔하고 소탈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결과물이라고 하겠다.
둥글둥글 돌멩이
주워 귀에 댄다
돌멩이 속에 갇혀 있던 이야기들이
간지럽게
간지럽게
귓속으로 흘러든다
귀에 댄 돌멩이를
강에 던지자
남아 있던 이야기 번지는 듯
물 나이테 퍼져간다
그, 찰나
개구리 꽥, 소리 지르고
풍덩 물속으로 뛴다
에구, 미안!
서슬에 놀란 쇠백로
날아가며 허공에 뿌린 소리
물 위에 시 한 편 지나간다
- 「강물 위에 쓴 시」 전문
시인이 바라보는 자연의 풍경 속에서는 모든 게 시와 연관된다. 이 시에서도 돌멩이로부터 시작된 시적 행위는 강물, 개구리와 쇠백로로 연이어 퍼져 나간다. 이때 이미지의 연결과 그들의 목소리와 화합하는시인이나 자연물, 특히 ‘날아가며 허공에 뿌린 소리’의 주인공인 쇠백로는 시인과 동일성을 가지게 된다. 그가 노래하는 드들강의 서정은 이처럼 자연과 일치되어 현재진행형으로 흐르는 것이다. 이러한 일치의 정서는 시집의 표제작인 다음 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벽과 책장 사이에서 열심히 소리를 짓는 것 같은데 형광등을 켜자 뚝 그친다 스위치를 내리고 다시 잠을 부르자 먼저 달려오는 소리 내 귀에다 붓는 애절한 노래 엷은 날개로 간절하게 책장 귀퉁이를 매만지는 가을밤
무심에 파르라니 떠는 페이지를
어디에 숨어서 읽고 있나
- 「책장 사이에는 귀뚜라미가 산다」 전문
가을 밤, 하필이면 시인의 방안에 있는 책장과 벽 사이에서 귀뚜라미가 ‘열심히 소리를 짓’는다. 시적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시적 대상이 되는 사물과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벽과 책장 사이에서 소리를 짓는 귀뚜라미는 곧 책상 앞에서 시를 짓는 시인과 동일하게 여겨진다. ‘애절한 노래’, ‘엷은 날개로 간절하게 책장 귀퉁이를 매만지는’ ‘무심에 파르라니 떠는 페이지’등은 시인이 시적 소재들을 간절하게 매만지며 시를 짓는 행위로 서정시의 대표격인 동일성의 서정, 일치의 서정이라 할 수 있다.
3. 반전의 시학
그의 시집에서는 소외를 일상적으로 대면하면서도 섣불리 감정에 치우치거나 요동치지 않고, 성찰과 깨달음으로 전이시키는 반전의 미학이 담담하게 녹아있다
태풍에 쓰러진 지지대를 빼려하니
한번 들어간 말뚝 같은 몽니는
도통 풀어지지 않고 뽑기 휠은 휘어졌다
힘도 공구도
지쳐 밭둑에 앉아 있는데
등 뒤에 박새 몇 마리
뭐 먹을 게 있다고
쌓아 둔 고춧대를 진력나게 뒤진다
벌써 짧은 겨울 해가 산등성이에 기웃거려도
몇 안 남은 지지대는 꿈쩍 않는다
큼직한 돌망치로 몇 번 쥐어박아 보는데
되려 물큰한 사랑 한번 해 봤다고
아랫도리가 끈적하다
- 「망치의 기술」 전문
고춧대를 지지하던 지지대를 제거하는 작업에서조차 시인은 힘든 노동일을 해학적으로 승화시키는 기지를 발휘한다. ‘지지대’가 남성적이라면 땅은 여성적 이미지를 가진다. 땅 속 깊이 단단하게 박혀 꿈쩍도 하지 않는 지지대는 ‘큼직한 돌망치’로 몇 번 쥐어 박히고서야 뽑혀진다. 뽑혀진 지지대는 땅 속의 수분으로 젖어있기 마련이며, 이런 일련의 현상 앞에서 시인은 ‘물큰한 사랑 한번 해 봤다’라는 지지대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돌망치로 ‘쥐어박히’면서도 그에 대한 반항이나 그로인한 상처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물큰한 사랑 한번 해 봤다’라고 화답하면서 시적 반전을 이끌어낸다. 반전의 미학은 의외의 조응을 이루어내며 대비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게 된다. 김황흠 시인은 우리가 흔히 알고 지내는 주변과 일상 속에 녹아 있는 상황들, 과거에 어디에선가 있었을 법한 장면들을 소환하여 일상적 언어로 전경화 시킨 후, 정말 하고 싶은 말이나 그 뜻을 강조하여 마무리하는 구성의 장점을 가졌다. 김황흠 시인의 이러한 장점은 농촌 지역에서의 소외와 외로움을 유쾌함과 역동성으로 환기시키고, 보편적이고 원형적인 삶에 대해 반추해 보게 하는 힘을 가졌다.
암탉은 보이지 않고
늠름한 놈이 머리를 탁 쳐들고
꼬꼬댁 꼬꼬 꼬꼬댁 꼬꼬
굵은 발톱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발목을 재빠르게 잡아보지만
앙다물고 버틴다
이마를 쪼아 버릴 듯 벼슬을 흔들어대서
가슴이 콩닥콩닥거린다
아이고 조심하시오
옆집 아짐 걱정에도 장인은
심약한 사위 기운 북돋아 주려면
이 정도는 되야제 한다
잡아채고 보니 벼슬에서
까만 씨가 툭툭 떨어진다
- 「맨드라미 수탉」 전문
한적하던 농가 마당에서 오랜만에 처가에 온 사위 기운 북돋아주려고 장인은 수탉을 잡고, 이웃이 기웃대며 동참하는 부산한 정경은 하나의 축제의 장으로 볼 수도 있다.1연에서는 농가의 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탉의 늠름한 모습과 ‘꼬꼬댁’ 거리는 목소리까지 곁들여 전경화 시키고 있다. 2연에서는 수탉의 발목을 잡아채는 화자와 버티는 수탉, 벼슬을 흔들어대는 수탉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이고 조심하시오’라는 옆짐 아짐의 목소리와 ‘심약한 사위 기운 북돋아 주려면 / 이 정도는 되야제’ 라는 장인의 목소리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기운 센 수탉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연에 가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전개 된다. 1연에서 4연까지 이어지던 ‘수탉’과 ‘아짐’과 ‘장인’의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빚어내는 화음은 맨드라미를 뽑아 든 시적 화자의 진술로 인해 단숨에 다른 국면으로 전환하고 만다. 이 당황스러움조차 독자를 웃게 만드는데, 이는 맨드라미와 수탉의 볏에서 오는 유사성과 정서적 이해를 전제하고 시적 정황을 구성했기에 가능하다. 맨드라미의 꽃은 수탉의 붉은 볏과 비슷하게 닮아있어 계관화라 부르기도 한다. 한국적 정서에서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하여 씨암탉을 잡아 대접하던 풍속이 있다. 이러한 시적 대상에 대한 개념적 파악과 이해는 독자와 시인이 공유하고 있기에 더욱 친근하고 익살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쓸쓸함과 소외의 그늘을 지울 수 없다. 맨드라미를 보면서 과거회상적으로 떠들썩했던 닭 잡는 축제의 장을 소환하였지만 현재는 암탉도 없는 마당 귀퉁이에서 저 혼자 장엄하게 꽃을 피운 맨드라미의 씨를 받는 시인의 모습만이 가을 햇살 아래 오롯할 뿐이다. 이 같이 여럿이 함께 흥성스럽던 과거의 회상과 현재의 쓸쓸함이 직조되는 서정은 「막걸리 양씨의 못밥」, 「막걸리 한 통, 한가위 달」 등 몇 편의 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4. 소외와 이별 - 회상과 현재
오랫만에 백열등이 환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들여다보는데
그동안 병원에 있던 아짐이
마루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검버섯 잔뜩 핀 얼굴
지친 눈빛으로 마당 한쪽 화단을 본다
2.
수국과 장미는 예전처럼
밤새 내린 비에 수굿하다
지치지 않은 불빛
낮에도 켜져 있다
다동댁이 끄지 않고 간
마지막 인사
댓돌에 놓인 흰 고무신을 마냥 비춘다
- 「다동댁 빈집」 전문
이 시 역시 마지막 구절에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1부는 정황상으로 오래 병원에 있던 다동댁이 죽음을 앞두고 집에 와 마지막 불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2부에서는 마당에 피어있는 꽃들이 환한 불을 밝힌 정경으로 다동댁이 있던 자리에 흰 고무신만 있다. 마지막 연에서 ‘댓돌에 놓인 흰 고무신’은 다동댁의 죽음을 의미한다. 다동댁의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는 ‘불빛’으로 다동댁의 죽음을 연민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눈빛이 투사되어 있다. 또 다른 시(「화톳불」)에서 불빛은 시인의 하루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다. 이웃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길’ ‘하나하나가 다른 모습으로 타오르다가 꺼져 갈 때’ 또 다른 ‘마른 잔가지인 양 호미질로 단련된 손’이 ‘삭정이 넣어 살리는 화톳불’에 ‘오늘도 등 따습게 살자고 남은 불길에 손 쬐는 내 하루도 빨갛다’(「화톳불」)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호미질에 단련된 손길로 꺼져가는 화톳불을 살려내는 ‘품앗이 나가는 이웃 아짐들’은 살아생전의 또 다른 다동댁이기도 하다. 그들이 밝히는 불빛에 손을 쬐며 자신의 ‘하루도’ 그들에 의해 ‘빨갛다’고 고백하는 시인은 화톳불처럼 따스한 이웃의 소중함을 사랑하는 시인이면서 「바닥을 마주친다는 것」에서 보듯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시대의 진정한 서정시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