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현 생일을 기념하여 어떤 계획으로 생일을 보낼까.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먹을까. 아니면 여행을? 여행가는 건 피곤해하는 남편이어서 별로 안좋아할 줄 알았는데 어쩐 일로 여행도 좋다고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갈까 여기 저기 찾아보다가 여수로 정했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여수겨울 바다에 마음이 동했다. 열차편도 있으니 바삐 손을 움직여서 왕복 티켓과 숙소 예약을 마치고 몇 군데 맛집도 알아놨다.
의외로 여수 대전간 버스나 열차가 많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여 바로 여수 가면 뭐라도 한 잔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도착시간이 9시 40분이다. 더 빨리 가고 싶어도 퇴근시간을 당길 수 없으니 가는 대로 가보기로 한다.
남도지역이라 그런지 바람이 좀 불긴 하지만, 맵진 않았다. ITX가 빨라도 3시간 가까이 기차에 앉아있다가 여수엑스포역에 내리니 지루함이 날아가고 설렌다. 역 근처는 아주 화려했다. 건물도 높고 조명도 환해서 잠깐 기념사진도 찍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
택시에서 바라본 바깥풍경이 영 쓸쓸하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가게들도 문을 다 닫았다. 이제 10시 좀 안되었을 뿐인데...
쎄한 마음을 애써 무시하고 숙소에 들러 짐만 놓고 다시 나와 교동포차거리까지 걸었다. 한 20분 걸으니 화려한 포차의 요란한 등불이 보인다. 미리 검색해놓은 까칠한 홍자매라는 이름의 포차로 들어가 돌문어삼합(중)과 소주, 맥주 를 시켰다.
결론적으로 저녁식사는 망했다. 가격대비 허술한 내용물에 실망했으니 술맛이 날 턱이 있나. 남편과 얼른 먹고 나와 2차를 제대로 즐겨볼까 하는 맘으로 나왔으나 예상대로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아 포차에서 알고도 바가지를 쓰던지 아니면 그냥 숙소로 들어가야 했다. 너무 아쉬워서 도로가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기본안주에 소주를 시켜 마셨다. 식당에 들어가서 계란말이에 소주를 먹거나 전을 시켜서 먹을 생각은 없었다. 여수의 지역색을 느낄 수 있는 안주가 필요했는데 너무 늦게 도착했고 가게들은 너무 일찍 문을 닫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냥 기본 안주에 소주 각 일병씩 더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교동포차보다 훨씬 이게 나았다.
다음날.
밝은 날의 여수는 어떤 모습일까 일어나자마자 창밖을 보니 흐린 하늘이다. 주말인데 거리에 사람은 별로 없다.
짐을 챙겨 나와 택시를 타고 오동도로 이동. 오동도의 동백꽃군락지가 있고 공원이 걸을 만하다고 하여 갔는데 아주 좋았다. 일단 바다바람이 미친듯이 불어대며 우리를 환영했다. 아침을 먹지 못한 우리는 길가 포장마차에서 파는 옥수수를 한 팩 사서 어그적 어그적 먹으면서 오동도 방파제길을 걸었는데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옥수수는 너무 맛있었는데 손이 시려서 즐길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방파제 뷰도 항구 느낌이 나서 좋았고 오동도 산책로는 더 좋았다.
특히 20m 는 넘어보이는 높은 나무들로 빽빽한 오동도가 인상깊었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대나무 등을 볼 수 있고 꽃이 독특한 팔손이꽃나무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열매나무도 많이 볼 수 있고 그래서인지 숨쉬기가 좋고 새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나는 이번에 동백나무 잎파리색과 똑같은 새를 보았는데 동백잎 사이에 앉아 있어서 몰랐는데, 눈이 좋은 병현이 알아보고 찾아줘서 신기했다.
오동도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나오니 바람이 세고 싸락눈이 내린다. 오동도공원에서 보이는 바닷물이 센 바람에 이리 저리 휘몰며 요동치는데 보기만 해도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오동도 산책을 마치고 다시 택시를 타고 동서식당으로 이동, 서대회무침으로 아침겸 점심을 해결했다. 허영만씨가 방송에서 소개해서 굉장히 인기를 얻은 식당이라고 하는데 병현의 평가가 냉정하다. '찾아올 정도는 아니다' ㅠㅠ
나는 맛나게 먹은 편이다. 서대회의 씹는 질감이 부드러웠고 식당의 전반적인 반찬이 짜지 않아서 좋았다.
이후 일정에 대해서는 계획이 없던 나는 회를 원하는 병현의 눈치가 보였기에 시간도 때우고 동선도 자연스럽게 이동할 겸 장군산 둘레길 걷기로 수산시장 이동을 제안했다. 병현은 내키지 않아했지만, 따라오는 눈치이다.
날씨는 거의 한겨울 혹한기 수준으로 눈바람이 불어댄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중이다. 걱정할 게 뭐 있으랴.
장군사 입구에서 약간 헤매다가 걷기 좋은 둘레길을 한참 걸었다. 생각지도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둘레길은 걷기 참 좋았고 풍광도 좋았다. 뒤에서 따라오는 병현은 투덜투덜 이었지만, 관광지에 와서 산길을 걸으니 싫은가보다 싶었기에 그냥 신경 안쓰고 나대로 즐길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
수산시장으로 연결되는 한재터널 위 마을로 나오니 전원주택인 듯 고급 주택이 죽 이어진다. 보안카메라가 몇 개씩 달려있다.
마을구경도 하고 바닷가에 형성되어 있는 특유의 골목길 구경도 하면서 서시장을 지나 여수항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병현의 기분이 확 풀리기 시작했는데 수산시장에서 회를 떠서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점심은 동서식당에서 12시 50분쯤 먹었고 지금은 2시 30분쯤 되었으니 너무 이르다. 그래서 이순신광장에 가서 구경 좀 하다가 돌아오기로 했다. 어찌나 신나 보이던지...
여수수산시장에서는 멸치도 팔고 각종 말린 해산물도 팔았는데 오징어, 쥐포 등이 보였다. 곱창김도 있고 사고 싶은 게 많았는데 구경만 하고 지나쳤다.
이순신광장에 도착하니 젊은 사람들이 엄청 많이 보였다. 알고 보니 딸기모찌가 여수의 대표기념품인지 이순신광장 앞 삼거리를 모찌가게가 장악하듯 여러 점포를 형성해있었고 관련한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었는데 모두 문전성시였다.
거리 안쪽으로 들어가니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먹거리 상점들이 있었는데 버터샌드, 버터도나츠 그런 가게들이었다.
달고 느끼할 것 같은데 그런 걸 좋아하나보다.
광장에 있는 전망스탠드에 올라가서 한번 주욱 둘러보고 다시 걸어내려와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삼치회를 먹어보고 싶었는데 돌아보니 미리 썰어서 포장해놓은 것이어서 망설이게 되었다. 돌아다녀보면서 기웃기웃 해보니 쥐치, 감성돔이 제철이지만, 쥐치는 워낙 먹을 게 없어서 먹으려면 2kg는 사야 했고 그에 비해 감성돔은 쥐치와 kg당 가격은 같은데 상대적으로 먹을 게 많다는 정보를 수집했다.
뭔가 느낌이 오는 한 집을 골랐는데 요한이네횟집이라는 곳이었다. 사장님이 손이 빠르시고 뭔가 전문적인 느낌이 뿜뿜하여 여기서 감성돔 1kg를 주문해 2층으로 올라갔다. 양이 적으면 삼치회를 사려고 했는데 해물탕까지 먹으면 충분할 것 같아 그냥 이 정도로만 만족하기로 하고 2층 2호로 들어갔다.
실내는 텅 비어 있었지만, 워낙 가게들이 썰렁한 모습에 익숙해있어서 자리잡고 앉아 전라도 술인 잎새주를 시켜서 일잔을 시작했다. 너무 맛있었고 우리 분위기는 최고였다.
감성돔은 정말 맛이 좋았다. 공기밥을 하나 시켜서 밥과 회를 함께 먹었는데 술이 달고 술이 술술 이었다.
소주를 세 병이나 시켜 매운탕까지 클리어했다. 너무 만족스러운 저녁이었다.
그렇게 여수여행을 마무리하고 식당을 나오니 오후 5시 30분. 천천히 여수엑스포역까지 걸었다.
잠깐 지나친 여수연안여객터미널에서 날씨뉴스를 보았는데 엄청난 폭설이 예상되고 주말은 한파주의보라고 해서 살짝 걱정이 되었다.
천천히 걸어가니 여수엑스포역 도착시간 6시 30분.
어제 저녁에 도착해서 역 맞은 편에 화려한 건물이 뭐지 했더니 해양엑스포를 했던 장소였다. 집에 도착해서 나중에 찾아보니 여수엑스포는 2012년에 개최했었다고 한다. 나는 몇 년 전인 줄 알았다.
7시 14분에 출발하기까지 기다리기 지루해서 역 내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한 캔씩 했다. 오랜만에 여행이 즐거웠고 1박 2일 여행치고 지출은 좀 있었지만, 콧바람 쐬서 참 좋았다.
이런 시간을 2개월에 한번씩은 갖자고 저녁 뒷풀이때 남편에게 제안했지만, 어쨌든 종종 여행을 하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여수 여행 만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