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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에 대한 연구:
〈붉은 수수밭〉과 〈인생〉의 영화화를 통해
중국문학 제 53집(2007.11)
전형준(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중문과 교수)
〈목차〉
1.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의 의의
2. 장이모우의 영화 〈인생〉과 위화의 소설 〈살아간다는 것〉
3. 장이모우의 영화 〈붉은 수수밭〉과 모옌의 소설 〈붉은 수수밭〉
4.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에 대한 새로운 질문
2. 장이모우의 영화 〈인생〉과 위화의 소설 〈살아간다는 것〉
〈인생〉은 한국어 번역 제목이고 중국어 원제는 〈훠저〉이다. ‘훠’는 동사로서 ‘살다’는 뜻이고 ‘저’는 동작의 지속을 나타내는 조사이다. 그러므로 ‘훠저’는 ‘살다’내지 ‘살아가다’정도로 번역되는 게 옳겠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살다’라고, 프랑스에서는 ‘vivre’라고 번역했다. 영화 속 인물 춘성이 자살하려는 기색을 보이고 떠날 때 여주인공 쟈전이 ‘잘 살아야 해요’라고 말하는 대목을 보면 제목의 ‘훠저’가 ‘살다’ ‘살아가다’ 내지 ‘살기’ ‘살아가기’로 번역되는 게 확실히 옳을 것 같다. 원작 소설의 제목 역시 ‘훠저’이다. 백원담 역의 한국어판은 제목을 ‘살아간다는 것’으로 옮겼는데 ‘인생’보다는 낫지만 역시 꼭 맞는 번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993년에 발표된 영화 〈인생〉은 주인공 푸구이가 도박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때는 중일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이고, 곳은 시골의 소도시 내지 읍인 어느 진이다. 푸구이의 도박에 지친 아내 쟈전이 둘째 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어린 딸 펑샤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린 뒤, 푸구이는 드디어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다. 푸구이의 아버지는 울화가 치면어 쓰러져 죽고, 저택을 빼앗긴 푸구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같은 동네의 작은 집으로 이사한다. 집안의 물건들을 내다 팔며 생계를 잇던 중, 둘째 아이 요우칭을 낳은 쟈전이 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달아온다. 푸구이는 그림자 연극 공연으로 생계의 방편을 삼는다. 그러던 어느 날, 피영희 공연 도중에 들이닥친 국민당 군대에게 짐꾼으로 끌려간 푸구이는 국민당 군대가 패퇴하자 이번엔 공산당 군대(해방군)에게 붙잡혀 가서 춘성과 함께 해방군을 위해 피영희 공연을 한다. 국공내전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푸구이.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쟈전은 물 배달로 생계를 잇고 있고, 딸 펑샤는 열병의 후유증으로 벙어리가 되어 있다. 푸구이의 저택을 도박으로 ㅃ배앗은 룽얼이 악질 지주로 몰려 처형되는 것을 목격하는 푸구이, 푸구이는 해방군에게 밭은 혁명 참가 증명서를 소중히 벽에 걸어놓는다.
대약진운동이 시작되고 푸구이는 소규모 제철공장에서 사람들을 위해 피영희 공연을 한다. 강철 제조에 성공한 다음 날, 간밤에 잠을 못 잔 요우칭을 억지로 학교에 보내는데(학교에 데려다 주며 푸구이는 아들에게 병아리가 닭이 되고 닭이 거위가 되고 거위가 양이 되고 양이 소가 되는 이야기를 해 준다)요우칭이 사고로 죽는다. 구장의 자동차가 담에 부딪치고, 무너진 담이 그 밑에서 졸고 있는 요우칭을 덮친 것이다. 알고 보니 구장은 바로 춘성이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고 푸구이는 진장의 권유에 따라 피영희 도구를 상자만 남기고 모두 불태운다. 딸 펑샤는 절름발이인 노동자 얼시와 결혼하여 집을 떠난다. 문혁이 진행되면서 춘성은 비판을 받고 자살한다. 펑샤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다가 출혈 과다로 죽는다. 의사는 반동분자로 몰려 조리돌림을 하고 있고 진료는 간호학교 학생들이 맡고 있는데 이 학생들에게는 출혈 과다를 막을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태어난 손자에게 ‘만터우’라는 이름을 붙인다.
세울이 제법 지난 어느 날,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푸구이네 집의 정경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병상에 누운 쟈전을 중심으로 푸구이와 사위 얼시, 손자 만터우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피영희 도구 상자에 병아리를 넣고서 푸구이는 만터우에게 병아리가 소가 되는 이야기(전에 요우칭에게도 해 주었던 이야기)를 해 준다.
1992년에 발표된 위화의 소설 〈살아간다는 것〉은 작가 자신이 일인칭 화자로 등장하여 시골에서 만난 푸구이 노인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형태로 되어 있다. 푸구이의 이야기를 푸구이 자신의 목소리로, 즉 직접화법의 형태로 들려주는 게 이 소설의 서술 상의 특징이다. 그 자신의 화술에 따르면, 푸구이는 젊은 시절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다. 푸구이는 진에서 10여리 떨어진 농촌의 대지주 잡 아들인데, 진에 가서 도박을 하며 방탕한 생활을 했던 것이다.(1945-46년 경으로 추정된다) 저택과 토지를 룽얼에게 빼앗긴 푸구이 가족(아버지, 어머니, 푸구이, 아내 쟈전, 딸 펑샤의 5인)은 같은 마을 작은 초가집으로 이사한다. 아버지가 쓰러져 죽고, 장인이 들이닥쳐 둘째 아이를 임신중인 아내 쟈전을 데리고 진으로 가버린다. 푸구이는 생계를 위해 룽얼의 소작인이 되고, 쟈전이 낳은 지 6개월이 된 아들 유우칭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던 어느날 병든 어머니를 위해 의원을 모시러 진으로 간 푸구이는 국민당 군대에게 짐꾼으로 끌려간다. 국민당 군대가 해방군에게 패퇴하고 푸구이는 해방군에게서 여비까지 받아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펑샤는 열병으로 벙어리가 되어 있다. 푸구이는 토지개혁으로 그동안 소작하던 땅을 그대로 분배받아 가난한 농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푸구이의 가산을 빼앗았던 룽얼은 악덕지주로 몰려 총살당한다.
1958년에 인민공사가 성립되어 푸구이의 다섯 묘 토지도, 요우칭이 기르던 두 마리 양도, 밥을 짓던 쇠솥도 모두 공출당하고 공동 경작에 공동 취사, 그리고 강철을 제조하는 농촌공업 활동에 시작된다. 쟈전은 연골병이라는 난치병에 걸려 일상적인 거동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인민공사 정책은 실패하고 기근으로 고통받는 나날이 계속된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 간 요우칭이 출산하는 교장선생에게 수혈을 해주다가 출혈 과다로 죽는다(학교도 병원도 현성에 있다. 푸구이가 사는 촌에서 현성까지는 50리 거리이다). 교장선생은 현장의 부인이었는데 알고 보니 현장은 바로 국민당 군대에서 푸구이와 함께 고생했던 춘성이었다. 쟈전도 병이 심해져 의사로부터 죽음을 선고받지만, 다행히 살아나고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었다. 진은 시끄러웠지만 촌은 그에 비하면 비교적 태평스러웠다. 촌장의 소개로 펑샤가 현성 사람인 노동사 얼시(그는 편두, 즉 머리가 한쪽으로 기운 장애인이다)에게 시집간다. 문혁의 와중에서 춘성이 주자파로 몰려 고통을 받고 결국 죽는다(춘성이 푸구이네 집을 찾아왔을 때 쟈전은 춘성에게 ‘춘성, 살아야 해요’라고 말한다). 펑샤가 현성의 병원(요우칭이 죽은 바로 그 병원이다)에서 아이를 낳다가 출혈 과다로 죽는다.
외손자 이름을 쿠건이라고 지어준 쟈전 역시 석 달도 안 되어 죽는다. 죽기 전에 쟈전은 ‘당신은 잘 살아가야 해요’라고 푸구이에게 말한다. 쿠건이 네 살 되던 해에 이번엔 사위 얼시가 콘크리트 판 사이에 끼여 죽는다. 푸구이는 쿠건을 현성에서 촌으로 데리고 온다. 그러나 쿠건마저 일곱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삶은 콩을 너무 많이 먹어 배가 터져 죽은 것이다.
그 이후의 세월을 푸구이는 홀로 지냈다. 쿠건이 죽은 뒤 2년째 되던 해에 푸구이는 모은 돈으로 늙은 소를 사고 그 소에게 자신과 같은 ‘푸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뒤로 사람 푸구이와 소 푸구이가 함께 농사 일을 하며 살아온 것이다. 긴 이야기를 끝낸 푸구이는 소와 함께 멀어져가고, 작가의 눈 앞에서 황혼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장이모우 감독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와 함께 여러 가지 비판(때로는 내용이 서로 반대되기도 하는)도 주어져 왔다. 예를 들면,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면이 있다, 중국공산당에 대해 비판적이다, 오리엔탈리즘에 영합한다, 중국 현대사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피해 갔다, 상업주의와 타협했다 등등. 이런 비판들에는 각각 나름대로 일리가 있지만 전면적으로 항상 옳은 것은 아니고 특히 개별 작품의 경우 그런 관점을 거칠게 적용하게 되면 그 작품에 대한 올라른 이해가 어려워진다. 한편, 대부분의 독자들은 영화 〈인생〉을 먼저 알고 소설 〈살아간다는 것〉을 뒤에 알게 되는데,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은 물론이고 소설을 읽은 사람도 영화의 이미지가 압도적인 나머지 영화의 이미지에 맞추어 소설을 이해하게 되곤 한다. 그러나 소설과 영화를 비교해 보면 우리는 그런 식의 거친 이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디테일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영화가 푸구이, 쟈전, 얼시, 만터우 네 가족이 살아 있는 것으로 끝나는 데 비해 소설은 모두 죽고 푸구이만 남은 것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의 만터우는 예닐곱 살쯤 되는 것으로 보인다. 만터우가 문화대혁명 초기에 태어났으므로 이 아이가 만약 일곱 살이라면 영화 마지막 장면의 시기는 대략 1974년 전후 쯤이라 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펑샤가 죽은 뒤 석 달도 되지 않아 쟈전이 죽고, 쿠건이 네 살 되던 해에 얼시가 죽으며, 쿠건은 일곱 살 때 죽는다. 영화에서는 만터우가 일고 살쯤 되는 때에 얼시는 물론이고 쟈전도 살아 있으니 소설의 이야기를 중간에 끊어서 영화의 종결로 삼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야기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이로 보면 영화는 확실히 희망의 서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다. 병아리가 자라서 거위가 되고 거위가 자라서 양이 되고 양이 자라서 소가 되는 이야기가 영화에는 두 번 나온다. 첫 번째는 푸구이가 유우칭을 업어서 학교에 데려다 주는 장면에서이고(여기서 소 다음에는요, 라는 만터우의 물음에 푸구이는 공산주의가 된다고 대답한다), 두 번째는 마지막 장면에서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푸구이는 외손자 만터우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소 다음에는요, 라는 만터우의 물음에 쟈전이 만터우가 자란다고 대답하고, 만터우가 내가 자라면 소 등에 탈 거야라고 말하자 푸구이는 만터우가 자라면 기차와 비행기를 탈 거라고 말한다. 이를 두고 희망의 서사라고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것이 장이모우가 위화의 소설 〈살아간다는 것〉을 이해한 방식이고(‘푸구이의 생각으로는 이 단순한 이야기 하나가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자신의 희망을 그대로 축약해 보여주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서 희망을 간직하는 것,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장이모우는 말한 바 있다), 이 이해에는 문혁 종결 이후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과 일종의 근대주의가 깔려 있다. 위화 역시 자신의 소설 서문에서 희망의 서사와 관련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나는 여기에서 사람이 고난을 감수하는 능력과 세계에 대한 낙관적 태도를 써나갔다. 글쓰는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나가고 있는 것이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서 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과연 그럴까. 푸구이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으나 하나씩 죽어간 푸구이의 가족들은? 차례로 죽어간 요우칭, 펑샤, 쟈전, 얼시, 쿠건은 물론이고 그들의 죽음을 겪고 소와 함께 살고 있는 푸구이에게서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은 삶의 비극적 정황이 아닌가? 우리는 여기서 미묘한 역설과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다. 위화의 서문이 거짓말이나 능청이 아니라 진담이라고 하더라도 작가의 언술에 반하여 작품은 삶의 근본적 결핍과 비극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병아리가 자라는 이야기는 소설에서도 두 번 나온다. 한번은 푸구이의 아버지가 푸구이에게 들려주는 것이고, 다음은 푸구이가 외손자 쿠건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첫 이야기는 병아리에서 소가 된 쉬씨 집안이 다시 병아리가 되고 아야 그것마저 없어졌다는 내용이고 이 이야기 뒤를 아버지의 죽음이 따르ㅁ며, 두 번째 이야기 뒤에는 쿠건의 죽음이 따른다. 그러니 소설에서 병아리가 자라는 이야기는 희망을 말해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배반당하는 희망, 좌절되는 희망을 증거하는 이야기인 것이 아닌가.
위화의 낙관과 희망은 병아리가 자라는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온다. 바로 농촌의 에로스가 그것이다. 소설의 작중 화자는 농촌에서 민요를 수집하는 일을 하면서, 성적 욕망을 자유롭게 분출하는 농촌 사람들의 모습을 빈번히 목격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처가 녹색으로 충만한 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농작물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왕성하게 자라나는지를 한결 잘 알 수 있었다,’ 이 농촌과 에로스가 푸구이의 고통스러운 삶에 낙관과 희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푸구이의 이야기 속에 이미 그 구체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소설 속에 나타나는 공간적 대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촌과 진(그리고 현성)의 대립, 다시 말해 농촌과 도시의 대립이다. 이 대립은 신화적 색채가 짙다. 푸구이는 진에서 가산을 다 빼앗기고 진에 갔다가 국민당 군대에 끌려가며 현성의 병원에서 아들과 딸을 잃고 현성의 공사 현장에서 사위를 잃는다. 도시는 재앙의 공간이고 죽음의 공간이며 흡혈의 공간인 것이다(특히 병원은 도시의 부정성을 집약해놓은 곳이다).이에 반해 농촌은 삶, 희망, 재생의 공간이다. 푸구이의 아버지는 촌에서 죽지만, 똥을 누다가 쓰려져 죽은 그 죽음은 비참한 사고사가 아니고, 죽음을 선고받은 쟈전이 다시 살아나 의사의 선고보다 훨씬 더 오래 산 것은 그녀가 현성의 병원으로 가지 않고 촌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쿠건의 죽음만이 농촌에서 일어난 비참한 죽음이다(그렇기 때문에 쿠건의 죽음에서 비극은 최고조에 이른다). 무엇보다도 주인공 푸구이가 원래 유한계급(대지주)이었지만 가산을 탕진한 뒤 농민으로 존재 전이를 하고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고 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신화적 공간으로서의 농촌이 푸구이의 삶에 낙관과 희망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영화 〈인생〉은 이 점에서 대폭 바뀌었다. 푸구이는 월래 진에 살았고 몰락한 뒤에도 지ᄋᅠᆫㅢ 한 작은 집에서 산다. 그러니 영화에서는 농촌과 도시의 대립이라는 신화적 공간의 대립이 없는 것이다. 병아리가 소가 되는 이야기와 마지막의 햇살 가득한 장면이 희망의 근거가 되어 주기 때문에 신화저 공간이 필요 없었던 것일까? 푸구이의 생계도 물 배달과 피영희 공연에 의해 이루어진다(특히 피영희야말로 이 영화가 오리엔탈리즘과 영합한 증거로 거론된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영화는 1958,9년의 대약진운동 당시를 일종의 축제로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한편, 문화대혁명의 자세한 부정적 묘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반해 소설은 대약진운동 당시의 기근으로 인한 고통을 자세히 묘사하고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덤덤한 태도를 보인다(굶주림은 소설의 주요 모티브이다. 쿠건의 죽음도 굶주림에서 비롯된다). 펑샤의 죽음도 영화에서는 문화대혁명에 직접적 책임이 있지만(의사들이 쫓겨나고 간호학교 학생들이 진료했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다(의사가 진료한다). 아마도 1951년생인 장이모우의 문혁 체험과 1960년생인 위화의 문혁 체험의 차이가 한 이유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대약진운동에 대한 태도의 차이는 세대 차이로 설명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장이모두의 공동체주의적(공산주의적 경향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렵더라도)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영화 〈인생〉은 정치적 상상력에 기반하여 푸구이의 삶을 통해 도시 안의 갈등을 내용으로 하는 정치적 공간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하면 소설 〈살아간다는 것〉은 신화적 상상력에 기반하여 농촌과 도시의 대립을 내용으로 하는 신화적 공간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상상력에 근거한 영화의 희망은 신화적 상상력에 근거한 소설의 희망에 비해 확실히 천박하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훠저〉의 경우, 소설과 영화 사이에는 상방이라고 말해야 할 정도의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것은 소설에서 영화로의 전환을 담담한 각색자들의 문제이다. 오프닝 타이틀에 의하면 각색을 담당한 두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원작 소설의 작가 위화이다. 위화가 이 각색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가 궁금하다. 소설과 영화의 커다란 차이가 위화의 것일까? 아니면 다른 각색자 루웨이나 감독 장이모우의 것일까. 후자라면 이 때 위화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필자는 지금까지 위화를 두 번 만나보았고, 처음 만났을 때 이 문제를 질문해보았지만 그는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