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와 그린눈빛의 캐슬 산 / 김영애
초입부터 발바닥에 부드러운 흙의 촉감이 꽤나좋다. 이번 여름에 자주 방문하는 비가 만드는 소통의 장, 맑은 얼굴의 햇살도 기지개를 피는 아침, 숲 속 모든 것들의 웃음이 가득찬 싱그러운 초록빛의 향연이다.
수목한계선이 끝나는 지점까지의 길은 무난했지만 무슨일인지 마음과 달리 몸이 힘들다는 이상 신호를 보낸다. 일찍 일어난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전날의 핫 요가의 피로감 때문일까? 한걸음 한걸음에 힘들게 떼어낸다. 기분 좋게 시작한 산행이 몸의 반란으로 마음까지 휘청댄다. 몸을 달래기 위해 사탕 한 개를 입에 물어본다. 땀이 주르륵 물처럼 흐른다. 그러나 다리는 무겁고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다시 양갱 하나를 허겁지겁 씹고 물 한 병을 마신다.
긴 옷을 벗고 반팔셔츠로 갈아입고 다시 걷기 시작하자 기운이 솟아나 앞사람을 잡으려 빠르게 걸어본다. 숨이 차다 .다시 걷는 속도를 줄여 올라가니 어느새 몸이 가벼워지고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몸이 신호를 보낸다. "열심히 걸어도 돼."
후두둑 비가 내리면서 빗방울이 굵어진다. 비에 젖는 기분을 오래간만에 느껴보고 싶었기에 남편이 비옷을 입으라고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비를 맞으며 한동안 걷는다.
대학을 졸업한지 얼마 안 돼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 창덕궁 뒤에 있는 소극장의 연극을 보러갔었다. 연극이 끝난 후, 소나기를 만나 온몸으로 즐겼다. 걷다가 뛰고 춤을 추기도하며 깔깔거리던 20대의 싱그러운 청춘의 한 순간이 스쳐간다. 우리 모두는 물에 빠진 생쥐꼴로 오만 함이, 아니 우아를 떨고 있는 프라자호텔 2층 커피숍으로 들어가면서 비 맞은 개가 몸을 털듯 한바탕 몸을 흔들며 비를 털어냈다. 그 비싸고 푹신한 아름다운 카페트 위에서 폴짝폴짝 거리며 인공 소나기를 쏟아냈다. 호텔 로비의 직원의 놀라 크게 뜬 눈과 어 하는 표정을 당당히 밀어내며 이층의 커피숍으로 뛰어 올랐다. 푹신한 소파에 쏙 안기어 따뜻한 한 잔의 커피와 웃음과 수다로 즐기니 이내 몸에 증기가 피어올랐다. 기분좋은 젖 음과 마름의 순간이었다.무엇이 그리 좋았는지, 젊음 그 자체를 즐겼던 것이었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청춘이 가질수 있는 자신감의 분출이다. 그것은 소나기와 닮았다. 나는 그이후로 소나기를 맞아 본 적이 없었다.
캐나다로 이주한 후로 한국과 다른 이곳의 기후는 소나기와의 만남을 허락치 않았다. 지구 온난화가 만드는 기상이변은 캘거리에서도 소낙비를 만들었다. 어느 날 후두둑 친밀감이 느껴지는 소리에 창밖으로 보니 소나기, 소나기가 내린다. 뛰어나가야겠는데 나도 모르게 두려움이 느껴지며 우산을 쓸까? 비옷을 입을까? 를 망설이는 중에 소나기는 가버렸다. 그 소나기를 우연히 이 산중에서 만났다. 그래서 한동안의 만남을 즐기려 했지만 한기가 들기 시작하고 그칠 생각이 없는 산 속의 소나기는 모든 말초혈관을 수축시켜 혈액의 흐름을 방해했다. 잠시동안의 만남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비옷을 입는다. 얼마 걷지 않아 일행을 만나 숲속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면서 서 있으니 한기가 밀려온다. 모두 간간이 비를 맞고 피하며 서서 점심을 먹는다.손끝이 시리면서 에인다. 장갑을 껴도 풀리지 않아 한 손씩 번갈아 겨드랑이에 넣어 녹여본다. 이내 다시 가버린 비
다시 목적지를 향해 발을 옮긴지 얼마 안돼 햇살이 온몸을 녹인다. 동화에 나오는 햇님과 바람의 싸움이 생각난다. 자연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다. 이것도 일종의 소통의 순간이라 말하고 싶다.
몸이 녹을 즈음에, 첫 번째 호수가 보인다. 블루색깔을 가진 호수는 소나기를 보낸 후의 불어오는 바람으로 더욱더 차가움으로 다가온다.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냉철함이 묻어나는 호수의 블루 눈망울을 보니 가슴이 시원해지며 마음이 활짝 열린다. 그래 그 눈빛, 삶이 힘들 때 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눈빛이다.
다시 올라간다..이내 햇살이 살갑게 다가와 모두의 마음을 어우른다. 마음을 지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만난 두번째 호수의 눈망울, 눈빛이 깊고 따뜻하다. 부드러움과 다정함이 깃든 초록과 연두와 연한 옥빛에 연한 노랑 빛이 어우러진 호수의 따사로움은 냉정함으로 우리 마음을 투명하게 만드는 눈망울과 다른, 우리의 마음을 보듬어 주기에 충분할 만큼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손을 모으게 만들고 깊고 깊게 멍하게 서있게 만들었다. 아, 삶이 주는 기쁨과 감동의 순간을 느끼게 하는 여유로운 따스한 눈빛이다.
나는 캐슬 산의 두 눈을 보았다. 차가움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눈망울을... 마치 우리가 살면서 삶의 너울을 타는 쓴맛과 단맛의 느낌과 비슷하다.
좁은 산길을 일렬로 걷다보면 혼자 걷고 있는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때 산이 나에게 주는 호젓함과 적막감은 모두에게 자유로운 연상의 시간이다. 우울했던 마음은 어느새 내 몸을 떠나고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이렇듯 산의 공간과 시간속에 우리의 다양한 감성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캐슬 산의 두 눈, 예리함 따스함이 공존하는 호수가 만드는 색깔, 블루와 그린의 조화로움이 만들어내는 산의 눈빛에 끌려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그리고 애잔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호수의 색깔은 나에게로 들어와 마음에 깊이 고인다.
오늘 나는 산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산의 눈빛을 마음에 듬뿍 담았다. |
첫댓글 단숨에 읽어내렸습니다. 기분 좋은 산행에서 소나기를 맞으며 소녀 감성을 반추하셨네요
영롱하고 아름다운 필향이 묻어납니다
더욱 건필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산의 얼굴을 보고 산의 눈빛을 마음에 퍼 담는 순박하고 예리한 님의 감성이
저의 오감을 깨우네요
일어나라! 가자! 하면서요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늘 죄선을 다하는,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매우 빠르게 읽어 내렸습니다. 박진감이 있습니다. 자연의 따사로운 눈빛들, 그 속에서 녹아드는 자연의 대화들. 수 필의 정수를 읽었습니다.
청야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늘 회원님들 챙기시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