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여행 3일 차 — 2025.10.15 수
타멜의 복잡한 좁은 골목, 인파와 오토바이와 차가 뒤섞인 혼돈의 거리에서 운전은 마치 마술 같고, 때로는 예술 같다. 누군가 머리를 내밀면, 다른 이는 자연스럽게 비켜준다. 뒷차가 추월을 시도하면, 앞차는 아무런 저항 없이 길을 내준다. 작은 손짓 하나에도 길은 열리고, 속도는 미묘하게 조절되며, 모든 것이 하나의 리듬으로 흐른다. 경쟁도, 명령도, 경적도 필요할 때만 울릴 뿐, 오직 절대적 양보의 약속만이 존재한다.
그 약속을 믿고 길을 건너면, 겉으로는 빈틈 없어 보이는 거리 속에서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우리를 피해 흘러간다. 멈추지 않는 혼돈 속에서, 모든 것이 서로를 피해 흐른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곳의 질서는 신호등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양보의 신비 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어린 시절, 유교의 공동체적 사고 속에서 자란 나는 ‘양보’라는 개념에 익숙했다. 반대로, 급속히 발전한 서양 문화에서는 자기 표현과 개인의 자유, 끝없는 경쟁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졌다. 우리 자신은 자기 표현도 잘 못하고, 윗사람에 대한 순종과 양보 등은 터부시되었으며, 새롭게 배우는 서양의 자유·자재·자주라는 진리가 대단하게 보였다. 만약 우리나라의 교통이 카투만두처럼 절대적 양보 없이 오직 경쟁만으로 굴러간다면, 절대적이고 한 치의 오류 없는 법 체계가 필요할 것이다. 절대적 양보가 절대적 혼잡을 해결한다.
우리는 잠시 골목 가장자리에서 멈춰 숨을 고르고, 타멜의 혼돈을 눈에 담았다.
그럼에도 나는 고민한다. 인간은 상대의 정서와 인간성의 발전을 선택해야 하는가, 아니면 감정을 버리고 기계적 시스템과 규칙에 의존하는 편이 더 나은가. 카투만두의 길을 걸으며 본 것처럼, 인간적 배려와 신뢰가 만든 리듬은 혼돈 속에서도 흐름을 유지한다. 그러나 세밀하게 규정된 법과 규칙만으로 길을 움직인다면, 안전과 예측 가능성을 얻을 수 있지만, 그 대신 인간적 온기와 유연함, 직관의 자유를 잃는다.
결국 우리는 묻는다. 흐름 속의 인간성을 따라 질서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차갑지만 안정된 기계의 법칙에 자신을 맡길 것인가.
네팔 국립박물관에서
오늘 오전, 우리는 네팔 국립박물관을 향했다.
나는 아내에게 태평무 한복을 가져가자고 권했다. 그녀는 족두리를 쓰고 비녀를 꽂고, 눈썹을 덧붙이며 곱게 화장했다. 한복 차림으로 프런트에 나서자 직원들이 “뷰티풀”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코리안 드레스냐”고 묻기에,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니 모두가 진심으로 기뻐했다.
박물관으로 향하는 택시는 원숭이 사원 앞을 지나갔다. 인파와 오토바이, 차량이 얽힌 혼돈 속에서도 운전사는 마치 마술사처럼 곡예를 하듯 차를 몰았다.
박물관 입구에는 유치원생들이 선생님 손을 잡고 견학을 나와 있었다. 우리는 잠시 입구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무슨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내가 “나마스테” 인사하자,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눈이 반짝였다. 한복을 본 그들은 사진을 함께 찍자고 부탁했다.
전시장에는 힌두 신들과 불상의 조각들이 가득했다. 팔이 여러 개인 신, 얼굴이 사방을 향한 신상, 손 모양이 모두 다른 부처들.
실제로도 어떤 사람은 열 개의 팔처럼 많은 능력을 지녔고, 어떤 이는 사방의 얼굴처럼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보현보살, 문수보살, 지장보살 등 익숙한 이름의 보살상들도 눈에 띄었다. 그들은 해탈해 극락에 갈 수 있으나,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와 중생을 돕는 존재들이다.
아내는 미륵보살을 찾아보자고 했다.
미륵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한 뒤, 먼 미래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하는 ‘미래불’이다. 자비의 부처, 혹은 ‘미래의 구세불’이라 불린다. 산스크리트어로는 마이트레야(Maitreya).
직원들도 찾기 어려워하던 그 작은 불상들에서 미륵불을 집중력이 강한 아내는 끝내 찾아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미륵이 미래의 부처라면, 나도 내 미래의 나를 지금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10년 뒤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속삭여 “이 일을 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 부름에 응답한다면, 그것이 곧 미륵의 도움일 것이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이는 재림의 예수요, 오늘의 성령의 응답이다.
갠지즈강의 화장터에서
오후에는 한복을 벗고 갠지즈강변의 힌두교 사원으로 향했다.
하늘은 맑고, 기온은 섭씨 25도. 입장료는 인당 천 루피였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버는 듯했다.
강가에 다가서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우리는 강가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고, 눈앞에 펼쳐질 장면을 마음속으로 준비했다.
열여 개 남짓한 화장 재단 위에서 나무 장작이 타올랐다.
불길은 거세고, 열기는 온몸을 덮쳤다.
그 옆에는 아직 불타지 않은 시신이 천으로 감겨 있었다.
꽃으로 장식된 나무 침상 위에서, 누군가의 마지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족들은 고요히 서서 불길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부모님 또한 화장으로 삶을 마무리하셨다. 그러나 이곳의 화장은 가려지지 않았다. 불길, 연기, 타는 냄새, 그리고 눈앞에서 사라지는 육신. 삶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순환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아내는 강 건너편으로 가서 더 보고 싶다 했다. 그러나 나는 다리를 돌아 가자면 힘도 들고 해서 말했다.
“이 장면은 이미 마음에 새겨졌어.
돌아가서도 잊히지 않을 거야. 이만하자.”
내일은 아내가 고대하는 패러글라아딩 체험의 날이다.
좋은 꿈을 꾸기를 아듀!
첫댓글 갠지스강가의 화장터 모습은 엔도슈사쿠의 소설 '깊은 강'에서도 인도를 배경으로 묘사되어 꼭 가보고싶었는데~
건강히 다녀오셔서 많은 얘기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