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불러주셔서--열 번째 편지 "루르드, 아 영원한 어머니"

[꽃사랑]

넘치는 사랑   

분명 귓가에 밤새도록 강물 소리가 쉴새 없이 들려왔는데, 아침을 맞이하며 커튼까지 활짝 열어재친 루르드의 아침은 물소리는커녕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고요한 시골입니다. 

순례자의 아침은 묵상으로 시작합니다. 

어디선가 짹짹 참새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상큼한 아침을 성모님께 봉헌합니다. 서둘러 아침식사를 먹습니다만 오늘따라 바게트가 너무 딱딱하여 스프가 없는 프랑스 아침식사가 거북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쩌랴, 배가 든든해야 순례자가 길을 떠나지 않겠습니까?

신부님과 어저께 밤중에 해매고 다녔던 루르드 성지로 서둘러 나섭니다.

아침 해도 나지 않은 날씨가 새촘해서 든든하게 내복을 껴입어야지요. 더욱이 종일 밖에서 돌아다닌다는 말을 듣고서야 별 수 있겠습니까.  

 마사비엘 동굴, 성모님을 찾아 갑니다.

밤새 철없는 우리들 때문에 잠을 설치셨을 법 한데도 싱그러운 미소로 우리를 반겨 주시네요. 굳이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의 대성당" 웅장한 성전을 마다하고 대성당 바로 아래 "마사비엘 동굴", 성모님 발현지에 마련된 제대에서 미사를 드립니다. 제대는 동굴 안에 자리했지만 바깥에 놓여진 신자석은 밤에 내린 비에 젖어 모두 동굴 안 제대에 둘러서서 미사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대구 교구에서 파견되어 이곳에 상주하며 한국에서 온 순례자들을 안내 하는 수녀님 한 분과 인도 수 녀님 한 분, 몇 몇 외국인 순례자들과 함께 올리는 미사는 경건했습니다.

1월 20일 월요일 순례를 떠난 지 여섯 번째 드리는 미사는 루르드의 상큼한 아침, 가부 강의 물소리와 함께 알 수 없는 그리움과 기다림 끝에 드디어 다다랐다는 안도감이 뒤엉켜 신비하다는 말 밖에 표현 할 수 없습니다.

".....또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송 신부님의 성인 되십시요. 강론이 특유의 허스키로 흘러나옵니다. 이제까지의 "나"로 부터 벗어나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오늘 복음과 어쩜 그리 맞아 떨어질까요? 끊임없이 되돌아보며 자신의 나쁜 습관, 건성으로 드리는 기도, '그분'이 우리에게 손짓하고 계시는 안타까운 부르심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지 성찰과 통회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따라 신부님의 말씀이 요즈음의 내 처지와 너무 잘 맞아서 미사 내내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을른지요?

프랑스 남쪽 스페인과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 산맥의 산록에 위치한 루르드는 1858년 2월 11일 이후 18회에 걸쳐 성모 마리아께서 벨라뎃다(1844~1878)라는 연약하고 배운 것도 변변찮은 열다섯 살짜리 소녀에게 발현하신 후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유명해졌답니다. 이 산골에는 피레네산의 눈이 녹아 흐르는 가부강 물살이 빠르게 두 갈래로 흘러 가다가 강물이 합류하는 지점에 큰 절벽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 마사비엘(massabielle)이라고 부르는 동굴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미사를 드린 자리가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곳이랍니다.
루르드의 성모님께서 밸라뎃다에게 "여기에 성당을 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기를 원한다, 죄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여라." 고 당부 하셨습니다.   평소 마을에서 상당히 떨어진 마사비엘 동굴은 높은 산등성이가 줄달음치며 내려오다가 툭 떨어지는 가파른 절벽 밑에 움푹 파인 곳입니다. 빠른 물살로 흘러가는 가부강, 제가 보기엔 약간 너른 개울인데 바람을 피하기도 좋아서 마을 사람들이 양과 염소를 방목하여 키우던 곳이었답니다. 그래서 양과 염소 똥이 질척거리고 바로 앞으로는 가부강의 찬 물이 빠르게 흘러가던 척박한 곳이었지요. 하지만 가냘픈 소녀 벨라뎃다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가부강, 개울이라는 표현이 어울리겠습니다만 차디찬 강물을 건너서 양을 몰고 오기에는 너무 힘든 곳이지요.

이 동굴에서 양을 치던 벨라뎃다에게 한 귀부인(성모님)이 아홉 번째로 나타나셔서 "여기를 파보아라, 샘이 솟아날 것이다. 너희는 속죄하는 뜻으로 이 물로 씻고 마셔라" 는 지시를 하셨습니다. 이날부터 벨라뎃다의 생애는 연민으로 가득찬 기도의 연속이 됩니다. 성모님께서 "속죄하십시오. 가엾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요."라고 말씀하셨듯이... 여기에 바로 루르드 물의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 물은 "죄인들을 위하여" 당신 생명을 바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되새기게 합니다.

- 물은 우리에게 하느님 자녀로서의 생명을 준 세례로 돌아가게 합니다.

- 물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용서, 정화, 화해의 은총을 베푸시는 고백성사에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우리가 새로 나고, 용서받고, 정화되고, 화해할 필요가 있기에...그래서 우리는 이 물을 찾아오는 것입 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상기하면서... " 목마른 자는 누구든지 나에게 와서 마셔라" " 내가 주는 물은 그 안에서 영원한 샘이 되리라" 예수님께서는 이로써 당신을 믿는 자들이 받게 될 성령을 의미하시는 것입니다.(요한 4장과 7장)   

벨라뎃다가 성모님의 지시대로 팠던 이 조그마한 샘에는 매일 12만 2천 4백 리터의 물이 오늘까지 솟아나고 있어

이곳을 찾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 물로 침수예식을 통해 죄를 회개하고 물을 마시지요.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물을 마시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기적수라고 부르면서 맹목적으로 이 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물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속죄의 뜻으로 이 물을 마시고 씻으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과 회개가 기적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지 이 물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적수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루르드의 샘물 곁에는 "당신의 얼굴을 씻고 당신의 마음을 씻어 주십사고 하느님께 기도하십시오."라는 글이 적혀 있지요.   미사 후에 이곳의 샘물로 침수를 할 수 있는 욕조가 준비된 곳에 들어갑니다. 남녀로 구분되어 있었고 나이 지긋한 봉사자가 도와주어 우리도 옷을 벗고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봉사자는 이태리 말로 우리는 한국말로 함께 올리며 뼈속 깊이 파고드는 차가운 물에 잠기니 정신이 바짝 들었어요. 이렇게 짧은 침수의 순간에 어찌 제 죄가 다 씻기어 지리오만은 무언가 후련한 기분과 찬 물에 담그 었던 내 육체 깊숙한 곳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물듯이 퍼져오고 있어 나는 행복 했습니다.

곳곳에 자리한 초 봉헌대에는 사람 키만한 초가 일 년 열두 달 끊이지 않고 타오른다 하여 나도 고향에 계신 할머니, 아버지와 곧 교리 받으시겠다는 어머님을 생각하며 초를 봉헌합니다. 오월에 들어서면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순례자들로 떠밀려 다녀야 한다는데 한가한 겨울의 루르드가 너무 좋았어요.   발현하셨을 때 모습의 성모상 아래는 벨라뎃다가 성모님의 지시에 따라 팠던 샘이 자물쇠로 잠근 유리판 아래에서 오늘도 쉼 없이 샘물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밝게 조명을 켜두어 더욱 신비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는군요.

동굴 오른편에 막 우리가 침수를 끝낸 침수욕탕(?)이 길게 자리하고 있었고 왼편에는 순례자를 위해 수도꼭지가 가지런히 박혀 있네요. 마치 학교운동장에 수도꼭지가 일 열로 박혀 있는 급수대와 흡사합니다. 가게에서 산 장미꽃 문양의 성수병과 커다란 성수통(5L)에 성수를 가득 받으며 나도 모르게 기적을 바라는 맘 가득히 품에 안고 옵니다. 소박한 이 마음을 기복 신앙이라고 너무 야단치지 마시라...   

아침 미사 때에 지도 신부님과 수원 교구청에서 함께 근무했던 자매님이 우연찮게 상봉한 사건을 이야기 해야겠군요. 자매님은 협조자(평신도 수도생활)가 되어 이곳 루르드에 상주하고 있답니다. 이곳에 상주하는 수녀님으로부터 한국에서 온 순례자들이 한국 신부님을 모시고 미사를 드린다기에 함께 미사를 드리러 왔답니다. 그런대 집전하는 신부님이 바로 교구청에서 모셨던 송 신부님인 것을 알고 서로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던 걸요. 참 흔치 않은 인연일 거예요. 저희들도 어찌나 반갑고 기쁘던지. 바로 그 자매님이 오후에 신부님 모시러 온 길에 우리 내외를 특별히 초대하여 숙소인 수녀원을 방문했습니다.

마사비엘 동굴 건너편에는 루르드 마을이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요.

힘이 부치지 않은지 산골 동네 골목을 따라 붉은 씨트로엥을 타고 조금 달렸나, 마을이 끝나고 포도밭이 이어지다가 붉은 지붕의 수도원이 나타나더군요. 푸른 산으로 이어지는 선이 고운 언덕에 자리한 수도원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넓은 마당에는 서 너 아름 실히 돼 보이는 고목 여남 그루가 겨울을 나고 있고, 4층 고풍스러운 돌 건물 창마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넘쳐 쏟아질 것만 같은 수녀원에 제가 왔답니다. 한적한 수녀원의 응접실에는 찻물이 끓고 있었어요. 한국에서 평생을 보내셨다는 주근깨가 쏟아진 평상복의 프랑스 수녀님이 활짝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네요. 수녀님은 이곳에 와 있는 것이 외려 마음이 불편하다며 대전 교구로 돌아가고 싶다고 연신 웃음보따리를 풀면서 우리를 반겨주셨습니다. 베트남, 대만, 인도...아시아에서 온 건강하고 잘 웃던 평신도 수녀님( 협조자)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연신 키득거리며 웃음이 끊어지지 않던 수녀님들, 무엇이 이 분들을 웃지 않고서는 배겨낼 수 없게 만들었을까 한참이나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우울한 순례자가 다다를 수 없는 너무 아득한 곳이 아닐 까 하여 부럽고 또 부러웠습니다. 참 그분들께 선물을 망설이다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우리 본당에서 펴낸 책 한 권을 드렸습니다. 마음에 들었을른지...   

루르드사람들이 사는 마을(약 천오백 명 된다지요)은 깨끗하게 잘 정돈 된 한적한 농촌마을로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먼저 벨라뎃다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물레방앗간 집으로 가봅니다. 금방이라도 물레방아가 돌아가며 수건을 머리에 쓴 벨라뎃다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식탁으로 들어 설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보존하고 있네요. 물레방앗간 주인인 벨라뎃다 아버지는 빚보증 잘못 서 집도 없이 쫓겨나게 만든 무능한 가장이래요. 빚 독촉에 쫓겨난 가족이 딱해서 외삼촌이 나서서 평소 마을의 감옥으로 사용했던 집을 개조하여 벨라뎃다네가 들어가서 살게해 주었다네요. 감옥으로 쓰던 집이니 오죽했겠어요? 몹시 초라했고 햇볕도 들지 않아 병약한 벨라뎃다가 무척 고생했답니다. 성녀 가족들의 신산했던 가난과 함께 신심 깊은 모 습을 볼 수 있게 정돈이 되어 좋았습니다. 

루르드 마을은 이제 유명한 성지가 되어서인가 기념품 가게가 많습니다. 유명한 루르드의 묵주와 장미 문양이 들어간 성수병, 기념카드 몇 장 사면서 선입견 때문인가? 성물도 무척 예뻐 보이던 데요.   

참, 빠뜨릴 뻔 했네, 한국에서 온 수녀님이 안내해준 벨라뎃다 성녀 기념관을 둘러 본 소감을 ...

성지 정문 맞은편에 약간 떨어진 "벨라뎃다 성녀 기념관"을 둘러봅니다. 물레방앗간을 하던 다소 여유 있었던 집과 가족들의 모습과 평소에 마을 감옥으로 사용했던 두 번째 집과 그 시절의 딱한 모습도 흑백 사진으로 잘 진열되어 있습니다. 병약한 성녀가 첫 영성체 교리도 미처 받지 못한 어린 나이에 다른 집에 더부살이하러 간 기구했던 시절에 아빠한테 쓴 편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연은 집에 데려가 달라는 애절한 편지래요. 비록 가난해도 어머니와 가족들이 오손 도손 모여 사는 집에 비길 수가 있을까요. 까맣게 윤기 흐르는 묵주가 가지런히 놓여 있길래 수녀님께 물어보았더니 벨라뎃다가 평생 지니고 기도드리던 묵주였답니다. 성모님 발현 후 이곳에서 가장 부유한 귀부인이 자신의 보석으로 만든 묵주와 바꾸자 했지만 성녀는 그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대요. 거절하던 성녀의 단호한 모습을 보는 듯 친근감이 들어서 한참이나 구경했어요.

수녀원 시절, 팬으로 썼던 노트와 편지를 통하여 성녀의 한 생애, 성모님께 의지하며 걸어갔던 지고 지순한 신심을 봅니다. 우리도 과연 그 길을 걸어 갈 수 있을까요 ??   

무염시태 성당을 바라보면서 왼편으로 제법 큰 동산이 있습니다.

무염시태 성당을 설명한다면, 우리가 즐겨 드리는 9일 기도책 첫 페이지에 보면 도미니꼬 성인에게 묵주를 주면서 묵주기도를 자주 할 것을 권유하는 성모님 모습이 생각나십니까? 이 유명한 장면이 성당 전면에 커다랗게 조각되어 있는 성당이지요.

다시 14처 이야기를 계속하지요. 마사비엘 동굴 위로 깎아지른 절벽 위에는 무염시태 성당이 있거든요. 성당을 넘어 붕긋 솟아오른 동산에 마련되어 있는 14처 말입니다. 루르드를 찾는 순례자들은 ‘그분’이 걸으셨던 고난의 가시밭길을 함께 걸어가면서 ‘그분’만을 생각하고, 의지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십자가의 길에 섭니다.

동산을 한 바퀴 돌면서 바치는 고난의 길이 오늘은 외려 ‘그분’과 함께 걸어간다는 생각에 기쁘기 그지없었다면 그대는 어찌 생각하실까요?

실제 크기의 로마병사, 대제관, 빌라도, 성모님과 여인들이 황동 조각으로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지만 제 눈에는 이름 없는 예루살렘 시민들 모습만 또렷하게 들어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 호산나!!"하며 열광적으로 환영하던 그 사람들이 불과 5일 만에 예수님을 죽이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사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 없으심을 알고 살려주려고 몇 차례나 되묻지만 어리석은 유다인들은 발악하면서까지 ‘그분’을 죽이라고 외칩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얼마나 ‘그분’은 외로우셨을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그분’을 죽이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에도 말입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비웃던 우리가 바로 ‘그분’을 죽였던 유다인들과 공범이 아닐까요??? ‘그분’의 성시를 무릎에 누이고 비탄에 잠기신 성모님, "피에타"는 우리를 깊은 묵상으로 안내 합니다.

제14처가 끝나고 동산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내려오는 동산 초입에는 제15처가 있습니다. 
커다란 연자방아 돌을 세워둔 듯 ...아 ! 한 눈에도 알 수 있는 빛, 빛으로 표양되는 부활, 그래 ‘그분’의 부활이었습니다. (원래 십자가의 길은 14처가 맞지요. 그렇지만 수도원이든 성당에 15처를 만든 곳이 많아졌습니다. 15처는 예수님의 수난이 끝난 뒤 부활을 알려주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죽음과 죄지음의 상태에서도 ‘그분’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가 깨끗하게 다시 태어나는 부활의 신비를 가르쳐줍니다....

아내도 상기된 표정으로 부활의 15처 앞에 한참이나 서 있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선물인가, ‘그분’이 불러 주셔서 떠난 순례길 내내 맛보는 ‘그분’의 숨결과 따스함을 느끼며 이리도 커다란 은총 속에 저물어가는 루르드, 마사비엘 동굴과 어서 오라고 팔을 벌리신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어둡도록 넓은 성지 마당에 서 있었습니다. 어둠이 밀려올수록 봉헌초가 밝게 빛나며 그 어둠을 밀어 내고 있습니다. 세상이 힘들어 갈수록 ‘그분’과 성모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환한 빛으로 타오르듯이 루르드, 그 고적한 마당에서 오래 서 있었습니다. 어디에서든 그 사랑은 목마른 가슴에 그리움의 물살로 다가오겠지요.

머리에 흰 눈을 이고서 해도 나지 않은 한낮, 내내 빛나던 피레네 산맥의 시린 이마가 희미해질 때면 루르드 여기 저기 흩어져 깊은 묵상에 잠기던 순례자들이 저녁을 먹으러 호텔로 모여듭니다. 벌써 이국 음식이 맞지 않아 바게트를 조금 떼어 커피에 적셔 입에 넣어도 목이 메입니다.   

화이트 와인 한 모금 마시며 루르드 이야기는 끝낼까요? 식사 후 비수기인 터라 밤11시에 체크아웃 할 때까지 방에서 머리도 감고 샤워를 합니다. 왜냐고요? 밤 12 시 침대 열차를 타고 다시 파리로 가야 하거든요.

떠나는 순례자를 붙잡는가, 가부강 물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데 루르드 시골역 대합실에서 루르드와 비로소 이별을 합니다. "다시 올게, 어찌 루르드를 잊을까. 가부강도, 어둠 속에 홀로 타오르던 봉헌 촛불도"

이별의 대합실은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똑 같나봅니다. 자꾸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언제 다시 올런지 그냥 내다보는 루르드 역전의 외로운 가로등이 졸고 있었습니다. 덜커덩 거리는 침대에 누워서 깊은 잠에 빠집니다. 쉴새없이 흐르는 가부강 물소리가 밤을 도와 달리는 밤 열차와 함께 파리로 가고 있었습니다.   

루르드의 추억은 잊을 수 없네요. 비로소 "어머니!" 하고 성모님께 매달렸으니까 말예요...   

*********** 루르드의 감동을 어찌 글로 전할 수 있을까요? 역시나, 루르드였고 영원한 어머니가 계신 곳이었습니다. 다시금 루르드에서 추억을 끄집어내어봅니다. 만분지 일이라도 이 감동과 따스했던 어머니의 손길을 다 전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