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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대중음악은 일제 강점기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조선시대 민중들에 의해 향유되었던 예술양식들이 있지만, 그것은 ‘대중(大衆)’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대중’이라는 용어 자체가 근대 이후 익명으로 존재하는 개인을 지칭하고 있기에, 대중예술은 특정화되지 않은 대중을 염두에 두고 벌이는 예술 행위를 일컫는다. 일단 제목의 ‘근대가수’라는 표현에서, 책에서 다루는 대상들이 20세기 이후의 근대에 활동했던 가수들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현대’가 아닌 ‘근대’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그 활동 시기를 일제 강점기로 한정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재해 있다고 이해되었다. 물론 해당 인물의 해방 이후의 활동까지 소개하고 있지만, 주로 처음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불렀던 노래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당대와 이후의 평가까지를 폭넓게 소개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시작된 ‘열전’이라는 양식은 당시 천자나 제후 등의 활약에 관심을 기울였던 기존의 글쓰기에서 벗어나, 평범한 이들의 삶과 활동에 대해서 소개하기 위해 시도되었다. 예컨대 천자의 삶을 ‘본기(本紀)’라는 항목으로 설정하여 소개하였고, 각 국 제후의 일생은 ‘세가(世家)’라는 제목을 붙여 소개하였다. 이에 반해 ‘열전(列傳)’은 유명 장수나 정치인으로부터 평범한 이들의 삶을 소개하는 형식이다. 그래서 ‘자객열전’에서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했던 다양한 자객들을 소개한다든지, 상업 활동을 큰돈을 벌었던 인물들에 대해서는 ‘화식열전’에서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열전’이란 평범한 이들의 삶을 간략하게 정리하는 형식이기에, 저자는 ‘근대’의 시기에 가수로 활동했던 다양한 이들의 활동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소개하는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매우 튼실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들이 불렀던 노래들의 목록이나 레코드로 취입했던 상세한 사항까지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의 신문기사와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를 활용하고 있으며, 가수 활동을 지속하거나 그만 둔 이후의 상황도 확인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면모는 저자가 국문학을 전공했던 학자로서, 은퇴한 이후 대중음악에 관심을 기울여 활동했던 경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일제 강점기의 가요들을 수집하고 소개하는 ‘옛 가요 사랑모임’인 ‘유정천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으며, 그러한 활동을지속하기 위해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의 대표를 맡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관심과 열정이 있었기에, 방대한 내용과 분량으로 이 책을 엮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 책에는 모두 50명이 넘는 ‘근대가수’들을 다루고 있으며, 가수 활동에 관한 개별 인물들의 세세한 사황들이 망라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 독자들도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가수나 노래들이 있는가 하면, 낯설고 처음 들어보는 인물과 노래 제목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하겠다. 지금은 가수 활동을 하는 것이 대중들의 관심과 명예는 물론이고 경제적인 측면을 보장하는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가수를 포함한 대중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에도 인기와는 상관없이 대중가수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리 높지 않았던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짧은 기간 활동했던 가수들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고, 이 마저도 체계적인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겠다. 저자가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가수로서의 활동을 그만 둔 이후에는 철저하게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살아갔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잊혀져가던 기록들을 발굴하고 정리함으로써, ‘옛 가수들의 생애를 다시금 정리’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기획 취지라고 하겠다. 저자의 관심 아래 ‘폐혀에 방치된 편린들을 하나 둘씩 찾아내어 깁고 짜 맞추어 생애사를 회복시키며 여러 가수들의 사람을 열전이라는 이름으로 복원’한 것이 주된 내용이다. 초고를 완성한 후 수정과 교정 과정에만 5년 정도가 소요되었다고 하닌, 저자가 이 책에 기울인 열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 독자들도 책의 내용을 통해 해당 인물에 대한 꼼꼼한 정보 수집을 통한 가수 활동의 전모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대중음악 전공자들에게도 유용한 자료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된다. 특히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수 개인별 작품 목록’을 별도의 표로 제시하고 있어, 자료로서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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