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 | 시대 및 장소 | 고분양식 | 대표 고분 | 특징과 내용 |
신석기 |
| 독무덤(甕棺墓) | 부산 동삼동, 진주 상촌리 | 항아리를 이용하여 매장 |
움무덤(土壙墓) 광(壙) 뫼구덩이 광 2. 굴 광 3. 넓은 광 | 통영 연대도(煙臺島)와 욕지도(欲知島), 전남 여수 안도(安島). 춘천 교동동굴 | 땅을 파고 시신을 매장. 연대도에는 일종의 공동묘지 성립. 울산 后浦里의 바닷가 골장제묘 |
청동기 | 고인돌(支石墓, dolmen) | 탁자식고인돌(卓子式支石墓, 北方式支石墓) | 황해도 안악, 대동강, 재령강, 황주천 일대, 평안남도 용강군 석천산(石泉山) 일대, 강원도 고성과 춘천, 전라북도 고창 | 형태상으로는 지상에 4개의 판석형(板石型) 고임돌(支石)을 세워서 장방형(長方形)의 무덤칸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上石)을 올려 놓은 탁자식(北方式) 고인돌이다. |
바둑판식고인돌(碁盤式支石墓) | 전북 고창, 전남 화순, 인천시 강화, 전남 여수 적량동(비파형동검 출토) | 판돌(板石), 깬돌(割石), 냇돌(川石) 등을 사용하여 지하에 무덤칸을 만들고 덮개돌(上石)과 무덤칸 사이에 3, 4매 또는 그 이상의 고임돌(支石)이 있는 형식으로 지하 매장시설의 구조는 돌널형(石棺形), 혼축형(混築形) 돌덧널형(石槨形), 돌돌림형(圍石形) 그리고 토광형(土壙形)등 다양하다. |
개석식 고인돌(蓋石式支石墓) |
| 고임돌(支石)이 없이 지하에 있는 매장시설 위를 뚜껑처럼 덮개돌(上石)이 직접 덮고 있는 형태이다. 이 형태는 무지석식, 접지형, 심촌리형, 구덩식, 대석개묘 등이라고도 하며, 변형 고인돌로 간주하여 기반식(南方式)고인돌 안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
묘역식고인돌(墓域式支石墓) |
| 경남 산청군 매촌리, 경남 진주시 초전동 |
돌널무무덤(石棺墓) |
| 遼河의 동쪽, 松花江 유역, 부여 송국리 유적(비파형동검 부장) | 직사각형 모양의 사방의 벽을 널돌(판석板石)로 조립해 만들고 그 안에 시체를 두는 무덤. |
움무덤(土壙墓) |
| 內蒙古, 遼西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7호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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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무덤(甕棺墓) |
| 한반도 서남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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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지무덤(積石墓) |
| 웅진 시도(矢島), 황해도 황주 침촌리, 경남 통녕 연대도와 욕지도, 강원도 춘천시 진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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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덕무덤. 둔덕은 두두룩하게 언덕진 곳 | 崗上무덤 樓上무덤
| 사람 머리만한 돌을 쌓아 올려 둔덕을 만들고 그 안에 돌널을 만들거나 움을 파고 그 위에 시시매장. 1963년 북한과 중국 두 나라 고고학자들의 공동발굴에 의해 이루어졌다. 기원전 6~7세기경의 崗上무덤과 약간 늦은 시기의 樓上무덤은 누상(樓上)이라고 불리는 작은 언덕 위에 있는 이 무덤은 언덕의 정상부를 평평하게 고른 뒤 주위에 커다란 돌로 담을 쌓아 한 변에 20m 가량의 방형 구획을 정한 후 그 내부에 여러 개의 무덤구덩이를 만든 형태이다. 그 위에는 검은 흙과 자갈을 섞어서 전체를 덮었다. 심양 정가자와 6512호 |
철기시대 | 초기 | 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 | 요동 운가촌무덤, 부여 합송리, 논산 운북리, 장수 남양리, 함평 초포리무덤 |
덧널무덤(木槨墓) | 평양 정백동과 태성리, 영천 어은동, 경주 일십리유적. 위만조선의 지배층이 남긴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 |
| 널무덤(木棺墓) | 진한 경주 조양동과 사라리. 성주 백전 예산리. 변한 창원 다호리 유적. 마한 박장. 진한변한 후장 |
| 덧널무덤(木槨墓) | 구덩이를 파고 널[棺]을 넣는 덧널[木槨] 시설을 나무로 만든 무덤 | 강서 태성리, 은율 운성리, 봉산 송산리 당촌, 경주 구정동·입실리, 화순 대곡리, 김해 양동리·예안리 |
| 주구토광묘(周溝土壙墓) | 안산 신길택지구(2007). 서산시 해미면 기지리(2005) | 신길택지지구에서 2007년 6월 주구토광묘(周溝土壙墓)와 집터 23기 등 다량의 신석기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었다. 서산서 4-5세기 백제 집단 분구묘 46기, 동경 1점ㆍ흑색마연토기 7점 무덤 주위로 주구(周溝)라고 일컫는 도랑과 비슷한 시설물을 돌린 분구묘(墳丘墓) 46기가 떼를 이룬 채 충남 서산에서 확인됐다. 공주대박물관(관장 이남석)은 2005년 7월1일 이후 서산시 해미면 기지리 공군시험장 예정지 일대 7천700여 평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9기와 같은 시대 수혈유구 6기, 초기삼국시대 주거지 2기 외에 4-5세기 백제시대 분구묘 46기를 확인했다고 7일 발표했다. 이 중 분구묘는 일정한 구역에서 매우 밀집도가 높은 상태로 조성됐음이 밝혀졌다. 이들은 시신을 안치한 매장 주체부를 중심으로 한 변 10-20m 가량 되는 사각형 주구를 마련했다. 주구는 네 모서리 각을 죽인 이른바 말각방형(抹角方形)이었다. 주구 중앙부에는 역시 말각방형으로 땅을 파고들어가 토광(土壙.흙구덩이)을 마련한 다음, 거기에 시신을 안치한 목관(木棺.널)을 놓았음이 조사결과 밝혀졌다. 21호 분구묘의 경우, 매장 주체부 중앙에 중국에서 수입한 한식경(漢式鏡)의 일종인 사유훼룡문경이라는 동경(銅鏡) 1점이 발견됐으며, 묻힌 사람의 왼쪽에는 모종의 청동기물을 구성한 부속품이었다고 생각되는 환(環.고리)과 방울이 출토됐다. 아울러 이 무덤에서는 수정과 벽옥제 관옥(管玉. 푸른빛이 도는 대롱 모양 옥), 금박옥 등이 확인됐다. |
| 분구묘(墳丘墓) | 영산강 중하류역의 나주(羅州), 함평(咸平), 영암(靈岩) 일대 / 움무덤을 매장주체부로 하는 초기 분구묘로서 함평 예덕리 만가촌(萬家村)무덤, 영암 만수리(萬樹里) 4호분, 나주 용호(龍虎)무덤, 독무덤을 매장주체부로 하는 대형 분구묘인 나주 대안리(大安里)무덤, 무안 사창리(社倉里)무덤, 영암 시종 옥야리(沃野里)무덤 | 일반적인 무덤은 지하나 반지하, 혹은 지상에 매장시설을 만들고 그 매장시설 위로 흙이나 돌을 쌓아 봉분(封墳)을 만들지만, 분구묘는 미리 흙이나 돌로써 봉분과 같은 분구를 조성하고 그 위에 매장시설을 만드는 독특한 무덤양식이다. 분구묘는 주검을 안치하는 매장주체부의 형태에 관계없이 분묘의 외형에 따라 분류한 것이며, 성토한 봉분 속에는 독널무덤 혹은 널무덤 등 다양한 묘제가 존재한다. 외형 형태에 따라 원방형분(圓方形墳)과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으로 나눌 수 있다. 원방형분은 최근에 조사 예가 증가하고 있으며, 전방후원분과 계기적으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서울 가락동 2호분, 천안 두정동 분구묘, 익산 율촌리 분구묘 등을 들 수 있으며, 전북 고창 지방에 집중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가락동 2호분과 천안 두정동은 분구 외곽에 도랑[주구(週溝)]이 없는 반면 익산과 고창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분구묘에서는 주구가 확인되고 있으며, 이 주구 내부에서 대형 독널무덤이 출토되고 있어 영산강유역에 집중 분포하고 있는 전방후원분과 상호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축조 시기는 대략 3세기에서 4세기경으로 판단하고 있다. 전방후원분은 일본의 고분시대(4~6C경)에 성행했던 무덤양식으로, 평면도상으로 보면 원형(圓形)과 방형(方形)의 분구가 붙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 악기인 장고의 형태와 유사하다고 하여 장고분(長鼓墳)으로 불리우고 있다. 영어로는 원형과 방형의 구멍이 이어진 열쇠구멍 모양과 유사한 점에 착안하여 ‘Keyhole-shaped tomb’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이전에 이 묘제는 일본에 집중 분포하고 있어서 일본의 고유묘제로 판단했으나,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많은 수의 전방후원분이 확인되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파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대표적인 전방후원분으로는 전라남도 광주시 월계동(月桂洞) 1호분과 2호분 그리고 명화동(明花洞) 고분, 함평군(咸平郡)의 신덕(新德)고분 등이 발굴 조사되었고 해남(海南)과 함평의 장고산(長鼓山)고분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나주 신촌리 9호분 을관(乙棺)에서는 금동관?환두대도를 비롯한 화려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들 전남지방에서 발견된 전방후원형의 고분들은 대개 매장주체부가 굴식돌방(橫穴式石室)식과 독널무덤(甕棺墓)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분구묘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한 출자를 알 수 없으나, 중국 외몽고의 Noin-Ula고분이 알려져 있으며, 또한 고구려의 돌무지무덤 중에도 압록강 중류 지역의 자강도 초산군(楚山郡) 운평리(雲坪里) 고분군 내의 4지구 6호분이 원형 돌무지분구에 방대형의 단이 결합된 구조여서 전방후원형에 가깝다고 한다. |
삼국시대 | 고구려 | 초기 | 돌무지무덤(積石塚) | 장군총(將軍塚)<吉林省 通溝>.태왕릉(太王陵). 임강묘. 천추묘. 서대묘 | 강변의 대지 구릉 사면에 돌을 쌓아 무덤의 형태를 만들고 그 안에 시신을 매장하고 돌을 덮는 형태. pyramid식으로 석재를 쌓아올린 형식의 7층계단식 무덤 |
후기 | 굴식돌방무덤(봉토돌방무덤,封土石室墳, 土塚) | 쌍영총(雙楹塚) 무용총(舞踊塚), 강서대묘(江西大墓) | 돌을 쌓아 올려 관을 만들고 흙으로 덮는 방식. 석재를 널방(玄室, 관을 들여 놓는 방)을 만든 위에 흙을 덮어서 만든 봉분 四神圖 : 靑龍, 白虎, 朱雀, 玄武 |
| 백제 | 한성시대 | 돌무지무덤3세기 후반~4세기 초반 | 석촌동고분(石村洞古墳), 가락동 90시 | 고구려의 영향 |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 | 宋山里古墳(송산리고분) | 거대한 규모 |
웅진시대 | 굴식돌방무덤 | 능산리고분(陵山里古墳). 호 미하리. 하남 광상동. 원주 법천리. 청원 극성리. 청주 신봉동 | 규모가 작고 세련됨 |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室墳) | 송산리 6호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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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무덤(塼築墳, 塼室墳) | 무령왕릉 | 중국 남조의 영향 |
사비시대 | 굴식돌방무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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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구묘(墳丘墓) | 4세기 이후 | 나주, 영암 등 대규묘 옹관고분 |
| 전방후원형(前方後圓形) |
| 전방후원분은 일본의 고분시대(4~6C경)에 성행했던 무덤양식으로, 평면도상으로 보면 원형(圓形)과 방형(方形)의 분구가 붙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 악기인 장고의 형태와 유사하다고 하여 장고분(長鼓墳)으로 불리우고 있다. 영어로는 원형과 방형의 구멍이 이어진 열쇠구멍 모양과 유사한 점에 착안하여 ‘Keyhole-shaped tomb’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
| 가야 |
| 덧널무덤(木槨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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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 |
| 구덩식 돌방무덤[竪穴式石室墓(수혈식석실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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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6세기 중엽 | 고성 송학동 고분군 1호분 B지구의 횡혈식석실분은 국내 최초의 채색고분 | 원형(圓形)의 분구에 직사각형 또는 사각형 분구를 붙여놓은 평면형을 나타내는 무덤 가야고분의 분포와 출토지역은 고령지역(지산동고분군·중화동고분군·고아동고분군), 함안지역(말이산고분군), 김해지역(예안리고분군·양전동고분군·생곡리고분군), 부산지역(복천동과 연산동고분군·당감동고분군), 경상북도 구미지역(비산동과 내당동고분군) 등이다. |
| 신라 | 3세기 이후 | 경주식덧널무덤 |
| 경주 구정동 고분 |
4세기 이후 |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 | 경주평야의 98호고분(皇南大塚) : 南墳과 北墳의 쌍무덤(瓢形墳), 鳳凰大古墳, 金冠塚, 金鈴塚, 天馬塚, 瑞鳳塚 | 도굴이 어려움 |
지방 |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 |
| 경산, 대구, 창령, 안양, 부산, 의성, 안동 |
통일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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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 경덕왕릉, 흥덕왕릉, 掛陵(괘릉), 金庾信墓 | 호석(護石, 둘레돌)에 12지신상 조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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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 | 무덤의 단벽 일부를 작은 창문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 | 경주 지역의 대다수 |
발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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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 貞惠公主誌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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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돌무덤(塼築墳) | 貞孝公主誌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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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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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태조의 顯陵, 원종의 韶陵, 七陵群 |
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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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