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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篇小說>
북두칠성(北斗七星)
“문수야. 니 하늘에 별이 몇 갠지 아나?”
“그걸 우예아노. 종철이 니는 아나?”
“공부 암만 잘해도 모르겠제. 팔백사십 개 데이”
“말도 아이다. 억만 개도 넘을끼다.”
“들어봐라 와 팔백사십 갠지. 동서남북 사방에 별이 빽빽(백백)하이 이백 개씩 사 이(4*2)는 팔, 팔백 개하고 복판에는 스멀스멀(스물스물)하이 사십 개 아이가. 그래가 팔백사십 개 데이.”
낄낄대는 종철 이를 따라 문수도 배꼽을 잡고 웃었다.
모기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가 지나고 내일 모레면 백로(白露)이다. 낮에는 아직까지 여름 못잖게 덥지만 밤기운은 제법 가을 티를 내고 있었다. 상큼한 초가을 밤하늘에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좌우에 잔별들을 거느리고 대장인 냥 내려앉았다. 평천(平川)양반 문수(朴文秀)는 자기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살평상에 누워 북두칠성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하늘에 별이 팔백사십 개라며 낄낄대던 종철(玄宗哲)이가 북두칠성 위에 걸터앉아 ‘내 말 맞제?’하면서 빙그레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맞다. 팔백사십 개가 틀림없다. 종철이 니 가 내 보다 훨씬 더 똑똑 하데이.’
한 여름 밤에 모기에 뜯기며 종철 이와 살평상 위에서 뒹굴던 때가 어제만 같았다. 세월이 구름 따라 바람 따라 저 혼자 가는 줄 알았더니 그 등위에 올라 탄 채로 같이 흘러간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 같았다. 무심한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청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열흘 남짓이면 보리타작에 모내기에 눈코 뜰 새가 없겠지만 농부에게는 지금이 잠시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시기이다. 겨울 같았으면 벌써 어둑어둑 할 시간인대 아직도 해가 서산까지 한 뼘도 더 남겨두고 있다. 해가 제법 길어졌다.
문수는 이른 저녁을 먹고 모처럼만에 소(沼)에 가서 밤낚시나 할까하고 낚시도구를 챙기고 있었다.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강물이 홍수가 지면 둑을 넘어 들어와서 강이 되었다가 물이 줄어들면 연못이 되는 곳이다.
“어사또 기시능가?”
문수가 낚시도구를 울러 매고 막 나서려는데 종철이가 찾아왔다.
“종철인가? 어서 온나. 손에는 또 뭐고?”
종철 이는 문수가 왠지 어려웠다. 자신은 국민학교(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지만 문수는 서울에서 아무나 못 들어가는 일류대학을 나왔고 극동일보 기자까지 지낸, 군(郡)에서도 손꼽을 ‘글 좋은 양반’이었다. 문수의 부친께서 암행어사 박문수 같은 인물이 되라고 이름도 문수라고 지었다는 말을 듣고 종철 이는 ‘글 빌릴’ 일이 있거나 부탁할 일이 있을 때는 문수를 ‘어사또’라고 부르곤 했다.
문수는 종철 이에게서 ‘일손’을 빌리고 종철은 문수에게 ‘글’을 빌렸다. 종철은 제사 때 지방(紙榜)쓰는 것도 문수의 신세를 졌다. 종철이 비록 가방끈이 짧다하여도 지방쯤이야 쓸 수 있었지만 아무리 정성을 들여 써 봐도 글씨가 크다가 작았다가 뱀처럼 구불대는 통에 도저히 조상님에 대한 예가 아니다싶어 문수의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다. 묘한 것은 그놈의 붓이 문수의 손에만 쥐어지면 언제 난동을 부렸냐는 듯이 얌전해졌다. 한 획, 한 획 보기 좋게 그어지고 글씨가 가지런하게 앞으로나란히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슨 조화를 부리고 있는 것같이 신통 방통 하였다.
문수는 평소에는 영락없는 농투성이다가 붓을 잡거나 낚싯대를 잡고 있을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왠지 모르게 근접할 수 없는 위엄이 있는 것 같아 종철은 은근히 주눅이 들고 존경하는 마음까지 일었다. 그런대 문수가 종철이의 일손을 빌릴 때면 종철은 신바람이 났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모를 난감한 일도 종철이가 일머리를 척척 틀어서 서두르지도 않고 늑장부리지도 않으면서 솜씨 있게 해치우면 문수는 감탄을 연발하였다.
이래저래 둘이 같이 붙어있는 시간이 마누라와 같이 있는 시간보다 더 많았다. 문수가 있는 곳에 종철이가 있었고 종철이가 보이면 문수도 보였다.
종철이가 대문 안에 들어서면서 ‘어사또’라고 부르는 걸보니 분명 긴히 부탁 할 일이 있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안식구가 글 좋은 팽천(平川)양반께 얼라 이름 지어 오라고 난리아이가.”
동동주를 찰랑찰랑 넘치게 담은 두 되짜리 큼지막한 주전자와 갓 삶은 돼지수육을 평상에 펼쳐놓는 종철의 입이 귀밑에 걸려있었다. 잘 익은 동동주 향기와 구수한 수육냄새가 저녁상을 물린지 오래지 않았음에도 또 다른 식욕을 자극하였다.
“오늘 돌팔이 작명가 호강 하네 천하일품 제수씨 동동주에 기름진 안주에다가. 너무 과 하데이.”
“삼칠 지낼 때가지 부정 탈 까바 무던히도 참았던 기라. 오늘아침에야 태몽 이야기를 하면서 이름 지어오라 안 카나.”
종철은 문수의 잔에 술 주전자를 기울이면서 영험이 사라질까 가슴속에 꼭꼭 묻어 두었던 아내 화산댁(花山宅)의 태몽 이야기를 혹시나 부정 탈까 두렵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참 말로 얄궂데이.’
오후 새참 때도 아직 한참 멀었는데 어느새 해가지고 깜깜한 밤이 되었다. 콩밭을 매던 화산댁은 허리를 펴고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온통 먹물을 뿌려 놓은 듯 한치 앞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먼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우르릉 우르릉 은은하게 울리었다. 갑자기 하늘 한편이 훤해 지더니 북두칠성이 가랑잎처럼 너울너울 떨어지고 있었다. 화산댁은 얼결에 치마를 펼쳐 북두칠성을 받았다. 순간 별의무개를 감당하지 못해 벌러덩 자빠지고 말았다. 치맛자락이 화산댁의 얼굴을 덮었다. 숨이 막혀 헉헉거리다가 꿈에서 깨었다. 남편(종철)이 통나무 같은 다리를 가슴위에 걸쳐놓고 드르렁 드르렁 천둥같이 코를 골고 있었다.
‘얄궂어라. 참 말로 얄궂은 꿈도 다 있데이.’
생생한 꿈의 기억을 더듬던 순간 번갯불이 번쩍 화산 댁의 머리를 후려치는 것 같더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하였다.
‘태몽 아이가?!’
화산댁은 황급히 종철 이를 깨우려다가 멈칫하였다. 미리 꿈 이야기를 해버리면 영험이 사라져 버린다던 말이 퍼뜩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영험이 사라진 거는 아이겠제?”
태몽 이야기를 대충마친 종철이가 속이 타는지 벌컥벌컥 잔을 비우고 간절한 눈빛으로 문수를 바라본다.
“머라카노 영험이 사라질 택이있나. 떡두꺼비 같은 아들 얻은 것만 해도 영험을 본긴데. 고놈 참 큰 인물이 될라는 갑다.”
“그렇제? 고맙데이. 고맙데이.”
문수는 종철이 참 순수 하다고 생각하였다. 아니 영혼이 참 맑다고 생각 하였다. 정겨운 하늘과 산천과 논과 밭이 있고 영혼까지 맑고 순수한 친구가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그리고 그 고향으로 내려온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기자를 그만 둔 것, 낙향, 그리고 시골여자와 결혼한 것 이 세 가지가 문수 스스로 살아오면서 가장 잘 한일로 꼽는 것이다. 더 영악한 도시사람이 되기 전에 기자를 그만둔 것이 잘했고 아버지의 병환이 더 깊어지기 전에 낙향한 것이 잘 했고 하이힐을 신고 짧은치마를 입는 며느리가 어찌 시부모를 모시랴 싶어서 예의범절을 아는 시골여인과 결혼한 것이 참으로 잘한 일이었다. 시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신 것 만해도 본전은 챙긴 셈인데 남편 문수를 하늘로 알고 떠받드니 복에 겨운 호강이다 싶었다. 거기다가 농사철이 되면 종철이가 자기 일처럼 큰 일머리를 터주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지 몰랐다. 종철이라면 열 아이 이름도 지어줄 터에 거나한 술대접까지 하니 고맙고 미안하기는 문수이다.
“북두칠성 정기를 타고 났으니 호적에는 북두(北斗)로 올리고 집에서 부르는 이름은 칠성(七星)이로 하면 어떻노. 태몽 그대로 북두칠성 아이가.”
“칠성이? 북두? 현북두(玄北斗)라. 좋다! 참말로 좋다! 어사또 니는 천재 데이. 좋은 이름을 우예 그리 쉽게도 짓노. 우리북두가, 우리칠성이가 어사또 문수 니 같은 인물만 됐으면 좋겠데이.”
“머라카노 내같은 사람이 돼서 머 할라고. 큰 인물이 돼 야제. 캄캄한 밤에 북두칠성 같은 큰 인물이 돼 야제.”
“문수니 가 우리 면(面)에서, 아니 우리군(郡)에서 최고 큰 인물 아이가. 벼슬도 하기 싫어서 그렇지 맘만 묵으면 판검사를 몬 하겠노. 군수를 몬 하겠노. 니는 자랑스러운 내 친구데이. 친구지만 니를 존경 한데이."
“종철아 니도 자랑스러운 내 친구데이. 니가 있어서 내가 고향에 올수 있었고 농사지을 수도 있제. 고맙데이.”
초 여름밤. 열나흘 달빛을 실은 바람이 종철 이처럼 순박하다. 부드럽게 얼굴을 스치는 밤바람에 취하고 손을 담그면 금방이라도 파랗게 물들어버릴 것만 같은 달빛에 취한다. 멀리서 개짓는 소리가 한가롭게 들려온다. 아마도 달빛이 너무 좋아 개도 낭만에 젖어드는가 싶었다. 적은 것에 감사 할 줄 알고 욕심 없이 살아가는 영혼조차 순수한 종철이 와함께 한 폭의 그림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문수는 이럴 때 더욱 고향에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껏 취하고 싶었다. 신문사 시절에 문수의 몸은 문수의 것이 아니었다. 신문사의 것이었고 독자의 것이었다. 물론 보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특종’의 중압감에 시달리다가 잠을 설치고 술에 절었어도 출근을 해야 했고 독자를 만나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일까지 하루를 당겨써도 뭐랄 사람이 누가 있는가. 이제야 문수의 몸이 문수의 것으로 돌아왔다. 종철이 를 위하여 칠성이 를 위하여 되찾은 자유를 위하여 오늘은 맘 놓고 취하고 싶었다. 종철이가 문수의 마음을 아는 듯이 호기를 부린다.
“문수야. 우리 집에 가서 한잔 더 묵자. 내일까지 묵어보자.”
“오야. 오늘 우리 둘이 코가 함 비뚤어져 보자.”
문수의 맞장구에 종철이 는 어사또를 모시고 기방(妓房)을 찾아가는 이방처럼 신바람이 났다.
“북두야! 칠성아! 아부지가 어사또 모시고 간데이. 느그 큰 아부지 모시고 간데이!”
먼데 개가 종철이의 신바람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이 길게 목청을 뽑으며 짓는다. 서쪽하늘로 훨씬 치우친 달과 북두칠성이 어깨동무를 한 채 갈지 자(之字)걸음을 걷는 종철이 와 문수를 잔잔한 미소로 지켜보고 있었다.
“암행어사출도(暗行御史出頭)야! 칠성이 엄마는 술상을 대령 하거라! 암행어사출도야!”
‘그날은 참 많이도 마셨제. 어제 같구마는. 바로 어제일 같구마는.....’
종철이가 없는 살평상이 서럽고 흰 달빛이 서럽다. 오늘은 고향조차 서럽다. 나이 탓인가. 문수의 눈가가 촉촉이 젖는다. 그날처럼 먼데 개가 목청을 길게 빼고 짖고 있는 것 같다.
“감기 들겠심더 방에 들어 가입시더.”
언제 왔는지 아내 평천댁이 문수 뒤에 그림자처럼 서있다.
“잠이 쉽게 오지 않을 것 같구만.”
“갑들 논 때문에 카십니꺼 전(全昌浩)서방을 믿어야 지예.”
전서방은 딸(銀河)의 남편이다. 그러니까 문수의 사위다. 위인이 듬직하지를 못하고 어딘가 불안하고 미덥지가 못했다. 딸과 사위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교사이다. 비교적 평탄한 길을 가고 있어 한시름 놓았다고 했는데 전서방은 툭하면 ‘선생질’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사업’을 한답시고 덜컥 사표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는 맨 처음 한 짓이 자가용을 산 것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사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자가용으로 구체화되어 문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좋은 일은 예상 되로 들어맞기가 복권 맞추기보다 어렵다. 반대로 나쁜 일은 그냥 비켜가도 좋으련만 어쩌면 예감에 그렇게 잘도 들어맞는지 몰랐다. 사업가 전 서방은 6개월이 못되어 처가에 손을 벌리기 시작하였다. 야금야금 가져간 돈이 2천만 원이 넘었다. 아무리 탄탄한 살림이라지만 시골살림이다. 기둥뿌리를 흔들어 놓았다. 더욱 기막힌 노릇은 갑들 논 열 마지기를 3천만 원 담보설정을 해준 것이었다.
문수는 갑들 논 열 마지기가 결코 온전하지 못할 것 같았다. ‘사위도 자식인데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제가 편히 모시겠습니다.’ 논을 담보 잡아 갈 때도 사위는 이렇게 낮 간지러운 생색을 내었다.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지 돈 뜯어 갈 때마다 가짜보증서 써주듯이 남발 하던 생색이다. 새삼 괘심하고 얄미웠다. ‘딸 가진 게 죄인이다.’ 문수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내 탓이다. 내가 욕심이 과한 탓이다. 벌을 받고 있는 기다.’
생각해보면 <칠성이 사건>이후로 종철이도 몸을 망치고 문수의 일도 매듭이 꼬인 것 같다.
“방에 들어 가시이소. 술상 봐 드리겠심더,”
문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북두칠성위에 종철이의 슬픈 얼굴이 겹친다.
‘종철아. 미안 하데이. 북두칠성(北斗七星)의 배필이 되라고 은하수(銀河)라고 했구마는... 영험이 사라질까 아이들 클 때까지 기다리다가 말도 몬하고...내가 마이 미안 하데이.’ 문수는 천근같은 몸을 일으켜 휘청휘청 방안으로 들어갔다.
“임자도 거기 좀 앉으소.”
술상을 들여놓고 나가려는 아내 평천댁을 문수가 눌러 앉혔다. 평천댁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 도 남편의 말을 거슬러 본적이 없었다. 이유를 묻는 법도 없었다. 다소곳이 마주앉았다. 문수가 평천댁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참 선한 얼굴이다. 그 선한 얼굴에 굵은 주름과 잔주름이 교차하고 있다. 마음이 애잔해진다.
“임자. 갑들 논 열 마지기는 이제 우리 논이라 생각마소. 은하를 칠성이 와 맺어줄긴데. 내 가 욕심이 과했지.....”
“암만 그래도 정신 줄 놓은 사람에게 우찌 은하의 장래를 맡기겠습니꺼. 몸 상합니더. 너무 마음쓰지 마시소.”
문수는 딸 은하 생각에 칠성 이와 종철이 생각에 그리고 갑들 논 열 마지기와 전 서방 생각에 모처럼 만에 흠뻑 취하고 말았다.
4월 중순이다. 봄이 제법 깊은 시기이지만 꽁꽁 얼었던 얼음이 녹아 흐르는 산골짜기의 물은 아직 뼈가 시리도록 차다. 하해(河海)는 가는 물줄기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듯이 수 갈래의 골짜기 물을 한줄기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받아들인 마을 머리맡의 저수지는 봄이 되면 문수와 종철이의 논을 비롯하여 마을 들판의 젖줄이 된다. 이른 아침부터 맨발로 못자리에 첨벙 뛰어든 종철이의 발목에 차디찬 산골물이 감긴다. 찬 기운이 가슴까지 올라오는 것 같다. 하지만 못자리농사가 반(半)농사라 종철이 에게는 오히려 상큼한 즐거움이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오면 앙상한 나뭇가지에 움이 돋고 꽃이 핀다. 이렇게 평범한 일상도 칠성이가 태어난 후부터 종철이 에게는 축복이었다. 세상은 참 살만한 곳이었다. 아니 살맛나는 세상이다. 두 돌이 다가오는 칠성이가 종철이 에게 부리는 조화는 예술이고 마술이다. ‘까르륵’거리는 티 없이 맑은 웃음소리가 귀에 밟히고 이목구비가 제법 사내 티를 잡아가는 모습이 눈에 밟혀 못자리 일을 서둘러 마치고 종철은 바지자락에 비파소리를 내면서 집으로 내달았다.
“아직 꺼정 새참 때도 멀었는데 벌써 오능교? 이러다가 올 농사 피롱(廢農)하겠네.”
칠성 이를 등에 없고 장독대에서 독을 닦고 있던 화산댁이 핀잔을 준다.
“요놈이 눈에 아른거려서 견딜 수가 있어 야제. 허리 한번 안 피고 후딱 해치우고 왔구마는.”
지게를 내 던지듯이 벗어놓고 종철 이는 칠성 이를 받아 안았다.
“마침 잘 됐심더. 농사철이 코앞이니 동동주 좀 담가야 겠심더.”
“좀 넉넉하게 담가레이. 평천댁이 하고 같이 묵을 만치 넉넉하게.”
화산댁은 꽤 큼직한 항아리를 이고 마을 공동우물가로 나섰다. 2년 전에 마을에 상수도가 들어왔다. 집집마다 부엌에서 수도꼭지만 틀면 흔전만전 물이 나오니 참 편리하였다. 우물이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우물가에서 마을 아낙들이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두레박으로 함께 근심도 들어 올리고 희망도 들어 올리던 <우리>가 사라져버렸다. 함께 울어주고 함께 웃어주던 <인정>이 사라져버렸다. 마을이 생기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평천 양반이 제안하여 우물을 마을의 상징으로 살려 두기로 하였다. 우물을 더 깊이파고 주변도 새 단장을 하고 느티나무도 한그루 심었다. 마을 위 저수지에서 거르고 걸러져 내려온 우물물은 달고 시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돗물처럼 소독약 냄새가 없어 좋았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큰일에는 언제나 우물물을 사용하였다. 김장할 때와 장을 담글 때나 농사철을 맞아 농주를 담글 때 에는 꼭 우물물을 사용하였다. 우물가에는 예전처럼 웃음꽃이피고 염매시장처럼 시끌벅적하였다. 뉘 집은 언제 김장을 하고 뉘 집 장은 언제 담그는지 오늘은 뉘 집에 제사가 드는지 까지도 다시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나고 <인정>이 되돌아왔다. 마을이 생기를 되찾았다.
화산댁이 우물가에서 칠성이 자랑으로 팔불출(八不出)이 되어가고 있을 때 칠성 이는 집에서 종철 이를 팔불출이로 만들고 있었다. 칠성 이는 목마를 태워 껑충껑충 뛰거나 안고서 하늘로 팔을 쭉 뻗어 치켜 올려주면 ‘까르륵’웃음을 터트리며 좋아했다. 종철 이는 시렁위에다 이불을 펴고 칠성 이를 올려놓고 ‘까꿍’놀이를 하고 있었다. 칠성이의 티 없이 맑은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넘쳐서 마당을 맴돌다 울타리를 타고 하늘가로 흩어진다. 화산댁은 동동주 항아리에 우물물을 퍼 담아 머리에 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칠성 이의 청아한 웃음소리와 종철 이의 질박한 웃음소리가 한데 어울려 화산댁이 이고 있는 항아리 위로 날아 앉았다. 화산댁의 얼굴에 화사하게 복사꽃이 피었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무심코 마당을 가로질러 가던 순간 몸이 기우뚱 하였다. 빨래 줄에 항아리의 목이 걸린 것이었다. 몸이 허공에 붕 뜨는 것 같았다.
“하이고. 우야꼬! 우야꼬!”
화산댁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물을 가득담은 항아리가 엎질러지고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순간 파편 하나가 화산댁의 종아리를 제법 깊이 베어 버렸다.
“아! 악!”
화산댁의 단말마(斷末魔)적인 비명소리에 종철은 칠성 이를 시렁위에 올려놓은 채 황급히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쓰러진 화산댁의 종아리에서 선홍색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종철은 이빨로 화산댁의 치마를 북북 찢어 종아리에 칭칭 감아 매어주고 참새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깨를 감싸 안아 주었다.
“게안타. 게안타.”
종철의 다독거림에 놀란 가슴이 많이 진정된 것 같았다. 그제야 종아리에 통증이 느껴지는지 미간을 찌푸리다 말고,
“칠성 이는?”하고 묻는다.
“엉?! 치..칠성이! 칠성이!”
종철이의 머릿속에 칠성 이를 시렁위에 올려놓고 뛰쳐나왔던 생각이 번개처럼 스친다.
“아이고. 칠성아! 칠성아!”
종철 이는 눈앞이 노래졌다. 화산댁을 내팽겨 치고 후다닥 방안으로 뛰어 들었다. 칠성 이는 시렁위에서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칠성이가 웃음을 잃었다.
우는 것도, 배고픈 것도, 배부른 것조차도 몰랐다. 많이 주면 많이 먹고 적게 주면 적게 먹고 그저 주는 대로 먹었다. 초점 없는 시선은 언제나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간간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칠성 이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소문난 병원도 한의원도 소용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용하다는 점쟁이를 불러 굿도 해 봤지만 아무런 효험도 없었다. 절망의 깊이만 확인해 줄 뿐이었다.
찬란한 태양만 떠오른다면 이세상은 사막이 되어버린다고 누가 말했다. 칠성이로 인해 매일 매일이 화창한 봄날이었던 종철이의 집이 칠성이로 인해 사막이 되어 버렸다. 웃음이 사라지고 희망이 사라지고 어둡고 음산한 바람만 불었다. 종철 이의 봄날은 너무나 짧았다.
“칠성이 아부지요. 내가 죽일 년 입니더. 요 경망스런 년이 죽일 년 입니더.”
칠성이 엄마 화산댁은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하였다. 실성한 사람처럼 칠성 이를 부르면서 두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울다가 가슴을 치다가 칠성 이를 부르며 통곡을 하다가 급기야 식음을 전폐하고 몸져눕고 말았다.
“임자. 다 내가 잘 몬 한기라 카이. 칠성 이를 실건(시렁)위에 올려 논 내 잘못이제 임자가 잘 몬 한 거는 없다카이.”
고 어린 것이 실건 위에서 얼마나 놀랐을까. 아내 화산댁의 다리를 싸매 줄때까지 제법 긴 시간 동안 얼마나 공포에 질렸으면 저지경이 되었을까. 생각할수록 종철이의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두 달 전에 문수가 딸을 낳았다. 종철 이는 은근히 칠성이의 배필이 되었으면 했다. 문수와 사돈을 맺는 오금이 저리도록 즐거운 상상을 하곤 했다. 욕심을 너무 부린 탓에 삼신할미가 노하신 것일까. 오장육부가 다 말라붙어 건들바람에도 쓰러질 판인데 아내 화산댁이 선수 치듯이 먼저 몸져누워버린 것이다. 복(福)은 쌍으로 안 오고 화(禍)는 홀로 안 온다더니 엎친대 덮친 격이요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자식을 키우면서 고만한 욕심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종철이 형편에 그것도 욕심이라면 욕심의 대가는 너무나 혹독했다. 화산댁이 몸 져 누운 지 일 년이 못되어 거짓말처럼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하느님도 부처님도 삼신할미도 다 원망스러웠다. 당장 눈앞에 있다면 멱살을 쥐고 따져보고 싶었다. 종철은 칠성 이처럼 웃음을 잃었다. 칠성 이와 같이 초점 없는 시선으로 망연자실(茫然自失) 노래진 하늘만 쳐다보았다.
“암튼 큰일이제. 외상(外上)으로 가져 간기 사십 만원이 넘는 다 카던데. 그것도 전부 소주 값으로.”
이장(里長)의 표정이 장마철 먹구름처럼 어둡다. 종철이가 마을 구판장(購販場)에서 외상으로 지운 돈이 자꾸 불어나서 난감하다는 것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그렇게 성실하고 ‘야문’ 사람이 폐인이 다 되었다는 것이다.
“온전한 정신으로 우찌 살겠노마는 칠성 이를 생각해서라도 마음잡아야 할 낀대. 참 아까분 사람이....”
“그렇다고 무작정하고 외상 줄 수도 없고....참말로 딱하제? ”
문수 사랑채에 의장과 마을 어른 몇몇이 모였다. 종철 이는 칠성 이와 화산댁을 위해 눈물겨운 정성을 쏟았다. 잘 본다는 병원이나 소문난 한의원은 안 가본 곳이 없었다. 용하다는 무당도 데려와 굿도 여러 번하였다. 살림이 남아날 턱이 없었다. 끼니도 잇지 못할 만큼 궁핍해 졌다. 문수는 쌀이 떨어졌겠다 싶으면 종철이 몰래 쌀독을 채워주곤 하였다. 그즈음 종철이 술을 너무 과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놈의 속이 오죽 짓물러졌을까 싶어 모른 척 하고 있었다. 때로는 같이 술자리를 하면서 위로한다는 것이 둘이 부둥켜안고 통곡을 하기 일쑤였다. 종철이의 외상값을 문수에게 굳이 몰려와서 의논하자는 뜻을 짐작 못할 바가 아니었다.
문수는 외상금액이 사십여 만원이 될 때까지 온갖 눈총을 다 받았을 종철이가 너무 안쓰러워 가슴이 짠하였다.
“종철이 외상을 전부 내 앞으로 달아 놔라.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언젠가 칠성이 이름을 지으러 올 때 종철이가 그랬듯이 문수는 수육안주를 장만하여 종철 이를 찾아갔다. 종철 이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자고 있는 칠성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문수가 들어서자 종철이의 얼굴에 일순간 미소가 스쳤다.
“밥 안 묵었제. 수육이라도 좀 묵어라.”
“문수야 미안 하데이. 내가 다 안다. 쌀독에 쌀 채워 논 것도 알고 외상값 갚아준 것도 다 안다. 내가 평생에 짐 이제?”
“그런 소리 하지마라. 내가 니 히야(兄) 아이가 동생은 얼마든지 히야 에게 기대도 된다. 흉이 아이데이.”
문수는 섣달 생이고 종철은 2월생이다. 3개월 차이 이지만 해수로 치면 한 살 위인 셈이다. 술자리에서 농(弄)으로 가끔 형 아우로 구분 짓기도 했지만 평소에도 종철은 평천댁 에게 형수씨라고 부르고 문수는 화산댁 에게 제수씨라고 불렀었다.
“그래도 사람이 염치가 있어 야제. 이때 꺼정 신세진 것도 태산인데...”
“미안 커든 제수씨도 그만 편히 가시게 놓아주고 칠성 이를 위해서라도 술도 줄이고 내하고 같이 농사짓자. 내 논밭이 니꺼 아이가. 우리 두 식구 묵고살고도 남는다.”
“아이고. 히야. 히야.”
“오야. 오야.”
종철은 문수를 붙들고 통곡을 하였다. 문수도 종철 이를 붙안고 황소처럼 울었다. 잠이 깬 칠성이가 두 사람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일이 닥치거나 변한상태에 놀랍고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를 정신공황상태라고 한다. 종철이가 꼭 그랬다. 의지할 곳은 술밖에 없었다. 종철이의 정신과 몸이 폐허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번은 문수의 위로와 충고에 힘을 얻어 어둠이 가시지 않은 꼭두새벽에 지게를 지고 나섰다. 대문 밖을 나오는 순간 방향감각을 잃은 개미가 되고 말았다. 갈 곳이 없었다. 칠성 이와 아내 화산댁으로 인해 논밭이 모두 남의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볼까 도망치듯 도로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의 일터가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세상에 칠성 이와 자신만 남겨 진채 모든 것을 빼앗긴 듯 허전 하였다. 아니 허망 하였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구판장에 가서 외상소주 가져오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발걸음은 다시 새마을 구판장으로 향하였다. 그렇게 ‘아까분 사람’ 종철이가 폐인이 되어가고 있을 때 ‘내 논밭이 니꺼 아이가’하는 문수의 진심어린 우정이 어둠을 밝히는 한 가닥 빛이 되었다.
종철 이는 이제 새벽에 지게를 지고 집을 나서다가 대문 안으로 쫓겨 들어오지 않아도 되었다. 문수네 논이 종철 이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논두렁은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집나간 아이처럼 봉두난발(蓬頭亂髮)이었다. 종철은 우선 능숙한 이발사가 솜씨를 부리듯이 논두렁부터 말끔히 정리 하였다. 깎아낸 풀은 지게에 지고 와서 퇴비더미를 만들었다. 신 새벽부터 퇴비더미를 만들고 있는 종철 이를 바라보고 있는 문수와 평천댁은 코끝이 찡 하였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웠다. 문수는 종철 이를 거들기 위해 쇠스랑을 들고 나섰고 평천댁은 아침밥을 짓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갔다. 도마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화산양반 영 가망이 없다카제?”
“팽천양반이 오늘아침 식전에 칠성이 델꼬 갔다 카더라. 임종이라도 보일 라꼬.”
“정신 줄 놓은 칠성이가 뭘 알겠노. 화산양반 불쌍해서 우야꼬.”
“칠성 이는 또 우야노. 화산댁이도 불쌍하고 칠성이도 불쌍하고 다 불쌍 하데이. 이일을 우예 감당 하겠노.”
마을 공동우물은 아낙들의 복덕방이다. 아침부터 종철이 이야기로 술렁거렸다. 종철이 두벌논을 매다가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간 것이 석 달 전이었다. 처음에 문수는 삼복에 논물도 미지근하던 때라 더위 먹은 가했다. 그런데 종철 이는 다시는 고향땅을 밟지 못하였다. 읍내 병원에서는 큰 병원으로 팔밀이를 했고 큰 병원(대학병원)에서는 3개월 시한을 두었다. 유달리 금슬이 좋았던 화산댁을 먼저 보내고 술로서 세월을 보낸 그시기에 종철이의 몸은 쇠가 녹 쓸 듯이 야금야금 사위어 갔던 것이다. 진단만 해놓고 고쳐주지도 못하는 돌팔이 같은 의사의 3개월 시한을 짜 맞추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렇게 바람에 검불 날리듯이 허무하게 가버린 것이었다. 칠성이가 일곱 살이었고 문수의 딸 은하는 다섯 살이었다.
칠성 이는 문수가 거두어 들였다. 문수의 집에서 잔심부름도 하고 쇠죽솥에 불도 지피고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말이 없었고 웃음이 없었다. 아니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몰랐다. 그렇지만 시골아이 답지 않게 살색이 희고 얼굴이 준수하였다. 큰 두 눈은 우수에 어린 듯 늘 하늘 저 멀리에 머물러 있곤 하였는데 그 눈이 문제였다. 사나운 개나 짓궂은 사람들로부터의 방어본능을 두 눈으로 표현하였다. 마치 보름달이 뜨면 변신하는 늑대인간의 눈 같기도 하였고 원수를 마주한 구미호의 눈 같기도 하였다.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던 개도 신기(神氣)내린 듯한 칠성 이의 음산한 눈길에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망나니 같은 아이들도 칠성 이를 놀렸다가 그 눈길을 바로 받지 못하고 비실비실 피해 버렸다. 그런데 그 눈길이 보호하는 건 칠성이 자신 외에 딱 한사람이 더 있었으니 바로 은하였다. 은하에 대한 보호본능은 자신에 대한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또래의 아이들은 물론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은하에게 조금이라도 해코지 할 기색이 있으면 칠성이의 서늘한 눈길이 용서치 않았다. 칠성 이는 은하의 든든한 울타리이자 흑기사였다.
“엄마! 나 이담에 커서 칠성이 오빠야 한테 시집 갈끼다.”
가을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이다. 평천댁은 멍석에 고추를 말리고 있었다. 평상에서 동화책을 읽다말고 은하가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뜬금없이 말한다.
“사람들이 바보칠성이라 카는데 바보각시라고 놀리믄 우얄라꼬.”
“엄마가 평천 댁인께 내가 평강공주 맞제? 바보칠성이 에게 시집가서 오빠야를 장군으로 맨들끼다.”
은하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이때 은하는 초등학교 3학년 아홉 살이었고 칠성 이는 열 한 살이었다. 그 후부터 평강공주 은하는 바보칠성 이를 장군으로 만드는 데 열심이었다. 우선 한글을 가르쳤다. 은하가 쓰던 초등학교 일학년과 이학년 교과서를 전부 칠성이의 방에 옮겨놓았다. 칠성이가 알아듣건 말건 학교선생님 흉내를 내면서 숙제도 내주고 하였다. 신기한 것은 칠성 이였다. 지루할 법도 하건만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학생이 되어 꼬박꼬박 따라하였다.
세월은 세상일을 듣고 보고 말하는 법이 없이 미련스럽게 제 갈 길만 가고 있다. 우직한 건지 성실한 건지 비 오는 날도 눈 오는 날도 가리지 않고 간다. 비가 오면 처마 밑에서 잠시 비를 긋기도 하고 꽃이 피면 꽃구경도 하면서 며칠 쉬었다 가도 되련만 뒤돌아보지 않고 간다. 명절연휴도 없고 일요일이라고 쉬는 법이 없다. 그렇게 흘러가는 가운데 종철이의 일도 마을사람들에게는 잊혀져가는 과거사가 되었다. 그러나 문수 에게는 아직도 함께하는 현재의 아픔이다. 은하가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문수의 생각이 복잡하여졌다. 열다섯 살이 된 칠성 이를 계속 잔심부름이나 시키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문수의 사후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칠성 이를 자식같이 건사해줄 사람이 있을까. 문수는 칠성 이에게 혼자 사는 법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 하였다. 생선을 구워 먹이기보다 낚시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절실하였다. 빈집으로 방치되었던 종철이의 집을 손질하여 칠성 이를 독립시켰다. 그리고 이장과 마을 어른들을 설득하였다. 심부름 시킬 일이나 간단한 농사일을 칠성 이에게 시키고 그에 알맞은 대가 즉 품삯을 주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칠성이 노후에 거지신세나 면하게 해주자고 하였다. 모두들 대찬성이었다. 종철 이와 화산댁의 순박한 인심과 지금까지 보여준 문수의 처신에 반대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평강공주(은하)의 임무가 하나 더 늘어났다. 온달장군(칠성)이 혼자 은행 일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같이 입금도하고 출금도하면서 가르쳐 주기로 한 것이었다.
은하는 용모만큼이나 학교성적도 빼어났다. 비록 읍 소재지의 시골 여자중학교 이지만 3년 동안 수석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은하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가되자 문수는 또다시 생각이 복잡하여졌다. 담임선생의 권유에 따라 대구로 보낼 것인지 은하의 의견에 따라 읍내 여고로 보낼 것인지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은하는 무엇보다 자신을 호위무사처럼 지켜준 칠성 이의 보호구역을 벗어나는 것이 싫었다. 반면에 문수는 마음이 여린 은하가 동정심으로 칠성 이를 달리 생각할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 기회에 은하를 멀리 떨어져있게 하고 싶기도 했다. 문수는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다 싶기도 하고 종철 이에게 면목이 없도록 미안하기도 하였다. 결국 담임선생과 교장선생이 문수의 집에까지 찾아와서 설득하는 바람에 못 이기는 척 은하를 대구로 보내기로 하였다.
“오빠야. 이 책도 읽고 독후감 써 놔라. 숙제 데이. 내가 토요일 마다 꼭 와서 숙제검사 할 끼다.”
은하가 대구로 떠나기 전에 칠성 이에게 중학교 교과서를 주고 일주일치 숙제도 내주었다. 그리고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를 주면서 독후감을 써내라는 것이었다.
“..........”
언제나 그랬듯이 칠성 이는 눈으로 대답하였다. 칠성 이가 과연 글을 읽을 줄 아는지 독후감을 쓸 정도까지인지는 은하와 칠성이 자신만이 아는 일이다.
읍내 시외버스정류장이 옮겨졌다. 시가지를 훨씬 벗어난 곳에 버려지다 시피 한 땅에 시외버스와 시내버스, 그리고 택시정류소를 한곳에 모아놓고 ‘합동터미널’이란 새 문패를 달았다. 중소도시 에서 낙후된 곳을 개발할 목적으로 손쉽게 펼치는 정책이다. 지금은 합동터미널 건물만 덩그렇게 서있지만 멀지 않아 식당이 들어서고 여관이 들어서고 상업지대로 변할 것이다.
토요일이자 장날이었다. 터미널 옆 공터에서 약장수를 중심에 두고 사람들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더러는 자리를 깔고 앉고 더러는 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칠성 이도 그 틈에 끼어 있었다. 콧수염을 만들어단 약장수는 누런 부직포(不織布)자루 안에 몸통은 하나인데 대가리가 둘인 쌍두 사(雙頭蛇)가 있다고 한껏 호기심을 끌어올려놓고는 슬그머니 뒷전에 물러선다. 그러자 중국 무술영화에 나오는 옷차림의 아가씨가 한 바퀴 빙 돌면서 약을 팔았다. 금방이라도 쌍두 사를 꺼낼 듯이 하는 약장수에게 몇 차례 속고 난 구경꾼들 한패가 물러난다. 그제야 칠성 이는 ‘아차!’싶었다. 은하가 타고 오는 버스도착시간을 놓친 것 같았다. 서둘러 터미널로 뛰어갔다.
“어이! 예쁜 학생. 우리 친구묵자!”
칠성이 또래의 소위 ‘읍내깡패’ 너 댓 명이 한 여학생을 포위하다시피하고 놀려대고 있었다. 여학생은 겁에 질려 아무대꾸도 못한 채 오돌 오돌 떨기만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장꾼들도 많았지만 모두가 외면하였다. 심지어는 재미있다는 듯이 빙글빙글 웃는 이도 있었다. 칠성이도 은하 생각에 워낙 다급하여 그냥 지나치려고 할 때였다.
“야! 이 가시나 경북여고 아이가!”
“맞다. 치마에 백태 봐라. 가시나 얼굴도 예쁜 기 공부도 더럽게 잘 하는 갑다!”
‘경북여고’라는 바람에 칠성이의 귀가 번쩍 뜨였다. 혹시나 하고 되짚어 그들 틈 사이를 살펴보던 칠성이의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머리를 두 갈래로 단정하게 땋아 내린 바로 은하였던 것이다. 칠성 이는 성난 황소처럼 돌진하여 은하를 가로막고 섰다. 그리고 벽력(霹靂)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만두지 못해?!”
“아! 오빠야! 칠성이 오빠야!”
은하는 뜻밖에 칠성이의 출현에 반갑고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큰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이 촌놈은 또 뭐고. 오빠야? 오빠야라... 우리처남 되실 분이라 이거제?”
무리들 중에 한 놈이 또 다른 훌륭한 먹잇감이 나타났다는 듯이 이죽거렸다. 칠성 이는 악당들과 대적하는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침착하게 놈들을 차근차근 둘러보았다. 그 위엄 있는 표정이 압권이다. 누가 지금의 칠성 이를 보고 감히 바보라고 하겠는가. 그만큼 은하에 대한 보호본능은 칠성이 자신을 초월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칠성이의 눈길이 카메라 렌즈처럼 서서히 이동하여 무리 중에서 우두머리격인 놈에게 딱 꽂혔다.
“어쭈구리 이 촌 노무새끼가.....”
금방이라도 칠성 이를 향해 주먹을 날릴 기세였지만 조무래기 깡패두목은 이미 기선을 제압 당한 뒤였다. 칠성 이의 표정은 보름달을 등에 진 늑대인간이었고 눈길은 원수를 눈앞에 둔 구미호였다.
“조용히 꺼져라!”
마치 지옥에서 굴러 나오는듯한 저음의 음산한 목소리와 칠성 이의 소름 돋는 시선에 두목은 전의를 상실하고 꼬리 내린 강아지가 되었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나? 에이 퉤! 재수 없다 가자!”
칠성 이와 악당들의 싸움은 싱겁게 끝이 났다. 은하는 어쩌면 깡패들에게 몰매를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을 그렇게 보호해주는 ‘칠성이 오빠야’가 얼마나 고맙고 든든한지 몰랐다.
칠성 이는 오늘뿐만 아니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읍내 합동터미널로 은하를 마중 나왔다. 먼 발치에서 은하가 시외버스에서 내려서 마을버스를 갈아타는 것까지 확인한 후에야 십리 남짓 되는 길을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갔다. 은하가 타고 가는 마을버스 뒤를 따라 칠성 이는 마치 큰일을 해낸 것 같은 뿌듯함과 알 수 없는 행복한 마음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터덜터덜 걸어서 가는 것이었다.
마을버스 타기를 싫다하고 걸어간다는 칠성 이처럼 은하도 마을까지 걸어가고 싶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 조그만 강이 하나 흐르고 있다. 언젠가 은하가 ‘은하수’라고 이름 지어놓은 강이다. 은하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읍내농협에 같이 다녀 올 때였다. 은하는 곧 ‘칠성이 오빠야’ 의 보호구역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 가슴이 아려왔다. 이제부터 은하가 모든 걸 혼자서 해내야 하듯이 칠성이도 혼자서 해내야 하는 것이다. 강이 은하의 마을과 이웃마을의 경계를 이루듯이 은하와 칠성이의 사이에 놓인 피할 수 없는 경계인 것 같았다. 은하는 마음속에 그 경계선을 지워버리려고 강 이름을 ‘은하수’라고 한 것이었다. 칠성 이는 읍내에 오가면서 강을 건널 때마다 은하가 가르쳐준 ‘푸른 하늘 은하수’ 동요를 불렀다. 칠성 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노래’였다. 은하가 노랫말이 2절이 더 좋다고 하는 바람에 2절까지 다 안다. 누가 있을 때에는 속으로 가만히 불렀고 아무도 없으면 제법 큰소리로 불렀다.
“오빠야! 오빠야 목소리가 얼마나 근사한지 아나?”
“..........”
“아까처럼 그렇게 말해봐라. 집에서도 그렇게 하고 마을사람들에게도 말도하고 그래라.”
“이래 사는기 편하다.”
은하는 한 번도 칠성 이를 바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칠성 이의 신기 내린 듯한 눈도 티 없이 깊고 맑아서 슬퍼 보일 뿐이었다. 너무 어려서 부모를 잃은 칠성이 오빠야 는 은하에게 때로는 눈물샘이었다. ‘이래 사는기 편하다’는 칠성 이의 말에 은하의 콧등이 시큰하였다.
“오빠야. 우리 노래 부르자. 오빠야가 1절 불러라. 내가 2절부를 깨.”
‘은하수’에 이르렀을 때 은하는 애써 씩씩한 척 하였다. 칠성 이가 나지막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 하였다.
“푸른 하늘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 다 서쪽나라로.”
은하가 2절을 바로 이어 불렀다.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서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추이는 건. 칠성이 등대 란다 길을 찾아라.”
은하는 ‘샛별’이 등대 란다를 ‘칠성’이 등대 란다로 고쳐 불렀다. 언젠가 처음 은하가 칠성 이에게 동요 ‘반 달’을 가르쳐 줄때에 칠성 이는 제목을 ‘푸른 하늘 은하수’라고 고집 하였다. 은하의 이름이 있어서 ‘반 달’ 보다 더 좋다는 거였다. 은하는 문득 그때가 생각이 나서 노랫말 속에 칠성 이의 이름을 넣은 것이었다.
칠성 이는 돈쓸 일이 없었다. 은하에게서 배운 대로 돈이 생길 때마다 꼬박꼬박 농협에 예금하였다. 그런대 칠성이 에게도 돈쓸 일이 생겼다. 장날 약장수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낭패를 본 후부터 시계가 갖고 싶었다. 아니 시계가 필요했다.
시계점포주인은 칠성 이에게 자꾸만 ‘방수시계’를 권하였다. 이십만 원에 가져가라고 아주 큰 인심 쓰듯 말하였다. 칠성 이는 난생처음으로 물건을 사 보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 하였다. 이때에 은하가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은하 생각이 간절하였다. 시계점포주인은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칠성 이에게 ‘수심 30미터’까지 방수 된다 면서 꼬드겼다. 그러다 흥정에 방해가 된다고 싶었던지 칠성 이를 뒤따라오듯이 하고서 점포 안을 서성거리는 아가씨에게 한마디 하였다.
“춘자(梁春子)니는 머 하고있노 살거 있으면 빨리 사라.”
춘자 는 낮에는 식당이고 밤에는 요정인 ‘춘양옥’에 나간다. 소위 읍내에서 제일 큰 술집이다. 뜨내기손님을 상대로 점심때에는 칼국수나 한정식을 팔았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밥상시중을 드는 바람에 손님들이 많았었는데 시외버스정류장이 이전되고 부터는 낮 시간이 한산해졌다.
“아저씨. 그거 정말로 방수 되나요?”
춘자는 이제야 둘 사이에 끼어들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냉큼 한마디 하였다. 시계점포 주인 신(申相和)씨는 춘자가 아주 못 마땅하였다. ‘술집 년’인 주제에 인물 좀 반반하다고 이차 한번 가는 법 없이 도도한 콧대도 밉상이지만 언제나 자기를 보고 ‘사장님’이 아닌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 얄밉기가 그지없었다. 하지만 춘자의 입장 에서는 ‘정확당 사장 신씨’가 읍내에서 최고로 눈꼴사나운 존재다. 시계점포를 하면서 시골사람들에게 바가지를 씌워 돈푼깨나 만진다고 거들먹거리는 꼬락서니가 가관이었다. 지난 국회의원선거 때였다. 여당입후보자가 군수와 지역상인들 몇 명을 초대하여 춘양옥 에서 술자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어쩌다가 한번 낀 후로부터 숫제 지역유지행세를 하고 다녔다. 여당후보자가 압승을 하자 선거에 일등공신인 냥 기고만장 하였다. 지금도 그는 국회의원과 자칭 막역지우(莫逆之友)이다. 한번은 자신의 출세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춘양옥에 고향에서 농사짓는 초등학교 동창생 세 명을 데리고 왔다. 고향친구들은 ‘방석집’이 처음인 듯 쭈뼛거리는데 신 사장은 제 집 안방에 온 듯이 하였다.
“야들아. 느그 형부 왔다 언니 나오라고 해라.”
그런대 ‘야들’은 그의 말발을 세워주지 않았다. 가뭄에 콩 나듯이 와서는 올 때마다 ‘요새 민식(崔敏植)이 한 번씩 오나?’하고 거드름을 피운다. 민식 이는 지역 국회의원이다. ‘야들’은 민식 이가 국회의원 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 우시장(牛市場) 민식 이 노인 어제도 외상묵고 갔심더.’하고 눙친다. 슬슬 약발 받은 신 사장이 ‘이 무식한 것들 최 민식 의원 말이다!’하면 ‘선거 끝난 이후로 아직 한 번도 못 만난 갑지예?’하고 어깃장을 놓아버린다. 계산할 때마다 아가씨들 팁은 고사하고 술값을 깎으려 트집 잡는 그에게 ‘야들’이 말발을 세워줄 리가 없었다.
“언니 지금 손님방에 들어 갔심더. 술상부터 봐 올까예? 외상은 안됩니데이.”
“아니! 이 가시나들이. 언니 퍼뜩 불러 오라카이!”
“언니 나올 때까지 기다리시겠어요? 아님 술상부터 봐 올까요?”
춘자가 생글거리면서 들어왔다. 춘양옥 제일미인 춘자 라면 반분이 풀린다. 신 사장은 그나마 체면유지는 되었다싶었던 모양이다.
“꿩 대신 닭 이라꼬. 오야 춘자 니보고 참는다. 만날 묵던 대로 한상 봐 온느라.”
그런대 ‘만날 묵던 대로’가 화근이었다. 제 딴엔 친구들에게 과시하느라고 한번 해본 말 인대 영악한 춘자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술상이 준비될 때까지 ‘막간을 이용한’고스톱 판이 한참이나 돌아간 후에 ‘만날 묵던 술상’이 들어왔다. 고향친구 셋은 물론 신 사장도 일찍이 받아 본적이 없는 화려한 술상이었다. 상 위에는 때깔도 고운 고급양주가 세 병이나 턱 버티고 앉아있었다. 신 사장은 뒤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하였다. 그냥 받아먹자니 술값이 엄청날 것 같고 ‘만날 묵던 상’을 물리자니 고향친구들을 업신여기는 꼴이 될 것 같았다. 춘자 년에게 오지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기가 친 올가미에 자기가 걸려들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쓰라린 속 못지않게 양주 맛도 썼다. 신 사장은 그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먹은 술값을 모두 합친 만큼의 거금을 외상으로 그었다.
“아저씨이...땡큐 베리마치. 바이 바아이!”
등 뒤에서 조롱하듯이 인사하던 춘자의 혀 꼬부라진 목소리가 아직도 또렷하다. 신 사장의 말이 곱게 나올 리가 없다.
“가짜양주 파는 느그 집 같은 줄 아나? 방수도 안 되는 시계를 방수 된다고 카겠나?”
“아저씨는 양주 맛을 잘 아시니까 속을 일이 없겠지만 우리야 시계를 아나요 뭐.”
말은 아무래도 춘자가 한수 위다. 추켜세우는 건지 빈정거리는 건지 그 경계가 애매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손님만 없다면 욕이라도 한바가지 퍼부어버리고 싶었다.
“살 거 없으면 가서 칼 국시나 팔아라.”
춘자를 향한 대거리가 신 사장의 속마음보다는 수위가 한참 낮았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고 잘생긴 오빠야 내가 도와줄까요?”
“..........”
말은 안했지만 칠성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춘자는 신 사장이 권했던 방수시계는 젖혀두고 디자인이 수수한 시계를 하나 집어 들었다.
“아저씨. 이건 얼마에요?”
얄밉다. 정말 얄밉다. 쓸 대 없이 알짱거리다가 ‘방수시계’흥정을 싹 무시해 버리는 춘자가 왜 얄밉지 않겠는가. ‘가시나 뭐 이런 기 다 있노!’하고 성질을 부릴 법도 한데 신 사장은 또 한풀이 죽는다. ‘만날 묵던’그 술값의 절반이 아직까지 외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거? 십만 원만 내라. 춘자 니 때문에 원가로 준다.”
“피이. 오만 원에 주세요. 우리 마담언니가 시계는 부르는 값에 반이 제값이라고 했거든요.”
“야가 장사 말아 묵을 일이 있나. 택 도 없는 소리 하지마라. 십 만원에 십 원 한 장도 못 뺀다.”
펄쩍뛰는 신 사장을 아랑곳 하지 않고 춘자는 칠성이의 손목에 시계를 채워본다. 그리고 몇 번 더 실랑이를 하다가 육만 원을 던져 주고는 칠성이의 팔짱을 끼고 나선다.
“에이. 조 여시 같은 년!”
신 사장은 춘자의 뒤통수에다 기어이 욕 한마디를 쏘아 붙인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마는지 춘자는 다정한 연인처럼 칠성이의 팔짱을 끼고 팔랑팔랑 걸어간다.
오늘도 은하는 오지 않을 것 같다. 칠성이의 손목시계가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은하가 오는 시간보다 이미 한 시간이 지났다. 침목(枕木)을 베고 하염없이 늘어진 철로처럼 길고 길었던 해가 어지간히도 짧아졌다. 서쪽 산 그림자가 서서히 짙어지면서 밤을 준비하고 있었다. 늦가을 바람이 칠성이의 마음만큼이나 스산하다. ‘합동터미널’부근은 이제 신시가지를 형성하고 번화가가 되었다. 춘양옥도 옮겨오고 정확당 시계점도 옮겨왔다. 키다리 가로등이 선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빌 때 유흥가 네온들이 다투어 화장을 끝내고 영업 준비를 한다. 이때쯤에야 칠성 이는 무거운 발걸음을 돌린다.
칠성 이는 마을의 궂은일 마른일을 가리지 않았다. 큰일이건 작은 심부름이건 마을 사람들이 시키는 일은 마다하지 않았다. 마을 공동머슴인 셈이다. 말하자면 프리랜서인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도 주는 대로 받았다. 많이 준다고 고마워하거나 적게 준다고 심통을 부리지 않았다. 언제나 그 표정 그대로이다. 때로는 오늘은 없다고 하여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칠성 이는 주5일근무의 창시자쯤 된다. 농촌에는 일요일도 공휴일도 없다. 바로 비오는 날이 일요일이요 공휴일이다. 그러나 칠성 이는 비가 오면 이집 저집 잔심부름으로 더 바빴다. 은하는 그런 칠성이가 안쓰러워 일요일만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쉬도록 하였다. 숙제를 내주는 것도 칠성 이를 쉬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천하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아도 은하의 말은 끔찍이도 잘 듣는 칠성이다. 토요일은 하늘이 무너져도 은하 마중을 가는 날이다. 칠성 이의 일주일은 이날을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칠성 이는 은하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주5일 근무를 한 것이다. 칠성 이의 주5일 근무는 은하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에도 계속되었다. 그즈음 은하는 거의 3개월에 한번 정도 왔었는데도 칠성 이의 매주 토요일 마중은 한 번도 거르는 법이 없었다.
“해이! 조로(Zorro)!”
쓸쓸히 돌아서는 칠성 이를 춘자가 불러 세웠다. 춘자는 칠성 이를 ‘조로’라고 불렀다. 은하가 읍내 깡패들에게 봉변을 당하던 날 춘자도 거기에 있었다. 세상인심이 참으로 야박 하였다. 은하의 그 절박한 순간이 남의일이라 단한사람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춘자는 은근히 분노가 치밀었다. 주먹을 발끈 쥐고 자기라도 막 나서려는 참에 칠성이가 바람처럼 나타났던 것이었다. 춘자는 칠성이가 꼭 얼마 전에 감명 깊게 본 영화의주인공 ‘조로’같았다. 칠성 이의 사늘한 눈길도 소름 돋는 목소리도 바람처럼 나타나 자기여자를 지키는 흑기사 조로처럼 멋있게 보였다. 읍내 여중학교 개교 이래 다섯 번째로 경북여고에 합격하여 스타가 된 박은하가 어떤 애 일까 몹시 궁금했는데 청순한 아름다움까지 다 가진 은하가 참으로 부러웠다. 그리고 마담언니로부터 칠성 이에 대한 내력을 듣고 가여운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칠성이가 은하를 지키듯이 춘자는 칠성 이를 지켜주고 싶었다. ‘방수시계’흥정 하던 날부터 춘자의 계획에 의한 칠성이 지키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춘자가 ‘조로 여기야. 여기!’하는 듯이 팔을 휘저으며 오고 있었다. 칠성 이는 저기 오는 춘자가 은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아침에 은하가 곧 시집 갈 거라고 하던 평천 아재(文秀)의 말이 칠성 이의 가슴에 납덩이가 되었다. 이제 은하는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제까지나 칠성이의 보호아래에 있을 것 같던 은하이다. 그리고 언제 까지나 칠성 이를 보호해 줄 것 같던 은하가 둥지를 벗어나 훨훨 날아가려는 것이었다.
“오늘부터 칼국수 개시했어. 먹고 가.”
춘자가 칠성 이의 팔짱을 끼며 춘양옥으로 향하였다.
“..........”
칠성 이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 춘자가 하자는 대로 이끌려가던 칠성 이가 이렇게 뚜렷하게 반대의사를 밝히기도 처음이다. 칠성 이는 터덜터덜 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춘자도 신행 가는 새 색씨처럼 다소곳이 칠성 이의 뒤를 따라간다. 칠성 이는 태산이 무너지듯 그렇게 걷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오늘은 조로답지 못하네. 은하 씨가 안 오는 게 오늘 뿐이 아니잖아.”
“..........”
“은하 씨를 참 많이 좋아 하는구나!”
“내 동생이다.”
토요일 오후4시이면 폭우가 쏟아지거나 눈보라가 쳐도 어김없이 나타나 은하가 시외버스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갈아탈 때까지 이윽히 지켜보다가 터덜터덜 버스 뒤를 따라 걸어가던 칠성이다. 춘자는 꼭 순정만화를 보는 것 같았다.
‘조로! 당신과 은하 씨는 너무 다른 인생이야. 서로 다른 길을 너무 멀리들 가버렸어. 마음속에서 은하 씨를 내려놓아. 할 수만 있다면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을게.’
칠성 이는 춘자의 속마음을 읽고 있기나 하듯이 어둠속을 향해 중얼거리고 있었다.
“은하는 내 동생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내 동생.....”
갑들 논열마지기가 기어이 경매에 붙여지고 말았다. 오늘이 경매일이다. ‘걱정 말라’고 큰소리치던 전서방은 어제부터 연락이 안 된다. 담보로 내어 줄 때부터 포기한 논이었지만 막상 최악의 경우가 닥치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목이 말라봐야 물이 소중한 것을 알듯이 비로소 농부에게서 논밭은 또 하나의 가족인 것을 절감하였다. 이제야 종철이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약값에 병원비에 논과 밭이 하나둘 남의 것이 될 때마다 종철이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종철이의 마음을 좀 더 깊이 헤아려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교장선생과 담임선생의 명예욕과 자신의 과욕으로 은하를 명문여고로 등 떠민 것까지 후회가 되었다.
‘사람이 좀 모자라면 어떻노. 영악한 거 보다야 낫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내가 참 어리석었다. 벌을 받고 있는기다.’
문수의 발걸음이 종철이의 집으로 향하였다. 종철 이와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거렸던 그 옛날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암행어사출도야! 칠성이 엄마는 술상을 대령 하거라! 암행어사출도야!!’
쩌렁쩌렁 울리던 종철이의 고함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종철아 미안 하데이. 칠성 이를 사위삼아 아들삼아 그렇게 살아야 맞는 긴데 다 내 욕심 탓이다. 참말로 미안 하데이.’
종철이집 대문을 들어서면서 문수는 꼭 종철 이를 마주한 듯이 혼자 말을 하였다. 종철 이가 손을 내저으며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는 것 같았다.
‘문수야 아이다. 내라도 그랬을 끼다. 그만큼만 해도 우리 칠성이 한테 참말로 잘해 준기다. 고맙데이 문수야.’
칠성 이는 집에 없었다. 아마도 마을사람 누군가의집에 불려간 모양이다. 그런데 칠성이가 일할 때 신던 신발이 댓돌 옆에 놓여 있었다. 방문을 열어 보았다. 작업복이 벽에 걸려 져 있었다. 어제 집에 들어온 흔적이 없는 것 같았다.
‘설...마?’
그렇잖아도 요즘 마을에서 떠도는 칠성 이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았다. 춘양옥 춘자 와 정분이 났다는 것이었다. ‘여시 같은 년’이 칠성 이를 꼬드겼다고 하다가 칠성 이가 인물이 반반한 춘자 에게 혹 했다고들 하였다. 칠성 이의 짝사랑쯤으로 치부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문수는 달랐다. 칠성 이는 종철이의 아들이 아닌가. 따라서 문수에게도 아들 같은 칠성이가 아닌가. 남녀의 일이란 알 수가 없는 것이어서 문수의 마음 한구석에 찜찜하게 남아있던 터였다.
‘설마... 아닐 끼다. 설마!’
문수는 몇 번이고 도리질을 하였다.
밤이 꾀 깊었다. 문수는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갑들 논 열 마지기는 누가 낙찰을 받았을까. 아내 평천댁의 수심이 밤보다 더 깊어 보인다. 아마도 은하에 대한 걱정으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뜻밖에도 칠성이가 온 것이다. 칠성 이는 문수 앞에 단정하게 꿇어앉았다. 문수가 어인일이냐고 묻기 전에 칠성이가 먼저 말했다.
“아재요. 저 결혼 할랍니더.”
평천댁이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문수는 예견하고 있었던 것처럼 이외로 마음의 동요도 없이 차분해 졌다.
“니 나이가 꼭 서른 이제. 그래 마음에 둔 아가씨가 있나?”
“춘잡니더. 춘양옥 춘자.”
“직업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화류계 아이가 니를 옳게 섬기고 살림을 바르게 할런지 걱정이다.”
“지 같은 사람을 받아줄 여자가 어디에 또 있겠습니꺼. 상처받은 사람끼리 서로 보듬어 주면서 살자고 했심더.”
춘자는 강원도 영월 산골짜기에서 왔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 거의 고학 하다시피 한 학업도 고등학교 2학년을 마쳤을 때 오빠가 대학에 입학하자 그만 두어야했다. 오빠의 대학입학금을 선금으로 받고 멀지않은 촌수의 언니뻘 되는 이가 운영하는 춘양옥으로 오게 되었다. 고향 강원도와 너무나 멀리 떨어진 경상도 땅이다. 고향 사람들을 마주칠 일이 없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열심히 살았다. 오빠를 대학공부 시키는 게 춘자가 살아가는 의미였다. ‘술집여자’에게 결혼이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칠성 이를 알고부터 자꾸만 욕심이 생겼다. 칠성 이를 남들은 바보라고 하지만 너무나 순수했다. 칠성 이라면 자기의 모든 허물을 덮어줄 것 같았다. 매주 토요일은 칠성이가 은하를 기다리는 날이지만 춘자가 칠성 이를 기다리는 날이기도 했다.
“사람은 심성이 착해야 한다. 근본이 선한 사람은 어디에서도 선하게 살아간데이. 좀 더 겪어 보그라.”
은하의 일 때문에 문수는 마음과는 달리 완강하게 반대의견을 내지 못하고 말았다.
이튿날 평천댁 논 열 마지기를 낙찰 받은 사람이 본동(本洞) 사람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우물가에서 아낙들의 화제도 자연 갑들 논이었다.
“본동 사람이 낙찰 받았다 카더라.”
“본동 이라면 우리 동네 사람이란 말이제?”
“현북두 라 카던데 우리 동네에 그런 사람이 어데있노.”
모두가 ‘맞다 우리 동네에 그런 사람은 없다’고 하는데 그중에 똑똑한 아낙이 한마디 한다.
“논 경매 받을 라고 임시로 주소 옮겨 놨겠지 머. 도시에서 그런 짓 마이 한다 아이가.”
일제히 또 맞다 고 합창을 한다.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문수였다. 현북두(玄北斗)라면 칠성이다. 애초에 칠성 이가 학교 문 앞에도 가본 적이 없으니 마을사람들이 북두가 누구인지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수는 칠성이가 갑들 논 열 마지기를 낙찰 받았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한편으로 생각하니 칠성이가 독립하여 십 오년이나 흘렀으니 그만 돈 정도는 모았을 법도 하였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었다. 생판모를 사람이 논임자가 되었더라면 얼마나 속이 상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어젯밤에 춘자와 결혼 하겠다고 했구나 싶었다. 진작 낙찰 받았다고 할 것이지 숨길 건 뭔가 하고 노상 서운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한시름 놓은 것이다.
다시 우물가에 평온이 찾아왔다. 전서방은 아직까지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칠성이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문수도 칠성 이에게 갑들 논에 대해서 묻지를 않았고 칠성이도 굳이 말하려 들지 않았다. 은하 마중이 목적인지 춘자를 만나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칠성 이의 주5일 근무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없는 살림에 눈치 없는 손님처럼 늦가을까지 더위가 물러가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다. 여간 밉상이 아니다. 한낮에 길을 걸으면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니 ‘온실가스’어쩌니 하면서 저마다 ‘유식함’을 뽐낸다. 올해는 겨울도 없으려나했는데 눈총을 받던 햇살이 어디 맛 좀 보란 듯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어느 날 아침에 기온이 뚝 떨어졌다. 사람들의 입에서 춥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겨울은 그렇게 갑자기 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겨울 같잖다고 난리더니 오늘은 또 올해는 유난히 추운 겨울이 될 거라고 호들갑이다. 문수는 갑들로 나왔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매서웠지만 문수의 마음은 오히려 훈훈하였다. 칠성 이가 저 논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문수에게서 갑들 논은 장성한 자식이 출가한 것처럼 대견스러웠다. 칠성이 덕분이다. 세삼 칠성 이가 고마웠다. 나른한 피로감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모처럼 만에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이장(里長)이 아침 일찍 언짢은 기색으로 문수를 찾아왔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칠성 이가 요즘 들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어디로 갔는지 집에 없더란다. 정상인도 게으르고 신의가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 칠성 이가 마을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어서는 안 될 일이다. 논 열 마지기의 농사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문수는 춘자 탓인가 싶었다. 다잡아 둬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만큼 간사한 것이 또 있을까. 어제는 덥다고 난리치더니 오늘은 춥다고 난리다. 어제 저녁만 해도 칠성이로 인하여 모처럼 단잠을 이루었는데 오늘은 칠성이로 인하여 전전긍긍이다. 문수는 칠성 이에게 알아듣도록 이야기를 해야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밤바람이 차다고 평천댁이 만류 하였지만 외출 차비를 하는데 마침 칠성이가 제 발로 찾아왔다.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칠성이의 등 뒤를 따라 찬바람이 잽싸게 몰려든다. 아마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추울 것 같다. 칠성 이는 문수내외에게 큰절을 올리고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하나를 꺼내어 공손하게 내밀었다.
“아재요. 하직인사 디립니더.”
“하직은 뭐고. 이 봉투는 또 뭐고?”
“갑들 논 문섭니더. 갑들 논은 본래 아재 낍니더. 받아 주시이소. 지는 오늘밤 기차로 춘자하고 강원도로 갑니더.”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문수내외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이제는 니끼다. 그걸로 집안 일으키거라.”
“아재 논 지켜 디릴라고 경매 봤심더. 아재 은혜에 택없이 모자랍니더. 받아 주시소.”
“경매 붙이는 거는 우째 알았노. 나도 어려운 일인데 누가 도와 주드노?”
마을 우물이 아낙들의 복덕방 이라면 춘양옥은 군민들의 복덕방이다. 군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소식들이 모두 춘양옥으로 들어오고 춘양옥에서 나간다.
군수와 면장들이 춘양옥 에서 회식을 하는 날이었다. 술자리에서는 보통 분위기가 무르익기까지 날씨 이야기나 사건 사고 이야기가 양념처럼 곁들여진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문수 씨 상답 논 열 마지기가 경매로 나왔다 카던데 참말이가?”
박문수가 누군가. 시골에서 보기 드물게 서울의 일류대학을 다닐 때부터 ‘모교의자랑’이 되어 유명세를 탓 던 사람이다. 신문기자를 무관(無冠)의 제왕(帝王)이라고 한다. 왕관이 없는 임금이라는 건데 뒤집어 말하면 왕관이 없다 뿐이지 임금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군수는 물론 도지사도 함부로 못 대한다는 우리나라 최고의 언론사 기자를 미련 없이 버리고 농부가 된 박문수에 관한 이야기는 화제 거리가 되고도 남았다.
“사우에게 담보로 내준 긴데 그기 잘못 된 모양이더라.”
“사우라 카믄 경북여고 들어갔다고 군(郡)을 들썩거리게 했던 박은하 갸 남편 아이가?”
읍내 상가나 아파트가 가끔 경매에 붙여지고 때로는 농지나 임야가 경매로 나온다.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일상이다. 그 일상의 이야기로 무료해하던 춘자의 귀가 박은하란 말에 번쩍 뜨였다.
“사장님. 경매일자가 언제래요? 그리구 얼마에 나왔대요?”
정확당 사장 신 씨 아저씨를 빼고 춘양옥에 오는 사람들은 춘자 에게는 모두가 ‘사장님’이다.
“와? 춘자 니가 낙찰 받을 라꼬? 돈 있거들랑 술집이나 하나해라. 여기있는사람 마카다 단골이 될 끼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더니 박문수에 대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걱정 보다는 하나의 흥밋거리 소재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이 또한 세상사의 일부분이다.
춘자는 칠성 이와 함께 고향 영월의 한적한 산골에서 살고 싶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칠성이 에게 자신의 진심을 말해왔으나 칠성 이는 은하의 빈집을 좀처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모를 대신해준 평천 아재와 아지매를 쉽게 떠나지 못하였다. 그런 칠성 이에게 갑들 논으로 흥정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조로. 내 진짜이름은 은령이야. 양은령(梁銀鈴). 두 살 위인 우리오빠는 금령(金鈴)이구. 돌아가신 아빠가 금방울, 은방울 이라고 그렇게 지으셨대. 춘자는 춘양옥에 오면서 내가 지은 이름이야.”
“.........”
“그리구 내가 조로보다 두 살 위야. 나이는 누나지만 언제나 조로가 오빠 같았어. 이제 비밀은 없어. 아참 고향에 엄마가 있어.”
“엄...마! 엄마가 있어 좋겠다.”
“그래 좋아. 엄청 좋아. 영월 가서 나랑 엄마랑 같이 살자. 은하네 논 열 마지기가 경매로 나왔대. 내가 그 논 살게. 그 논 사서 은하네 주고 우리 영월가자.”
금령 이는 3년 전에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춘천지방법원 판사로 있다. 자신의 대학 입학금 때문에 은령이가 친척이 운영하는 큰 식당으로 취직하여 간다고 했지만 ‘술집’임을 짐작 하고서도 모른척했던 자신이 한심하고 미웠다. 그 후로도 학비며 생활비의 상당한 부분을 은령이가 감당 하였다.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해 내었다. 은령은 그런 오빠에게 꼭 빚 받으려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망설이다가 결국 해결할 길이 없어 기대기로 하였다.
“오빠. 내가 그동안 모은 돈이 천오백만 원이야. 천오백만 원만 어떻게 좀 해줘. 그 논 낙찰 받을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줘. 그 사람 마음을 얻어서 같이 고향에 갈 거야.”
은령이로부터 칠성 이와 은하의 이야기며 갑들 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금령은 참으로 착한 동생을 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랑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살아가자고 하루빨리 정리하고 집으로 오라고 했을 때 ‘그 사람’과 같이 갈 거라던 은령이다. 벌써 삼년이 지났다. 삼십년이라도 기다리겠다는 은령이의 고집이다.
“이제는 오빠 차례야. 내가 다해주마. 그리고 그 논 낙찰 받을 수 있도록 관할 법원등기소에 알아보마.”
“오빠. 미안해!”
“은령 이는 내 동생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내 동생.....”
언젠가 칠성 이가 은하를 두고 그렇게 말했던 게 생각이 난다. 금령이의 목소리가 수화기 저 너머에서 떨고 있다. 그리고 젖어있었다. 꼭 그때 칠성 이의 목소리 같았다.
경매 날자가 다가왔다. 칠성이가 춘자 에게 농협통장 하나를 내밀었다. 잔액이 삼천만원 남짓 있었다.
“이게 누구 거야?”
“내가 지금까지 모은 기다. 내 힘으로 해주고 싶다.”
“조로! 이거 조로 것이 아니잖아! 북두가 누구야? 현북두!”
“내 이름이다. 평천 아재가 지어준 내 이름. 북두칠성!”
“어쩜! 멋있다! 북두. 북두칠성! 북두. 현북두...”
춘자는 몇 번이고 칠성이의 ‘진짜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 보았다.
“아재 논 찾아 드리고 영월가자.”
“조로! 아니 북두! 고마워!.... 여기서는 ‘칠성’ 이와 ‘춘자’로 밖에 살지 못해. 영월 가서 ‘북두’와 ‘은령’이로 살자!”
금령이가 소개해준 등기소 직원의 친절한 배려로 갑들 논 열 마지기는 잠시 현북두의 이름으로 있다가 원래 주인 박문수를 찾아갔다.
문수 내외와 칠성이 사이에 논문서봉투가 은하수처럼 가로놓여 있다. 문수는 칠성 이가 자주 마을을 비웠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의 논을 낙찰 받기위해 동분서주 했을 텐데 마을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마저 게으름 피운다고 오해를 하였다. 칠성 이에게 참 으로 부끄러웠다.
“내가 무슨 염치로 이걸 받겠노. 느그 아부지와 엄마가 있는 이곳에서 같이 살자. 신혼살림 밑천으로 그만하면 단단하다.”
“춘자가 여기서는 ‘칠성이’와 ‘춘자’로 밖에 살지 몬 한다고 했심더 영월에 가서 ‘북두’와 ‘은령’이로 살자고 했심더.”
그 아이 이름이 ‘은령’인 모양이다. 문수의 선입견대로 ‘술집’에 나가는 아이라면 어떻게든 그 돈을 움켜쥐려고 할 텐데 심성이 착하고 속이 깊어 보인다. 그만하면 칠성 이를 맡겨도 마음 놓일 것 같다.
“아재요! 아지매요! 자식 같이 키워주신 은혜 절대로 안 잊어 뿌릴 깁 니더. 은하는 몬 보고 갑니더.”
큰절을 올리는 칠성 이의 어깨가 들먹거렸다.
“오야. 오야. 내가 미안타. 면목이 없다. 잘 살 거라. 힘들 거덜랑 언제든지 오너라. 니 논 내가 잠시 맡아 있으마.”
문수는 칠성 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어깨를 껴안았다. 칠성 이는 문수의 품에 쓰러져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평천댁이도 울었다. 문수의 눈에도 가득 눈물이 고였다.
칠성 이는 춘자가 먼 길 떠날 채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을 춘양옥을 향해 터덜터덜 걸었다. 마을을 벗어나 수도 없이 건너가고 건너왔던 ‘은하수’에 이르렀다. 강바람이 칼날처럼 매서웠다. 다리중간에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겨울 은하수가 빛을 잃은 채 희미하게 차가운 하늘을 가로질러 있었다. 북두칠성은 더욱 또렷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북두칠성 위에서 ‘아부지’가 이윽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려봐도 엄마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고 자꾸만 은하의 얼굴이 그려진다. 칠성 이는 가만히 ‘푸른 하늘 은하수’를 불러 보았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서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추이는 건 칠성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치일성이 등대 라 안다 기일을 차아자아라.....’
칠성 이는 꼭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는 것 같았다. 또 다른 의미의 눈물이 칠성이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은하야! 잘 있어라! 은하야! 칠성 이는 은하수에 내려놓고 북두만 간 데이.....!’
칠성 이는 끝없는 만주벌판을 가는 독립투사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춘양옥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저만치 춘양옥이 보인다. 오랜 시간 전에 영업이 끝나고 모두가 잠이든 어둠속에 방 하나에만 외롭게 불이 켜져 있다. 멀지 않아 저 방안에 춘자를 가두어두고 은령이 혼자 북두를 데리고 떠날 것이다. 멀리 강원도 영월 땅으로.
영업용 택시 한 대가 평천댁 집 앞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은하가 내렸다. 운전기사가 트렁크에서 커다란 가방 두 개를 꺼내어준다.
문수 내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사단이 일어났음이 틀림없다. 평천댁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 오밤중에 니가 어인 일이고? 엉?”
“엄마. 나 이혼했어.”
은하는 남의 일처럼 덤덤하게 말하였다.
“오죽 했겠냐만 우째 살기고.”
“칠성이 오빠야 하고 엄마 아빠랑 여기서 같이 살래.”
“칠성 이는 갔다. 전 서방이 잽혀 묵은 논 찾아주고 춘양옥 춘자 하고 아까 전에 강원도로 갔데이.”
“.........!”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움쩍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 같던 칠성이 오빠야가 갔단다. 춘자와 같이 멀리 강원도로 갔단다.
“오빠야가 갔구나.....!”
은하의 마음을 지탱하고 있던 철옹성 같던 성벽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조금 전 엄마 평천댁이 한말을 중얼거린다.
“우째 살기고.....”
문수는 말없이 마당으로 나와 평상위에 앉았다. 하늘을 쳐다본다. 달빛조차 없는 캄캄한 밤하늘에 금가루를 뿌린 듯이 별들이 더욱 반짝이고 있다. 꼭 그랬다 동서남북에 별이 ‘백백’ 하고 복판에는 ‘스물 스물’ 하다.
‘종철아. 하늘에 별이 팔백사십 개가 틀림 없데이. 니가 내보다 훨씬 더 똑똑 하데이.’
북두칠성 위에서 종철이가 ‘내말 맞제?’하면서 낄낄거리고 있었다.*
2015. 6. 5.
첫댓글 연강 선생님, 병살타이후 4개월 동안 왜 소식이 없나하고 의아했는데 북두칠성이라는 대작을 잉태하고 계셨군요, 소설이란 곧 묘사라는 말이 있지만 병살타나 북두칠성이나 묘사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 하는군요, 추석 지나고 소주한잔 앞에 놓고 정식으로 북두칠성품평회를 한 번합시다.
항상 과찬의 말씀으로 격려 해 주시는 琴川 선생님 고맙습니다.
감히 선생님의 발치에나 미치겠습니까만 많은 힘이 됩니다.
추석명절 잘보내시기 바랍니다. 선선한 계절에 청송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然 江 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