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국민청원에 … 조국 “내년 임신중절 실태조사”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6일 동영상을 통해 낙태죄 폐지 청원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청와대가 26일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이 진행 중인 ‘낙태죄 폐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조국 민정수석은 이날 청와대 페이스북 등을 통한 공식 영상 답변을 통해 “내년에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실시해 현황과 사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겠다”며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답변은 지난달 29일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도입이 필요하다’는 청와대 ‘국민청원’ 의견이 23만 건을 넘어서면서 이뤄졌다. 지난 9월 25일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으로 불거진 ‘만 14세 미만 형사처분 면제 조항에 대한 개선 방안’을 담은 소년법 개정 관련 답변 이후 두 번째다. 청와대는 “청원에 대한 의견이 20만 건을 넘는 사안은 담당 수석 등이 답변한다”는 원칙을 밝힌 상태다.
조 수석이 이날 재개하겠다고 밝힌 실태조사는 과거 5년 주기로 진행돼 오다 2010년을 끝으로 중단됐다. 2010년 조사 기준으로 한 해 낙태는 16만9000여 건으로 추산됐다.
조 수석은 이날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 외에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건강권 침해 가능성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대 교수 시절이던 2013년 『서울대학교 법학』에 실린 ‘낙태 비범죄화론’이라는 논문에서 낙태죄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 적이 있다.
낙태 관련 사항을 바꾸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의 위헌성 여부를 판단했지만 합헌과 위헌이 4대 4로 갈리면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에는 현재 낙태와 관련된 형법 조항이 위헌인지 묻는 헌법소원 사건이 접수돼 심판 중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조 수석의 답변에 대해 “기존의 국민청원 제도가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져 국민적 갈등 사안을 공론화할 보완재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26조)에는 “국민은 국가 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청원을 심사할 의무를 진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지난 19대 국회 4년간 국회에 접수된 청원은 227건이었고, 이 중 채택된 청원은 2건에 불과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5만900여 건의 청원이 올라와 있다. 사회적 논란거리뿐 아니라 청와대가 해결할 수 없는 초법적 사안도 적지 않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한 참여가 가능해 ‘20만 명’이라는 청원 의견 조건을 채우기 위한 중복 참여 논란도 있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청와대 청원은 직접 소통의 장점이 있지만 확정형을 받은 범죄인의 출소를 막아달라는 등의 초법적 사안에까지 답변하며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자칫 사법체계를 흔들 수 있다”며 “20만 건 등 단순 기준이 아닌 법 질서에 기반한 사안으로 답변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3~4호 답변으로 2020년 형기를 마치는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과 최근 월남한 북한군 치료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권역외상센터 지원 방안’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출처: 2017. 11. 27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