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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들에 대한 일기
2013년 7월31일(수)
어제 밤 아홉시에 약국 문을 닫고 손주네 집에 가서 잠든 지유를 안고 집으로 왔습니다.
오늘은 며느리가 일찍 퇴근해서 아내가 저녁 일곱시 경에 안 가고 내가 데리러 갔습니다..
비가 조금씩 내려 우산을 받쳐 들고 갔습니다.
벌써 곤하게 잠든 예쁜 손녀 지유를 안고 행여 깰까봐 조심스럽습니다. 오면서도 그냥 흐뭇한 마음에 혼자 싱글 벙글 하며 걷습니다. 집에 현관을 들어서서 신발이 젖었으니 할머니인 아내에게 눕히라고 했습니다.
날씨가 무더워서 거실에 대나무 돗자리 깔고 그 위에 얇은 포대기 깔고 살며시 내려 놓습니다. TV도 소리 안나게 볼륨을 확 줄이고 불도 끄곤 합니다. 손주들이 오는 날이면 녀석들이 잠자는 데에 방해 될까 모든게 녀석들 위주로 밤에는 생활 방식이 바뀝니다.
다음날 새벽 다섯시 사십분 경에 지유가 깨여 일어나니 할머니 할아버지도 똑 같이 기상 시간입니다. 일곱시까지는 잠을 잤으면 하지만 손주 녀석들의 기상 시간이 우리들의 자명종 같은 기상 나팔 소리가 되었습니다.
손주들 엄마 아빠가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대학병원 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아침 여섯시에는 출발을 해야 하므로 손주들도 엄마 아빠를 보기 위하여 기상 시간도 빠르게 된 것도 같습니다.
이제 두돌도 지나지 않은 영아들인데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안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녀석들이 종알대는 소리에 같이 대화를 하노라면 잠은 확 달아나고 쫒아 다니기 바쁩니다. 혹여 뛰여 다니다가 식탁 모서리나 탁자에 부딪혀서 다치지나 않을까봐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으며 떼여서도 안됩니다.
여섯시에 우유 200ml를 전자렌지에 미지근하게 데워서 먹입니다. 그리고 나가자고 보채는 지유를 신발 신기고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바로 집 앞에 있는 놀이터로 나갑니다. 1분 늦게 태여난 이란성 쌍동이 동생 지안이가 돌보미 이모랑 나와서 랑데부를 합니다.
어제는 지유를 오늘은 지안이를 그리고 내일은 지유를 이렇게 교대로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재우곤 아침에는 놀이터에서 지유 지안이가 만납니다. 그러면 서로가 반가워서 이름 부르며 소리 지르고 악수하라면 악수하고 뽀뽀도 하고 신나게 뛰어 다니며 놉니다.
그러다 일곱시 사십분이면 집으로 데려가 출근한 이모에게 인수 인계하고 나는 집으로 부리나케 옵니다. 돌보미 두분 중에 한분은 출퇴근하고 다른 한 사람은 손주들과 함께 숙식을 하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샤워하고 아침밥을 대충 내 스타일로 챙겨 먹고 허둥지둥 약국으로 버스를 타고 출근합니다. 일주일에 토요일 저녁만 빼고 매일 매일이 손주 녀석들과의 즐겁고 행복하면서도 몸이 잘 따라 주지 않아 힘에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루라도 못 보면 궁금하고 보고 싶은게 핏줄의 끈끈한 천생의 인연인가 봅니다.
2013년 8월 9일(금)
어제 밤에도 언제나처럼 손주 녀석을 데리러 갔습니다. 며느리와 아들이 휴가라서 애기들을 데리고 자겠다며 합니다. 그리고 아주머니들도 휴가를 주었다고 하기에 기특하게 생각도 됩니다.
며느리가 몸살 감기가 걸렸다기에 조제한 약 6일분하고 쌍화탕 한 박스를 건네 줍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왔습니다. 허나 왠지 허전한 마음도 들고 녀석들이 보고 싶기도 합니다.
그토록 우리 손주 녀석들 돌보느라 숨 쉴 틈도 없이 힘들었을테니 옆에서 보는 할아버지 입장에서도 돌보미 아주머니들께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너무나 우리 손주들을 잘 돌보아 주니 그것도 나에겐 행복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출퇴근 하는 도우미 이모가 이 달 8월까지만 일을 하겠노라니 걱정이 됩니다.
자기 딸이 출산이 임박해서 부득이 그만 둔다니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두분 모두 자기 손주 돌보듯이 열심히 했으니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구해야 하니 그처럼 잘 돌보는 도우미가 와야 할테니 지금부터 아내랑 걱정이 태산입니다.
며느리와 아들이 인터넷에 올리고 구하는 중이라니 두고 봐야합니다.
요즘 날씨가 계속 30도를 웃돌고 어제는 35도까지 올라가는 날씨입니다. 어른들도 힘든데 지유 지안이 손자 손녀는 얼마나 더울까 생각하면 그것 또한 안쓰럽기만 합니다. 너희들이 앞으로 자라면서 겪으며 부닥쳐야 할 일이라 생각하며 모쪼록 잘 지내기를 바랄 뿐이지요.
오늘부터 휴가 기간이나마 엄마 아빠 품 속에서 며칠 동안이지만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새벽에 출근하고 밤 늦게 퇴근하는 의사인 엄마 아빠의 품속이 표현은 못해도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아무리 할머니 할아버지 도우미가 잘 돌본다 해도 그 녀석들을 낳아 준 부모 만큼이야 하겠습니까?
지유 지안아!
엄마 아빠에게 마냥 떼도 쓰고 앙탈도 부리며 실컷 사랑을 받거라.
2013년 8월 13일(화)
어제 밤에 오늘은 며느리가 애기들을 데리고 자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아내는 저녁 8시 30분경 며느리와 아들이 돌아 올 때까지 손주 녀석들을 돌보다 집으로 왔지요.
오늘 새벽 6시경 손주 녀석들 집으로 달려 갔습니다.
막 출근 하려는 아들 며느리와 지유 지안이를 안녕하며 떼어 놓으려니 지안이가 엄마에게 안기어 안 떨어지려고 합니다. 이제는 날이 갈수록 엄마 아빠의 품속의 맛을 알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나나로 관심을 돌리게 하고 엄마 아빠와 안녕을 하게 했지요.
바나나를 한 개씩 다 먹이고 나니 지유가 응가를 하여 이모가 씻기고 놀이터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또 도우미 한 분이 출근하는 여덟시경에 집으로 바래다 줍니다. 나는 녀석들 몰래 빠져 나와 집으로 향합니다.
아내와 둘이 오랜만에 아침 식사를 함께 하는 영광(?)을 맛보기도 합니다. 손주 놈들이 태여나기 전에는 아내와의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이 그냥 그렇고 당연하게 생각을 했드랬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 모처럼의 마주 앉아서 하는 아침밥의 기회가 이렇듯 큰 의미가 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내하는 말이 오래간 만에 찌개를 끓이니 너무 짜게 되었다고 웃습니다.
딸과 사위도 오늘부터 휴가 기간이라 아내는 외손주 집에 안가도 됩니다.
식사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는 약국으로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버스 속에서도 손주 녀석들의 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밟힙니다. 창 밖에는 쌍둥이 두명을 쌍생아용 유모차에 태우고 할머니 한분이 밀고 갑니다.
두명 모두가 생김새가 같은 여자 애기들입니다. 우리 손주보다는 약간 어리게 보입니다. 할머니는 허리가 약간 구부정한 모습으로 칠순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아침 햇살이 버거운지 얼굴을 찡그리고 있습니다. 건널목에서 땀을 닦으며 애기들에게 웃으면서 무어라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나와 아내의 그림을 보는것 같습니다. 손주들이 태여난 이후로는 엄마 품에 안기거나 손을 잡고 함께 걸어 가는 애기들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다 내 손주 같이 그저 사랑스럽습니다. 언제나 처럼 오늘 하루도 지유 지안 윤후 민후 건강하게 잘 놀기를 기원합니다.
2013년 8월18(일)
오늘 저녁 7시에 한강호텔 한정식집에서 내 칠순기념으로 온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큰 누님과 매형님 작은 누나와 작은 매형님 남동생 부부 내 아들 며느리와 딸과 사위 외손녀 구윤후 외손자 민후 그리고 친손녀 최지유 손자 지안이 또 조카와 조카 며느리등 모처럼 대 가족입니다.
누님댁의 자식들은 시간이 안 되어 불참하였습니다. 큰 매형님의 건배 선창으로 다 같이 맥주 한잔을 마셨지요
그리고 매형님들과는 쏘맥을 더 마셨습니다.
한정식 1인분에 35,000원 치고는 별로였으나 손님도 없이 조용하고 손주 녀석들이 있어서 그런대로 보낼만한 자리였지요. 생일 축하 노래를 외손녀 윤후의 선창으로 함께 부르고 떡 케익을 하나씩 먹었습니다.
내 나이 어느새 70이라니 믿기지 않는 사실이고 현실입니다.
큰 매형님이 87세 작은 매형님 77세 큰누님도 80이 되시고 작은누님도 74세 동생이 68세 아내는 66세 모두가 삶의 황혼녘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젊은이 못지 않게 매형 누님들도 매일 한강변을 산책하고 있습니다. 모두 건강하신 편이니 다행입니다. 손주 녀석들의 재롱을 보며 내 나이가 정말 실감이 납니다.
앞으로 한달에 한번 두 달에 한번 같이 만나서 소주잔을 기우리자고 매형님들과 동생이 약속을 합니다. 자리를 마무리 하고 작은 매형님의 차는 내 사위가 대리 운전자를 불러 드렸습니다.
모두 모두 건강하게 사시기만을 기원합니다. 살아 생전에 통일이 되어 이런 즐거운 모임을 고향 땅에서 가졌으면 하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되는 날을 기도합니다..
하부지! 하바지!하며 매달리던 손주 녀석들이 이제는 엄마 아빠 품을 찾으며 이 할아버지 할머니는 한켠으로 밀립니다. 다행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섭섭하고 서운한 기분도 듭니다.
이 세상에 제일 편안하고 따뜻하고 행복한 자리는 역시 엄마 아빠 품속이라는 것을 손주 녀석들에게서 배웁니다.
지유 지안아 오늘도 내일도 건강하고 발랄하게 씩씩하게 뛰어 놀거라
이날 회식비는 딸네가 지불 했고 나중에 내 아내랑 11월 해외 여행비는 아들 며느리가 지불할 모양입니다.
아들 며느리는 이 날 애기들 챙겨 먹이고 돌보느라 제대로 식사도 못했습니다.
2013년 8월 22일(목)
오늘 아침 6시 15분 경에 손주 녀석 집으로 갔지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 서려는데 아들 며느리가 막 출근하려고 나서는 참입니다.
지유 지안이가 하바지 하부지가 왔다며 소리 지르며 달려듭니다. 안고 밖으로 나가자며 지안이가 두 손을 벌리며 달려듭니다.
며느리는 황금색 보자기에 미역국을 싸서 우리 집에 갖다 주고 가려고 했답니다.
오늘이 아내와 나의 생일이라며 미역국을 끓였답니다. 아내와 나의 생일은 음력으로 7월 16일 같은 날입니다. 이것도 어쩌면 천생연분인가 봅니다.
지유가 엄마 아빠 손을 양 손으로 잡고 에레베이타를 타고 지안이는 이모가 안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미역국 보자기를 내가 우리 집 경비실에 맡깁니다. 돌아와 지유를 얼른 안아 에미 애비를 출근하라고 떼어 놓습니다..
지유가 아빠를 안 떨어지려고 발버둥을 치며 울어 제깁니다.
나는 테크노 마트 주차장 쪽으로 안고 갑니다. 겨우 진정시키고 11동 뒤편에 있는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합니다. 광진 문화회관 앞 계단을 오르 내리고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면서 안녕이라며 손도 흔들고 잘 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시간 반 정도 지나자 출근하는 이모를 만나 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손 발을 씻기고 녀석들 몰래 빠져 나와 우리 집으로 옵니다.
오늘은 며느리가 생일이라고 끓여 준 미역국에 돼지 등뼈 비지를 넣고 오리알을 한알 더 깨 넣습니다. 후추 가루와 된장을 조금 풀어 넣고 생수를 조금 더 붓고 끓입니다.
아내가 밥솥에 해 놓은 밥과 멸치 조림 오이 무침을 꺼내어서 막 끓인 미역국을 곁들여 맛있게 먹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시부모 생신이라고 미역국과 불고기 무침을 장만 해 준 며늘아기가 오늘은 너무 예쁘고 기특해 보입니다. 아내도 내심 상당히 흐뭇한 모양입니다.
며늘애기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끓여 준 미역국 시어머니도 상당히 흐뭇해 한다” 라는 문자를 오늘 하루는 기분 좋은 하루 였습니다.
“에미 애비야 !, 지유 지안이랑 건강하게 화목하게 행복하게 살아라!”
아내와 나의 바람은 네 식구가 정녕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살아 주기만을 기원 합니다
“ 지유 지안아! 오늘도 건강하고 신나게 놀아라!”
2013년 9월 4일(수) 햇빛 찬란
8월30일(금)에 먼저 도우미 중에 출퇴근 하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딸이 애기 출산으로 그만 두고 새 도우미가 왔는데 애기들에게 잘 대하고 같이 잘 놀아 주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만 애기들과 자주 이야기 하고 장난감도 같이 갖고 놀아 주며 말도 많이 해 주는 편인 것 같아서 우선은 안심이 됩니다. 지유랑 지안이가 잘 어울리며 놀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 아침에도 6시10분 경에 손주 녀석 집으로 갔지요.
지유 지안이도 조금 전에 일어나 나를 반겨주며 활발하게 소리도 지르며 밖에 나가자고 보챕니다. 해서 신발 신기고 옷도 좀 두꺼운 점퍼로 입히고 엄마 아빠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왔지요.
1층 문이 열리는 순간에 지유 손이 잠깐 끼여 아프다고 엄청 울어댑니다. 엄마 아빠는 출근해야 하기에 지유를 억지로 내가 안습니다. 빨리 출근하라 했지만 지유는 계속 엄마 아빠를 찾으며 울부 짖습니다. 며느리와 아들이 탄 차는 떠났는데도 계속 한참을 울었습니다.
지안이는 아직 안 나오고 지유를 할머니 집으로 안고 와서 요플레를 먹입니다. 그제서야 진정이 되었는지 할머니를 부르며 텔레비존에 시선을 모읍니다. 교육방송에서 나오는 어린이 만화를 보더니 그제야 웃고 잘 놀았지요.
아침 8시가 다가오면 다시 손주네 집으로 데려다 도우미들에게 인수인계 합니다. 급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달려 옵니다. 아내가 미리 해 놓은 콩비지 찌개를 데워 아침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서둘러서 약국으로 출근하면 9시 정도 됩니다.
지유는 다친 손은 그리 심하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오늘도 건강하게 잘 놀거라. 이런 마음으로 항상 손주 녀석들을 그리워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사랑인가 봅니다.
지유가 잘 놀고 있는 사진 한컷 찍어서 엄마 아빠에게 보냈습니다.
아무 이상 없이 잘 놀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뜻으로 카톡으로 동영상으로 보냈습니다
2013년 9월13일(금)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어제는 손주 돌보는 아주머니가 갑자기 결근해서 몹시 당황했지요. 그것도 어제 아침 7시 경에야 연락이 왔습니다.
아침 6시 20분쯤에 아들 며느리가 출근 할 때면 지유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옵니다.
엄마 아빠랑 겨우 안녕 뽀뽀를 하고 떨어지기 싫어서 울며 보채는 지유를 안았습니다.
할머니 집으로 와서는 요플레를 먹이면 금방 신이 나서 잘 놀지요. 요플레 하나는 눈 깜짝 할 사이에 먹어 치우고 또 달라고 조르곤 합니다. 하지만 집에 데려가서 아침 밥을 먹어야 하니 그만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얼른 교육방송에서 아침 일곱시부터 시작하는 만화를 보여 주면 화면에 집중하느라 요플레는 잊어 버립니다. 30분 경에 만화가 끝나면 신발 신기고 점퍼를 입히고 데리고 집으로 향합니다. 할머니랑 안녕 악수를 하고 헤어지지요. 할머니는 매일 아침이면 외손주 집으로 가야합니다. 외손녀 윤후를 학교 챙겨 보내고 외손자 민후는 어린이 집으로 데려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돌보미 아주머니 한분이 결근으로 지유를 안고 택시 타고 할머니랑 나랑 같이 갔습니다.
딸 사위가 막 출근을 하고 외손주들이 먹는 식탁에 지유도 합석하며 밥을 주니 잘 먹더군요. 반찬도 감자 나물 데친거랑 계란 부친거랑 밥을 국에 담겄다가 먹였지요.
장난감도 민후 오빠 방에서 마음껏 갖고 놀기도 하고 그리고 민후를 어린이 집 데리고 갑니다. 지유랑 민후가 서로 할머니에게 매달리며 서로 유모차를 타겠다고 울고 불고 한참을 숭갱이 합니다.
겨우 오빠인 민후를 달래고 설득하여 지유를 유모차에 태우고 민후를 어린이 집에 데려다 주었답니다.
할머니를 친손녀 지유와 외손자 민후가 서로 차지하겠다고 아우성 치어 땀을 흘렸답니다.
아마도 민후가 외 할머니를 매일 아침 독차지 하여 사랑을 받다가 지유 동생에게 뺏기는 것 같아서 그랬나 봅니다. 그런데 밤 여덟시가 넘어서 민후가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깜짝 놀라서 할머니가 웬일이냐 물으니 지유 지안이 잘 있느냐고 묻더랍니다.
아마 아침에 동생 지유와 다툰 것이 아마도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민후가 지유 오빠라고 하지만 나이는 이제 네살이니 역시 애기일 뿐입니다. 하여간 어제 하루는 할머니에겐 더 힘든 하루였습니다.
오늘 아침엔 제대로 아주머니가 출근해서 내가 지유를 집에 데려다 주고 왔습니다.
제발 도우미 아주머니들이 바뀌지 않고 오래 애기들을 돌보아 주었으면 합니다.
자주 바뀌면 어린 애기 지유 지안이에게 정서적으로도 안 좋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오늘도 지유 지안이 윤후 민후 건강하게 잘 보내기를 할아버지는 기원합니다.
2013년 10월 31일(목) 가을 날
어제는 지안이가 목욕탕에서 뒤로 넘어지면서 문턱에 뒷 머리를 다쳐 혼비 백산한 날입니다.
도우미 이모가 잠깐 입힐 옷을 찾는다고 돌아선 사이 혼자 목욕탕에 들어 가다가 사고가 났던 것입니다.
낮 12시 30분경에 도우미 이모에게서 나에게 다급하게 전화로 지안이가 다쳤다고 합니다. 매일 오전 11시에 약국에 근무약사가 출근을 합니다. 그 시간에는 매일 운동 삼아 아차산을 오르는 중이라 상태를 물어 보니 피가 조금 흐르다가 지금은 멈추었다고 합니다.
지안이도 그냥 전처럼 잘 놀고 있다기에 가까이 있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합니다. 아내에게 아파트 상가 내에 있는 피부과로 지안이를 데려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합니다. 간단히 봉합으로 끝날 줄 알고 있었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오후 2시에 다시 가서 진료를 받으니 대학병원으로 빨리 가라고 한답니다. 수면 마취하고 봉합해야 된다고 다시 아내에게서 급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혹시 상처 부위가 심각하지나 않은지 걱정을 하며 급히 산에서 내려옵니다. 택시로 딸네 집으로 가서 사위차를 운전하여 지안이네 집으로 갑니다. 도우미 이모랑 같이 아들 며느리가 근무 하고 있는 세브란스대학병원으로 급히 차를 몰고 갔습니다.
강변역 프라임 아파트에서 강변북로로 들어섭니다.
가는 도중에도 지안이는 말도 잘하고 차가 많다고 신기해 하며 종알종알 신나게 소리도 지릅니다. 평상시와 다름이 없어 일단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아들 며느리에게 카톡으로 알리니 몹시 놀라며 뇌진탕 여부도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하여 접수를 하고 조금 지나 며느리가 나타납니다. 몹씨 걱정되고 다급한 표정이지만 지안이는 예전처럼 말도 잘하고 신이 났습니다.
응급차를 보며 삐뽀 삐뽀를 외치며 신기한 표정입니다. 며느리가 돌보미에게 한참 언잖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돌보미 이모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힙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잠시 밖으로 나옵니다.
마취과 의사인 며느리가 마취하고 봉합하려고 했으나 지안이 아빠가 내려옵니다. 담담의사랑 상의 후에 마취는 아니 하고 스테플러로 봉합하기로 했습니다. 애기니까 아마 마취 후유증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돌도 아니 된 어린 자식을 생각하면 부모 마음은 오즉이나 하겠습니까.
지안이는 자지러지게 울어댑니다. 머리를 뒤로 제끼니 몹시 불편하고 겁이 나는 모양입니다. 상처 부위를 깨끗이 닦아내고 소독하고는 두 군데를 스테플러 봉합으로 끝났습니다.
모두 한 시름 놓는 순간이였습니다.
지안이가 엄마 아빠를 뒤로 한 채 할아버지인 내가 운전하는 차로 도우미랑 같이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저녁 다섯시가 넘었습니다.
점심도 못먹은 지안이가 배가 고프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우유를 주었더니 단숨에 마셔 버립니다. 차속에서 많은 차들이 오가는 것을 보곤 또 소리를 지르며 신이 났습니다.
애기들이라 조금 전에 아프다고 그렇게 울며 불며 발버둥 치던 것은 모두 잊은 것입니다. 귀하디 귀한 손자 녀석의 재롱을 만끽하며 집에 무사히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녁 여섯시를 훌쩍 넘기고 약사 퇴근 시간도 지나 버렸습니다.
조금 늦겠노라 약국으로 전화 하고 도착하니 저녁 일곱시가 다 되었습니다.
그때야 나도 점심도 안 먹은 것이 생각이 나서 비빔밥 한 그릇 시켜 먹습니다. 한 시름 놓고 하루가 어떻게 지난 줄 모르고 다급하고도 속 상한 하루였습니다.
앞으로도 애기들을 키우려면 얼마나 많이 놀랄 일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유 지안이가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기만을 오늘 또 이 할아버지는 두 손 모아 기원 합니다.
2013년 11월8일(금) 맑은 날
먼저 지유 지안이 도우미 아주머니들을 지난 토요일에 전격적으로 그만 두게 하고 며느리와 아들이 조선족 할머니를 채용 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지안이 지유를 잘 보살피고 있는 이모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며느리로서는 그리 썩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나 생각됩니다.
부모인 우리도 모르게 결정한 일이라 11월4일 월요일에 아침에 지유지안이 집으로 도착해서야 알았습니다.
지난번 지안이가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넘어 지면서 뒤통수가 찢어지는 일이 생기면서 도우미와 갈등의 기폭제가 되었나 봅니다.
조선족 도우미를 면접을 보고는 상당히 만족한다지만 아내랑 나는 극구 만류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이 있어 결정한 일이니 어머님은 관여하지 말라는 말을 며느리가 합니다. 며느리와 아들 녀석의 말을 듣고는 자식에 대한 언짢은 생각으로 감정이 많이 상했습니다.
며느리의 시어머니이며 손주들 할머니인 내 아내도 불쾌하고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6시경이면 어김없이 손자 녀석들에게 달려갑니다. 녀석들 보는 재미로 피곤함도 잊고 달려 가곤 합니다. 또 저녁에 자식들이 병원일로 늦으면 달려가서 손자들을 보살핍니다. 할머니는 오늘부터는 절대로 안가기로 마음의 다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스마트폰의 알람도 삭제 하고 그냥 잠을 잤습니다. 전화 벨소리에 놀라 눈을 뜨니 여섯시를 지나고 있습니다. 며느리의 전화 벨 소리가 나를 잠에서 벌떡 깨웠습니다.
"아버님 저희들 지금 출근해요" 하는 며느리의 조금 다급한 목소리입니다. 지난 밤에 아내와 다짐한 약속은 말끔히 잊어버리고 부리나케 손자들 집으로 허둥대며 들어 갔습니다.
아내는 아는지 모르는지 알면서도 모른척 했는지 기척이 없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 가니 아침 일곱시가 넘은 시각입니다. 아들 며느리가 애기들을 안고 엉거 주춤한 상태로 난감한 모습이었습니다.
뒤로는 처음 보는 환갑은 넘어 뵈는 아주머니가 보입니다. 새로 이 날부터 도우미로 일하기로 한 아주머니인 것을 직감으로 알아 차렸습니다.
왜 아직 출근 안하고 애기를 안고 서있느냐고 묻습니다. 출근하려고 나가는데 지유지안이가 울며불며 매달렸답니다. 뿌리치고 차에 시동을 걸며 CCTV를 보니까 애기들이 현관으로 접근 못하게 설치한 펜스를 잡고 계속 울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25층인 집으로 돌아와 할아버지가 오기만을 기다린 것이랍니다 .
얼른 지유 지안이를 내가 받아 안고는 급히 출근하라고 합니다. 지유 지안이가 아빠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습니다.
그래서 애기들의 관심을 다른데로 돌리며 달래니 다시 평정심을 찾아 잘 놀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8시가 되어 나는 집으로 가서 약국으로 가야 할텐데 지유녀석이 절대로 할아버지를 놓아 주지 않고 계속 품에 매달립니다.
먼저 도우미가 있을 때는 쉽게 관심을 다른데로 돌리게 하고는 뛰쳐 나오곤 했습니다. 새 도우미가 처음 온 날이라 절대로 못 가게 틈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한참을 애먹다가 빠져 나오긴 했으나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새로 들어온 도우미가 애기들에겐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울고 있을 손주 녀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옵니다. 애기들은 울며 불고 매달리고 약국에는 출근을 해야하고 진퇴양난 중에 진퇴양난입니다. 이처럼 애기들로 인하여 가슴이 아파온 적은 없었습니다.
내 마음으로는 조선족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 뿐 입니다. 도저히 애기들을 맡기고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될 뿐입니다. 11월5일 점심 시간에 아들 며느리가 근무하는 세브란스병원으로 찾아갑니다. 아들에게 당장 도우미를 그만 두게 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들도 며느리도 그런 느낌으로 고민 했다면서 오늘 밤에 들어가면 이야기 하겠다고 했습니다.
며느리는 수술실에서 바빠서 나오지 못하여 만나지는 못 했습니다. 아들에게 지안이를 우리가 일년간은 돌볼테니 네 아내와 잘 의논해서 친정에서는 지유를 봐달라고 말씀드려 보라 했습니다.
아들과 점심을 마치고 전철 타고 돌아 오는 도중에 친정 쪽에서도 좋다고 한다는 메시지가 카톡으로 왔습니다. 저녁에 수원에 사시는 애기들 외할머니가 애기들 집으로 오셨습니다. 친할머니도 걱정스레 함께 만났습니다.
며느리가 조선족 도우미 그만 두라는 얘기 할 때 혹시 만일의 사태가 있을까 염려를 한것입니다. 퇴근한 며느리가 얘기하여 간단히 아무 탈 없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늦게 외 할아버지도 오시고 나도 약국 문을 닫고 가서 친정 부모님과 함께 의견을 나눕니다. 지유가 저녁에 먹은 것을 몇 번 토를 했습니다. 지안이를 수원 외갓집에 데리고 가서 당분간 돌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 후에야 이제야 안심이 됩니다.
저녁도 못 먹고는 생맥주를 도넛츠와 같이 한잔 씩 아들 며느리와 함께 합니다. 밤 12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돌아 오면서 아내에게 애들하고 이사 가는 날(12월15일 연희동 연세대 뒤편으로 이사 예정) 전에 애들과 불편한 감정을 풀어야 합니다. 그냥 떠나면 평생 한이 될지도 모르니 오늘 해결한 것이 다행이라 했습니다. 아내도 그런 마음으로 이제야 홀가분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어느 부모도 자식 사랑 아니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식이 항상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빌지 않는 부모가 세상 천지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 밑에 있는 레지던트나 제자에게 대하듯 하는 말과 행동은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괘씸 함과 억울함과 배신감마저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아 주었으면 하는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가끔 자식들은 자기가 더 모든 것을 잘 알고 더 잘 낫다고 생각 하기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언행에 부모들의 마음은 찢어 지고 무너져 내립니다 . 곧 이사를 가게 되는 아들 며느리 지유 지안이를 생각하면 오늘 밤도 뜬 눈으로 새워야 할 것 같습니다.
*** 친손주 최지유 최지안이는 2012년 1월 6일 아침 6시 30분에 1분 간격으로 세브란스병원에서
이란성 쌍생아로 태여났습니다. 손녀 지유가 1분 차이로 누나가 되고 손자 지안이는 동생입니다.
마포구에 살던 며느리가 애기 출산 후에 시부모 저희가 살고 있는 광진구 아파트로 이사를 왔습니다. 하지만 약국을 경영하고 있는 관계로 며늘애기와 아들 기대에는 훨씬 못 미쳤습니다.
시부모로서 아내와 나는 항상 며느리에게 미안함과 빚을 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며느리 아들 의사로서 눈코 뜰 새없이 바쁜 줄 알면서도 뜻대로 도움을 주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아직은 아마도 약국에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잘못인 것도 같습니다. 해서 손주들이 두돌이 되기 전에 이사를 가기로 한 것도 같습니다. 근무처인 세브란스병원 바로 뒤편에 있는 아파트로 우리 곁을 떠난 것입니다.
지유지안이가 세살이 되어서는 병원 바로 근처에 있는 세브란스 어린이집에 보내게 됩니다. 처음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던 순간이 아직도 마음에 여울로 남아 있습니다. 두돌 지난 손주들을 어린이집에 지유지안이 두녀석을 안고 들어 갑니다.
담당 선생님께 지유지안이를 인수인계를 합니다. 돌아서 나오려니 두 손주녀석들은 바지가랭이를 잡고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계속 두 녀석이 대성통곡을 하며 어찌 할 바를 모릅니다. 30여분이 지나도 할아버지 품속으로 달려 듭니다.
" 할아버지께서 밖에 나가 계세요 " 담당 선생의 말입니다. 억지로 뿌리치고 마루로 나옵니다. 지켜보고 있으나 여전히 울어제끼는 손주들입니다. 너무 안스러워 어찌 할 바를 모릅니다. 엉거주춤 기다려 보지만 끝이 없습니다.
아픈 가슴을 안고 밖으로 나올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그 다음 날도 일주일 정도 손주들에게 못 된 할아버지가 됩니다.
애기들이 곧 어린이집에 정이들어 잘 적응하기만을 기원할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만으로 세살도 안된 애기들이니 말은 제대로 못해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