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쓰는 편지
양재일(시인, 본지 주간)
상수리 만한 고욤의 왜성倭性을 겨우 면한 듯한 감을 옹색하게 달고 있던, 몇 그루 안 남은 감나무를 죄다 얼려 죽여버린 양평 산골의 초겨울 아침은 오리털 점퍼를 입어야만 진저리를 멈출 수 있습니다.
간밤 나무난로의 뱃속에 가득 넣어둔 장작불의 여운마저 다 앗아가 버린 산골의 추위에 나의 아침은 고슴도치처럼 몸을 말은 채 깨어납니다. 잠을 깨면 텔레비전 리모컨부터 찾습니다. 텔레비전은 남들이 비아냥거리는 바보상자가 아니라 내게는 내 이순耳順의 허허로움을 무념무상으로 변환시켜주는 절묘한 특효약이며 눈이 오면 버스도 끊겨 고립되어버리는 유배지 같은 산골에서 일기예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추위에 얼은 몸이 채 제 자리로 돌아오기 전에 아랫집 문을 열고 할머니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으로 나의 아침은 시작됩니다.
경로당에 가면 일흔다섯의 할머니들이 식사당번을 하고, 이순의 나는 젖니 빠진 목소리로 재롱을 피워야 하는 노인 공화국, 이 산골엔 유통기한이 끝나버린 무릎 때문에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유모차에 매달려 유인원처럼 걷습니다.
건강 때문에 마실도 못 가는 아랫집 이충순 할머니는 긴 겨울에는 절해고도에 갇혀있습니다. 자식들에게서 전화 한 통도 없는 날이면 온종일 말 한 마디 할 수 없는 당신은 어쩌다 잘못 걸려온 전화마저도 쉬 끊지 않으려고 빈 전화기를 한참 동안 내리놓지 못하는 편입니다.
여기는 일 년의 절반이 겨울입니다. 해만 지면 정전이 된 것처럼 일제히 불이 꺼지고 두꺼비집이 고장 난 나만 혼자 무인도에 떠있습니다. 해동이 되면 이삿짐을 싸서 아랫녘 따뜻한 섬으로 가자고 몇 번이나 나를 채근했지만 육중한 닻을 올리지 못한 채 묶여있는 것은 아랫집 이충순 할머니 때문입니다. 여든넷, 어머니 연세의 할머니는 누가 내게 존경하는 사람을 한 사람만 말하라 하면 주저없이 말할 수 있는 분입니다.
당신은 이 산골에서 우리 집의 네 그루 벚나무가 꽃샘추위 속에서 젖몸살을 하는 것을 아는 유일한 분이시고, 몇 안 되는 동네 조무래기들이 당신 집과 내 집 사이의 돌담길에 쪼그려 앉아 벚꽃을 줍는 손을 볼 수 있으며, 버찌를 주워 먹은 그 녀석들의 유치乳齒에 보랏빛 물이 드는 것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계십니다.
당신은 무엇을 물어볼 때마다 자식 같은 내게 ‘물어본다’고 하대下待를 하지 않고 언제나 “여쭈어 본다”고 하십니다. 삼천원 짜리 고추끈을 사다달라고 부탁을 할 때에도 공연히 내 주위를 맴돌다 모기 유충만한 소리로 지평(면 소재지) 갈 일이 없냐고 에둘러 말을 하고는 비닐끈 값 삼천원과 시장할 텐데 칼국수라도 사 먹으라며 칼국수 값 사천원을 보태어 칠천원을 봉투에 넣어 공손하게 내밀어 나를 감동하게 합니다. 당신의 인격에 감동한 나는 갈 일이 없어도 갈 일이 있다는 핑계를 만들어 면 소재지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11월 중순, 일기예보가 한파를 예고하면 기역자 허리의 할머니들은 배추를 묶습니다. 배추 모종을 산 곳에서는 배춧잎이 오그라드는 품종이라 굳이 묶지 않아도 된다고 몇 번씩 강조해서 말을 하지만 할머니들은 볏짚으로 배추들의 옷깃을 여미어 추위를 막아주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내 배추는 안 묶어주려고 하지만 가만있으면 지레 게으르다는 흉을 볼까봐 텃밭의 배추부터 묶습니다. 그러나 내 것부터 묶는 것이 응당한 일인데도 노동력을 거의 상실한 할머니의 가슴에서 새어나오는 빙하의 냉기는 내 양심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심은 300 포기의 배추 중 일찍 심은 것 100 포기만 골라 서둘러 묶고, 300 포기가 훨씬 넘는 아랫집 할머니의 배추를 묶기 시작합니다. 그 배추도 내가 심은 것입니다.
배추가 비싸질 것을 예고하는 방송이 여러 번 나왔습니다. 가난한 산골이라 무엇이든 선뜻 나누어 먹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할머니는 당신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예전처럼 아낌없이 배추를 나누어 줄 것입니다. 아깝지 않느냐고 물으면 언제나 귀할 때 주는 것이 값어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몇 해 전에는 그렇게 베푸시더니 정작 당신께서 김장을 할 때는 모자라서 남의 배추를 산 적도 있습니다.
해가 토끼꼬리만큼 짧아져버렸습니다. 해가 짧아질수록 어둠의 수량은 더욱 늘어나, 외로움에 겨워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던 산그림자가 제 자리로 돌아가면 마을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나는 나의 무인도에 닻을 내리고 내 마음 속에 달아두었던 풍경風磬을 떼어버립니다.
그런데 왜 나는 권두칼럼에 을씨년스러움을 넘어 서글퍼지기까지 하는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는 걸까요? 글쎄요. 마음의 눈을 뜨면 시는 넘치는데 마음의 눈을 감아버려 시를 보지 못하는 시인들에게 하는 하소연이 아닐까요.
이웃, 양평군 개군면에 최경학이란 일흔쯤 된 여류시인이 있습니다. 어제 아침엔 그분에게 일흔이 넘어 한글을 배워 치자꽃 향기란 시집을 낸 진효임 할머니의 시를 읽어주었습니다.
“치매 들어 자식들 짐 될까 무서워/어려운 컴퓨터 배우기로 마음먹었네/자판 글자들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고/배우고 돌아서면서 잊어버리기를 수백 번/…가방 끈 짧다고 우세 마소/나 이제 컴퓨터로 이메일도 보내고/시도 쓸 줄 안다네”
-「컴퓨터 할머니.」
그분에게 말합니다. 우리, 시를 쓰면서 유식한 척, 고상한 척 하려고만 했지 이렇게 진솔하게, 이렇게 절절하게 시를 쓴 적 있냐고, 우리 최경학 표, 양재일 표 시를 쓴 적 있냐고……
첫댓글 편지 잘 읽었습니다. 양평의 겨울 풍경이 눈에 선 합니다.
선생님이 손수 지으시고 담그신 김장김치 맛은 어떨라나??
신침에 입속에 가득 고여 옵니다.
선생님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지평면 절운3길에서 퍼지는 냉기는, 수은주의 온도를 올려주는 마력이 있습니다.
양주간님의 열정과 진솔함이, 이충순 할머니의 순수가 제 가슴에 종소리로 걸어옵니다.
막걸리가 그리운 밤이 깊어감니다 ^.^
아랫집 할머니 이승에 계실 제 막걸리 담는 법이나 배울까.....
깊은 동안거에 드셨네요 ..
감동으로 읽습니다 ...
우짜든 건강하셔야 합니다
많은것을 배우고 갑니다
거기 지평이라는 곳은 여기 캐나다 캘거리 같은 곳이군요
여기도 겨울이 무지무지 긴 ---로키 산골---이랍니다
나의 무인도에 닻을 내리고
내 마음 속에 달아두었던
풍경風磬을 떼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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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봄 풍경은 매혹적입니다.
깊어가는 밤 곱씹는 대목입니다~
가뭄으로 목마른 대지
그래도 추위만큼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