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들, 쟈끄 데리다, 솔, 1996.
이 책은 해체주의의 주창자로 알려졌던 프랑스의 사상가 쟈크 데리다의 대담들을 모아 엮은 결과물이다. 데리다가 내세운 ‘해체(deconstruction)’라는 개념은 유럽 사상계의 지배적인 방법론 가운데 하나였던 구조주의(structuralism)를 염두에 두고 제기된 것으로 파악된다. 주지하듯이 구조주의는 특정 관념의 구조를 하나의 체계를 상정하고, 구조를 이루는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분류하여 이를 보편화하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데리다는 이분법적으로 분류되는 구조주의 방법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작품에 존재하는 숨겨진 의미를 천착하여 정형화된 해석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에게 해체라는 개념은 대상을 구조적으로 분류하여 해석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작품 자체에 내재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해야 하는 방법론이라고 하겠다.
이 책은 데리다의 이론이 소개되면서 출간되자마자 구입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처음 접하면서 낯설고 어려운 내용으로 인해 읽기를 미뤄두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데리다의 이론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소개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1960년대부터 해체론에 입각한 그의 이론이 다듬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 4개의 대담이 수록되어 있는데, 앙리 롱스와 ‘함의(含意)’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대담은 1967년도에 진행되었던 내용이다. 편역자의 의하면 ‘해체는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책읽기-글쓰기의 실천’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데리다의 저서에 나타난 표현들이 지닌 의미를 진지하게 따져 묻고, 그에 대한 답변들로 진행되고 잇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수록된 쥴리아 크리스테바와의 대담은 1968년에 진행되었으며, 해체의 개념과 대척에 놓인 기호학과 문자학(그라마톨로지)에 대한 기존의 방법론에 대한 데리다의 입장들이 선명하게 제시되어 있다고 파악된다. 세 번째에 수록된 ‘입장들’이라는 제목의 대담은, 데리다가 새롭게 제기한 ‘차연(差延)’이라는 단어에 대한 의미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발음으로는 차이가 나지 않는 ‘차이(différence)’라는 단어에서 철자 하나만을 바꾸어 ‘차연(différance)’으로 명명하여, 문자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개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아직 ‘차연’이라는 개념으로 정착되기 이전에 출간된 때문인 듯, 두 단어를 고딕체로 강조한 ‘차이(différance/차연)’와 명조체의 ‘차이(différence)’로 구분하여 표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대담은 1991년에 진행된 것으로, 앞서의 대담들과는 20년 이상의 시간적 격차가 존재한다. ‘일종의 고백록적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할례고백(Circumfession)>이라는 저서의 내용을 토대로, 1960년대 초반부터 “근 30년 동안 전개된 데리다의 사유를 결산하고 정리해보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여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하여 데리다의 사상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이전에 유럽 사상계를 지배했던 구조주의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론 가운데 하나였듯, 데리다의 해체주의 역시 다양한 사상적 조류의 하나로 각인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차니)